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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잠시 닫아요

새 봄이 오면

세상이 좀더 따뜻해지면

그러면 얼었던 마음이 녹듯이

이 블로그의 문도 열릴 것같아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해는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하길 빌께요.

지나친 낙관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세상은

그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을 때

그리고 그 꿈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할 때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을 낼께요.

여러분들도 힘 내세요... ^^

 

 

참세상 선거법 위반 과태료 모금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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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이벤트

은별이 의자를 팔았다.

그러고보니 집안에 안쓰는 물건들이 많다.

중고시장에서 물건을 살게만 아니라

팔기도 해야겠다.

팔아서 참세상 벌금에 보태는 이벤트를 혼자서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 오늘 판 물건

 



 

혹시나 집안에 안쓰시는 물건 있으면 중고시장에 파셔요. ^^

엄마들 벼룩시장은 화기애애하고 믿을만 하거든요.

 

자주 가는 중고사이트

아이베이비 http://www.i-baby.co.kr

맘투맘 http://www.dawa.co.kr

중고나라  http://cafe.naver.com/joonggonara.cafe

 

 



왜 참세상 지키기가 나의 결론이었냐면...

 

솔직히 말해서 난 살면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엄마오빠언니남편 등등 층층히 돕는 사람들 속에서

언제나 힘이 되는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지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장막들이 항상 나를 지켜주는 것같다.

 

하지만 올해엔 약간 억울한 일이 있었고(아직도 해결되지 않고있는00재단 사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나는 참세상을 생각했다.

참세상이라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 일도 한다리 건너 일이라서 덜 절박했던 것같다.

 

나는 이주노동자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이성애자로서

대한민국의 노말한 인간답게 존재자체에서 오는 차별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가끔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한 처사에 끙끙댈 뿐이다.

그런 일 가지고도 밤잠을 못자는데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받고 차별당할 때

그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아무 데도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참세상에 부과된 벌금은 부당하다.

부당할 뿐 아니라 숨쉬는 공기구멍을 틀어막는 일이고

그래서 참세상을 지키는 일은 주류 카메라와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그 카메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개인적으로는

24살 이후 하이텔을 시작으로 내 앞에 펼쳐진 사이버 세상을 떠돌다

결국 정착한 이 블로그가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난 이 공간을 잃고싶지 않다.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카메라 빼고 다른 건 다 팔 수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참세상의 현재 상황들에 대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중이다.

함께 해주길.

이 뜻에 함께 해주지 않더라도 함께 해주길.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이 곳을 찾는 분들이 누구신지 다는 모르지만

저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이 이 곳에 오신다는 걸 압니다.

또한 저를 지지하시는 분들이 이 곳에 오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

꼭 후원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최근의 사건에 대해서

잠시 멈춰서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며칠 남지 않은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기쁘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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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있다

시간도둑들이 도저히 모모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어서 고민하다 쓴 방법이

인형친구를 선물하는 거였다.

인형놀이 하는데에는 인형 하나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인형, 인형의 옷, 인형의 신발 등등등

그리고 그 인형의 친구, 그 인형의 친구의 옷, 신발 등등등.

하지만 처음엔 신기해하던 모모가

입력한 대로만 꽥꽥대는 인형들을 싫어하게 되고

그래서 시간도둑은 모모를 유혹하는 데 실패한다.

 

요즘 모모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유혹에 넘어간 모모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소박했다.

은별의 이유식을 시작하는 데

애 둘을 더 돌보느라 가스불 앞에서 젓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같아

슬로우쿠커에 솔깃했다.

그런데 사고보니 너무 크기도 하고...밥통이랑 다른 것도 없어보였다.

슬로우쿠커를 판 사람이 이지쿡이라는 것도 같이 내놓았길래

가지러 간 김에 같이 샀다.

이지쿡은 말 그대로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거란다.

이걸로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어쨌든 두 개를 5만원에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한별 약물도 만들고 돈까스도 만들어먹고...

그리고 과자도 만들어보았다.



과자 만들기에 꽂혀서 요즘은 매일 과자만들 궁리만 하고 있는 중이다.

저번 주에 교회식구들하고 같이 먹으려고 과자를 만들었는데...

철망에 얹었더니 과자가 다 흘러내려서 이상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과자선반을 사고 산 김에 과자틀도 샀다.

그런데 과자선반은 들어가지 않았고

이지쿡이 과자를 굽기에는 너무 커서 전기세가 걱정되었다.

