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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첫눈 오던 날, 문득 이 속담이 생각났다.
지난 달 지출이 너무 과하여 이번 달 통장이 텅 비어버렸다.
월초 카드결제 후 텅 비어버린 통장을 보니 나오는 건 한숨 뿐.
육아 때문에 모든 일을 접은 지금 매달 보름이 넘어서면 머리가 아프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이 가정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 생각하지만
(엄마,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같다. 심지어 나 조차도)
이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큰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
어쨌든 한 달의 절반도 못 왔는데 어찌 사나 싶었는데
갑자기 강의를 하게 된 것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 여느 때와 다르게(보통은 계좌번호를 알아간 후 몇날 며칠 후에 입금)
흰 봉투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 365코너에 들러 입금을 하니 마음이 든든.
집에 도착할 즈음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변해있었다.
어른들은 길 막히기 전에 잘 왔다고 기뻐하고
아이들은 눈이 쌓이겠다고 기뻐하며 기분좋은 하루를 마감했다.
2.
지금은 새벽. 한 달에 한 번 쓰는 영화 원고 때문에 깨어있다.
담당기자가 출산때문에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새로 담당기자가 왔는데
원고마감을 잘 지켜야만 할 것같았다.(좀 무서웠다고나 할까)
그런데 몇 달 전, 내가 쓴 글이 잘못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처음으로 긴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메일에 "항상 마감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가 제 때 안들어와서 속상할때가 많아요 "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원고를 제 때 안내는 사람이 많구나.
그런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마감을 꼬박꼬박 어기고 있다.
월요일이 원고마감인데 지금 보냈다.
마감증후군이라는 거...참 이상하다.
놀 때까지 놀다가,
놀기 힘들면 청소나 빨래처럼 평소엔 미뤘던 일들을 열심히 하고
아기가 평소보다 100배는 더 예뻐 보여서 괜히 미적거리다가
막판에 겨우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런데... 마감 안 지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막판이 원고마감 다음날이 되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야. 나도 어쩔 수 없는 나.
가끔 생각한다.
사는 게 구차하다고.
학력고사를 보자마자 담임선생님이 과외를 소개시켜주셨다.
학비를 벌어야만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12월부터 시작했던 과외는 3월에 짤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느라 과외를 미뤘는데
그집 엄마가 엄청 칼같은 성격이라서 짤렸다.
처음 과외에 짤리던 날, 집에 와서 내쳐 잠만 잤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면 자는구나.
그 집 엄마가 내게 실망했다고 말하며 그만 오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상처였던것 같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과외를 했고 짤리는 데에 익숙해졌다.
과외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자 학교앞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때 우리 학교 앞에는 장백이라는 큰 서점과 황토라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장백은 커서 분류가 잘된 반면, 황토는 작아서 책 위치를 외우는게 쉽지 않았다.
황토에서 먼저 일했었던 점원이 친한 선배라서 나는 점원 채용소식을 미리 들었고
그 선배가 그림을 그려가며 책 분포도를 알려준 탓에 나는 곧 채용이 되었다.
황토의 주인이 형부의 친구였는데 나중에 주인이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00(형부 이름)가 말하기를 우리 처제가 서점에 취직하려고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고"
어쨌든 그런 노력을 높이 사서인지, 아니면 책 찾기 시험에 잘 통과해서인지
서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임금이 시간당 천원이었던가? 잘 기억이 안난다.
기억하기로 가장 시급이 쌌던 일은 서빙이었다. 시간당 700원.
학교 앞 호질이라는 까페에서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거였는데
나는 혼자 계산하기로 열심히 일을 하면 학비는 벌 수 있겠다 싶었다.
언니가 엄마한테 일러서 일한 기간은 한 달 뿐이었지만.
학교에 집회가 있던 어느 날, 호질 앞에 전경들이 줄지어 앉아있었고
그중 한 전경이 내게 물을 달라고 해서 물컵을 건네주며
'친구들은 싸우고 있는데 내가 물을 줘도 될까?' 하며 살짝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19살의 나는 좀 멍청했고 많이 단순했던 것같다.
갑자기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건 역시나 돈 때문이다.
사는 게 구차하다는 생각 또한....돈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떤 영상제의 심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일이 끝난 후,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서 뭔가 잘못된 것같다는 얘기를 했고
담당자는 아니라고, 정확한 액수라고 확인을 해주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심사라는 일이 글쓰기나 강의, 편집일 보다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었겠지.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내가 관여하는 그 일이
내가 정한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세한 얘기는 할 수가 없다 )
그래서 작년과 올해에는 후배에게 모든 사정을 다 얘기한 후 넘겼다.
그 과정 또한 구차하다.
나는 내가 거절하는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아이가 어려서 시간이 없다고, 그래서 훨씬 더 좋은 분을 소개해드리겠다고 말했다.
후배에게는 내가 왜 그것을 할 수 없는가를 설명하고
그래도 너는 하겠느냐라고 물었고....그애는 괜찮다고 맡아주었다.
그냥 이렇게만 끝나면 또 얼마나 스스로를 대견해하겠어?
그런데... 쪼들리다보면
그렇게 거절한 일들이 하나 둘씩 머리 속에서 반짝반짝 떠오르는 거다.
그 일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렇게 흘러가는 마음을 다잡다보면 쓴웃음이 난다.
첫눈 오던 날 기분이 좋았던 건 내 영화들을 소개하는 강의였기 때문이다.
