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예산http://blog.jinbo.net/pbpb/참여예산2018-03-19T05:39:19+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서평] 카스 선스타인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참여예산http://blog.jinbo.net/pbpb/3582012-08-24T11:36:15+09:002012-08-24T11:36:15+09: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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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ass="external"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08145114"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08145114"><strong>"2002 미선·효순은 단순 사고!" 외칠 수 있는가?</strong></a> (프레시안,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2012-06-08 오후 6:44:38)<br />
<strong><font color="#0100fe">[김성희의 '뒤적뒤적'] 카스 선스타인의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선스타인 지음, 송호창·박지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font></strong><br />
다소 길지만 이 책에 인용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일부를 소개한다. "다른 권력의 횡포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횡포도 주로 공권력 행사를 통해 그 해악이 처음 목격되었으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 (…) 사회는 스스로 뜻을 관철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 그러므로 정치 권력자들의 횡포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그리고 사회가 통설과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이견 제시자들에게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면서 통설을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br />
맞는 말 아닌가. 예를 들어 10주기를 맞은 '미선·효순 양 사건'과 관련해 "단순 사고사였다. 촛불 집회와 같은 사회적으로 들고 일어설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려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그 반대로 "북한인권법은 내정 간섭이자 외교 관례에 어긋난 게 맞다. 실효성도 의심스럽다"고 공언하려면 상당한 역풍을 맞을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br />
<img src="http://image.pressian.com/images/2012/06/08/50120608145114.JPG" style="margin: 0px 1em 0px 0px; float: left" />소수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니 사실 책 제목-원제를 그대로 옮겼다-에 대한 답은 자명한 셈이다.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인 이 책의 지은이는 이를 이른바 '대세'와 '통설'에 맞서는 이견은 실수와 불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선지 책은 이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보다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는 '통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석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br />
그에 따르면 동조, 사회적 쏠림(social cascade), 집단적 편향성(group polarization) 때문에 이견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 동조는 다른 사람의 행위나 의견을 따라서 하기다. 사회적 쏠림은 동조가 무리지어 일어나는 것이고, 집단적 편향성은 집단 구성원들이 토론을 거친 후에, 토론 이전보다 더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는 현상이다.<br />
지은이는 그 원인으로 몇 가지를 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부족 또는 왜곡과 평판의 압력이다. 그는 2001년 수백 명의 미국 법학 대학 교수들이 헌법에 근거해,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사람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도록 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던 예를 든다. 법학 교수라 해서 모두 헌법 전문가는 아니다. 그에 따르면 성명서에 서명한 대부분이 법적 쟁점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단지 피상적으로 믿을 만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다른 사람들-동료 교수일 가능성이 크다-의 판단에 따랐던 것이다. 이는 어쨌든 성명서가 보기만큼의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지은이는 의사들의 처방, 판례 등을 예로 들며 동조와 사회적 쏠림은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듯, 앞선 사람들의 결정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따랐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br />
좋은 평판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집단 편향성의 주요 요인이다.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강하게 갖는 경우가 많은 반면 확신이 약한 이들은 중도적인 의견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게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다수라고 여겨지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어 진보적인 이들이 모이면 더욱 진보적인 의견이, 보수적인 집단에선 더욱 보수적 의견이 득세를 하게 된다고 한다.<br />
이 대목에서 지은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을 분석한 어빙 야니스가 제시한 집단 사고의 몇 가지 증후를 소개한다. 야니스에 따르면 집단적 자기 합리화를 통해 한 번 내려진 결정을 돌아보게끔 하는 경고 혹은 정보를 무시하는 폐쇄적 사고, 적들이 너무 사악해서 협상이 불가능하다거나, 적들이 너무 약하고 멍청하다는 등의 판에 박힌 생각이 이 같은 집단 사고의 특징이다. 또한 야니스는 집단 결속력이 강한 경우, 집단의 정책 결정에 전문가의 자문이나 외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지도자들이 열린 토론과 비판적 평가를 장려하지 않을 경우, 구성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신념이 서로 비슷한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br />
이런 경향은 정파를 가리지 않아 '정치적 올바름'이 대세를 이뤘던 1980년대 미국 대학에서 공화당 지지나 동성애자 권익 반대 입장을 취했던 한 학생은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악의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고 기억했다.<br />
지은이는 일반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것이며 이견 제시자는 자신의 생각대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인으로 해석되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지적한다. 동조자들은 그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지만 잘못된 관행이나 집단적 합의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처벌, 따돌림 등 불이익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란 설명이다.<br />