 

그렇다면 가스오븐렌지는 어떨까?

자, 이제 가스오븐렌지를 구해본다.

엄마들 중고까페에 가스오븐렌지가 5만원에도 나오고 7만원에도 나와있다.

그거 사면 전기세도 안들고 좋잖아...했는데

옮기는 것도 문제지만 둘 데가 없다.

 

 

싱크대를 다 뜯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포기.

 

엄마집에 놀러가서 엄마한테 오븐 얘기를 하니까

오빠네 집에 안 쓰는 오븐이 있다는 정보를 주셨다.

오빠네 집에 가서 물어보니 이사온 집에 빌트인으로

가스오븐렌지가 달려있길래 전기오븐은 버렸다고 한다. ㅠ.ㅠ

언니는 가스오븐은 무슨 가스오븐. 작은 전기오븐을 사라고 한다.

언니 말 듣고 또 어제 짬짬히 중고시장을 뒤지다가 작은 것을 하나 샀다.

오늘 교회에 손님들이 오셔서 모두들 요리 하나씩 해오기로 했는데

새로 산 오븐으로 과자를 구웠다.

 

슈아의 말대로 작은 성취감같은 걸 느끼는 건 참 좋은데

문제는 내가 조절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

며칠 전에는 식빵을 만드느라 밤을 샜다.

과자선반과 빵틀이 같이 배달된 날, 밤 11시가 넘어서 반죽을 시작했다.

그런데 식빵은 과자와 달리 1시간 30분 정도 숙성시켜야 했다.(나중에 암)

그래서 1시 반에 일어나서 반죽을 자르려 하니

은별이 깨서 달래서 재우고 나니 4시가 되었다.

반죽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이상해져있었는데

아무튼 그래도 만들어서..만들어서..

열심히 먹고 있다.

맛이 없기 때문에 잼이며 이런 저런 걸 듬뿍 발라서 먹고 있다.

 

요즘 내 상태는 좀 이상하다.

부엌에 앉아서 이런 저런 걸 만들다보면

부엌이 좀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로우쿠커나 오븐을 사러 안양 래미안과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가봤는데

내가 사는 동네와 분위기가 달랐다.

안양래미안에서는 화장실에 가려고 상가에 들렀는데 없는 게 없었다.

동물병원까지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의 큰 길 너머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촌이 있는데

가장 처음 만나는 곳이 임대아파트 단지이다.

임대아파트 단지의 상가는 군데군데 비어있다.

아니 군데군데라기 보다는 거의 비어있다.

아래층의 가게만 겨우 열려있을 뿐

세탁소도, 중국집도, 비디오 대여점도 간판만 덜렁거리고 있다.

손님이 없어서 가게들이 문을 닫는 것같았다. 새로 들어오는 가게도 없고.

그리고 분양아파트와의 사이에는 큰 길이 나있고 차단기도 설치되어있다.

같은 아파트단지이지만 선을 긋고 싶은 거겠지.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아주 오랜만에 가는 길이었다.

거기 가본 적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가 그 근처에 있었기 때문.

교회에 다닐 때에도 그렇고 대학에 다닐 때에도 그렇고

나는 동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다가 인도에서 온 유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무감하게 흘려보냈던 대학 시절의 한 순간이 다시 기억되었다.

인도유학생의 말,

 

"한국사람들은 우리나라보고 아직도 계급이 남아있다고 안돼하지만

한국은 다른가요?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디 학교 나왔는지, 어디 사는지 물어봅니다.

강북 출신이면 질문이 간단하지만 강남 출신이면 집안관계 등등

구체적인 질문까지 이어지는 걸 봤습니다"

 

뭐 이런 비슷한 얘기였는데 그 얘길 듣고 보니 정말 그랬던 것같다.

그러니까 나만 몰랐지 물어보는 사람들은

출신학교나 사는 곳이 어디인지만을 듣고서

그 사람 부모의 경제력을 가늠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다. 

고등학교 때엔 아무 생각없이 지나다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다시 갔던 난

아, 여기가 강남이었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부자겠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난 내가 요즘 뭔가 다른 질서에 빨려드는 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옷을 빨때 처음엔 손으로만 빨았다.

그러다 비누칠을 해서 주물거려서 삶은 후, 세탁기에 넣어 뜨거운 물로 헹군다.

