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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장맛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아침, 언제나 그렇듯이 허둥지둥 버스로 내달렸다.
여느때라면 자리에 앉아 책이라도 보며 갔을텐데 조금 늦은 탓인지 자리가 꽉 차 있다.
그래도 앉을 자리만 없을 뿐이지, 뒤쪽은 서서 책을 보고 갈 정도로 여유가 있어보여, 앞쪽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훤하게 트여있는 뒷쪽에 자리를 잡았다.  비집고 들어가는 도중에 안것인데, 사람들이 유난히 앞쪽에만 몰려 있던 이유랄까? 뒤쪽은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든 자리를 차고 앉아 이리 저리 뒤돌아보며 수다떨기 바쁘다.  그 중간에 자리를 차지하기란 웬지 쌩뚱맞게 느껴졌을 것이다.
쌩뚱맞은 어색한 기분을 빨리 잊고 싶어서 들고있던 우산을 얼른 바닥에 내려놓고 책을 꺼내들려고 하는 순간, 목 뒷쪽 힘줄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씨~ 왜 내 앞에 서고 그래~ ......"
움찔해 오는 신경을 감지하며,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고2 정도로 보이는 앳뎌 보이는 여학생.
한마디 쏘아 붙일까 속으로만 생각하다, 마는가 싶었다.
뒤쪽에 자리가 나자 이 친구 잽싸게 일어나서 가려다 내가 가로막고 있자 눈은 마주치지 않으면서 영 뭐 씹은 기분나쁜 눈초리로 바라보다 비켜주자 뒷쪽으로 쪼르르 가 앉는다.
그 눈초리 탓이었을까?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아이 씨~ 진짜~"
뒷쪽에  가서 앉은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내 귀에 들렸던 것 처럼, 내가 한 말이 바로 내 앞에 앉아있던 그 친구의 친구가 들었나보다.  바로 반응하지 않은 나와는 다르게 그 친구의 친구는 바로 반응한다.
"왜? 욕하고 그래요?"
순간 뜨끔했다. 하지만 조금 전 부터 누르고 있던 감정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고 만다.
일대 설전이 오고갔다.  사실 감정섞인 막말이 오고가는 중에는 나이를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이 불리하기 십상이다.  이미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불리한 싸움이랄까? 

그래도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차근차근,  뒷쪽에 가서 앉은 아이가 먼저 내 뒤에 대고 뭐라고 했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 뒤에 가 앉은 그 아이, 그런 일 없다며 딱 잡에 떼고는 왜 욕 했느냐며 난리다.
어리고 만만해 보였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튀어오른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뻔히 불리해 보이는 싸움 한복판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이런 싸가지니 뭐니 하는 말이 먼저 나와버리고 절제하지 못한 감정은 뒤에 앉은 그 아이 앞에까지 다가가서 손찌검하는 시늉까지 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미 늦어버린 후회...

처음 뚝 잡아 떼던 그 친구 드디어 할 말이 생겼는지, 처음에 뒤에서 나에게 한 말은 혼잣말이었다. 그리고 째려 본게 아니라 비켜달란 말을 하기 싫어서 그냥 쳐다본것 뿐이라며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인정한다. 그러면서, 나 더러 아무리 그랬더라도 나 더러 더 잘못했다면서 큰소리다.
이러던 중, 앞쪽 어떤 아주머니는 시끄러웠던지 뒤를 돌아보더니 한 마디 한다.
"바득바득 끝까지 대드는 학생이 너무하네~"

나를 거들기 위한 말이었을까.  그러나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사실 이런 말싸움에서 제3자가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다 알고 누구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아주머니가 보기에 그저 어린 아이가, 좀 들어보이는(?) 나에게 대드는 모습만으로 그 아이에게 한마디 한 것일 뿐이다.

그 아주머니가 끼어든 덕분에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 친구가 나에게 뒤에 대고 뭐라고 한 것이 발단이긴 했지만, 나 역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잘못된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한 것이 문제였다.  내가 정당한 방식으로 소통했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탓에 나도 잘 했다고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즈음 되니, 볼썽 사납긴 하지만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었던간에 싸움 중에 욕한 것과 손찌검 하는 시늉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니 학생도 먼저 뒤에대고 뭐라고 한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구도 함께.
그랬더니 그 친구는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모두가 다 내 잘못이란다.
이미 냉정을 되찾은 터, 그런 도발에 발끈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고 말았다.  여전히, 자기는 잘했다는 말을 애써 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나고 난 뒤, 불쑥 내가 했던 말을 그 친구에게 전달해 주었던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친구, "에이~ 둘 다 잘못했어요~!"

....

중간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올까 하다 그 꼴이 더 우스울듯 해서 끝까지 다 와서 내렸다.  그리고 회사까지 걸어오는 동안 영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처음에 참지말고, 조용히 이야기 했다면 좀 나았을까? 아니면, 내가 그 나이 때에 어른이 뭐라고 했더라면 기분 나빠서 나도 똑같이 그랬을까? 
아주 쉽게 그냥, "요즘 애들은 다 싸가지가 없어~!"하고 마는게 나을까?

요즘 애들, 요즘 애들...
요즘 애들이 문제일까,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내 탓일까?
어차피 툭~툭~ 내뱉아서 사람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요즘 애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요즘 애들 문제는 도대체 뭐지?



인격수양이 덜된 덕분에 이렇게 유쾌하지 못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ps1. 훗~ 복잡했던 기분이 이렇게라도 정리하고 나니 한결 낫다.  이 찜찜함에 허비한 시간이 도대체 얼마야.... 휴~~~ 이제부터 일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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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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