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넷 첫화면으로 블로그홈 | 메일 | 공동체 로그인내정보

서른즈음에
우리 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실천을 탐구함
>


[펌]6.2 지방선거 평가와 전망

6.2 지방선거 평가와 전망
-남의 깃발을 들고



민심이반은 계급적 분노의 표현

6.2지방 선거는 한 마디로 한나라당의 패배와 민주당의 승리였다. 이명박정권과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북풍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이명박정권이 주문을 외워 불러들인 북풍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풍 때문에 이명박이 패배했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한때 노동운동가였다가 지금은 적 진영으로 투항한 김문수의 표현을 따르자면 북풍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것이다. 이명박정권이 선거 승리의 유일한 카드로 내세운 북풍마저 없었다면 이명박정권은 더욱 더 참패를 당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정권에 대한 심판이다. 그것도 아주 가혹한 심판이다. 이명박정권은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로 임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권력누수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번 선거 패배로 한나라당 내부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분열이 한층 더 심해지고 있으며, 초선의원들의 쇄신요구도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승리는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명박정권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유력한 제2당인 민주당으로 표가 몰렸기 때문이다. 반사적 지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개량주의 진영의 선거결과를 현상적으로 평가하자면 진보신당의 패배와 민주노동당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승리는 민주진보진영 단일화의 승리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게 승리를 안겨다 준 연합정치는 민주노동당의 독자성을 해체하면서 위기를 재촉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142명의 당선자를 내는 성과를 냈으나 독자성을 잠식당하면서 서울에서 정당득표율은 진보신당의 3.87%보다 떨어진 3.86%에 머물렀고, 경기에서는 4.63%에 불과한 선거결과가 그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신당에게 이번 선거는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처참한 패배였다. 이 패배의 결과 진보신당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심상정이 징계위에 회부되는 등 당의 지도력이 붕괴되고 분열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세력관계가 변화하고 있으며 각 정치세력의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은 노동자계급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흔히들 경제에 의해 정치가 규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는 경제에 의해 단순하게 규정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수와 교란요소를 거치면서 반영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위기를 노동자 민중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는 이명박정권의 실정에 대한 민심이반이 표출되었다. 그런데 민심이반은 계급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말이다.

투표행위에서는 계급모순을 흐리는 지역주의, 투표기권, 천안함 북풍과 반공주의, 계급의식을 흐리는 부르주아 사상의 영향, 민주당과 연합에서 보듯 개량주의 정치 진영이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선명한 계급적 분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 투표행위의 집단적 결과물 속에서 핵심적인 흐름과 경향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정권의 경제 살리기와 기만적인 수사로 내세워 왔던 중도실용 정책이 파산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명박정권 하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말살 공세, 고용불안과 2%대의 명목임금 인상으로 사실상의 실질임금 동결과 삭감, 복지의 후퇴 등으로 생존권의 위기를 겪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의 집중적인 전가대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단적 계약해지, 임금삭감, 무권리 등으로 기초적인 생존의 권리조차도 붕괴되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정규직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평가하는 통계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 계약해지가 늘어난 결과이다.  

소부르주아 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세 상인들의 경우에도 용산학살에서 보듯 독점자본과 정권의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이들 소부르주아 계급은 높은 임대료와 이자로 건물 소유주와 금융자본에게 수탈당하고, 자영업자들의 증가로 자신들 사이의 과당경쟁에 내몰리는 동시에 거대 상업자본과의 경쟁에서 몰락하고 있다. 따라서 자영업자는 정리해고자, 실업자, 파산한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충원되는 데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는 97년 경제공황 당시 25만 명이 줄어든 이래 최대인 25만 9천명이 감소했다. 실제 지난 한해에만 파산은 25만을 훨씬 넘고 여기에 가족 무급종사자를 합치면 자영업자의 파산은 절망적 상황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젊은 층들의 투표참여가 늘어났고 이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집중적인 반대세력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등록금 문제나 청년실업의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경우도 저곡가, 한미FTA 등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한편 이번 투표에서 세종시 문제, 4대강, 언론법 개악, 이명박정권의 일방적인 독주와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반발도 반이명박 흐름에 한 몫을 했다. 이명박정권이 독재권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바로 독점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더욱 더 폭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정권이 독점자본의 위기탈출을 위해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것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독재권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공황은 이명박정권에게 야만적인 폭력성을 강화할 것과 타협과 양보의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진보양당의 우경화를 촉진한 선거