처음엔 아,참 편리해. 하고 생각했다가

'삶는 기능'이 있는 세탁기 얘기를 듣고서는 '그런 거 있었으면...' 한다.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생기면서

(난 평소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언니,올케,엄마에게서 반찬을 얻어먹는다)

그리고 요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엌이 넓었으면....한다.

이전까지의 나의 물욕이라는 건

카메라가방, 성능좋은 마이크 정도에만 집중되었었는데

이젠 점점 더 많은 욕심이 생기고 있다.

 

<엄마...>를 만들면서 나는 하은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그 시간이

영화 만드는 데 쓰여지는 것이 기뻤다.

난 제작일지에 그런 얘기도 썼던 것같다.

"내 시간을 온전히 잘 겪어내야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영화에 담겠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었으니까, 또 어찌됐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하는

일종의 후일담 같은 얘기라는 걸 이제 알겠다.

허우적거렸더라도 일단 건너고 났으니까 하는 말인 거다.

나는 또 늪에 빠져있다. 이번 늪은 좀더 깊고 끈적거린다.

페미닌 미스틱이라고 했던가.

여성들이 사회가 유포하는 여성성의 환상에 빠져든다는 말이었던 거같은데.

현모양처라든지 뭐 그런 거.

 

그런데 요즘 나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빠져드는 중인 것같다.

뜨개질에 며칠동안 빠져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수세미로 해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가 다행히 엄마 집에 코바늘을 두고 온 바람에

그 생각을 끊었다.

신경써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밥을 먹고 나면 홍시감과 은행, 요구르트를 먹인다.

홍시감을 먹기 위해서는 덜익은 감을 복도에 두고서 매일 살핀다.

완성된 홍시는 2천원 정도 하지만 떫은 감은 500원 정도 하니까.

요구르트는 사흘에 한 번 정도 우유를 사서 균을 배양한다.

 

아이들은 요즘 아침마다 내가 만든 빵에 홍시와 쨈을 발라서 먹인다.

빵 한 번 먹고 요구르트 한 번 먹고.

제비처럼 한껏 벌려 맛있게 먹는 그 입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푹푹 삶아빤 빨래에서 풍기는 향긋한 비누냄새가 좋다.

마당있는 집에 빨랫줄을 걸어 햇볕아래에서 말리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들을 주로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영화평을 써야할 때엔

만사가 다 귀찮고 주변이 다 스트레스 요소이다.

가물거리는 단어들 사이를 헤매면서 나는 그 일이 낯설고 귀찮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사무실 회의에 가서

일주일동안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하면서 불편해진다.

회의가 없으면 그냥 흘러갔을 시간이다.

가끔 난 그렇게 옛날의 내 자리를 낯설게 바라볼 뿐이다.

 

그 자리들은 지금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나는 매일 엄마들 벼룩시장에 빵틀이 싸게 나온 건 없나 게시물들을 읽고

쉬우면서 맛있는 빵이나 과자 레시피들은 없나 살핀다.

그렇게 하나를 완성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먹으면 그게 사는 이유가 된다.

...................

 

그리고 이렇게 깨어있는 시간이면 나루의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네가 감독이라는 것을

네가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것만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자긍심을 가지길 바란다"

 

그래 그럴께.

일단 제작일정을 써야겠다 언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좀 미안하다.

한별이를 임신했을 때, 교회에 가면 항상 내 무릎에 앉는 애가 있었다.

그러면 하은이는 울었고 그 애는 씻지 않아 냄새가 났다.

그애의 부모는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두분 다 지적장애인이라서

아이가 4살이 되었는데도 분유만 먹이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데려오신 거였다.

나는 엄마가 그 앨 많이 보고싶어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난 어제 밤, 그 애의 엄마를 만났다.

그 애의 엄마가 하은이 또래의 그애 동생을 데리고 교회에 왔다.

자정미사를 기다리며 이불이 깔린 방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엄마는 자꾸 아이를 때렸다.

빨리 자. 빨리 안자?

화가 난 것은 아니었고 아이가 다른 사람한테 불편을 줘서 혼날까봐

미리 그러는 것같았다.

어쨌거나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건 그 애 엄마였다.

 

난 교회에 가면 조용히 있으려 한다. 어제도 그러려고 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빠는 어디있어요? 낮에는 뭐하세요? 아이는 내년에 학교에 가지요?

그 엄마가 대답했다.

아빠는 그냥 집에 있어요.

