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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우주로부터 날벼락
    바람구름먼지

우주로부터 날벼락

5월의 마지막 날 아침.

우주로부터 폭탄이 떨어졌다.

 

주말 내내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고 입맛이 없어

혹시나 싶어 병원에 갔더니 역시나

축하드려요, 임신입니다.

 

축하는 개뿔.

의사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지면

눈물이 하염없이 주룩주룩.

 

시댁의 압박을 견디다 못 해

3년 동안 해 오던 피임을 중단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늦게 생기길, 안 생기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근데 왠걸 피임 안 한지 고작 2달만에

애가 생기다니

기쁜 마음이나 감동 같은 건 하나도 안 생겼다.

 

시댁에 말하면 좋아하실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

남편에게 전화하라고 시키고

병원 의자에 1시간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무실에 와서 얘기하고

달가워하지 않는 사무실 사람들에 기대어

나도 하나도 안 기쁘다고 털어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자로 사실을 알리며

'축하는 신랑에게 저에겐 응원을' 이라고 보냈다.

 

그럼에도 전화나 문자로 축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말마다 토를 달며 입술을 삐쭉삐쭉

토 단 말들은 뭐 이런 것들이다.

 

울고 웃을 인생의 동반자는 유진기 하나면 충분.

한국사회에서 진정 새로운 삶에의 도전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삶.

 

아이를 위해 즐거워하고 싶지만

도저히 마음이 그렇게 안 먹어지는 걸 어쩌라고.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꿈 같다.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침대에 누워 신랑에게 이런 내 마음을 조금 얘기해 봤지만

그저 자기가 많이 도와줄 테니 잘 키워보잔다.

 

등 돌리고 누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옆에서는 잠들었는지 숨소리만. 에휴.

 

아이를 위해서

기쁜 척. 즐거운 척. 행복한 척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냥 내가 이 사태를 받아들일 때까지

견뎌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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