이명박정권의 폭압에 맞서서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명박정권이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마저도 부정하면서 파쇼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투쟁전선에서 민주당과 제한적으로 공조할 수 있고, 지배계급 분파 내부의 분열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 기간 내내 독점자본의 또 다른 대변자였던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계승자인 민주당은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집권한 이명박정권을 반대하는 것이지, 독점자본의 대변자로서의 이명박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과의 공동전선이나 협정은 반이명박, 반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요구를 내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반대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투쟁에서 한미FTA,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개악 등의 문제를 내거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민주연합 전선에서 공통의 가치는 친환경 무상급식, 일자리 창출, 4대강 반대, 세종시 원안 사수, 전쟁반대의 요구였다. 물론 이 요구들 대부분이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요구를 확장해서 투쟁해야할 과제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사활적인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쟁반대의 문제에 있어서도 추상적인 평화의 문제를 내걸었을 뿐, 한반도에서 위기를 격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인 한미동맹의 문제나 미군철수의 문제 등 노동자계급의 사활적인 요구와는 분리됐다.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투쟁은 독점자본의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대변자인 정권과 이 사회를 지배하는 독점자본에 대한 반대여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민중의 정당을 자처하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깃발을 내걸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후보와 공동 지방정부 구성, 총선에서의 공조, 대선에서의 단일후보와 공동정부 구성이라는 일련의 집권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게 공동정부 구성은 최종적인 집권으로 향하는 과도기 전략이다. 이 과도전략을 위해서 민주노동당은 반독점 요구를 일관되게 내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민주당이 반대하는 계급적 요구를 과감하게 버렸다. 민주노동당은 서울시장 선거, 경기지사 선거, 부산시장 등 전략지역에서 야권연합에 나서면서 심지어는 민주당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의 깃발 아래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선거 이후에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 등과의 진보진영 대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에서 병력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지분을 더 많이 보장받으려고 하고 있다. 민주대연합이냐 진보대연합이냐의 논란이 있었는데 민주노동당에게 이것은 결코 대립적인 가치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일시적으로 민주대연합에 더 집중했지만 그것은 진보신당이 5+4회의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에게는 진보대연합은 전술이고 민주대연합은 장기적인 전략인 것이다.

진보신당은 5+4회의에 참여했다가 지분보장이 되지 않자 탈퇴하고 독자성을 강조했다. 진보신당은 야권 단일화의 문제 앞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부산시당과 고양시에서는 야권단일 후보인 민주당 김정길과 최성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의 간판 격인 심상정은 유시민을 지지하면서 중도사퇴하기도 했다. 진보신당은 당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선거연합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선거의 주요 요구에서는 복지혁명, 무상급식의 문제처럼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구호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노회찬이 사퇴하지 않고 완주하여 오세훈을 당선되게 만들었다는 대대적인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는 사퇴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명숙이 내건 요구와 근본적인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깃발을 내리고 남의 깃발을 내걸었다면 진보신당이 내건 자신의 깃발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깃발이었고, 자신의 깃발에 남의 구호를 새겼다. 민주노동당이 독자성을 상실하고 일관되게 남의 깃발을 내건 덕택으로 인천에서 두 개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는 등 성과를 냈다면 진보신당은 독자성이라는 전략적 측면에서도, 득표와 당선이라는 전술적 측면에서도 다 처참한 실패를 하고 분열에 휩싸여 있다. 진보신당 내에서 이후 전망과 관련해서 독자성의 강화를 통한 진보대연합이냐 국민참여당 등 친노세력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진보대통합이냐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노선논쟁은 진보신당의 분열의 뇌관이 될 수 있고, 자유주의자와의 연합으로 진보신당의 소부르주아적 측면이 더욱 강화되는 노골적인 우경화로 치달을 수 있다.

결국 개량주의 양당에게 이번 선거는 외형적인 성공과 실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의 독자성을 상실하고 더욱 더 우경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부르주아 야당의 이중대에서 선봉대로 전락하였고, 진보신당은 촛불집회 이후에 소부르주아 당원의 대거 유입에 이어서 소부르주아적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민주대연합은 직접적인,
진보대연합은 궁극적인 독자성의 상실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하나의 수단인 선거에 있어서도 원칙이자 생명과 같은 정치적, 조직적, 이데올로기적 독자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입후보자들과 나란히 노동자 후보자들을 내세울 것. 후보자는 가능한 한 동맹원들 가운데서 내세우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들이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입후보자가 당선될 가망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입후보자를 내세워야 한다. 자신들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하며 자신들의 혁명적 입장과 자신들의 당의 관점을 공공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이때 노동자들은 예를 들어, 그렇게 하면 민주주의 당파를 분열시키며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든 공문구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를 기만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들이다. 그러한 독자적인 진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당이 이루게 되는 진전은 몇 명의 반동 분자들이 대의 기관에 들어감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불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 『저작 선집2』,박종철출판사, p.123)

