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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린
다른 세계들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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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와와와=_=

앞에 앉은 한 친구가 모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보다가 푸하하 웃더라. 왜! 왜!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이다.

아항~ 뭐라고 써있냐면...

 

안쪽 속표지. 손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

 

"민**...

사랑하는 민**. 태어나서 처음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져보고.

한 사람한테 미쳐본 건데... 나 민** 너무 많이 사랑해요.

2007.6.10. 박**"

 

다음 페이지. 역시 또박또박...

 

"민**[을/를] 기다리며...

벌써 여기서 너를 기다려 보는 게 두번째네. 그때는 밤이라서 나랑 딸기우유곽만 있었는데, 알고보니 여기가 이 곳 주민들의 쉼터였네. 여기 오기 전에는 너무 불안하고 바보처럼 눈물만 흘리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여기 오니까 편해. 마음이 편안해져. 왜 그럴까. 오늘 너 보는 게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데...

나 그래서, 이게 너 보는 거 마지막 아니게 하려고 이 책에 편지 쓰는 거야. 너 이 책 빌려가면 돌려줘야 되니까 꼭 한 번은 봐야 되잖아.

너의 혼란스러움... 조금은 이해가 돼. 하지만 **[아/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잖아. 민**[은/는] 박**[을/를] 사랑하고, 박**[은/는] 민**[을/를] 사랑하고... 이 너무나 중요한 명제가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돼지되지 않을까?

 

나 오는 길에 너한테 줄 선물샀어.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한테 준 선물이 없더라고. 너는 나한테 우산을 줬는데 말이지. 너 뮤지컬계의 '스타'가 되라고 별 모양 귀걸이 샀어.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때론 힘들 때, 때론 지칠 때 혹은 너 안에서 열정이 꺼지려 할 때 이 귀걸이 만지면서 힘 냈으면 좋겠다. 우리 목요일에 한 약속 꼭 지키자.

 

이 책은 잘 안 빌려가나 봐. 지금이 2007년인데 다음 사람이 이걸 볼 땐 몇 년도일까.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사람은 책 내용보다 우리의 결말을 더 궁금해 할 것 같아. 그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네. 민**[와/과] 박**의 영화같은 사랑은 happy ending이라고.

 

**아, [?]다 공주 민**. 나 너 많이 좋아해요.

                                                                - 박**"

 

그 페이지 아래, 비슷한 글씨 다른 펜.

 

"^^! 벌써 2년이 흘렀네요. 지금은 2009.4.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 연극을 사랑하는 1人"

 

어디 친구가 뭐라 리플 다나 봐야겠다. 달고 싶다는데. ㅋ 사랑(?)은 도서관 책을 타공...

혹이 이 2人의 근황을... 아시나요? ^^ 예언의 실현... 책 내용보다 결말(?)이 더 궁금하군욤. (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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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취향 테스트

어쩐지 일관성이 있다.

지난번 독서 취향 테스트랑도 결과가 어딘가 비슷해.

서양편은 "지혜로운 현자" 타입... ('동양편'은 "무위의 실천가" 타입-_-)

(테스트가 그렇게 아름답게 말해주니 고맙지만,

사실은 독서취향이나 철학취향이나 한결같이

엉덩이는 가볍고 그저 기분내키는 대로라는 뜻;;; 처럼 느껴진다는 거.)

에피쿠로스는 잘 모르고... 루소는 이제 읽어 볼까 싶은 생각을 갖고 있고...

니체는 쫌 그렇고, 바타유 역시 쫌 그렇지만 좋아하긴 한다.

고백하건데, 나의 이상은 강하고 꾸준하며 성실한 생활인임;;;

아줌마를 동경한다고 할 수 있음.

흙. 다시 태어나야 되나.

테스트는 여기에서.

