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스트에게 보내는 편지

칼럼

*안녕하십니까? $low입니다. (일부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저는 얼마전 조지스트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대화를 나눈 이유는 실비오 게젤의 사상과 헨리 조지의 사상이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은 모두 '지대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이론과 해법은 다르지요. 분배와 토지개혁에 대한 실비오 게젤의 이론 및 해법은 헨리 조지의 것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그 결함을 보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비오 게젤을 알면 ‘지대 공유’라는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이 편지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실비오 게젤과 헨리 조지는 땅사유권이 만들어내는 문제에 대한 해법에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헨리 조지는 땅사유권을 그대로 남겨둔 채 땅의 임대료를 세금으로 몰수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땅사유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게젤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까닭은, 세금으로 임대료를 몰수해도 땅주인이 다시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서 세입자한테 부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경제학의 통설은 토지의 공급탄력성이 0이므로 완전경쟁시장에서 지대세는 전가 등 경제 왜곡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쓰면,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새로운 땅이 생길 일은 없을 테니, 땅주인한테 세금을 물리더라도 그 땅주인이 새로운 땅으로 갈아탈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토지 임대료에 부과하는 세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얘기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지대세를 내는 것은 분명히 땅주인입니다. 하지만 그 땅주인은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서 세입자한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시다시피, 땅은 감가상각이 안되지요. 반면에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가상각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력도 유지하려면 비용이 들어갑니다. 먹고 자야 할 것 아닙니까? 노동자는 먹고 살려면 땅주인의 땅을 반드시 빌려야 하지만 땅주인은 반드시 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노동자는 땅주인의 땅을 빌리지 않으면 점점 손실이 커지는 반면에 땅주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의 거래관계에서 땅주인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합니다. 바로 여기서 지대를 거둬들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힘은, 세금으로 지대를 몰수할 때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음으로써 세입자한테 떠넘길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조세라는 수단으로 임대료를 몰수하여도, 땅은 감가상각되지 않음으로 땅이 노동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강력한 우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땅주인은 거래를 안하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는 손실을 입겠지요. 그래서 땅주인이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지요.

 

어느 분은, 땅주인이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으면 세입자가 다른 땅으로 갈아탈 수 있으니까 떠넘기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갈아타는 땅도 임대료를 내야 하는 땅 아닙니까? 그러면 그 땅의 주인도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것 아닙니까? "세입자가 다른 땅으로 갈아탈 수 있으니까 땅주인은 지대세를 임대료에 집어넣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다른 땅이 공짜땅이어야 합니다.

 

분명히, 노동자들이 갈아탈 수 있는 공짜땅이 있다면 땅주인의 땅에 의존하는 정도가 제한될 것입니다. 게젤에 따르면, 그런 공짜땅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지구상의 어디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진짜 공짜땅

2. 소액의 비용을 내고 쓸 수 있는 땅, 즉 거의 공짜땅

3. 땅을 집약적으로 활용하여 얻는 '공짜땅이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

 

이것들의 존재는 땅주인이 임대료를 어느 한도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들은 위의 공짜땅으로 도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땅주인의 땅은 위의 세 가지 부류의 공짜땅과 경쟁합니다. 조세로 몰수한 임대료를 만일 위의 세 가지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그 세금은 노동자들한테 떠넘겨질 수 없을 것입니다. 즉 그 세금을 '지구상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하거나, '아주 적은 비용만 내도 사용할 수 있는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하거나, '땅을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나 기법'을 발전시키는데 사용한다면... 그 세금 부담은 노동자들한테 떠넘겨질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때 그 세금을 임대료에 집어넣어 노동자들한테 떠넘긴다면 노동자들은 위의 세 가지 공짜땅으로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가 지금 빌려 쓰는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임대료의 상승을 억제할 뿐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임대료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공짜땅 개혁을 해야 합니다. 즉, 한 나라의 땅을 모두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사용'임에 유의하십시오) 게젤의 해법은 토지공공임대제입니다. 땅사유권을 폐지하므로 모든 지대는 공공기금으로 흘러가고, 이 기금은 복지에 사용합니다. 냈던 임대료를 복지로 돌려받으므로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기존 복지정책과 다릅니다. 기존 복지정책은 그 효과가 임대료 상승으로 상쇄되니까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복지정책은 땅사유권을 그대로 놔두고 지대세를 거두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하거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인데, 그 취지는 좋으나 다시 살펴보십시오. 그러한 방식은 위의 세 가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려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노동자들한테 임대료의 형태로 떠넘겨집니다.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과연 무엇으로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비오 게젤은 노동대가를 임금과 구별했습니다.