독점자본의 대변자인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반노동자성과 반민중성을 온 몸으로 경험한 우리의 지금 현실에서, 한나라당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독자성을 포기하라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원칙은 더욱 더 소중한 교훈으로 다가오고 있다.
자민통의 이론가인 한호석은 정반대로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중도4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여 중도연합정부를 세우는 것은, 중도좌파정부를 세우는 것과 다르다. 정부의 성격에 대해 말하면, 중도연합정부 수립은 우파정부를 중도좌우연합정부로 교체하는 것이다. 중도좌파당의 시각에서 보면, 우파정부를 중도좌파정부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 땅의 변태적인 정치현실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향한 단번도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보적 정권교체는 중도연합정부라는 중간단계를 거친 뒤에 실현될 수 있다. ...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전략을 요구하는데, 그 전략은 중도4당 민주대연합이 추진하는 공동집권전략이다. 연합전선은 공동투쟁전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동집권전략이므로, 중도4당 민주대연합은 공동집권전략을 합의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중도4당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득표전술거점으로 구축할 것이 아니라, 공동정부를 세우는 집권전략거점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중도4당이 공동집권전략을 합의하고 공동정부를 세우는 것은, 연합전선 구축이 득표전술이 아니라 집권전략이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6.2 지방선거와 야4당의 앞날)

한호석의 주장은 민주노동당 핵심전략을 이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호석의 공동집권전략은 중도 우파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중도 좌파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으로 2012년 대선에서 중도좌우연합정부를 세우고, 이러한 과도적 단계를 거쳐서 중도 좌파가 독자적으로 집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호석의 연립정권론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자유주의자에게 통째로 갖다 바칠 수밖에 없는 대단히 우경적인 전략이다. “국가권력은 항상 단일한 계급의 정치권력이다.” 현재의 세력관계를 볼 때 설사 야4당이 연립정부를 세운다 하더라도 그 정권의 성격은 자유주의자들의 헤게모니가 주도하는 독점 부르주아지의 권력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중심이 되어 진보진영 대통합을 이루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연립정부에서 진보양당의 지분이 더 커진다 하더라도 독점자본의 권력이라는 정치권력의 성격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과도기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나서 독자권력을 잡는다는 현실론도 현실성과는 동떨어져 있는 주관적 공상에 가깝다.

2012년 대선에서 공동정권이 탄생하여 그 권력이 성공적인 집권을 한다면 그 성과는 민주당으로 귀착될 것이고, 노무현정권처럼 실정을 거듭하게 된다면 연합정부의 한 축인 개량주의 진영에서는 그 책임을 부분적이라도 나눠가지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보궐선거, 총선, 대선을 거치는 연합정치는 이번 지방선거 이상으로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점점 더 포기하도록 할 것이다. 진보정당이 독자성을 강화한다면 이 연합정치는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연합정치가 강화될수록 진보양당은 우경화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포기하고 민주당과의 연합론을 펼친 미국의 사례나 일본 사회당의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등 전 세계의 연합정권의 사례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세력화의 무덤이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민주대연합과 자유주의자들과의 공동정부 구성에 대해 비판하면서 진보대연합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대연합론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와의 정치연합이라면 진보대연합론은 개량주의 정치세력 내부의 정치연합이다. 자본주의 권력은 부르주아 양당체제를 통해 안정적으로 권력을 독점해 왔다. 개량주의 정당이 이 양당체제를 뚫고 독자적으로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독점자본의 지배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의 사례처럼, 개량주의 정당의 권력장악은 위기에 빠진 독점자본의 지배를 구출하는 최후의 구원자 역할을 하였다. 사민주의 정당은 집권한다 하더라도 독점자본의 지배체제의 보루인 사적소유를 전혀 침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 과정에서 성취한 복지는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독점자본이 양보한 결과이고 이것도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복지체제는 자본주의 공황이 심화되고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이 약화되면서 무너지고 있다. 사민주의 정당은 이러한 자본주의 위기 앞에서 사민주의 복지체제도 포기하고 노동자계급의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복지에 대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멀리는 독일사민당과 영국 노동당이 그러했고, 가까이는 브라질 노동당의 룰라와 집권 그리스 사회당의 역사는 노동자계급을 배반하고 독점자본에 투항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에 성공한 진보대연합의 참담한 결과인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혁명적 깃발을 내걸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은 패배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계급이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천안함 침몰과 더불어 4대강과 세종시의 문제였다. 이명박정권은 선거패배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요구가 선거에서 전면화 되고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명박정권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정권이 세종시 문제와 4대강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일수록 이명박정권과 한나라당 내부의 분열과 정치적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이 추진하는 노동 유연화와 정리해고, 노동법 개악, 한미FTA의 문제는 선거의 주요한 요구에서 실종됐다.