낮에는 도시락 가게에 가서 도시락도 싸고 설거지도 하고 배달도 해요.

아이는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1년 더 유치원 다녀야 한대요.

자꾸 하품을 하길래, 오늘도 일하고 오셔서 힘드셨겠어요 하니

아이가 아파서 오늘은 휴가를 냈어요. 뭐 돈이 깎이는 거죠. 한다.

 

나는 어제 낮, 오븐을 사러 은마아파트에 다녀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참 싸게도 내놓는구나.

나같은 사람은 그래서 좋지.

하지만 좋아 죽겠던 건 아니고 괜히 혼자 씁쓸해하고 그랬던 것같다.

내가 요즘 뭔가 다른 질서에 빨려드는 거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데에 있다.

예전같으면 그저 싸게 사서 좋아죽겠었던 일들인데

나는 괜히 혼자 씁쓸해하고 그랬다.

왜?

내가 선택한 이 길위에서 펼쳐지고 앞으로도 감당해야할 일들 때문에.

래미안 아파트 광고가 재수없다고 느끼면서도

하은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 정말 그런 일들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뒤늦게, 아니 너무 미리 박탈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어제 밤, 이불이 깔린 방에서 어떤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를 만나서 내 고민이 부끄러웠다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아니다.

난 그런 식의 자기 위로가 너무 싫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에서 브리짓이 맞고 사는 아시아 여성들의 얘기를 듣고

"아, 난  너무 바보같았어"라며 자신의 애인을 떠올릴 때

정말 너무 싫었다.

언어폭력을 당하며 사는 여성은

뺨 맞는 여성를 보며 위로받고

뺨 맞는 여성은 온 몸을 구타당하는 여성을 보며 위로받는

그 웃기는 짬뽕같은 상황은 난 정말 싫다.

 

난 그저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점검할 필요를 느꼈다고나 할까...

나라는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이런 저런 조리도구들을 사느라 돈을 다 써버려서

진보넷에 후원을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

지금은 진보넷을 지키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인것같다.

 

생뚱맞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진보넷을 지키는 일은

이 땅 소수자들을 지키는 일과 같다.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을 때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단순한 사실관계를 적시했다 하더라도

상대측에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벌금이 천만원이나 나왔다고 한다.

인터넷 그만 들여다보고 작업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진보넷 모금운동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이번 일이 단순히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진보넷과 참세상

더 나아가 민중언론을 지키고 단단히 세워내는 일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곳을 찾는 분들도 한 번 찾아가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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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알엠님의 [] 에 관련된 글.

 

1.

영화 관련 소식이 KBS뉴스와 조선일보에 나갔다.

조선일보 기자가 사무실에 찾아왔는데(편집 중이라서)

사무실 동료들이 인터뷰 거절을 했다고 한다.

우스운 건 그래서 기사에 사무실 이름은 한 자도 안나온다.

인터뷰 안해줬다고 사실까지 왜곡하는 좃선...

 

2.

뉴스와 신문기사 때문에

장애인센터에 항의전화가 왔다고한다.

"왜 장애인 나오는 영화 제목이 동네 이름이냐?

우리 동네에 혐오시설 있다는 거알려지면 집값 떨어진다~!!"

동장님께서 동주민들의 항의를 전해주시러 친히 전화를 하셨다고.

이 동네 집값이 비싸긴 한가보지.

집값아 떨어져라....

 

3.

요번 선거에서는 주변에서 누구찍으라는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아서

생전 처음 생각 좀 하고 투표를 했다.

 

4. 선거 전전날 한별이가

"엄마, 난 이명박 아저씨 뽑을 거야!"라고 해서 우리 부부를 까무라치게 했는데

4살 짜리도 인권이 있으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단지

"왜? 왜 그러는데?" 하고 물었더니

(풀 뽑는 시늉을 하며)

"뽑아서 버려버릴 거야"  라고 해서 오랜만에 웃었다.

 

5. 대선 특집 MBC 스페셜 <올인>을 보다보니 이런 문장이 나왔다.

"선거는 바람이다"

맞아. 단시간에 이는 그 바람에 휩쓸려 대통령을 뽑는 일은 좀 이상하다.

어쨌든 내년 한 해에도 많이 웃으면서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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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천9동>

 

 

봉천동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에서 근무하는 지적장애인 직원들은 장애인 인식개선이라는 취지로 실시한 교육의 일환으로 극영화를 만들어 시사회를 갖게 되었다.
이 영화가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영화 시나리오부터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지적장애인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도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 “봉천9동”은 지적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장애인 영화이다. 장애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만만치 않는 사회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게 해줄 것이다.

