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고문 후유증 겪던 ‘5·18 유공자’ 결국…

고문 후유증 겪던 ‘5·18 유공자’ 결국…
“꿈에 군인들 나와 못살겠다”
30년간 고통 끝에 목숨 끊어
 
 
  정대하 기자  
 
꿈을 꾸면 꼭 군인들이 쫓아왔다. 우울증과 불면증, 끝없는 공포감에 시달렸고 생활고까지 겹쳤다. 30년 동안의 긴 고통을 결국 자살로 마감했다. 5·18 민중항쟁 때 시위대에 가담했던 지아무개(56·전남 여수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씨는 14일 밤 11시께 광주 광산구 광주보훈병원 주차장에서 제초제를 마신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새벽 3시30분께 숨졌다.


그는 지난 13일 5·18구속부상자회와 가족에게 유서를 남겼다. 5·18구속부상자회는 유서를 발견한 뒤 지씨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유서엔 5·18 때 입은 부상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힘들었던 심경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지씨는 유서에서 ‘꿈에 항상 군인들이 나타나 살 수가 없다. (…) 축산업에 실패해 엄청난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살 수 없다’고 호소했다.

 

지씨는 1980년 5·18 때 울산에서 화물차 운전사로 일하던 중 목포에 왔다가 5·18 시위에 참여했다. 5월21일 목포의 한 여관에서 계엄군 합동수사관들에게 붙잡힌 그는 26일 헬기로 광주로 옮겨져 군부대에서 45일 동안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풀려났다. 그해 10월 초 서울에 갔다가 불심검문을 받고 5·18 관련자라는 이유로 끌려가 16일 동안 감금돼 폭행당했다. ‘경찰 조사 17일째 되는 날엔 강원지역 공수부대로 끌려가 4주 동안 삼청교육대에서 생활했다’고 그는 유서에 썼다.

 

지씨는 86년 결혼한 아내가 아들(23·대학 2년)을 낳은 지 사흘 만에 집을 나가는 바람에 이혼했다. 2008년 5·18 민주화유공자가 된 지씨는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해주십시오. (…) 내 아들을 도와주십시오’라는 글을 남기고 고단했던 삶을 접었다.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집계 결과, 올해 5월까지 5·18 상이후 사망자 473명 가운데 40명(8.45%)이 자살로 숨졌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기사등록 : 2010-09-15 오후 10:34:4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