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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7
    김연수(6)
    알엠

김연수

한 달도 더 넘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이제서야 쓰고 싶었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밤 안으로 네 개의 글을 써야 하는 절박함은

항상 그렇듯 불질로 이끈다.

이 글을 다 쓰고 또 네 개의 글을 다 쓸 동안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나비의 글(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보고 책을 빌렸다.

간단하지는 않았다. 참 많이 기다렸다.

동작도서관에는 나랑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백명은 넘는 것같다.

어쨌든 대기자에 이름을 올린 후 몇 주일 만에 책을 빌렸다.

책읽기는 자꾸 끊겼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돌아다녀서.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랬을 거다.

89년도에 대학에 들어갔거나

'눈물로 쓴 보고서'라는 책으로 담으려했던 91년 대투쟁을 겪었던 사람들.

그리고 또...

 

2.

김연수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때부터 알았다.

어떻게 그 이름들을 잊을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오빠의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책을 읽을때면 저자의 나이와 약력을 먼저 읽었다. 

나는 내가 찾지 못한 자리를 그들이 가리켜주기를 바랬다.

그러다 김연수의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라는 책을 읽었고

그가 70년 개띠, 나와 같은 사회적 나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다.

 

"영웅본색에 열광하고

<천국보다 낯선>, <개같은 내인생>을 보고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던 70년생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는 문구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말을 따라해보았다.

세상의 많은 70년생들은 이랬었구나.

나는 영웅본색에 열광하지 않았고

<천국보다 낯선>이나 <개같은 내인생>을 보지 않았으며

뉴트롤즈나 아다지오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전까지 나에게 음악이나 영화나 소설은 외면해야 할 것들이었다.

나는 극장도 가지 않았다.

토론을 위해 <사라피나>를 신촌의 어떤 극장에서 보던 기억이 날 뿐.

살아갈 길을 잃고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처음 했던 일이 김연수의 글에 나온 음악을 들어보는 거였다.

뉴트롤즈는 1년 동안 끼고 살았다. 그냥 그랬다.

음악을 들어도 길은 안보였고 나는 길을 찾는 대신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듣는 김에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촌의 케자르에 가면 시간이 걸려도 시킨 음악은 꼭 나왔다.

그렇게 살았다. 아주 오랫동안.

 

우스운 건

작가의 말은 지금도 외우는데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

 

3.

김귀정열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주인공은 애인을 찾고 있었지만

난 그 때 충무로 지하철역에 있었다.

그날 난 텍을 먼저 받은 후 과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형사였던 강남의 고3아이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 후

허겁지겁 충무로 전철역에 내려서 개찰구로 나가려는데

정돌이가 앞에 서있다가 나오지 말라고 했다.

정돌이는 갈 곳이 없어서 우리 학교에서 먹고 자던 아이였다.

그 애가 말했다.

"다 깨지고 다 흩어졌어. 지금 나가봤자 잡힐거야.

 그냥 집에 가. 학교로 가든지"

그 때 시간이 6시 정도였던 것같은데.

그다지 많이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난 그애의 말을 듣고 학교로 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

프락치활동을 하다가 베를린을 거쳐서 북한으로 간 영화감독.

소설 속 남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 남자의 이름 중 하나가 배인오라는 것을 안다.

배인오가 베를린에서 민변의 변호사와 인터뷰한 테잎 중 일부를

풀어쓰는 일을 했었다.

그렇게 조연출로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22일간의 고백>에는

배인오의 인터뷰와 배인오가 촬영한 안기부 직원의 몰카장면이 들어간다.

 

그리고...얼마 후 단 네명 뿐이었던 다큐강좌 동창생들과 술을 마시다가

동창 중 한 명이

배인오와 함께 북으로 간 약혼녀(신문에 이렇게 나왔던 것같다)가

자기 친구라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었다.

 

5.

뭐 이런 이야기, 쓰다보니 구구절절해지는데

김연수의 소설은 뒤를 돌아보게 한다.

읽다보면, 나도, 나도, 나도...그런 말들이 자꾸 새어나온다.

하지만 그게 나만이겠어?

배인오의 이야기는 <22일간의 고백> 만이 아니라

황철민감독의 <프락치>라는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실제 황철민감독은 배인오가 베를린에서 양심선언할 때 유학생 신분이었으니

훨씬 더 생생하게 배인오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

91년 김귀정열사가 숨졌던 그 시간, 그 장소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고

백병원에는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주야를 교대로 몰려들었으니.

깐수의 이야기는 공지영의 산문에서도 잠깐 나오니까.

그 시기를 거쳐온 모든가가 이런 저런 인연으로 하나씩은 알고 있었을테니.

타고난 이야기꾼인 김연수가 우연과 필연의 그물망으로 엮어낸 사건들이

개인사와 맞물려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저 작가와 내가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일 뿐.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김연수는 소설을 쓰고 나는 영화를 만들고

정돌이는 풍물강사가 되고

정돌이가 가장 잘 따랐던 C형은 자주민보에서 NK풍의 문장들을 쓰고있고

 

91년 총학생회 좌파후보였던 사람들은 선본이 통째로 신한국당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헤매다 뒤늦게 군대에가서 전경생활을 하던 내 친구는

국회 앞에서 보초 서다가 그 사람들때문에,석탑건물때문에 학교랑 헷갈려하고

항상 털털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고민을 들어줬던 B형은 이명박캠프에서 일하고

......

 

나는 또 누군가는

우리가 지나왔던 그 시간을

혹시나 빙하에 갇힌 맘모스 취급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뜨겁게 뛰던 붉은 피, 그 심장은 꽁꽁 얼려버린 채

탐스러운 뿔만을 탐하고 있는건 아닌지.

 

항상 깨어있어야해.

머리는 굳고 피는 차가운 꼰대가 되어

세상에 환멸 한 덩어리만 더 늘리지 말고

깨어서 푸르게 싱싱하게 살아있어야해.

얼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구르고 깨지더라도 꼭 살아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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