이제 10년. 삶이 어떻게 나를 이끌었고
나는 어떻게 영화로 삶을 기록했는지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는 부끄럽게 돌아보는 첫 영화의 기억과
머리 속 생각이 깨어지며 한 뼘 정도 세상 보는 눈을 넓혀줬던 두번째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치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던 세번째 영화와
그리고 지금 더디게만 진행되고 있는 네번째 작업을 소개하며
내가 선 자리와 앞으로 가야할 길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며 내가 떠나왔지만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작업을 기다리고 있을 보육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미안함에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어쨌든 좋은 시간이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괜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아쉬워하지 말기를.
내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기를.
비틀거리며 가는 것이 길이라는 걸 알지만 너무 많이 비틀거리지는 말기를.
이 새벽, 나에게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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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네요. 얄팍한 삶의 기술을 하나 배운 듯ㅎㅎ저는 언제쯤, 한쪽 문이 닫히고 다른 쪽 문이 열렸단 걸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러려면 한참은 남은 것 같지만, 이러다 정신차려 보면 이미 지나 버린 걸 깨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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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증후군, 저게 그렇지.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안되면 미뤄뒀던 집안일하기...
너도 그렇구나. 급공감이야. ㅎㅎㅎ
사는 거, 구차해. 사는게 그런거지. 뭐. 그치?
그래도 자기가 만든 영화들을 떠올리고, 눈물나고, 기분좋으면 참 좋겠다.
난 아직 그 경지가 될라면 무척 멀은 거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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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해도 날아오르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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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을 써서 지도교수한테 보여주는 게 일이라... 제 "원고마감" 저 스스로 정하곤 하죠. 그런데도 매번 어기기 일쑤고, 이런 저를 지도교수는 (저는 주로 이양반을 화장실에서 마주치곤 하는데요..;;) "넌 시간을 아주 잘 지키고 있어. 결코 늦지 않았어!"라고 격려해주곤 합니다. 오줌 누면서요.. (-_-)사실은 지난주 초까지 내겠다고 한 것이 있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결국 오늘 오전에 (여긴 지금 밤입니다) 기약한 원고(?)의.. 절반 정도만 해서 일단 냈습니다. "비록 다 끝내진 못했지만, 내가 살아있으며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보냅니다"라는 구차한 변명과 함께요.ㅋㅎㅎ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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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 무슨 보존 법칙 같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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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거 구차하죠. 그래도 이렇게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거. 그래서 사나봐요. 그래도 지금은 힘든 시기네요. 좀만 기둘리세요. 앵두도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움직일 공간과 시간이 생기면 더 나아지겠죠. 우리가 알고 보면 참 가계에 큰 역할을 해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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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솔직히 말씀드리면 우연히 일이 잘 풀려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 하지만 이런 우연을 기억하게 되면 낙천적으로 살게 되는 것같아요.한판/우리들은 다 비슷한가? ^^ 그리고...네가 선배잖아. 조연출할 때 네가 시사회하는 거 보고 부러웠었고...그리고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데서 일하고 있잖아. 사실 아는 분이 끌어주셔서 하게 된 강의지 아직도 난 한참 멀었는데 뭐. 전선에 서있는 네 카메라가 부럽단다.
나루/날아오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EM/변명이 구차하지 않고 멋진데요. 지도교수님 맘이 좋으신가봐요.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저의 동료는 지도교수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던데.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다 복인것같아요.
벼루집/그래서 잘 살았다, 뭐 그런 결말로 가는 법칙 아닐까요? ^^
슈아/맞아요. 우리의 부정기적인 수입이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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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이 없으면 생활에 활력이 붙지 않나?? 그리고 직접적인 수입이 없어도(수입을 지불하지 않는게 문제지..사회가.) 전업주부들이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데...수입이 없는데도 말이야!! (억울하잖아. 수입 없다고 찬밥 신세 되는건!)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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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어. 아주 옛날, 남편하고 싸우다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 내가 한 번 없어봐야 내 빈 자리를 알지. 뭐 그런....그런데 그런 날 어디 가본적은 없고나...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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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부끄러워졌어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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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군요!(넘 뒷북인가^^;;) 저도 힘들면 잠만 내쳐 자요. 언젠가 이 글에 트랙백을 걸고 싶어요. 지금은 졸려서...^^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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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엠님 글 읽다보면 많이 공감하고, 또 많이 부끄러워져요.겨우 아이 한명 낳고도 나는 일하기 힘들다고...밖에 일하러 나갔다가도 종종거려야 하는게 숨차고 싫다고...마음이 마구마구 약해지는데...
저두 힘들면 주로 자요.
그리고 마감때가 다가오면 잠이 더욱 많아지기도 하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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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음...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갑자기 제가 부끄러워져요. ^^;사슴벌레/힘든 일 있는 건 아니죠? 트랙백 꼭 걸어주세요. 트랙백이 없어요.
메이/아니예요. 저도 첫 애 키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 때가 아마 바닥이었던 것같아요. 이유식 같은 것도 열심히 만들었다가 안 먹으면 속상해서 버리고 그러면서 아무래도 난 아기키울 능력이 없는 것같다, 이 애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같다, 그러면서 어린이집을 찾기도 했었어요. 다음, 그 다음은 훨씬 더 수월하고 좋아요. 그러니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저도 부끄러워요. 태수 이름 들으니까 종교동아리 선배 생각이 났어요. 이름이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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