게젤은 노동생산물·노동산출물·노동대가를 구별하였습니다. 쌀농사 짓는 농부를 예로 들면, 쌀은 노동생산물이고, 그 쌀을 팔아 번 돈은 노동산출물이며, 그 돈을 주고 산 물건은 노동대가라는 것입니다. 임금은 분명히 노동대가와 다른데, 돈을 많이 벌어도 물가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많이 살 수도 있고 적게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산출물과 노동대가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는데, 헨리 조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기본개념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야만 지대조세제와 토지공공임대제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추론과정을 구성하는 기본개념인 '노동대가'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담론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헨리 조지가 발견한 임금 및 지대에 대한 법칙은 그 기초개념인 ‘노동대가’에서부터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그것은 결국 실비오 게젤이 발견한 법칙과 같아지고, 그 법칙으로 미루어 판단한다면 실비오 게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실비오 게젤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땅주인의 땅을 빌려서 일할 때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는 '그가 공짜땅에서 일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그보다 많이 얻는다면 땅주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내 땅을 빌렸기 때문에 생긴 거야. 따라서 그건 내가 임대료로 가져야겠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위의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낮아질 수는 있지만,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보다 낮아질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물리적인 공짜땅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공짜땅이 생긴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이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전 '점포쉐어링'이라는 사업이 등장했습니다. 한 점포를 서로 다른 사람이 시간별로 나눠쓰도록 돕는 것입니다. 낮에는 식당을 하다가 밤에는 술집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기존 임차인이 다른 사람과 점포를 나눠씀으로써 임대료 부담을 떨어뜨리고 자기들의 소득을 높이는 겁니다. 그 사람이 10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는데 자기가 사용 안하는 밤에 다른 사람한테 점포를 빌려주고 50만원을 받는다면 그의 노동대가는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입니다. 물리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기능적으로 ‘공짜땅이 생긴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온다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어납니다. 따라서 이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를 결정짓습니다. 땅사유권을 폐지하지 않고 지대세를 거두어 인구수 n분의 1로 나누어 준다고 할 때, 그것은 정말이지 문외한의 귀에는 솔깃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나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는 물론이거니와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도 올려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런 방법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를 늘리지 못합니다. 즉 그 지대세는 임대료에 집어넣어져서 다시 노동자들이 부담하게 됩니다. 이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입니다. 복지로 주었다가 임대료로 빼앗아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기뻐한다면 어리석은 원숭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땅주인과 농장노동자의 생산물 분배는 임의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모두 고유의 법칙에 따라 진행돼. 이 분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더라도 틀림없이 이 법칙을 따라야 하고 거스르면 안돼. 안 그러면 그건 아무 효과가 없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1부 분배 12. 보호관세와 지대·임금

There is nothing arbitrary in the distribution of the product between landowner and farm worker; everything proceeds according to inherent laws. Any artificial interference with this distribution must be in accordance with these laws, not in opposition to them, otherwise it will come to nothing.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I. Chapter 12. Protective-Duties, Rent and Wages

 

실비오 게젤의 이론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저는 지난 주말 이코노미인사이트라는 잡지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집세보조금 정책이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조금으로 400억 유로나 풀었는데 주택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주인들이 보조금을 감안해서 집세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보조금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제 프랑스 정부는 다시 보조금을 줄이고 있습니다. 파리시는 집세를 규제하는 것으로 보조금 정책의 실패를 보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세입자들이 집세 신고를 잘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집주인이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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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땅사유권을 폐지하지 않고 복지정책을 구사했을 때 필연적으로 이를 수 밖에 없는 결말입니다. 계속 보조금을 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집세규제도 효과가 없습니다. 집주인은 거래를 안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비오 게젤의 공짜땅 개혁을 해야 합니다. 땅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땅사유권을 폐지하고 토지공공임대제를 하는 것입니다. 지대를 사유화하는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이 난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누구는 '이 경우는 그저 세입자들이 집세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을 집주인들이 말고 있기 때문에 집세를 그만큼 올려받을 수 있는 것이며, 만일 집주인들이 그걸 모른다면 그렇게 올려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집주인들이 그걸 모른다고 하여도 보조금이라는 이점에 이끌린 세입자들이 그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서 집세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지요. 당연한 겁니다.)
 
 

*어느 분은 “지대조세제를 하되, 임대료가 오르면 다시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될 것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옛날 옛적 걸리버라는 선원이 있었다. 그가 탄 배는 영국을 출발하여 인도로 향했는데, 아프리카 희망봉 근처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난파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이름도 알 수 없는 섬에 떠밀려와 있었고,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밧줄로 묶고 있었다. 그 곳은 소인국이었던 것이다.

 

난장이들은 걸리버를 수레에 싣고 왕궁으로 옮겼다. 소인국의 왕은 배고픈 걸리버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물었다.

 

왕: 자네는 정말 많이 먹는군. 자네를 하루 먹이려면 우리나라 GDP의 1%가 들어갈 것 같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걸리버: 영국에서 왔습니다.

 

왕: 영국?? 처음 들어보는군. 그래, 그 나라는 살기 좋은가?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경제난과 빈부격차로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라네. 하지만 다행히도 해법을 알게 됐지. 얼마전 자네처럼 누가 우리 나라로 떠밀려온 적이 있네. '헨리 조지'라고 경제학을 연구한다더군. 그 사람이 말하길, 세금으로 토지임대료를 몰수해서 백성들의 복지에 쓰면 된다고 했네. 그럴듯하지 않나?

 

걸리버: (닭고기를 입에 넣으며) 지대조세제군요. 그건 효과가 없습니다.

 

왕: 효과가 없다니. 왜 그런가?

 

걸리버: 헨리 조지는 좋은 사람이지만, 지대조세제는 효과가 없습니다. 토지임대료를 세금으로 몰수해서 복지에 쓰면, 그것은 '주인이 있는 땅'의 이점을 늘려준 것이므로 임대료가 상승합니다. 그래서 복지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늘어난 것을 상쇄하지요. 그래서 효과가 없습니다.

 

왕: 이해가 안되는군. 임대료가 오르면 다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면 될 것 아닌가?

 

걸리버: (스푼을 내려놓으며) 폐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이 나라 전체의 토지임대료가 얼마입니까?

 

왕: 100원이네.

