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돌, 고래 게시판이 있다, 천전리와 반구대의 바위그림

 

인터넷 없던 시절, 게시판은 힘이 있었다. 대학 주위에 흔히 있던 사회과학서점에는 게시판이 있었다. 각종 모임과 뒷풀이 장소, 전할 말이 붙어 있었다. ‘아무개야, 어디로 와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그 게시판은 종이들이 나풀거리며 빼곡했다. 게시판의 힘을 얘기할 때 빠뜨려서 안 되는 것에 대자보도 있다. 규탄하고 처단하고 분쇄해야 할 것들은 세상에 많았지만 갖고 있는 무기는 종이, 3색 매직, 청테이프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걸로 한 시대를 건넜다.


그러다가 PC통신이 생기고 1990년대 중반 유행하다가 월드와이드웹이 기반이 된 인터넷이 자리를 잡았다. 매일매일 작성되는 엄청난 규모의 문자와 이미지들이 인터넷에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지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터넷도 전자화된 게시판이 아니던가.


인터넷이 없어도 사람들은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 1990년대 이전 한국인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여전히 지구에는 ‘인터넷 없는 세상’이 많고 있다 하더라도 쓸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게시판은 살아 있다. 아프리카 말라위의 은카타 베이에 사는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꼭 컴퓨터 회사에서 일을 할 거야. 그땐 너처럼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칠 수 있겠지?”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그녀는 한 달에 약 3만 원을 번다. (미노,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 2006, 즐거운 상상, 277쪽)


몇 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사람들은 뭔가를 새기거나 물감을 써 바위그림을 남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공식 엠블럼도 콰줄루나탈 지역 드라켄스버그의 바위그림에서 따온 것이다. 한반도에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오래된 게시판이 지금도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두 바위그림에 남아 있다. 한국 회화사의 첫 장, 세계 해양문화사의 첫 장이다.

 

한국의 암각화와 대곡천 일대


울산에서도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주변은 꽤 깊은 곳이다. 울산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가지산, 신불산 등 높이 1000미터 이상이 되는 이른바 영남 알프스를 향해 가는 길에서 내려 대곡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이 두 유적이 있다. 이곳을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학교 유적조사팀이 찾았다. 이들은 원효의 반고사(磻高寺)터를 찾던 중이었다. 대곡리 마을의 집청정 주인이자 한학자였던 최경환 선생으로부터 “저 밑 암벽에 그림인지 무엇인지 희미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국대 박물관 연구원이었던 문명대는 기하학적 문양과 한자로 새겨진 명문을 발견했다. 천전리 바위그림(국보 147호, 1973년 지정)의 발견이었다. 한국 고고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 최초의 암각화가 발견된 것이다.

 

대곡천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 일찍이 겸재 정선(1676~1759)도 대곡천을 찾아 반구대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는 2008년 <공회첩>에서 발견되었다.

이듬해 봄, 대곡리로 내려간 문명대 연구원은 마을 주민 손진봉 씨와 최경환 선생으로부터 호랑이와 고래가 그려진 바위가 또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은 없었고 휴가를 낼 수 있는 때는 크리스마스 때뿐이었다. 1971년 12월 25일, 최경환 선생의 도움으로 배를 빌려 당도한 반구대에서 고래, 거북, 들짐승 등이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1995년 지정)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국의 암각화는 속속 발견되어 지금은 총 16개에 이른다. 모두 남부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암각화는 보통 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 잡는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호숫가나 아무르 강안 절벽, 노르웨이나 스웨덴 바닷가 절경 등의 예가 그렇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물가 바위절벽에 자리 잡는 것이 보통이다. 높지 않은 수직 바위면, 햇볕을 잘 받는 동향 또는 남향, 바위 바로 밑에는 어떤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편평한 바위면이 있는 곳에 있다.