책은 2009년에 번역판이 나왔으니 사실 좀 묵은 것이다. 또 다원적 무지, 자기 검열, 침묵의 비용 등 다양한 개념과 사례를 제시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을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정교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조직이나 국가는 이견을 환영하고 개방성을 응원할 때 가장 번영할 확률이 높다는 당연한 주장 말고는 이견을 허용하고 장려하는 제도에 대한 제안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이견 제시자와 '청개구리'를 구분하는 방법도 명시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하지만 '진영 논리'가 판치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꼭 들춰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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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ass="external"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223210044"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223210044"><strong>'김어준빠'와 '강용석빠'의 불편한 공통점은?</strong></a> (프레시안,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2012-02-24 오후 4:59:10)<br />
<strong><font color="#0100fe">[김성희의 '뒤적뒤적'] 캐스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font></strong><br />
지난해부터 출판계엔 '가까 붐'이 일었다. 음, 이건 어떤 정치적 의도를 담은 비아냥이 아니다. '~가' '~까'로 끝나는 제목이 쏟아지는 현상을 두고 붙여본 이름일 따름이다. 추측컨대 인문서로는 아주 드물게 대박을 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탓으로 보이는데 편집자들의 상상력이 아쉬운 대목이긴 하다.<br />
어쨌거나 이런 유의 책은 시류를 좇는 것 같아 일단 낮춰보는 편이 마땅하다고 보지만 그 중엔 꽤 괜찮은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캐스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이정인 옮김, 프리뷰 펴냄)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하겠다.<br />
일단 인간 행동 변화의 비밀을 들춰낸 전작 <넛지>(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펴냄)에서 보여준 통찰력도 그렇고,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란 직위도 믿음을 더한다. (표지에 자랑스레 박은 이유겠다.) 무엇보다 원제에 충실한 제목이 흥미를 돋운다. 바로 오늘 이 땅에 발 디디고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유혹적이다.<br />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우리 편, 네 편 아니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갈려 벌이는 논란을 보면 상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해법에 목말라서다.<br />
지은이가 초점을 맞춘 것은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온갖 분야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사실 이런 현사에 주목한 것은 지은이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30년대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이한우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논하긴 했다. 이 책은 선악의 잣대를 떠나 극단화를, 철학 대신 사회학 또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이 니버의 책과 다르다.<br />
<img src="http://image.pressian.com/images/2012/02/23/50120223210044.JPG" style="margin: 0px 1em 0px 0px; float: left" />책은 집단 극단화의 정체와 그 원인, 그 결과로 어떤 일이 빚어지는지,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논한 뒤 '착한 극단주의'를 이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로스쿨 교수가 쓴 덕인지 아주 체계적이고 풍부한 사례와 실험 결과 등을 토대로 해서 명쾌하고 알차다.<br />
이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아무래도 집단 극단화의 원인과 처방이겠다. 제2장 '극단화는 왜 일어나는가'에서 원인을 집중 분석하는데 지은이는 권력의 엄청난 위력과 악의 본질, 집단 사고라는 개념, 그리고 사회적 '폭포 효과'를 꼽았다.<br />
눈길을 끄는 설명은 '평판의 압력'. 집단의 일원이 되면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호의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며 그 결과 능력이 신뢰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정보나 집단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를 꺼린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건강한 '라이벌들의 팀'을 구성했던 링컨 대통령과 달리 '라이벌이 아닌 사람들의 팀'으로 구성됐던 부시 행정부는 다양한 내부 의견이 통제되는 바람에 이라크 정책 등에서 '일사불란함'을 보여주면서 균형을 잃었다고 평가한다.<br />
또 아주 미미한 수준의 정보를 습득한 다음, 그것으로 자신의 극단주의를 뒷받침하려고 하는 '절름발이 인식'은 극단주의자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을 둘러싼 논쟁에서 강용석 의원을 지지했던 이들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면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이 열광하는 <나는 꼼수다> 현상은 '확증 편향'의 사례로 꼽을 수도 있다.<br />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 이 책에선 '확증의 힘'이라 해서 "사회적 네트워크가 사람들이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극단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인터넷을 지목한다. 자신의 정치 신념에 맞는 매체만 보거나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해 성향이 같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양한 생각, 논리적 반론을 접하는 대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한다면 고정관념이 서로, 갈수록 증폭되는 '에코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br />
이런 우려는 온라인 정치 시민운동의 선구자가 쓴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 조종자들>(이현숙·이정태 옮김, 알키 펴냄)에서도 볼 수 있다. 프레이저는 구글 등 대형 포털들이 검색 필터링을 이용해 개별화된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정보 편식'을 불러 반드시 편리하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인터넷의 속성상 '확증 편향'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br />