 

걸리버: 세금으로 그 임대료 100원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무상교육비로 씁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노동대가는 100원이 늘어난 것과 같죠. 하지만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그 땅에 더해져서 임대료는 100원이 올라서 총 200원이 됩니다. 땅주인은 임차인에게 "200원을 안 내려면 다른 곳(공짜땅)으로 가"라고 하죠. 하지만 임차인은 갈 수 있는 다른 곳(공짜땅)이 없죠. 그래서 임대료 200원을 지불합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이익은 얼마가 늘었죠?

 

왕: 늘어난 노동대가 100원이 늘어난 임대료 100원으로 상쇄되었으니 0원이네.

 

걸리버: 땅주인한테 얼마가 남죠?

 

왕: 세금으로 100원을 몰수당했지만 임대료는 200원이 되었으니 100원이 남는군. 땅주인이 100원의 이익을 보네.

 

걸리버: 그러면 다시 세금으로 임대료 200원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무상의료비로 씁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노동대가는 200원이 늘어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무상의료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그 땅에 더해져서 임대료는 200원이 더 올라서 총 400원이 됩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이익은 얼마가 늘었죠?

 

왕: 늘어난 노동대가가 임대료 상승으로 상쇄되었으니 0원이네.

 

걸리버: 그러면 땅주인은 얼마가 남죠?

 

왕: 세금으로 처음에 100원 그리고 나중에 200원, 총 300원을 몰수당했지만 임대료는 400원이 되었으니 100원이 남는군. 땅주인이 여전히 100원의 이익을 보네.

 

걸리버: 이와 같이 노동자는 100원을 땅주인한테 임대료로 빼앗기는 겁니다. 세금으로 지대를 몰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인이 있는 땅의 이점을 늘린다면 그것은 임대료를 상승시키므로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어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는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로 결정됩니다. 임대료를 내야 하는 땅의 이점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임대료에 반영되어 재분배 효과는 무력화되는 겁니다.

 

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걸리버: 땅을 국유화하고, 국민들이 공매로 땅을 사용하게 하십시오. 거기서 얻은 임대료는 복지에 쓰면 됩니다.

 

왕: 지대조세제와 같지 않나?

 

걸리버: (짜증을 내며) 거, 계산을 해봐요. 땅을 국유화하고 공매로 임차인을 구합니다. 그 임차인한테 받은 총 임대료가 100원이라고 합시다. 그 100원을 모두 복지에 씁니다. 그러면 노동자는 임대료를 얼마 낸 셈이죠?

 

왕: 냈다가 다시 돌려받았으니 0원이네.

 

걸리버: 이제 식사를 계속 해도 될까요?

 

왕: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주문하게.

 
 
*어느 분은 지대조세제에서 지대세가 세입자들한테 떠넘겨진다면 토지공공임대제에서도 임대료가 소비자들한테 떠넘겨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공짜땅 개혁은 다릅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이지 농장임대료를 지불해야 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그 지대를 돌려주고 있어. 그 지대는 땅의 생산물이 아니라 사회의 생산물이야. (사회society 란 말은 돌려받는 걸 뜻해.) 그리고 사람은 땅에 대해 청구할 게 있지. 사람에 대해서는 청구할 게 없어. 따라서 그 사람이 자기 농산물의 가격으로 사회에서 모은 지대를 농장임대료로 사회에 돌려주면, 그 사람은 그냥 경리나 세금징수인처럼 움직이는 거야. 자기 땅에 대한 권리는 그대로 남아. 사회는 그 사람한테 농산물값으로 그 사람이 일한 것보다 더 많이 지불하고, 그 사람은 그걸 다시 사회에 되돌려줄 뿐이야. 하지만 그 농부는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농장임대료로 자기 몫을 받아. 그래서 실제로는 지대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셈이야. 그 사람은 단지 자기가 모은 지대를 돌려줄 뿐이야. 자기 계좌가 사회에서 더 정확히 처리될 수 있게 말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2부 5장 땅국유화를 위한 변론

He must, indeed, pay a farm-rent, but in so doing he is merely giving back the rent of the land which is not the product of the soil, but of society (the word means what is given back). And man has a claim on the earth, but not on men. If, therefore, he restores to society, as rent for his farm, the rent that he collects from society in the prices of his farm products, he simply acts as an accountant or tax gatherer; his right to the soil remains intact. He gives back to society what it has paid him in advance in the price of the products of the soil, over and above his labour. But since the farmer himself is a member of society, he, also, receives his share of the farm rent. So in reality he pays no rent at all; he merely hands over the rent collected by him, in order that his account with society may be settled more accurately.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II. Chapter 5. The Case for Nationalisation of the Land