이처럼 한나라당의 선거 패배는 다만 이명박정권의 분열과 정치위기의 가속화로 노동자계급이 투쟁하는데 유리한 객관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투쟁의 구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민주노총은 지방선거를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기 보다는 대중투쟁을 기만하고 회피하는 수단으로 선거심판론을 제기함으로써 대중투쟁 동력은 더욱 약화됐다. 7월에 타임 오프제가 실시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철회하면서 투쟁전선을 해체시키고 있다. 이명박정권은 선거에서의 패배와 정치위기를 노동법 개악과 노동조합 말살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천안함 문제와 4대강, 세종시 문제는 이명박정권의 분열과 권력누수를 불러오는 중대한 정치적 요인이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투쟁하기에 유리한 객관적인 정세를 활용하여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사활이 걸린 요구인 노동법 개악과 노조말살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반격에 나서야 한다. 월드컵으로 인해 유럽경제 위기 문제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남유럽을 시발로 해서 동유럽까지 파급되는 경제위기는 유럽의 중심부인 영국경제 등 유럽 중심부를 강타하면서 세계경제를 또 다시 전면적인 공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제의 위기도 이러한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강타당할 것이다. 이명박정권의 정치적 위기에다가 경제적 위기가 가속화된다면 숨죽이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도 또 다시 전면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투쟁을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독점자본 한 분파에 종속시키는 연합정치로 우경화하는 것을 폭로하고 투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열망을 배신하고 독자적 깃발을 내렸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민주대연합이냐 진보대연합이냐의 왜곡된 논란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혁명적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내걸어야 한다. 이 독자적, 혁명적 깃발 아래 자신의 요구를 선명하게 내세우고 당당하게 역사 속으로 진군해야 한다.<노/정/협>
http://lmagit.jinbo.net/bbs/view.php?id=newspaper&no=843

 

트랙백(0)   덧글(0) 이 문서의 주소:http://blog.jinbo.net/rnp/?pid=121


[펌]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 재설정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 재설정

[기후변화와 노동자](8) 노동체제의 재형성은 필수적이다

김경근(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10.06.07 08:27

 

노동체제의 의미와 중요성
 

 

기후변화 협약은 직접적으로 에너지산업의 노동조합·노동자에게 특정한 변화를 낳지는 않는다. 기후변화 협약은 ‘노동체제’를 매개로 에너지산업의 노동조합/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와 자본이 어떠한 전략을 취할 때, 그 전략은 아무런 제한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실현될 수는 없다. 그들의 전략은 ‘노동체제’에 의해 일정한 굴절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노동체제’에는 노동의 대응과 저항이 존재하며, 동시에 기존에 형성된 질서·규칙이 존재하므로 일정한 경로의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자본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는 없다. 결과는 노동운동의 역량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노동체제는 기후변화 문제에 따른 작업현장의 변화에서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산업의 재편이 직접적으로 구조조정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탄소 배출량이 감소된다고 할 때,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과도 선험적으로 예정되어 있지 않다. 노동체제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탄소 배출량 감소는 엄청난 구조조정을 발생시킬 수도 있고 전혀 발생시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에너지 산업의 재편이 어떻게 진행될지조차 노동체제의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에 의해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이러한 ‘노동체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필연적 결과로 받아들인 후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고민을 한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전략적 행위의 범주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노동체제의 변화 가능성의 여지를 스스로 봉쇄하고, 정부와 자본이 제시하는 질서·규칙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구조조정이라는 규칙, 즉 생산량이 줄어들면 고용인원도 줄어든다는 규칙은 현재 한국의 노동체제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질서이다. 그러나 이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체제에서 노동운동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라는 규칙에 대한 대응의 실패와 부재가 현재의 노동체제를 형성시킨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노동체제는 노동운동의 무기력 속에서 안정적으로 공고화된 듯 보인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는 노동체제의 규칙·질서를 변화시키는 객관적 외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노동체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한 노동체제의 내적 질서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변화의 결과가 예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략과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며, 이러한 능동적 대응은 ‘노동체제’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이처럼, ‘노동체제’의 의미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에 많은 시사점을 가진다.

 

첫째, 기후변화 문제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작업현장의 모든 변화는 노동체제에 영향 받은 결과이며, 다시 그 변화는 노동체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

 

둘째, 기후변화 문제로 인해 기존의 노동체제의 질서·규칙은 불가피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때의 변화는 선험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셋째,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응은 노동조합 운동과 분리된 특수한 사안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의 전반적 전략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노동체제의 재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 결론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응은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노동자를 지키기 위한 노동운동이다.