시사회 일정은 다음과 같다.

-다음-

1차 시사회
일시 : 2007년 12월 20일 (목) 저녁 7시
장소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 3관) ☞약도

2차 시사회

일시: 2007년 12월 23일(일) 2시, 6시

장소: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2호선 신림역 7번 출구-03번 마을버스 -6정거장-산성교회 하차)

 

주관 : 푸른영상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무총리복권위원회
담당 : 서성민 (mulhantong@naver.com)
문의 : 02-876-2842 /  010-9919-9312

 

일요일 1시 5시라네요~ (윗글이 수정이 안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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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한 달도 더 넘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이제서야 쓰고 싶었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밤 안으로 네 개의 글을 써야 하는 절박함은

항상 그렇듯 불질로 이끈다.

이 글을 다 쓰고 또 네 개의 글을 다 쓸 동안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나비의 글(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보고 책을 빌렸다.

간단하지는 않았다. 참 많이 기다렸다.

동작도서관에는 나랑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백명은 넘는 것같다.

어쨌든 대기자에 이름을 올린 후 몇 주일 만에 책을 빌렸다.

책읽기는 자꾸 끊겼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돌아다녀서.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랬을 거다.

89년도에 대학에 들어갔거나

'눈물로 쓴 보고서'라는 책으로 담으려했던 91년 대투쟁을 겪었던 사람들.

그리고 또...

 

2.

김연수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때부터 알았다.

어떻게 그 이름들을 잊을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오빠의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책을 읽을때면 저자의 나이와 약력을 먼저 읽었다. 

나는 내가 찾지 못한 자리를 그들이 가리켜주기를 바랬다.

그러다 김연수의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라는 책을 읽었고

그가 70년 개띠, 나와 같은 사회적 나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다.

 

"영웅본색에 열광하고

<천국보다 낯선>, <개같은 내인생>을 보고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던 70년생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는 문구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말을 따라해보았다.

세상의 많은 70년생들은 이랬었구나.

나는 영웅본색에 열광하지 않았고

<천국보다 낯선>이나 <개같은 내인생>을 보지 않았으며

뉴트롤즈나 아다지오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전까지 나에게 음악이나 영화나 소설은 외면해야 할 것들이었다.

나는 극장도 가지 않았다.

토론을 위해 <사라피나>를 신촌의 어떤 극장에서 보던 기억이 날 뿐.

살아갈 길을 잃고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처음 했던 일이 김연수의 글에 나온 음악을 들어보는 거였다.

뉴트롤즈는 1년 동안 끼고 살았다. 그냥 그랬다.

음악을 들어도 길은 안보였고 나는 길을 찾는 대신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듣는 김에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촌의 케자르에 가면 시간이 걸려도 시킨 음악은 꼭 나왔다.

그렇게 살았다. 아주 오랫동안.

 

우스운 건

작가의 말은 지금도 외우는데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

 

3.

김귀정열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주인공은 애인을 찾고 있었지만

난 그 때 충무로 지하철역에 있었다.

그날 난 텍을 먼저 받은 후 과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형사였던 강남의 고3아이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 후

허겁지겁 충무로 전철역에 내려서 개찰구로 나가려는데

정돌이가 앞에 서있다가 나오지 말라고 했다.

정돌이는 갈 곳이 없어서 우리 학교에서 먹고 자던 아이였다.

그 애가 말했다.

"다 깨지고 다 흩어졌어. 지금 나가봤자 잡힐거야.

 그냥 집에 가. 학교로 가든지"

그 때 시간이 6시 정도였던 것같은데.

그다지 많이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난 그애의 말을 듣고 학교로 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

프락치활동을 하다가 베를린을 거쳐서 북한으로 간 영화감독.

소설 속 남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 남자의 이름 중 하나가 배인오라는 것을 안다.

배인오가 베를린에서 민변의 변호사와 인터뷰한 테잎 중 일부를

풀어쓰는 일을 했었다.

그렇게 조연출로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22일간의 고백>에는

배인오의 인터뷰와 배인오가 촬영한 안기부 직원의 몰카장면이 들어간다.