그런 면에서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 올드 미디어도 나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주제나 주장을 우연히 접하게 만드는 '우연이 만드는 건축물(architecture of serendipity)'을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다양한 견해를 공정하게 소개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제임스 하킨의 <니치>(고동호 옮김, 더숲 펴냄)에 따르면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려는 매체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다고 한다.)<br />
그렇다면 자연히 극단주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로 관심이 쏠리는데 지은이는 제4장에서 세 가지를 가능한 답변으로 제시한다. 전통주의, 결과주의, 견제와 균형이 그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관점의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견제와 균형'은 어쩌면 상식적인 해법이어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지지한다는 '전통주의'가 신선하게 읽힌다.<br />
이는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에 기댄 것으로 버크는 '혁신 정신'을 이기심과 편협한 관점의 결과로 보았다. 이에 따라 그는 합리적인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상당 부분을 전통에 위임한다면서 "우리가 가진 오래된 편견들을 모조리 내다 버리지 말고 상당 부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견해가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진보나 혁신이 내일의 보수가 되거나 밥그릇 싸움의 또 다른 명분인 경우를 보았고, 또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전통주의는 많은 분야에서 올바르지 않은 운동을 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지은이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br />
1930년대 파시즘에서 21세기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까지 다양한 현상을 분석한 지은이는 "집단 극단화는 크게 보면 정보 교환의 산물"이라 결론짓는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인터넷을 일러 '정보의 바다'라고도 하고 정보의 쓰레기가 넘친다고 하지만 어쨌든 지은이에 따르면 그만큼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진 셈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적어도 어떤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대한 가이드로 이 책은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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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27131225">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27131225</a><br />
<strong>연봉 1억 직장인, 실제로 번 돈은…</strong> (프레시안, 최정규 경북대학교 교수, 2012-04-27 오후 6:17:14)<br />
<strong><font color="#0100fe">[프레시안 books] 로버트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font></strong><br />
<img src="http://image.pressian.com/images/2012/04/27/50120427131225.JPG" style="margin: 0px 1em 0px 0px; float: left" /><경쟁의 종말>(안세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로버트 프랭크의 최근 저작 <The Darwin Economy>(2011년)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그가 쓴 <Choosing the Right Pond>(1985년), <The Winner-Take-All Society>(1996년), <Luxury Fever>(1999년), <Falling Behind>(2007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br />
프랭크가 앞서 펴낸 책들은 지위 추구 욕구라는 인간의 욕망과 점차 승자독식이 되어가는 시장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초래하는 파괴성을 구체적인 사례와 경제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흥미롭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가 쓴 <경쟁의 종말>은 기존의 진단을 아우르면서 처방까지 제시하고 있다.<br />
물론 국내에도 소개된 <승자독식사회>(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사치 열병>(이한 옮김, 미지북스 펴냄)과 같은 책에서도 프랭크는 부분적으로 누진 소비세라는 정책 처방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경쟁의 종말>에서 그는 자신의 개입주의적 정책 처방의 근거를 한층 더 강력하게 그리고 한층 더 분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br />
로버트 프랭크는 사람들의 소비 중 상당 부분이 과시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그는 전작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상대방이 가진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려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하고, 그런 불평등이 사람들의 후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또 그런 속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쟁 그리고 높은 지위임을 끊임없이 과시하려는 소비 행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서술했다.<br />
특히 <승자독식사회>는 사람들의 지위 추구 욕구와 함께 왜 시장이 점차 승자독식이 되어 가는가를 생생히 보여준 역작이다. 이번에 나온 <경쟁의 종말>에서 프랭크는 고민을 더욱더 진전시켜서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 결말을 지적하고, 더 나아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br />
흔히 경쟁은 사회 전체의 파이를 크게 만들어준다고 이해되어 왔다. 경쟁이 있어야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자극되고, 경쟁이 있어야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경쟁이 있어야 기업, 관료 조직 등이 비효율성을 떨쳐 버리고 혁신을 할 수 있으며, 경쟁이 있어야 비리, 부패 척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br />
이렇게 경쟁을 통한 체질의 개선과 경쟁을 통한 번영 및 성장이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는 어떤 경우에는 경쟁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파괴적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경쟁에 얽힌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큰 수컷 공작의 꼬리,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체중을 갖는 수컷 코끼리물범,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큰 뿔 등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조금이라도 더 덩치가 크고, 조금이라도 더 큰 뿔을 갖도록 하는 방향으로 경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종 전체로 볼 때 천적에 아주 취약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br />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경쟁이 이렇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가? 프랭크는 경쟁을 통해 개인들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상대적인 능력에 달려 있는 경우, 즉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높은 지위를 갖는 개인에게 막대한 보상이 돌아가는 경우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점점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br />