 

노동체제의 재형성: 고용과 노동조건과 환경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관심사는 거의 전적으로 ‘고용’에 집중되어 있다. 구조조정이 정부와 자본의 주요한 전략으로 활용됨에 따라, 고용이 축소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며 비정규직 일자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노동운동의 역량이 고용 문제에 집중됨에 따라, 노동체제는 고용이라는 단일한 의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고용이라는 단일 의제를 가진 노동체제는 노동자들에게 구조적으로 제한된 선택지만을 제공하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의제들은 물론 고용이라는 의제에서조차 자본과 정부의 전략에 의미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안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현존하는 노동체제를 매개하면서 엉뚱하게도 비정규직의 확대와 노동조건의 하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고용이 절대적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을 위해 다른 조건을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용을 위해, (자신의) 고용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몸에 대한 양보(노동시간 증가와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고용안정을 확보하거나, 자신보다 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용인(비정규직 활용에 동의)함으로써 고용안정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기업간의 위계적 갈등은 한정된 수의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간의 수평적 갈등으로 전환되고, 기업의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동일시함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노동자들은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내면화하고 있다.

 

‘고용은 생산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규칙을 가진 노동체제에서, 즉 ‘고용=물량=임금’이라는 조건에서 노동운동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비정규직 일자리는 확산될 수밖에 없고, 유연화는 더욱 더 심화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스스로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탈출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체제의 재형성이 필요하다. 노동체제의 재형성은 노동·자본·정부의 상호작용의 방식을 바꿔내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현재의 합리성을 극복하고 다른 합리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고용과 노동조건과 환경을 함께 추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현 노동체제의 규칙을 변화시켜야 한다. 고용-노동조건-환경이 노동체제의 삼각 축으로 구성된다면, 고용은 생산량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일자리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정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설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고용에 국한된 노동체제로 인해, 한국의 노동자들은 지속불가능할 정도로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강한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 사회공공성의 확장을 통해, 노동자들의 생명이라는 가치가 이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의 한국의 노동조건이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라는 점에서, 이런 조건들이 정상적으로 지켜진다면, 한국의 고용은 생산량이 줄어든다 할지라도 오히려 더 늘어날 여지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고용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세 축을 모두 고려할 때 오히려 고용 문제를 더욱 더 쉽게 풀어갈 수 있게 된다.

 

사회공공성의 구성 요소

 

노동체제의 재형성은 노동운동의 영향력 회복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주체가 바로 노동조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산업과 같이 기후변화와 큰 연관성을 지닌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따라서 노동체제의 재형성을 통한 노동운동의 역량 강화와 의제 변화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한편, 노동체제의 재형성은 사회공공성의 확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사회공공성 개념이 정치적 차원에서는 ‘실질적 민주주의’, 경제적 차원에서는 ‘탈이윤화·탈시장화’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기본권의 보편적 보장’으로 확장되었다고 정리한 바 있다. 이러한 사회공공성 개념의 확장은 현재의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극복을 통한 고용-노동조건-환경으로의 노동체제 형성과 밀접한 논리적·실천적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사회공공성은 생산의 공공성, 운영의 공공성, 소비의 공공성, 생태의 공공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생산의 공공성은 노동권의 확보를 의미한다. 안정적인 고용과 적정한 노동조건, 그리고 이 둘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정상적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되어야 생산의 공공성이 지켜질 수 있다. 이러한 노동권은 노동자의 생명과 행복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기본적 차원의 공공성이다.

 

둘째, 운영의 공공성은 거버넌스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개입력 확보를 의미한다. 운영의 공공성은 기업, 산업, 정부의 경영/운영에서 성장중심적 논리와 이윤지향적 논리를 벗어나서, 사회에 바람직한 재화․서비스를 바람직한 방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버넌스에 대한 개입력 확보는 다른 공공성들이 원활하게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대한 결정을 자본이나 정부에게 일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결정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 소비의 공공성은 필수적 재화․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 확보와 이에 더해 적정한 소비를 의미한다. 먼저 소비의 공공성은 탈시장화·탈이윤화라는 원리를 통해 기본권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한다. 이러한 탈시장화와 탈이윤화라는 원리는 생태적 공공성을 확보해나가는데, 즉 지구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아울러 소비의 공공성이 생태의 공공성과 결합되면서, 대량소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속가능한 소비를 지향하게 된다.