이 대곡천 일대는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사방 몇 킬로미터 이내에 유물, 유적이 너무나 많다. 근처 진현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압골에서는 여러 유형의 통일신라시대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또 대곡천 일대 마을에서도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굴될 가능성이 크다. 그뿐이 아니다. 포은 정몽주가 유배되어 이곳을 찾아온 사연이 적혀 있는 유허비, 원효가 세웠던 반고사 절터, 정몽주, 이언적, 정구의 위패를 모신 반구서원, 모은정, 집청정, 순치 12년명 각자 등 역사시대의 유물이 즐비하다. 또 이 일대 바위들에는 중생대 공룡 발자국이 널려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지질시대와 선사시대, 역사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 바로 이 대곡천 일대이다. 이 지역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 ‘큰 게시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구대와 천전리 바위그림은 ‘작은 게시판’에 해당한다. 이를 게시판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로 이 바위그림들은 마치 게시판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천전리 바위그림만 해도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새긴 그림이 윗부분에 집중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심지어 누군가가 새겨놓은 1984라는 아라비아 숫자도 보인다. 물론 이는 훼손이라 말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몇천 년 동안에 걸쳐 많은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반구대 바위그림 역시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집단이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로 이 바위그림들에는 마치 게시판의 ‘댓글’처럼 신라시대의 명문이 남겨져 있다. 이른바 천전리 서석명이라 불리는 신라시대의 흔적은 두 시기에 걸쳐서 쓰여진 것이다. 마치 오랜 게시물에 댓글로, 혹은 상호 링크로 글을 쓴 하이퍼텍스트(hypertext), 혹은 트랙백을 하듯 앞선 내용에 연관된 내용을 새긴 것이다. 셋째로 바위그림은 문자와 이미지 모두 담겨져 있다. 글과 그림이 각각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이코노텍스트’(iconotexte)이다. 전자 게시판을 닮았다.

 

신라시대 접시꽃당신, 천전리 바위그림


천전리 바위그림이 새겨져 있는 바위는 윗부분이 수직축을 기준으로 약 28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마치 일부러 기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비바람을 맞지 않고 지금껏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울주 천전리 바위그림.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암벽에 각종 기하학적 무늬가 눈에 띈다.


바위그림을 살펴보자. 먼저 윗부분에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 무늬가 보인다. 동심원, 마름모꼴, 물결, 나선 무늬 등인데 마름모꼴이 제일 눈에 잘 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고 마름모꼴은 곡물의 성장과 숙성, 생명력,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윗부분에는 주로 육지에 사는 동물 그림도 눈에 띄는데 큰 뿔을 가진 잘 생긴 사슴이 있다. 인물상으로는 역삼각형 모양을 한 얼굴이 보이는데 이는 원시 종교 의식과 연관이 있다.


아래쪽에는 기마행렬도 등과 크고 작은 배, 신라시대 화랑이 새긴 것으로 보이는 글씨들이 있다. 또 ‘영랑’, ‘금랑’ 등 화랑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씨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또 네모진 테두리 안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천전리 서석이라 부른다. 오른편에 새겨진 것을 원명(原銘), 왼편의 것을 추명(追銘)이라 부른다.
원명은 525년 신라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 갈문왕과 그 누이가 이곳에 놀러 와 새긴 것이라 한다. 여기서 ‘논다’는 의미는 단순한 행락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의식을 치르는 행위였다. 또 이 지역이 예전에는 우시산국이라는 부족국가였는데 탈해왕에 의해 신라로 합병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신라 중앙 권력의 안배 차원에서 이곳까지 행차해 제를 지냈을 것이다.


추명은 원명이 새겨진 후 539년에 사부지 갈문왕이 다시 이곳을 찾아 새겨 놓았다. 14년이 흐르는 사이, 함께 왔던 누이는 죽었고 갈문왕의 아내 지몰시혜비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내용이 추명에 담겨 있다. 신라시대 ‘접시꽃 당신’이다.


사실 이 원명과 추명의 해석을 두고 학계에서는 수십 년째 논쟁중이다. 보이지 않는 한자도 많고 애매한 글자도 많다. 그에 따라 문장 해석도 달라지는데, 원명에 등장하는 인물이 몇 명인가를 두고 2인설, 3인설 등으로 나뉘고 이 두 설도 등장인물이 누구인지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추명은 더욱 심한데 몇 명이 왔느냐에서부터 갈문왕이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가 온 것인지 등 논란이 많다. 허나 일반적으로는 갈문왕이 죽은 아내 지몰시혜비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본다.

 

세계 해양문화의 첫 장, 반구대 바위그림


반구대 바위그림은 청동기인들의 해양수산부 사이트와도 같다. 반구대 바위그림에는 사람, 배, 고래, 거북, 호랑이, 곰, 멧돼지, 사슴, 여우, 토끼, 고래 잡는 광경, 그물, 사냥장면 등 75종 296점의 바위그림이 있고 그중 동물이 65%에 달한다. 나머지는 사람과 배, 그물 등이 약 9%, 알 수 없는 그림이 약 26%이다. 동물은 또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로 나눌 수 있는데 총 64마리의 바다 동물 중에 고래는 58마리를 차지한다.