이처럼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생산자가 자기가 제공하는 재화의 가격을 정할 때 임대료를 거기에 끼워넣게 되지만, 그 임대료는 생산자의 몫으로 남지 않고 정부로 들어갑니다. 이 때 그 생산자는 지대를 효율적으로 모으는 것을 돕는 심부름꾼처럼 일하게 될 뿐입니다. 따라서 땅사유제에서 땅주인이 세입자한테 임대료 인상을 통하여 지대세를 떠넘기는 것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재화의 가격을 통하여 임대료를 떠넘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전자는 지대를 사유할 수 있는 빈틈이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토지공공임대제를 할 때 땅사용권이 소유권화되지 않냐?”고 염려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 도시구역 땅은 국가 소유이므로 개인이나 기업이 땅을 사용하려면 토지사용권을 얻어야 합니다. 토지사용권은 크게 획발(劃拔)과 출양(出讓)으로 나뉩니다. 획발이란 국가에서 정부기관·공공시설·공공단체에 토지사용권을 공짜로 준 것을 말하며, 사용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정부에서 필요할 때 임의로 회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개인이나 기업이 건축부지·공장부지로 토지를 사용하고자 할 때 쓰는 방법이 출양입니다. 출양은 시, 현급의 토지관리부서와 특정토지를 일정기간 일정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계약을 하고 사용권을 사는 방식입니다. 출양 계약할 때 토지사용기간을 결정하는데, 토지사용목적에 따라 최대사용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거주용는 최대 70년, 상업․관광․오락용은 최대 40년, 공장부지는 보통 50년이 보장됩니다. 이렇게 취득한 토지사용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으며 제3자에게 토지사용권을 양도하거나 임대해 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획발 사용권은 처분권이 없는 순수한 의미의 사용권’이고, 출양 사용권은 ‘처분권이 있는 변형된 의미의 사용권’입니다. 출양 토지사용권은 허가 받은 기간 동안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을 뿐 아니라, 증여·임대·저당권설정·교환 등 모든 법적인 권리가 보장되므로 이름만 사용권일 뿐 사실상 한국의 소유권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중국의 토지제도에 관하여 다음 링크를 참조하였습니다.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41Ku1rq1hkkJ:kilbert.tistory.com/attachment/cfile21.uf%40161677024B1E087E86D9D3.ppt+&cd=2&hl=ko&ct=clnk&gl=kr )

 

"사용권이 소유권화된다"는 것은, 땅소유권으로 지대를 사유화하여 이익을 취하듯이 사용권을 매매할 때 지대를 사유화할 수 있는 빈틈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용권을 파는 쪽은 자기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파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땅을 오랫동안 빌려줄 때 분업의 고도화에 의하여 지대가 상승할 수 있는데, 그것에 비하여 임대료는 고정된 상태라면 당연히 사용권을 팔 때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양 사용권으로 수십년을 보장받으면 그 동안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개발되어 지대가 폭등할 수 있는데 만일 임대료가 고정되어 있다면 당연히 팔 때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은 화폐제도에 있습니다. 기존 화폐는 액면가가 불변하여 돈소유자가 임의로 돈을 쌓아둘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땅사용권 투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줍니다. 투기라는 것은 돈을 쌓아두었다가 돈과 재화의 교환시점을 돈소유자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화폐 액면가가 불변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공짜땅 공짜돈 개혁은 이 두 가지 원인을 모두 바로잡습니다. 첫째, 정부가 지대 변동에 따라 임대료를 변경할 권리를 가집니다. 즉 지대가 오르면 임대료를 올립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탬프머니와 같은 방법으로 화폐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기 때문에 돈을 쌓아둘 수 없고, 따라서 투기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토지에 대한 투기 뿐 아니라 다른 재화에 대한 투기도 모두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땅이 낳는 지대는 조세로 몰수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돈이 낳는 이자(기본이자)도 조세로 몰수될 수 없습니다.

돈의 액면가도 감가상각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땅과 마찬가지로 재화나 노동력에 대하여 우위를 점유합니다. 여러분은 1000원짜리 지폐와 1000원짜리 빵 가운데 무엇으로 저축하시겠습니까? 당연히 1000원짜리 지폐일 것입니다. 빵은 썩겠지만 돈의 액면가는 썩지 않으니까요. 돈이 재화나 노동과 교환되려면, 재화나 노동이 돈에게 그 돈이 가진 유리함에 상응한 조공을 바쳐야 하는데, 그 조공을 실비오 게젤은 '기본이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기본이자를 세금으로 몰수해도, 돈이 재화나 노동에 대하여 갖는 우위에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기본이자는 결과일 뿐, 그 원인은 화폐 액면가의 불변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개혁하지 않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분업에 의지하므로 분업을 매개하는 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면에 돈소유자는 화폐의 액면가가 불변하므로 돈을 반드시 재화나 노동과 교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본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몰수하여도 그 금액을 다시 노동자들한테 떠넘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이자는 결코 조세로 몰수될 수 없습니다.

 

만일 돈 말고 교환을 매개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노동자들이 돈에 더 적게 의존할 것입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그런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물물교환

2. 환어음

3. 지역화폐(오직 감가화폐만 해당됨)

 

이 세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돈은 그 이자를 무한정 올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들은 위의 세 가지 수단으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이 있다고 하여도 이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이자를 제거하려면 국가화폐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스탬프머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서 돈을 사용하려면 돈에 우표를 붙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표를 사는데 들어가는 비용만큼 돈의 액면가는 감가상각되는 셈이고, 돈을 쌓아두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돈을 쌓아두는 것에 대하여 비용을 물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가진 사람들은 우표를 붙여야 하는 시간이 오기 전에 돈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것은 돈이 돈다는 것이고, 돈이 돌면 경제는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실제로 강력한 효과가 있음이 이미 대공황 시절에 증명되었고, 지금도 킴가우어같은 지역화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역화폐뿐 아니라 국가 화폐에 적용해야 합니다.