 

넷째, 생태의 공공성은 생태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의미한다. 지구 환경은 특정 계급, 특정 국가, 특정 세대의 귀속물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또한 구성원 모두가 지구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처럼 지구 생태계는 사회공공성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된다. 환경운동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속가능성 개념은 현재의 근대적·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활용될 수 있다.

 

생산의 공공성과 생태의 공공성의 결합

 

노동체제의 세 의제 중에서 ‘환경’을 통해 생산의 공공성과 생태의 공공성이 결합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지구는 지속가능한 작업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작업장은 지속가능한 지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노동체제가 재형성되어야 하는 이유이며, 사회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속가능한 지구가 지속가능한 작업장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내는 유력한 주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들의 힘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노동권의 보장이 필수적이다. 지속가능한 작업장이 지속가능한 지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지구가 생태적인 문제를 발생하게 되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또한 생태적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비용을 부담지우기 때문이다. 전자와 후자에 공통되는 이유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성장과 이윤 중심적 사고가 작업장 차원부터 지구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다른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과정은 단순히 생산물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생산 과정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효과들을 지닌다. 즉 노동자들은 원료를 유용한 물건으로 전환시키면서, 특정한 사회 관계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 관계 자체도 재생산한다. 이처럼 노동과정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측면들의 결합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이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하면서 무엇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어떤 의식들을 내면화하게 되는지를 주목해야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건강 심지어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 이윤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도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노동자 분할과 위계화에 동의하면서, 경쟁과 효율성의 원리를 내면화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료와 생존을 두고 경쟁해야하는 조건에서, 지구 생태계 나아가 미래 인류의 생존에 대한 고려가 존재할 수는 없다. 작업장에서조차 지속가능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구에서 지속가능성을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거꾸로, 지구적 차원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때조차 기존의 시장 원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작업장 차원에서 시장 원리가 관철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이자 절대적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조차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의 여러 조건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열악한 한국에서 그리고 기업의 영향력이 극도로 발휘되는 작업장에서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의 추구는 현재 사회의 가치체계와 운영원리의 변화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이러한 변화는 작업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서부터 전체 지구라는 가장 큰 단위에까지 모두 진행되어야 한다. 이처럼 생산의 공공성과 생태의 공공성은 서로 독립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합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각각의 사회운동이 연대를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공통의 관심사항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상호작용 경험을 쌓고 신뢰를 형성하면서 진전된다. 미국의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사례들에서 ‘일자리 대 환경’의 구도가 ‘일자리와 환경’의 구도로 변할 수 있었던 데는 노동안전보건(넓게는 공중보건) 분야에서 연대했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의 초기 모습은 미국에서 ‘노동계급 환경주의’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노동계급 환경주의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산업생산이 증가하고 고독성의 화학산업 등이 번성하면서 환경과 작업 조건이 악화되자. 전국에 걸쳐 작업장과 환경의 오염과 그에 따른 안전과 건강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노동계급 환경주의는 이러한 안전과 건강에 대한 노동자의 우려에 기반하였다. 작업장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와 환경주의자들 사이의 연계가 늘어났고, 이들은 대기업과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가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오염의 뿌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초기 연대의 모습은 이후 ‘노동권’과 ‘환경정의’의 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환경정의’는 환경문제가 사회 계층간 불평등의 지형을 따라 발생하고 그 결과로 환경 피해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되는 점을 주목한다. 따라서 환경정의는 사회적 약자이자 환경 약자인 이들의 사회환경적 불평등과 차별화의 문제를 환경운동의 중심 과제로 삼는다. 대부분의 환경불평등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환경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러한 기존의 불평등을 낳는 사회구조의 개혁이나 불평등의 완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정의를 위한 투쟁과 노동권을 위한 투쟁은 네 가지 이유에서 상호관련이 있다. 첫째, 환경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근본적 목적은 오염된 환경에 불공평하게 노출된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 약자를 위하는데 있다.

 

둘째, 작업장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독성물질에 최초로, 그리고 흔히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노출되는 장소이다.

 

셋째, 환경정의 활동가들이나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환경을 ‘사람이 살고 일하고 활동하는 곳’으로 정의해왔다. 또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유해물질들과 일터에 존재하는 유해물질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환경 개념을 폭넓게 재해석한 것으로, 작업장에서 발생한 독성물질이 가정과 지역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힘을 합치도록 해준다.

