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전에, 아주 예전에
하이힐을 신고 집회장에 온 그녀를 보면 안심이 되었다.
저기 한 명 또 있군!
어느 봄, 비가 내리던 날
천장이 낮은 허름한 맥주집에서 우리는 노수석의 죽음을 들었다.
난 그저 황망하게 앉아 있었지만,테이블 건너편의 그녀는 울었다.
그 때 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난 그녀의 열정을 동경했다.
굽이 나간 구두를 양손에 들고 집회대오 속에서 뛰고 있는 그녀의 맨발을,
내 안에서 숨죽이며 방황하고 있던 언어들을 숨쉴 수 있게 했던 그녀의 거침없음을,
어둡고 거친 심연으로 치닫던 절망조차 그 바닥까지 가야만 했던 날들을.
내 안의 동경과 그녀 안의 나와 수 많은 이야기들이
내 20대의 뚜렷한 한 획을 그었고
우리가 도무지 이해려하지 않았던 세계와 사람들을 낯설고도 새롭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지 가슴벅차하다가
어느 날 문득,
원인 모를 슬픔에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다가
어느 날 문득,
끝없이 부유하며 걷고만 싶어지는 길에 놓여져
어느 날 문득 그녀를 찾곤 했다.
우린 참 비슷해.
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때론 그녀를 만나고 나면 한동안 앓아 눕기도 했다.
밤을 새도록 나눈 술과 담배와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 앞에서 쏟아져 나온 나와 그녀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
맥주를 비우고, 담배를 연신 피워댄 이유도
다 그녀 때문이다. 나 때문이다.
단지 그녀의 서른 두번째 생일 축하의 글을 쓰고 싶었던 건데.
맥주 때문인지 줄담배 때문인지 몽롱한 것이 가슴이 아픈 것도 같고
그녀가 보고 싶다...
축하해. 은주야!
알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