 

그리고...얼마 후 단 네명 뿐이었던 다큐강좌 동창생들과 술을 마시다가

동창 중 한 명이

배인오와 함께 북으로 간 약혼녀(신문에 이렇게 나왔던 것같다)가

자기 친구라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었다.

 

5.

뭐 이런 이야기, 쓰다보니 구구절절해지는데

김연수의 소설은 뒤를 돌아보게 한다.

읽다보면, 나도, 나도, 나도...그런 말들이 자꾸 새어나온다.

하지만 그게 나만이겠어?

배인오의 이야기는 <22일간의 고백> 만이 아니라

황철민감독의 <프락치>라는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실제 황철민감독은 배인오가 베를린에서 양심선언할 때 유학생 신분이었으니

훨씬 더 생생하게 배인오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

91년 김귀정열사가 숨졌던 그 시간, 그 장소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고

백병원에는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주야를 교대로 몰려들었으니.

깐수의 이야기는 공지영의 산문에서도 잠깐 나오니까.

그 시기를 거쳐온 모든가가 이런 저런 인연으로 하나씩은 알고 있었을테니.

타고난 이야기꾼인 김연수가 우연과 필연의 그물망으로 엮어낸 사건들이

개인사와 맞물려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저 작가와 내가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일 뿐.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김연수는 소설을 쓰고 나는 영화를 만들고

정돌이는 풍물강사가 되고

정돌이가 가장 잘 따랐던 C형은 자주민보에서 NK풍의 문장들을 쓰고있고

 

91년 총학생회 좌파후보였던 사람들은 선본이 통째로 신한국당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헤매다 뒤늦게 군대에가서 전경생활을 하던 내 친구는

국회 앞에서 보초 서다가 그 사람들때문에,석탑건물때문에 학교랑 헷갈려하고

항상 털털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고민을 들어줬던 B형은 이명박캠프에서 일하고

......

 

나는 또 누군가는

우리가 지나왔던 그 시간을

혹시나 빙하에 갇힌 맘모스 취급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뜨겁게 뛰던 붉은 피, 그 심장은 꽁꽁 얼려버린 채

탐스러운 뿔만을 탐하고 있는건 아닌지.

 

항상 깨어있어야해.

머리는 굳고 피는 차가운 꼰대가 되어

세상에 환멸 한 덩어리만 더 늘리지 말고

깨어서 푸르게 싱싱하게 살아있어야해.

얼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구르고 깨지더라도 꼭 살아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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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

누군가의 글을 보고 쓰고 싶었던 글.

트랙백을 걸려 했으나....

괜히 그 사람의 가라앉은 마음을 흔드는 것같아 트랙백은 포기.

제목은 글과는 그닥 상관이 없는 것같기도.

 

써야하는 글 중에 하나가 'TV 드라마 속 장애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황진이>를 보고 또...

다른 드라마들도 다운받아서 봤어야했는데 그냥 멍하니 TV만 봤다.

<황진이>의 어머니가 앞을 보지 못해서

그래서 그 캐릭터만 잠깐 살펴보려 했는데....몽땅 보고 말았다.

 

처음 김재원이 김정한으로 등장했을 때 참 기가 막혔다.

그런데 드라마에 빠지다보니 좀 익숙해지기도.

예인으로서 황진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도 애를 썼지만 결국 둘은 살림을 차린다.

3년을 살고 우여곡절을 거쳐 황진이는 다시 기방으로, 김정한은 궁으로.

그런데 몇 회에 걸쳐 그렇게 아슬아슬하고도 어렵사리 이어졌던 인연을

황진이는 싹둑 자른다. 김정한은 괴로워하고 또 애원한다.

기둥서방이라도 되겠다는 김정한의 애원을 황진이는 싸늘하게 외면한다.

그것은 지혜롭다.

 

실을 감으며 거문고 줄을 떠올리고

하얗게 휘날리는 빨래를 보며 춤을 생각하는 황진이나

세상에 펼칠 뜻이 남아있는 김정한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 이외의 모든 열망들은 포기해야 한다.

황진이가 지혜로운 건 고립된 사랑의 해로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냉정하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건 김정한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사랑 이외의 것들 때문에 인연을 끊는 것이라서

그렇게 차가워도 되었다.

 

하지만...

더이상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아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서 떠나가는 사람이라면 좀 달라야하지 않을까?

 



<네 멋대로 해라>와 <태릉선수촌>은 이별을 그리는 방식때문에 좋다.