 

넷째,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장에서부터 환경 유해물질이나 불의에 맞서기 시작하곤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지역사회 최초의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다. 환경정의를 위한 투쟁이 가지고 있는 두 측면, 작업장 영역과 지역사회 영역의 측면을 연결해 보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노동과 환경의 이분법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노동권과 환경정의가 결합한 형태의 일자리 개념으로 ‘녹색 일자리’가 등장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2008년 9월 ‘녹색 일자리들: 지속가능한 저탄소 세계에서의 괜찮을 일자리를 항하여 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농업과 제조업, 연구와 개발, 행정 작용과 서비스 활동에서의 환경 질을 보전하거나 복원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야만 녹색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녹색 일자리는 적절한 보수와 안전한 작업 조건, 일자리의 안정성, 합리적인 전망, 노동자의 권리 등을 만족시키는 괜찮은 일자리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트랙백(0)   덧글(0) 이 문서의 주소:http://blog.jinbo.net/rnp/?pid=120


[펌]누가 신자유주의에 산소호흡기를 달았나

묻지마 반MB연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6.2선거를 말한다](1) 누가 신자유주의에 산소호흡기를 달았나

박준형 (공공노조 활동가) 2010.06.03 07:04

지방선거 결과, 예상보다 야당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반MB연합’을 구성했던 정당, 정파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친노인사들이 대거 출마하고 선전했다는 점에서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심판했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가 임박해서는, 젋은 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이 넘쳤고, 이 효과 덕분인지 투표율이 다소 상승하였다. 이제, 이 환호 뒤에 남겨진 뒷모습을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반MB연합’의 성과?

 

이번 선거의 키워드를 몇 가지 떠 올려보자. 무상급식, 전교조탄압, 4대강 사업, 세종시, 천안함 침몰과 북풍, 반MB연합 등. 선거과정에서 전국적인 정치 쟁점 외에 지역이슈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자체 기능 중 쟁점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는 무상급식 이슈도 선거 초반 이후에는 힘을 잃었다. 요컨대, 전국적인 정치쟁점을 중심으로, 특히 한나라당-이명박정부 대(對) 반MB연합이라는 대립구도가 부각되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라기보다는 (그런 것이 있다면) 대통령선거 투표인단을 선출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선, 이명박 정부의 무지막지한 일방통행 정책들과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여간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무능하고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반MB연합이 만들어졌다. 이유를 생각해보자. 노무현의 후광을 이번 선거에 활용하려고 한 민주당 내외의 친노세력과 사회운동, 민중운동의 일부가 민주당의 주도성을 인정한 가운데 선거연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로 인한 결과를 ‘단일화 효과’라고 부른다.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친노 정파들이야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에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선택이었다. 민주노동당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활용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야권 단일화의 일등공신’이니 비경합 지역후보나 정당투표에서라도 선택해달라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그저 강기갑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혹은 민중운동내 ‘자주파’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정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이 ‘과잉대표’하는 민중운동, 사회운동을 함께 이 ‘반MB연합’에 끌고 들어갔다.

 

노동자운동도 반MB?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도 이렇게 딸려간 민중운동 중 하나다. 민주노총은 정치방침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내내 내부 논란에 빠졌다. 급기야 최종 결정과정에서는 문제점들을 겨우 미봉하고, 실천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반MB연합에 동조했다. 조직적 결정도 아랑곳없이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지사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 경기본부의 (사실상) 유시민 후보로 단일화 요구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명박 정권이 반노동자 정권이라는 점에 ‘반MB’라는 포지션은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MB연합’이라는 ‘정치연합’ 형태로 나타날 때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는 민주당과 친노 정파들과 연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반MB연합’에 합류하지 않은 진보신당 후보와 ‘야권단일후보’들 사이에서, 그리고 민주당이라는 정치세력을 지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렇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을 설득했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이미 강력하게 형성된 반MB연합을 비판하지도 못했다. 더욱이 이미 많은 현장에서 조합원들 사이에도 ‘후보단일화’에 동조하는 여론도 많았다.

 

조합원 여론을 탓할 수는 없다. 이미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오랜기간 동안 민주노총은 ‘반MB’를 정치적 입장으로 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정치세력을 구성하려는 노력도 사실상 없었다. 그러니 조합원들의 여론, 반응도 오히려 일관성이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촛불집회 때부터 형성된 반MB 프레임을 계속 확대-강화해왔다.