 

울주 반구대 바위그림. 겨울과 봄에만 건너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멀리서는 바위그림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특이한 고래가 있다. 고래 안에 작은 고래가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엑스레이 촬영을 한 듯하다 해서 한때 뢴트겐 기법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래가 새끼를 밴 모습이라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숨구멍으로 숨을 쉬는 고래의 특성과 연관시킨다. 즉, 어미 고래가 힘이 모자란 새끼를 바다 밑에서 업듯이 들어올리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건 귀신고래에게서 빈번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귀신고래는 몸길이가 14~15m에 달하고 동해안에 11월 하순에서 2월 상순까지 머무르다가 여름에는 오오츠크해 북단으로 이동한다. 몸에는 따개비 등 기생동물이 많이 붙어 산다. 귀신고래가 주로 노니는 곳이 울산 근해로 그래서 여기를 ‘울산 귀신고래 회유 해면’이라 하여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한반도에는 귀신고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일제시대 지나친 남획의 결과다.


설치미술가 최병수는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 We are Leaving You>(1997)라는 작품에서 창에 찔린 채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을 싣고 우주를 유영하는 귀신고래를 그렸다. 생명계의 노아의 방주랄까. 인간은 그만큼 무섭다. 종 자체를 학살해버리는 인간들. 청동기인들이 바위에 이 그림을 새겼을 때는 어쩌면 그런 인간의 잔인한 욕심을 경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병수의 작품은 비록 구도는 다르지만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반구대 바위그림을 닮아 있다.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 앞에 서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설치미술가 최병수. 그는 1997년에 제작한 이 그림을 2009년 여수시 주관 행사에서 쓰기 위해 다시 크게 걸개그림으로 제작했다. 사진은 여수의 김자윤이 찍었다. http://column.kr Ⓒ김자윤


바위그림은 조성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색을 내는 재료를 이용해 그리는 것과 도구를 이용해 새기는 것이다. 즉, 그림법과 새김법이다. 전자를 암채화, 후자를 암각화라 한다. 한국의 바위그림은 모두 새김법으로 조성되어 있어 바위그림이라 할 때는 모두 암각화를 의미한다. 새기는 방법은 또 두 가지로 나뉘는데, 표현 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낸 면쪼기와 윤곽만을 쪼아낸 선쪼기로 나뉜다.


이 얘기를 여기서 하는 이유는 이 새김법의 차이가 반구대 바위그림을 조성한 집단의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면쪼기 그림만 놓고 보면 바위면 전체에 고르게 새겼고 주로 고래와 바다 동물이 등장하고 있다.

선쪼기 그림만 놓고 보면 면쪼기로 그린 그림을 피한 나머지 여백에 그림을 남겼고 주로 육지 동물이 등장한다. 이는 고래를 잡고 어로를 중심에 두고 생활했던 ‘면쪼기 사람들’이 반구대에 그림을 남긴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들짐승을 사냥하거나 가축을 키우던 ‘선쪼기 사람들’이 앞선 그림들 사이사이에 그림을 남긴 걸 보여준다.

 

백척간두에 선 바위그림


대곡천 일대가 훼손되고 있다. 공룡의 발자국, 고래와 뭍짐승들, 신라시대 왕실의 사랑이 담긴 글, 고려와 조선시대에 절벽에 남긴 글씨들이 위협받고 있다. 지질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이어져온 게시판이 마치 인터넷 사이트가 어느 날 들어가 봤더니 폐쇄된 것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천전리 바위그림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바 있다. 천전리 바위그림의 암벽은 겉은 비교적 단단한 1~2cm 두께의 호온펠스(Hornfels)이지만 그 속은 퇴적암의 일종인 셰일(Shale)이다. 셰일이 물에 취약한 건 둘째 치고서라도, 천전리 바위그림의 상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바위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면서 그 틈을 벌리고 있다. 다행히 2003년 여름, 일부 나무가 제거되긴 했지만 여전히 암괴 자체가 앞으로 쓰러질 위험이 상존한다.


위기에 처한 정도로 보면 전국 문화재 중에 반구대 암각화를 따를 것이 없다. 반구대 암각화는 1965년 사연댐 건설 이후 연중 8개월가량 침수되어 있고 수분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훼손되어 왔다. 바위의 틈을 따라 침투한 수분은 겨울이 되면 얼어 부피가 팽창해 그 틈을 더 넓히고 결국 암석을 파괴하게 된다. 또 여름이면 수분이 바위의 광물과 반응해 물리적, 화학적 풍화작용을 일으켜 암석을 훼손시키게 된다. 또 반구대가 새겨져 있는 암벽 윗부분 역시 바위가 흙으로 바뀌는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같은 상황을 쉽게, 간단하게 말해 보자. 국보가 물에 잠기는 걸 수십 년 째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남대문 불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들은 없다. 국보는 낙서만 해도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하물며 국보가 8개월 동안 ‘물고문’을 당하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당장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문화재청장과 울산광역시장을 구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한술 더 뜨는 일이 있었다.