 

Figure 4. Free-Money, American Currency

 
 

우리는 '조세로 지대와 이자를 몰수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사민주의자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세라는 허약한 수단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조세라는 틀 밖으로 나와야만 비로소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대가 사유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땅사유권을 폐지하고 토지공공임대제로 전환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자 때문에 경제위기가 오는 것을 막으려면 화폐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토지제도와 화폐제도 그 자체를 개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비오 게젤이 100년 전에 주장한 것이고, 이것이 근본요법입니다. 이것을 안하고 조세만 만지작거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지대를 공유하고 이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입니다. 공짜땅은 토지개혁, 공짜돈은 화폐개혁입니다. 공짜돈은 다시 국내통화개혁과 국제통화개혁으로 나뉘고,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합니다.

 

공짜땅 개혁을 공짜돈 개혁보다 먼저 해야 하는 까닭은, 땅주인의 땅을 국유화하면서 땅주인들한테 보상해줄 때 빚이 생기는데 그 빚을 공짜돈 개혁으로 갚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짜돈 개혁에서 국내통화를 국제통화보다 먼저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환율안정은 각국 물가안정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각국 물가가 안정되고, 그 물가를 표시하는 통화들끼리 만나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국내통화개혁-국제통화개혁)이 됩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공짜땅 개혁]

 

정부는 땅국유화증권을 발행하여 땅주인들한테 땅을 사들입니다. 신용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럼 그 증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겠지요. 이자를 갚는 건 쉽습니다. 그 땅을 국유화할 때 땅주인들한테 건네는 땅값은, 그 땅이 낳는 임대료를 자본화해서 정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그 만큼의 임대료를 낳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서 그 금액으로 보상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임차인한테 그 땅을 빌려주어 받은 임대료를 다시 땅주인들한테 건네면 그것이 이자를 갚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는 소유권만 땅주인에서 정부로 바뀐 셈이지요. 그러면 원금은 어떻게 갚느냐? 공짜돈 개혁을 해서 갚게 됩니다.

 

 

[공짜돈 개혁]

1.국내화폐개혁; 국내화폐 액면가를 스탬프머니나 전자화폐 같은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합니다. 따라서 돈은 더이상 기본이자를 낳지 못합니다. 그 다음 시장이자율을 0으로 떨어뜨립니다.

게젤은 땅국유화증권이 그 평가平價를 유지할 정도의 이자만 낳아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그 증권이 고정이자를 낳으면, 시장이자율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그 증권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증권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고 땅국유화증권 이자를 미리 시장이자율에 연동시켜 둡니다.

시장이자율이 0이 되면 땅국유화증권도 더이상 이자를 안 낳게 되지요. 반면 그 증권을 주고 사들인 땅은 여전히 임대료를 낳으므로 차액이 발생합니다. 바로 그 차액으로 원금을 갚는 것입니다. 다 갚은 다음에는 임대료를 복지에 사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사라진다고 바로 자본이자와 대출이자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 사용했던 돈의 영향력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그 전까지 사용한 돈은 기본이자를 낳았고, 기본이자는 실물자본의 생산을 억제했습니다. 따라서 실물자본의 공급은 수요보다 부족한 상태이므로 실물자본은 여전히 이자를 낳습니다. 그리고 실물자본이 이자를 낳으면 그 실물자본을 사고 팔 수 있는 돈 역시 이자를 낳게 되지요. 실물자본이 이자를 낳고 있다면, 돈도 실물자본만큼 이자를 낳는 조건에서만 실물자본과 돈이 교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자는 돈 액면가가 불변하여 돈이 교환에서 재화보다 우월한 포지션을 차지하여 얻었던 '기본이자'가 아니라, 아직 실물자본의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하여 생기는 자본이자가 돈에 옮겨붙은 것입니다. 기본이자는 사라졌으므로 실물자본의 생산은 더이상 제한을 받지 않고, 따라서 결국 실물자본의 공급이 점점 늘어서 수요와 일치하면 실물자본이 낳는 이자는 마침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돈을 빌릴 때 내야 하는 대출이자도 사라집니다.

 

2.국제통화개혁; 국내화폐를 위와 같이 개혁한 나라들끼리 국제통화로 무역을 합니다. 이 국제통화를 이바IVA(Inernational Valuta Association)라고 부릅니다. 이바는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그 원리는 단순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수출이 늘면 이바가 그 나라로 들어오겠지요. 그러면 그 만큼 자국통화를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오르겠지요. 물가가 올랐으니 수입이 촉진되고 그러면 이바는 다시 빠져나갑니다. 이바가 빠져나가면 그만큼 자국통화를 줄입니다. 그러면 물가가 떨어지겠지요. 그러면 수출이 다시 촉진되어 이바가 들어옵니다. 이처럼 들어온 만큼 빠져나가고 빠져나간 만큼 들어와서 환율이 자동으로 안정되는 것입니다. 마치 파이프로 연결된 시스템에서 한쪽 수위가 높아지면 저절로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바라는 국제통화로 무역을 하는 나라들끼리는 무역거래에 의하여 어느 나라의 물가가 높아지면 저절로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이것은 물가와 환율을 동시에 안정시키는 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방법은 케인지언에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케인즈가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레튼우즈에서 제안한 ICU(international clearing union), 소위 방코르안이 바로 게젤의 IVA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VA와 ICU는 다릅니다. 게젤의 IVA는 국내에 들어온 국제통화만큼 국내통화를 자동으로 늘립니다. 그러면 물가가 올라서 수입이 촉진되고 국제통화가 다시 빠져나가게 되지요. 반면, 케인즈의 ICU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국내통화가 순환되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국제통화가 들어왔을 때 자국통화를 늘려도 물가가 올라갈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따라서 중앙의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의 국제통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을 넘어갈 때 ICU에서 그 잉여금이 청산될 때까지 맡아두는 것이지요.