복수는 전경을 사랑한다. 그리고 미래에게 미안해한다.

복수가 미래와 헤어지며 자꾸 돌아볼 때

미래는 화를 내면서도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그렇게 자꾸 돌아봐. 그래야해"

새로운 사랑 때문에 과거의 사랑을 떠나야 한다면

그만큼의 노력과 그만큼의 예의는 갖춰야한다.

 

최정윤이 이선균에게 이별을 고한 후

최정윤은 이선균이 나오라고 하면 꼬박꼬박 나간다.

새로운 사랑 때문에 과거의 사랑을 등진 사람이라서

최정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이선균의 말은 차갑게 자른다.

"오빠, 오빠와의 좋은 시간까지 망치고 싶지 않아"

과거로 돌아가는 것 외의 모든 것들은

그것이 술꼬장이든 욕설이든

먼저 돌아서는 이가 감당해야하는 몫이다.

그것이 과거의 사랑에 대한 예의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약자니까.

시작할 때는 같이 행복했을지 몰라도

끝은 동시에 오지 않기 때문에

먼저 돌아서는 이는 미련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를 돌아볼 줄 알아야한다.

나의 20대가 힘들었던 건 그런 배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같다.

항상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났으므로 나는 황망함과 혼란스러움

슬픔과 분노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서둘러 봉합한 채 잊으려 잊으려 애를 썼다.

 

<네멋>을 보며 <태릉선수촌>을 보며 또 <에스다이어리>를 보며

지나간 시간을 무조건 몽땅 잊으려고 애쓰는 건 그만두기로했다.

그래,끝의 절차에 대한 합의를 미처 못했을 뿐이지.

그들도 돌아서면서 힘들었을 거야.

어쨌든 나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잖아.

반짝거렸던 시간까지도 부정하지는 말아야지.

그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스물 아홉살의 크리스마스를 나는 북경에서 보냈다.

생전 처음의 해외여행이었고

또 스무살 이후 처음으로 연인없이는 홀로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북경의 한 호텔에서 촬영 때문에 만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암담해하며 한편으로는 희망을 가지려 애쓰며 생각했다.

이건 복선이다. 

질척거리던 20대를 혼자서 꿋꿋하게 정리하라는 계시이다.

나는 달라질 것이고 씩씩해질 것이고 혼자 설 것이다.

외로움을 못견뎌 버티기를 포기했을 때 그 댓가는 점점 더 가혹해져만 왔으니까.

내가 새로워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돌이켜보면 난 연애에 중독되어있었던 것이다.

꼭 그사람이 아니어도 되었어. 연애라는 상태가 끝나는 것이 힘들었을 뿐.

<황진이>에도 그런 대사는 자주 나온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잊으라고.

그건 마치 제비뽑기같은 것이라서 좋은 사람 만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비슷비슷한 상태의 사람끼리 만나기 십상이다.

신경증 환자들끼리 첫눈에 반하는 것어럼.

그래서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같다.

 

뭐 지금은 그럭저럭.

해야할 일이 많아서 외로울 틈도 없고

아이들로부터 건강하고 신선한 기운을 나눠받기도한다.

다만....

요즘은 생활에 너무나 깊숙히 빠져드는 것이 무섭다.

글쓰는 일도 힘에 부친다.

단조로운 생활 때문인지 내가 쓰는 단어수는 부쩍 줄어들고 있다.

문장 하나를 쓰려해도 머리 속을 뱅뱅 도는 단어들 때문에 버벅댄다.

책을 읽는 일도, 영화를 보는 일도, 관심있는 무언가에 깊숙히 빠져드는 일도

먼나라 일처럼 되어버려서...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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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차

여름이 되기 전 처음 꽃봉우리가 열렸을 때 채집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맛은 달고 약간 쓴맛이 나며 따뜻한 성질을 가진 차다. 장미차는 기혈(氣血)을 돕고 어혈을 풀어주는데 간과 위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며 여자들의 어혈성 생리통에 좋다고 한다. 장미차는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좋은 효능을 갖고 있으므로 여성들에게 특히 권할만한 차다.
마시는 방법 : 80-90도의 따뜻한 물에 장미차를 6그램 정도 넣어 마신다.

 


 


 

아이들 먹일 약초 사러 갔다가 예뻐서 산 차.