울산시는 월드컵을 앞둔 2001년, 반구대 유적 관광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 계곡 안에 다양한 놀이시설 설치, 도로 확장, 대형 주차장 설치, 대형 선사문화전시관 건립 등이 골자다. 학계와 울산의 시민단체들은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그 후 문화관광부 차관과 문화재청장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울산시는 선사문화전시관 건립을 강행했다. 지금도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가다 보면 떡 하고 서 있는 울산암각화박물관이 그것이다. 한국 암각화 연구의 대가인 한 학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비판한다. “정작 관광의 주 대상인 암각화는 일 년의 절반 이상이 물속에 잠겨 있어서 관광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무시된 채 사업이 오랜 기간 진행되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과 관광정책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댐의 물속에 잠겨 있는 암각화를 어떻게 물 밖으로 내보내서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가 하는 문제이다.” (임세권, '울산 반구대 문화유적의 보존과 개발', <미술사학연구> 제252호, 2006년 12월, 한국미술사학회, 380, 389쪽.)


사실 바위그림은 세계적으로도 개발 과정에서 파괴되어 왔다. 그중 노르웨이의 남포르센 유적, 포르투갈의 타고스 계곡 유적 등이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잘 보존하기 위한 노력의 귀감 역시 있다. 1995년 포르투갈 북부에 위치한 구석기 암각화 유적들이 포즈 코아(Foz Coa)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시민들과 전세계 학자들이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해 10월, 포르투갈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안토니오 구테레스 사회당 당수가 수상에 선출된다. 그는 바위그림 유적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당연히 댐 건설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1996년에는 7명의 장관과 함께 유적을 방문했다. 결국 댐 공사를 중지시킨 것은 물론이다. 이후 이 지역 바위그림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세계적인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문제제기를 한지 10년이 지난 올해 6월, 울산시는 사연댐 수위를 52m로 낮춰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암각화가 발견된 지 39년, 국보로 지정된지 15년이 지나서야 암각화는 ‘구조’되었다. 올해 1월 11일, 천전리 바위그림과 함께 ‘대곡천 암각화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덕일지도 모른다. 세계가 인정해야 우리는 움직인다. 아, 정말이지 익숙하다.

 

4대강과 한반도 문화유산


강에 댐을 쌓고 보를 설치하고 온 땅을 파헤치는 일은 뭇 생명들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사람들은 강 주위 충적지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선사시대 때는 암사동이 그렇고 미사리가 그렇다. 역사시대 또한 강은 주요 물류운송로이자 군사적 측면에서 요충지였다. 많은 유적, 유물이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소위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한반도운하 예정지 주변의 문화재 조사를 날림으로 했다. 소위 ‘문화재 분포 예측지도’에 입각해 그 주변을 23개 기관이 지표조사, 즉 땅 위를 육안으로 살피는 조사만 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발굴 건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그 예측지도 자체가 정밀도가 매우 낮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예측지도도 개발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것이다. 영국과 일본의 지리정보시스템(GIS)과는 질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는 거다.


이 지표조사 역시 한 달 반 만에 끝냈다. 청계천 지표조사가 1년 2개월 걸린 걸 생각하면 졸속 중의 졸속이다. 4대강 유역은 5.8km였던 청계천 구간의 213배가 된다. 수중지표조사도 나루터만 했는데 그나마 옛 나루터 140곳 중 27곳만 했을 뿐이다.

 

천전리 바위그림 인근에 생긴 대곡댐으로 인해 사라진 하삼정 마을을 배경으로 모녀가 앉아 있다. 1973년. 김응태. 울산대곡박물관, <나의 살던 고향은>, 2009년, 울산광역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땅 전체가 우리의 자유게시판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생성되고 있는 사람과 동식물의 흔적이 파괴되고, 또 거기에 담겨진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사라져 가고 있다. “언젠간, 스스로 저지른 일들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날이 닥칠 것이다.” ('배틀스타 갤럭티카'(2003),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갤럭티카 함장 윌 아다마의 대사.) 귀신고래에게 부탁해볼 일이다. 지구의 뭇 생명들과 함께 유적, 유물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그래서 먼 바다가 아니라 아예 다른 은하의 다른 별로 데려가 달라고. 우리가 다시금 지구라고 이름 붙일 행성으로 데려가 달라고. 그게 아니라면 싸워야 한다. 규탄하고 처단하고 분쇄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세상에 많다. 갖고 있는 무기는 종이, 3색 매직, 청테이프가 있다. 여기에 컴퓨터, 인터넷이 있다. 그밖에 뭇 생명과 문화유산이 다 우리 편이다. 우린 이걸로 한 시대를 또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천전리 바위그림 실측도

 


반구대 바위그림 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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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16:40 2010/08/13 16:40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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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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