 

케인즈의 ICU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습니다. 현대의 무역결제는 전자화폐 형태로 실시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게젤의 IVA를 도입하면 무역수지의 균형을 거의 실시간으로 자동조절할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 잉여금이 생기자마자 바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케인즈의 ICU는 잉여금이 어느 한도 이상으로 올라가야 중앙에서 개입하므로 IVA보다 반응속도가 느립니다. 따라서 그만큼의 변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동이 국제무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예를 들어 내수가 아주 강한 나라 A와 내수가 아주 약한 나라 B가 무역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A가 B한테 수출을 많이 해서 국제통화 잉여금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래서 ICU가 그걸 맡아두고 A가 B한테 뭔가를 수입해서 그 잉여금을 청산하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A는 내수가 강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고 버틸 수 있고, B는 내수가 약하기 때문에 무역을 안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따라서 B는 조만간 나라 경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고 B는 A한테 자기 나라 재화를 수입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어떤 프리미엄이나 조공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쌓아둘 수 있는 것 때문에 국내경제 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도 각국이 서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태는 B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서 이러한 결과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전제 위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은 충분히 실제 무역에서 조성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B 말고 C D E 등 여러 참여국들이 있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내수가 강한 나라 A가 내수가 약한 나라 B를 공격해서 얻은 프리미엄 때문에 A는 더 강해지고 그래서 B뿐 아니라 C D E한테도 더 강한 포지션을 굳혀갈 수 있습니다. ICU가 각국이 청산해야 할 잉여금의 한도를 낮추어 잡으면 이런 문제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낮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역량을 감소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내수가 약한 나라 B가 A뿐 아니라 C D E와 무역을 할 때도 적자가 된다면 위에서 제기한 문제는 다시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즉,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어 '약육강식의 경제'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자유무역은 함께 더 넉넉해지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시스템의 결함 덕분에 내수까지 마비될 수 있는 도박판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런 결함은 결국 나라 사이의 갈등, 전쟁, 반세계화를 유도합니다. 우리는 이런 가능성이 낮다고 얼버무리지 말고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IVA를 국제무역구조로 채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인즈의 ICU는 지금의 막장 무역구조보다 낫지만 게젤의 IVA보다는 약점이 많습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국내 돈순환을 규칙적으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무역구조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이런 약점이 생기는 것이지요. 간단히 말해, 게젤의 IVA는 완전한 자동조절시스템이고, 케인즈의 ICU는 불완전하여 계속 인위적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위 개혁의 첫 번째 단계인 공짜땅 개혁만 해도 땅사유권을 폐지하니까 땅주인들의 거센 반발을 받지 않을까요? 그럴 겁니다. 그 반발을 해소하지 못하면 이 개혁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분열되는 것을 봅니다..

 

1명이 99명을 지배하는 방법은 99명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계급분열, 이것이 모든 진보를 막아냅니다. 계급을 크게 셋, 즉 자본가-중산층-서민층으로 나눠봅시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것은 그저 계급분열이 어떻게 진보를 방해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더 세분화해도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이 구도에서 중산층은 자본가를 서민층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벽 역할을 합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자본가와 서민층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초래되지만, 중산층이 서민층에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자본가는 서민층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서민층으로부터 자본가를 보호하게 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들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중산층은 스스로를 유사자본가로 인식합니다. 그들이 가진 얼마 안되는 재산이 낳아주는 임대료와 이자 덕분이지요. 자본가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서민층에 비하면 넉넉합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부자라고 느낍니다. 여기에 더하여, 서민층의 사회운동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에 그치기 때문에 중산층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운동들이 중산층의 이익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에 대한 논쟁을 살펴봅시다. 알바를 쓰는 어느 편의점 점주는 최저임금을 올릴 때 자기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합니다. 그는 손익계산을 해보고 알바직원의 수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인 알바들은 이 점주에게 "최저임금도 못 줄거면 사업을 때려치우라"고 합니다. 이 편의점 점주가 과연 최저임금인상을 동의할까요?

 