상대방보다 조금 앞서는 게 유리할 때 모든 개체들은 상대방을 앞서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상대방 나라보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군비 경쟁을 하는 것,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 근육 강화제를 복용하는 것,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아이스하키 헬멧 착용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등도 보상이 상대적 지위에 따라 주어지는 경우에 나타나는 경쟁의 폐해들이다.<br />
이런 경우 (가설적인 상황이지만) 모든 수컷들이 자신의 꼬리 크기, 몸집, 뿔의 크기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모든 국가들이 군비 지출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이들 사이에 상대적 순위는 그대로 둔 채(따라서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의 크기는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헛되이 낭비되는 돈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br />
프랭크에 따르면, 서로 경쟁을 함으로써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 의자 뺏기 놀이처럼 정해진 파이의 몫을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질 때, 그리고 상대방보다 약간 앞서면 약간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불비례적으로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때, 경쟁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극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과시하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소득 중 너무 많은 부분을 과시 소비에 쓰게 되기에, 돈 먹는 괴물은 정부가 아니라 과시 소비가 만연하고 낭비가 만연해 있는 시장이라고 단언한다.<br />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프랭크는 기존에 얘기했던 누진 소비세 도입을 넘어서는 아주 다른 방식의 개입주의적 처방을 제안한다. 프랭크는 누구도 침범하지 않으려 하는 자유주의적 원칙 "네가 번 돈은 네 돈"이라는 원칙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려 한다. 서로서로가 긴밀히 얽혀 있는 사회에서 내가 가져야 하는 정당한 몫은 내가 기여한 것만큼이어야 한다는 게 그가 내세우는 원칙이다. 그는 이에 입각해서 "네가 번 돈" 중에서 상당 부분은 사회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력한 결과임을, 따라서 그것 모두가 "네 돈"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br />
같은 맥락에서 프랭크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는 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스 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의 <넛지>(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펴냄)와 이 책을 함께 읽고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넛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적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를 고심하는 있는 반면, 프랭크는 아주 대담한 방식으로 왜 자유주의적 원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전혀 다른 방식의 개입주의적 처방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물론 두 사람에게서 행동주의적 관점은 많이 다르다) 쓰인 두 책을 비교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지적 경험이다.<br />
프랭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제학자인 사람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와 외부성 문제가 불평등 문제에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그는 경쟁의 파괴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고 조목조목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결코 경제학의 핵심 테마인 효율성/후생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br />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경제학에 기초해서 세상의 문제를 어디까지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1퍼센트 대 99퍼센트'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자도(!) 이렇게 훌륭한 답을 대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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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26102.html">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26102.html</a><br />
<strong>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보이지 않는 손은 ‘분배’</strong> (한겨레, 장동석/출판평론가, 2012.03.30 20:09)<br />
<strong><font color="#0100fe"><경쟁의 종말> 로버트 프랭크 지음ㆍ안세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ㆍ1만5000원<br />
소수를 위한 경쟁 신봉 비판, 다윈의 이론과 경제학 접목<br />
“사회 전체 행복 방법 찾아야” </font></strong><br />
경제학의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보이지 않는 손’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다. 하지만 100년 뒤면 경제학의 아버지가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찰스 다윈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경쟁의 종말>의 지은이 로버트 프랭크는 자유주의자들의 문제 해결 방식인 ‘경쟁이 사회 전체의 최대 이익을 창출한다’는 믿음 자체가 ‘탐욕’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한다.<br />
자유 경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상위 1%를 위한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한다고 믿지 않았는데도,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최대 이익을 창출한다면서 늘 완전한 자유시장을 주장한다. 정부를 낭비의 근원이라 공격하며 ‘보이지 않은 손’의 위대함을 여전히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br />
지은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기생충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요구하는 의사와 같다”고 일갈한다. 때론 정부가 예산을 낭비하기도 하지만, 기업이 아닌 정부만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이다. 오히려 낭비를 일삼는 것은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출(투자)하지만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지출(투자)하기 때문에 중복 낭비가 크다는 것이다.<br />