 

 

지혜로운 현자| 지혜, 직관, 감수성, 우정
육감과 영감을 중시하는 당신은 원효대사 타입! 해골물 한 사발 들이켜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강력한 ‘촉발’이다. 어느 순간 닥쳐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좋아한다는 말이며, 직관력이 좋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직관력’이 단순히 ‘감’(感)이 아니고(“이건 여자의 육감인데” 할 때의 육감은 더더욱 아님), 직관력이 높다고 해서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안 했던가? 고차원적 직관은 고차원적 사고와 포개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 부류의 철학자들은? = 에피쿠로스, 루소, 니체, 바타유
『철학 vs 철학』에서는?
  3장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4장 사유재산은 정당한가? 로크와 루소
11장 내가 죽은 뒤에도 세계는 그대로 존재하는가? 칸트와 니체
13장 망각은 인간에게 불행인가? 피히테와 니체
14장 에로티즘은 본능적인 것인가? 쇼펜하우어와 바타유
에피쿠로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도덕 윤리 교과서에서 '쾌락주의자'라고 표현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쾌락'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었을까? 결코 아니다. 일례로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작은 치즈 단지를 달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대한 잔치를 벌일 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쾌락'은 절제와 검소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영혼의 만족'이란 방탕과 만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두번째로 유명한 이야기는 '에피쿠로스의 정원'과 관련된 일화이다. 그의 정원에서는 그 시대에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여성, 아이, 노예들까지 모두가 '우정'에 기초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계층과 계급의 사람들을 한데 묶고 교류하게 만드는 이 상황을 하나의 '우발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절제의 쾌락과 우정의 공동체, 어떤가? 이러한 그의 활동을 볼 때 책상머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근대적 학자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어떻게 하면 영혼의 만족을 얻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지혜로운 자, 즉 현자에 가깝다.
[관련된 책]
루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소설가. 역시 상식에 비춰보자면, 루소가 이 범주에 들어간 것은 의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루소야 말로 '지혜로운 현자 타입'에 아주 적절히 들어맞는 사람이다. '지혜'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현자'임이 분명하다. 정치적인 행보는 논외로 하고, 그가 말년에 쓴 『어느 산책자의 고독』이라는 글에서 보이는 일화를 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으리라! 산책 중에 그를 향해 달려오는 개와 부딪혀 기절한 후, 깨어나서 쓴 글이다.
"순간 처음 느낀 것은 기쁨이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으며, 마치 내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 내 연약한 존재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현재의 순간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중략)… 내 존재 전체가 대단히 놀라운 평온함을 느꼈는데, 그때의 느낌을 떠올릴 때 마다, 나는 우리 삶의 모든 즐거움 가운데 이와 비견할 만한 것을 찾으려고 애썼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루소 편에서 재인용)
돌진하는 개와 충돌하는 경험도 드물거니와, 그 경험으로부터 현재, 지금-여기의 영원성을 경험하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일 것이다.
[관련된 책]
바타유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작가·사상가. 평생을 에로티시즘에 천착해왔다. 왜 그랬을까? 그는 생산과 축적을 강조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제한경제'라는 용어로 부른다. 반대로 순환과 선물 경제에 기초한 경제를 '일반경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는 생산과 축적의 과도한 지향은 체제에 에너지 과잉을 불러오고, 이 과잉은 결국 불유쾌한 파멸을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 공황이나 전쟁이 아마 그런 파멸의 선례들일 것이다. 에로티즘도 이런 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인간의 에로티즘은 단순히 종족보존 본능이나, 성욕해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사치, 소비, 상실, 금지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에 비춰 볼 때, 그는 '소비사회'를 이야기한 보드리야르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은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그가 이 부류의 철학자로 분류된 이유는, 그의 사고방식이 기본적으로 면밀한 분석과 객관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과 직관적 통찰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에로티즘에 관한 책(『에로티즘』(민음사)), 무신론자로서의 입장을 유감없이 드러낸 책(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패러디한 『무신학대전』을 썼다.
[관련된 책]
니체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표현하면서 '독일의 철학자'라고만 말하는 것은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짓인가? 그는 차라리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의 책들에는 풍부한 역설과 은유가 넘쳐난다. 그가 가상의 자서전으로 썼던 『이 사람을 보라』는, 제목부터 그가 평생에 걸쳐 대결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이 사람을 보라'는 예수를 사형시킨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착란조차도 생生의 긍정성으로 작용하도록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해냈다. 모든 초월성, 창조와 종말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면서, 영원회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당대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의 사상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300년 후 쯤엔 내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게다." 또는 "어떤 사람은 죽은 후에야 태어난다."라고 말이다.
[관련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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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오늘이 입춘이었다던걸.

드디어 기축년이 가는구나.

설이면 누가 뭐래도 경인년임.

이제 딱 열흘 정도 남았음.

만세다~

잘살아야쥐~ ^^

모두들 좋은 경인년 한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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