이런 식으로 계급이 분열됩니다. 그래서 보수질서가 유지됩니다. 따라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를 분열시키는 정책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개혁은 중산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만 성공합니다. 기존 경제질서에서 중산층이 자본가를 보호하는 방어벽이 되어버리면 개혁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중산층이 사회개혁의 주체가 되면 개혁은 아주 쉬워진다는 뜻입니다. 중산층이 움직이면 자본가들이 기존 경제질서(자본주의)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중산층이 움직인다는 것은 개혁의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산층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맑스주의자들은 중산층이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도하거나 직접 테러나 선전으로 사회불안을 유도하여 중산층이 자기들에게 합류하기를 기대했습니다만 그런 철없는 행동은 오히려 중산층의 반발을 샀고 그들이 위험한 세력임을 각인시켰을 뿐입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입니다. 우리는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중산층이 실비오 게젤을 선택하려면, 무엇보다 이 해법이 중산층한테 이롭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중산층이 자기들의 예금과 부동산으로 얻는 이자와 지대보다 자본가한테 빼앗기는 이자와 지대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평생 그렇게 털리는 금액을 계산하면 엄청날 겁니다. 중산층이 자본가한테 빼앗기는 이자는, 돈을 빌린 댓가로 지불하는 대출이자 뿐 아니라 기본이자도 포함됩니다. 기본이자는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할 때 뜯기는 이자입니다. 재화나 서비스는 돈을 매개로 교환됩니다. 그런데 이 교환은 공짜가 아니라 돈에 요금(기본이자)을 지불해야 합니다. 돈이 재화와 교환되려면 재화는 돈에 기본이자를 바쳐야 합니다. 돈이 노동과 교환되려면 노동은 돈에 기본이자를 바쳐야 합니다. 따라서 재화의 가격에 기본이자가 포함되어 재화의 가격은 더 올라가고, 노동의 가격에서 기본이자가 제하여져 노동의 가격은 더 떨어지는 겁니다. 재화를 판 장사꾼은 그 기본이자를 자기한테 돈을 빌려준 자본가에게 바치고, 노동을 산 사업가도 그 기본이자를 자기한테 돈을 빌려준 자본가에게 바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장사꾼과 사업가는 그저 자본가를 위한 심부름꾼으로 일할 뿐입니다. (자기들이 그걸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지요) 그러므로 중산층은 무엇을 살 때마다 도둑질을 당하며 일할 때마다 착취를 당하는 셈입니다. 중산층은 스스로 노예임을 깨닫지 못하는 노예입니다. 자기들을 착취하는 메커니즘이 직접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적과는 싸울 수 없습니다. 자본가가 무서운 게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 숨겨진 이 메커니즘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산층에게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그 현실을 구체적인 통계자료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중산층이 임대료와 이자로 빼앗기는 금액과 얻는 금액의 차액을 계산하여 공개한다면, 그 사람은 변화를 원하게 될 겁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이익을 쫓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자료를 나라별로 조사해서 공개하면 전세계 사람들이 움직일 겁니다.

 

판단은 중산층이 알아서 할 겁니다. 움직일지 말지도 중산층이 알아서 결정할 겁니다. 중산층을 설득할 필요가 없고 그냥 팩트만 제시하면 됩니다. 중산층이 임대료와 이자로 빼앗는 것보다 빼앗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사실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본가들은 실비오 게젤을 막으려고 중산층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제안을 하게 될 겁니다. 경기부양책과 개발공약들이 난무할 것이고, 중산층은 다시 미혹될 겁니다. 하지만 중산층은 결국 깨닫게 될 겁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실비오 게젤의 제안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자본가들의 회유책이 아무리 근사하여도 지대를 공유하고 이자를 폐지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이 회유책을 제안하는 것은 바로 그 지대와 이자를 지키기 위함인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실비오 게젤의 개혁이 실행되면 자본가들이 쌓아둔 돈이 순환하면서 모든 계층이 골고루 큰 혜택을 입게 됩니다. 10조의 돈을 쌓아둔 재벌이 있다면 이 돈에 연 감가상각률 5%만 적용되어도 연간 최소 5000억원의 돈이 순환합니다. 다시 말해, 그 돈은 중산층과 서민층으로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01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현대차에 팔린 가격이 10조라는 걸 생각해보십시오. 그 막대한 지대를 중산층과 서민층이 공유한다면? 그 이익에 비하면 중산층이 지금 예금과 부동산으로 얻어내는 임대료와 이자는 과자 부스러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산층이 이 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린다면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장 근처 아울렛에서 세일만 해도 사람들이 몰립니다. 오로지 이익만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오로지 이익만이 중산층을 움직입니다. 중산층이 움직여야 개혁이 됩니다.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해야 세상이 바뀝니다.

 

오늘 광장에서 여러분은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외치지만, 내일 시장에서 여러분은 다시 분열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분열시키는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사회문제에 대한 모든 시도는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치가를 몇 명 더 갈아치우든지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정치가들의 미소만 보지 마시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살펴보십시오. 만일 그 해법이 조세라는 수단에 갇혀있다면, 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세라는 수단으로는 지대와 이자를 몰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까 법인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1boon.kakao.com/issue/corporationtax

새누리당은 법인세를 올려도 국민들한테 떠넘겨진다고 하고, 더민주당은 법인세를 내려도 기업들이 투자·고용을 늘리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둘 다 옳습니다. 이 두 의견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인세를 올려서 그 돈으로 복지를 한들 땅사유권이 남아있어서 그 효과가 무력화됩니다. 복지정책으로 땅에 붙는 이점만큼 임대료는 오를 것입니다. 즉 국민들한테 떠넘겨지는 것입니다.

법인세를 내려도 기업들이 남는 돈을 투자나 고용에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돈의 순환이 돈을 가진 사람의 임의에 달려있는 한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땅사유권은 폐지하고 토지공공임대제를 해야 하며,

돈의 액면가는 스탬프머니처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불변하는 전제를 깔고 전개해나가야 하는데

그 전제란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기 이익을 먼저 쫓는다는 것입니다.

경제활동 대부분이 사람의 이기심을 기초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우선 쫓으므로

땅주인은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 이상을 노동자한테 남겨주지 않을 것이며

돈주인은 돈이 낳는 기본이자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만 교환에 응할 것입니다.