지은이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경제학과 접목시키며 말코손바닥사슴을 소개한다.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에게 큰 뿔은 번식 경쟁에서 이기는 최대 무기다. 돌연변이로 뿔이 커진 수컷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돌연변이는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뿔이 커지면 울창한 숲속에서 기동력은 떨어지고, 외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더 쉬워진다. 그러나 수컷들이 종족 보존을 위해 “모든 사슴이 뿔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대화합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무한경쟁 세계인 숲에서 어떤 수컷도 스스로의 뿔을 줄이지 않는 것처럼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이 소수의 가진 자들만을 위한 방편이란 것이다. 지은이가 100년 뒤 경제학의 아버지로 찰스 다윈을 지목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br />
한국에서도 중산층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처럼 지은이는 중산층의 몰락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경쟁이 아니라 ‘분배’만이 경제적 파이를 키워 몰락한 중산층을 살리고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br />
물론 선결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누진소비세를 도입해야 하는데, 이 원론적 대안에 지은이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더한다. 이미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의 이름을 딴 ‘피구세’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탄소세, 혼잡통행료, 담뱃세 등이 대표적인데, 지은이는 “자동차 중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자”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놨다. 중량이 무거운 차일수록 충돌 때 상대방 운전자에게 피해를 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br />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전세계적으로 공고해지면서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결국 경쟁이 아니라 분배가 대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자와 빈자, 개인과 사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할 때”라는 지은이의 절박한 외침이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보이지 않은 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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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33001032730028002">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33001032730028002</a><br />
<strong>‘보이지 않는 손’의 허점… 무한경쟁의 끝은 공멸</strong> (문화, 김승현 선임기자, 2012년 03월 30일(金))<br />
프랭크 교수는 ‘승자독식사회’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배신에 의해 구축된 것으로 봤다.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이를 바꾸려는 수단과 동기가 결여된 ‘후회하지 않을 합리적 선택으로부터의 이탈’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후회하지 않을 합리적 선택으로부터의 이탈’은 군비경쟁이다. 우수한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경비를 과도하게 지출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만 지출을 줄인다면 해당국가만 피해를 보기 때문에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아무도 후회하지 않는다.<br />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대안으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선택했다. 책의 원제도 당초 바지 뒤춤을 들어 올려 바지가 엉덩이 사이에 끼게 하는 놀이인 ‘다윈의 낀 바지(Darwin’s Wedge·좀 더 학술적인 해석으로 ‘다윈의 쐐기’)’로 해서 이른바 승자독식사회의 ‘똥침’을 직설적으로 찌르려다가 ‘다윈 경제학(The Darwin Economy)’으로 참았다.<br />
지난 수년간 경제성장률은 매우 낮았고 소득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상위 계층의 호주머니는 계속 불어난 반면 물가 인상을 감안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저자는 이 같은 경쟁 과정 자체에 개별 동물의 이해관계가 종족 전체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자연선택론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뿔은 외부 포식자에 맞서는 무기가 아니라 번식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다. 돌연변이를 통해 큰 뿔을 가지게 된 수컷들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 빨리 퍼져간다. 이는 개별 말코손바닥사슴에는 유리하지만 종족 전체에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뿔이 커지면 기동력이 떨어져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슴이 뿔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면 개별 사슴들도 손해 보지 않고 집단에게도 유리하지만 아무런 규제 없는 무한 경쟁 세계에서 어떤 사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br />
저자는 “미래의 경제 질서란 경쟁이 아닌 ‘분배’”라며 누진소비세를 비롯해 탄소세, 혼잡통행료, 담뱃세와 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하는 ‘피구세’,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소득의 직접 이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749',227,'/pbpb','');"><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pbpb%2F227+%22%EB%A1%9C%EB%B2%84%ED%8A%B8%20%ED%94%84%EB%9E%AD%ED%81%AC%2C%E3%80%8E%EA%B2%BD%EC%9F%81%EC%9D%98%20%EC%A2%85%EB%A7%90%E3%80%8F%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pbpb%2F227&t=%EB%A1%9C%EB%B2%84%ED%8A%B8%20%ED%94%84%EB%9E%AD%ED%81%AC%2C%E3%80%8E%EA%B2%BD%EC%9F%81%EC%9D%98%20%EC%A2%85%EB%A7%90%E3%80%8F"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pbpb%2F227&title=%EB%A1%9C%EB%B2%84%ED%8A%B8%20%ED%94%84%EB%9E%AD%ED%81%AC%2C%E3%80%8E%EA%B2%BD%EC%9F%81%EC%9D%98%20%EC%A2%85%EB%A7%90%E3%80%8F','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pbpb/227?commentInput=true#entry227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