몰랐는데 여성에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

서울에도 재미있는 곳들이 참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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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를 위한 호소

민중언론 참세상 국가의 감시통제 폭력 앞에 '표현의 자유

' 그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 참세상 인터넷 실 명제 반대 특별페이지

독자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립 니다

선관위, 참세상의 인터넷 실명제 거부에 과태료 1000만 원 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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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언론 참세상을 아껴주신 후원회원, 독자, 참 새 여러분!

2007년 한해 잘 보내셨는지요?

민중언론 참세상은 그렇게 편한 나날들은 아니었 습니다. 각종 송사와 벌금에 치여 살아야 했던 한 해였습 니다.

한 달에 한 두건씩 명예훼 손 위협(?)이나 소송이 들어옵니다. 대부분 이런 것입니다. 철거민이나 노점상들이 목숨을 걸고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이를 보도하면 상대측에서 명예훼 손으로 걸고 나옵니다.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을 때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단순한 사실관계 를 적시했다 하더라도 상대측에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 겠다고 합니다.

삼각취재의 원칙을 지켜도 단순한 사실관계를 밝 힌 것에 대해서 상대측은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합의를 보려고 노력하지만, 경우에 따라 법원까지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아주 심난한 일들이 많습니다. 철도공사에서 5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왔습니다. 이유는 KTX승무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철도노조의 성명서를 따다가 기사화 했다는 이유입니다. 이철 사장이 조만간 퇴임할 예정인데 퇴임하더라도 언론사 관련 손배소는 취 하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머리 가 좀 아픕니다~)

그리고 선거실명제 거부가 있습니다. 저희들로서는 정부와 선관위의 실명확인조치( 주민등록번호 확인조치)를 도저히 받아 들 일 수가 없었 습니다. 선거시기에 국민의 입을 막는 일이기 때문에 민 중언론으로서는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루더라도 정부의 조치를 그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2월7일자로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었고, 최소 1천만원의 과태료 가 부과될 예정입니다.

저희들이 믿을 데라곤 회원과 독자들 말고는 없 습니다. 매번 어렵다, 힘들다 응석부릴 곳도 회원과 독자 들입니다. 십시일반으로 이 난국을 넘어 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세상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로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재정구조를 마련하는 일, 한국사회의 진보적 전망을 함께 고민하기 위한 민중언론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민중언론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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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오랜만에 외출을 했더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어젠 예방접종 때문에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었는데...

잠깐 나갔다 올 줄 알고 옷을 부실하게 입어서인지 좀 추웠다.

돌아와서 밥을 먹었는데 그게 잘못 되었는지 체했다.

처음엔 체한 게 아니라 식중독인 줄 알았다.

몇 년만에 요리에 성공하여 뿌듯하게 어묵조림을 먹었는데

그게 상했었나? 생각했었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토를 엄청나게 자주, 또 많이 했다.

나는 몇년만에 성공한 요리인 어묵조림을 몽땅 버리고 밤새 앓았다.

그런데 자주 체해본 큰언니 말이 그건 식중독이 아니라 급체란다.

아, 아까워.

 

오늘은 꼭 가야할 결혼식이 있어서 갔다.

원래는 안 갈 계획으로 사무실에 전화를 해봤더니 다들 일이 있어서...

그래서 급하게 채비를 하고 나갔다.

갔는데....점심이 부페였다.

호텔 부페.

 

맛있는 게 너무나 많았다. ㅠ.ㅠ

나는 브로콜리 스프, 호박죽, 전복죽만 먹었다.

나오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원래 부페에 가면

몸이나 마음 중 한 개가 불편한데..

이번엔 몸과 마음이 다 불편했다.

 

집으로 오는 길, 잠깐 사무실에 들렀다가 집에 오는 길.

버스를 탔다가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려고 건널목 앞에 서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봤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갑자기 한 아주머니께서 "아니, 추운데 이러고 나오면 어떻게 해?"

해서 다시 살펴봤더니...

망토가 없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널목 앞에 서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애기 정말 춥겠다" 하며 수군수군댔다.

어디다 두었을까. 버스안인가, 사무실인가, 아니면 부페인가...

곰곰히 생각하다 사무실에 전화해보니 거기 있단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타기가 겁났다.

마을버스에 탄 승객들은 또 얼마나 뭐라고 그럴까.

추울 아기 생각에 괴로웠고, 또 모르는 사람들한테 옴팡 욕먹는 것도 무서웠다.

버스가 왔고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에 서있다가 얼른 내렸다.

정말 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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