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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6/11/13 21:59
  • 수정일
    2006/11/13 21:59
  • 글쓴이
    pin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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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갇힌 불쌍한 사랑 기계들

 

                                     --김혜순

 

 

화가가 세필을 흔들어

자꾸만 가는 선을 내리긋듯이

그어서 뭉그러지려는 몸을

자꾸만 일으켜세우듯이

뭉개진 몸은 지워졌다가

또다시 뭉개지네

 

카페 펄프의 의자는 욕조처럼 좁고

저 사람은 마치 물고기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입술 밖으로 퐁퐁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네

저 사람은 마치

비 맞은 개처럼 욕조마다 붙은

전화기를 붙잡고 혼자 짖고 있네

전화기는 붉은 낙태아처럼 말이 없고

나 전화기를 치마 속에 감추고 싶네

 

나는 내 앞에 있으면 좋을

사람에게 말을 거네

--한번만 다시 생각해봐요

더러운 걸레 같은 내 혀로

있으면 좋을 그 사람의

젖은 머리를 닦네

 

탐조등은 한번씩 우리 머리를 쓰다듬고

나는 이제 몽유병자처럼

두 손을 쳐들고

물로 만든 철조망을 향해

걸어나가네

쇠줄에 묶인 개처럼

저 불쌍한 사랑 기계들

아직도 짖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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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에 해뜨거든 날 불러주오

.불쌍한 사랑 기계 -김혜순시집

.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