 

이 점에서는 비록 이번 반MB연합에 동참하지는 않았더라도 진보신당과 이 당과 친화성을 갖는 노조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신당 스스로 5+4 단일화 연석회의에 참여해왔을 뿐 아니라, 노조 내 많은 활동가들도 ‘반MB'를 중심 투쟁의제로 부각하고자 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노동운동 내 ’현장파‘들은 내내 침묵하였다. 민주노총이 개악노동법 폐기 투쟁 등 노조운동 스스로가 제기해야할 쟁점에 대한 투쟁을 포기한데 대한 항의였던 셈이지만, 지방선거 정국에서 별다른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실천을 조직하지도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묻지마 투표선동은 정당한가

 

한편, 선거 막판에 진행된 투표참여 캠페인은 주로 젊은 층에서 야당 지지가 많다는 점에서 이들의 투표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노동자대회(광주항쟁정신계승5.18대회)에서 중앙선관위의 구호인 ‘투표로 말하세요’가 공식 유인물에 등장한다. 노동자운동마저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투표로 말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세에 따라 투표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자본가의 착취를 보장하는 기관으로서 국가를 정당화하는 것이 선거와 투표행위다. 투표는 다만 ‘정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뿐인데도, 투표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것처럼 선전되기 시작했다. 가히 ‘투표 물신주의’라 할만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들 ‘젊은 층’에게 투표를 요구하는 이유다. 민주노총조차 ‘반MB'외에 청년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미 수년간 청년들이 ’88만원 세대‘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고, 따라서 이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뭉치고 투쟁해야한다는 토론이 있었던 후인데도 말이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그들의 힘든 삶에 정치가 아무런 희망이 되어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MB연합으로 선거에 나온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이 과연 한나라당의 것과 달리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에게 의미있는 것이 있는가? 내가 살펴본 공약집에는 그런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20대라는 ’세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파견, 용역, 하청, 최저임금, 영세사업장, 실업 노동자들의 문제이고, 이 점에 대해 반MB연합은 침묵했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청년 노동자들을 ’정치무관심 층‘이라고 비하할 수 있는가. 청년층에 대한 투표 독려와, 오히려 이들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에 바로 이들을 조합원으로 [전략]조직하겠다고 하는 ’노동자 조직‘인 민주노총마저 다르지 않았다. 묻지마 반MB 투표독려 수준으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가장 기괴한 지점이다.

 

개표 후에도 반MB연합이 계속된다면

 

선거 선전으로 재미를 본 반MB연합은, 이런 상황이라면 대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반MB연합을 발전시켜 안정적인 정치연합체는 물론 합당까지 검토하자는 논의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상황은 2010년 대선에서는 물론, 대선까지 가는 2년반 동안의 정세를 규정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2년반 동안, 현재와 같이 한나라당-이명박 대(對) 반MB연합이라는 방식으로 형성된 대립 구도에서, 정치적 쟁점은 딱 이 구도가 제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이번 선거의 주요 이슈들이 중요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좋게 말해도 ‘변죽을 울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일부 쟁점은 한나라당이 수용할 수도 있는 정치적 결정이다. 무상급식은 민주진보교육감으로 불리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제기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 공약이 될 수도 있었다. 4대강 사업은 불황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라는 점에서, 아마 민주당 정권이었다면 적당히 다른 곳을 파헤쳤을 것이다. 북풍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연초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예상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 이명박 북풍을 지지하는 것이 ‘진보주의자’들이 열광한 미국 오바마 정권이라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이에 비해서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낸 세계금융위기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70~80조의 구제금융기금 등 이 위기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정부 정책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가. 노무현 사망 1주기 직전에 있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1주년, 따라서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자 구조조정은 누가 기억했는가.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오히려 넓히고 있는 최저임금,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자파견 대상업무 확대는 누가 언급이라도 했는가. 사람잡는 재개발 정책과 부동산 경기부양은 쟁점이 되었는가? (마지막 질문은 단 한번,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가 TV 토론에서 언급했을 때 기억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 반민주 정책에 많은 이들이 치를 떤다. 그렇다. 정당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MB 정치연합마저 모두 정당한 것일 수는 없다. 아마도 다음 대선, 2012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은 안 된다고 말하겠지만, 다음 선거의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이 아니다. 이명박이 아니면 어떤 대안이냐고 물을 때, 이미 실패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후보를 또 지지하고 신자유주의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줄 것인가.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이명박-노무현과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면, 앞으로 2년 반은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선거 직후부터 이런 질문을 시작해야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따라서 반MB연합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위기의 진정한 원인과 노동자 민중의 삶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쟁점을 제기해야한다. ‘투표’가 아닌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운동, 투쟁으로 말할 수 있어야한다(그래야 비로소 ‘투표로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게 된다).

 

그것을 제기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정치연합을 구성하고, 이 정치연합을 위한 정치적 쟁점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사회운동, 민중운동, 특히 노동자운동이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이미 실패한 신자유주의를 2010년 대선에서 또 부활시켜주는 우를 범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비록 이번 지방선거에 아예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라고 해도 2년 반을 환멸만 하고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nid=57076
트랙백(0)   덧글(0) 이 문서의 주소:http://blog.jinbo.net/rnp/?pid=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