 

따라서 땅사유권은 폐지하고 토지공공임대제를 해야 하며,

돈의 액면가는 스탬프머니처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쓸데없고 소모적입니다

난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회운동가, 지식인들을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혼란을 연장시키고, 더 위험하게 변형시킬 사람들입니다

 

실비오 게젤의 해법 외에는 병든 사회를 치유할만한 어떠한 처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밖의 어떤 방법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위 뉴스는 마치 여야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설정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진실에 이르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시청자들한테 객관식 문제를 던지고 1번과 2번 가운데 선택하라고 유도하고 있으나, 정답은 그 질문 밖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비오 게젤의 THE NATURAL ECONOMIC ORDER 는 무려 100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 100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왜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 ‘보지 않으려 함’이 너무 지나쳐서 가끔은 정답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경제학에 발을 담그지 않은 우리 보통사람들은, 지금까지 근본요법을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였기에 이러한 경제학의 가리워진 진실에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이십니까? 대증요법 때문에 전세계가 앓고 있는 병은 가지를 치면서 점점 더 복잡하게 증식하고 있습니다. 빈곤과 불평등, 실업, 차별, 부패, 범죄, 전쟁, 환경파괴, 중독적인 문화...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고통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 고통을 위로하는 산업만 우후죽순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매춘, 마약, 도박, 사이비종교들... 눈을 감고 여러분이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추적해보십시오. 그곳에는 어김없이 땅과 돈이 있을 것입니다. 땅과 돈이 만들어내는 고통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강간을 당한 여자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고통을 떠올리는 것은 여러분을 너무도 비참하게 만들어서, 여러분이 사실은 그저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순간 선명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진실을 외면하고 그 고통의 원인으로 다른 우아한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외면하였던 그 진실은 이제 쓰나미가 되어 일상의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잠든 여러분의 어깨를 흔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귀에 속삭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겪는 부조리는 모두 토지사유권과 화폐 액면가의 불변함에서 비롯한 악의 변주일 뿐이라고. 그러므로 바로 그것을 개혁해야만 그 모든 악을 멈출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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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3 23:20 2016/11/1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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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7/04/05 03:01 URL EDIT REPLY
두번째, 다음 내용에 관해 의문이 있습니다. "걸리버: 세금으로 그 임대료 100원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무상교육비로 씁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노동대가는 100원이 늘어난 것과 같죠. 하지만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그 땅에 더해져서 임대료는 100원이 올라서 총 200원이 됩니다. 땅주인은 임차인에게 "200원을 안 내려면 다른 곳(공짜땅)으로 가"라고 하죠. 하지만 임차인은 갈 수 있는 다른 곳(공짜땅)이 없죠. 그래서 임대료 200원을 지불합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이익은 얼마가 늘었죠?"
이 비유를 달리 표현하면, 예전에 임대료 100원을 내던 것을, 이젠 같은 땅 사용을 위해 200을 내야 하니, 무상교육비 등의 재정분배를 통한 효과가 화폐가치 하락, 인플레이션, 또는 임대료 상승으로 상쇄된다는 말과 대동소이합니다. 같은 재화를 이용하는 데 이전에는 100원 들던 것이 200원 드니까요. 즉 임금은 제자리인데 땅값은 올라 실질물가가 상승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무상교육비와 같이 지대를 재원으로한 복지프로그램때문에 실질 노동대가가 커지면 그 늘어난
실질 노동대가만큼을 땅주인이 더 높은 지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에서 볼 때나 이론적으로 볼 때도 오해하신 게 아닌 가 싶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처럼 각종 현물 보조로, 실질 노동대가가 큰 복지국가에서는 그렇다면 복지재정 지출만큼 그럼 지가가 오르고, 지대가 올라야 하는 것인지요? 더욱이 지대세도 미비한 복지국가에서요. 그렇지 않습니까? 실질 노동대가가 늘어난 만큼 더 높은 지대를 청구할 수 있다면요. 즉 전가가 직접적이라면, 그 복지국가의 임대료 또는 땅값이 매우 비싸야 하겠네요.
그렇게 소득분배, 복지분배가 지대 상승으로 바로 반영된다는 연결고리를 어떻게 확신하시는지요? 지대세를 재원으로 한 재분배는 화폐 발행과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단순히 공짜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부의 재분배입니다; 화폐공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되겠지요), 이미 창출된 부에서 재분배하는 것이며, 더욱이 무상교육비 100원은 그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각종 인건비 및 재료값에 대한 비용인데, 그 비용을 지대에서 조달한다고 하여 임대료로 청구할 수 있는 지대가 100에서 200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님이 비유에서 가정을 전제했듯, 저도 가정을 하자면, 애초 총 생산된 부인 300에서 지대로 100, 임금으로 100, 이자로 100을 지출했다고 거칠게 가정할 시, 애초 생산되는 부가 300인데 지대 100을 거둬 무상교육비로 사용함으로써 노동 측의 생활비를 절감하였다 하여, 노동 측에 청구할 수 있는 지대가 200이 된다는 것은, 노동이 먹고 살 수 있는 임금몫이 아예 없어진다는 뜻이지요. 현실에서 그런 토지사용자를 토지주인이 구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노동이 먹고 살 수 있는 임금 몫이 300 중에서 아예 없어져 버리는 데요.
제 요지는 지대세제 하에서 지대세 전가가 일어난다면, 공공토지임대제하에서도 지대(임대료) 전가가 일어날 수 있으며, 님께서 강조하시는 전제, 즉, 무상교육과 같은 복지 제공이든 기본소득으로의 직접 분배든 지대를 재원으로 한 모든 실질 노동대가를 늘리는 조치들이 지대 인상, 지가 인상으로 반영될 것이란 전제가 부의 분배 법칙 상 성립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입니다. 저도 님의 글을 읽으며 이치를 따지고 고민 중에 있으니 답변 부탁드립니다.
$low | 2017/04/27 20:44 URL EDIT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계속 답이 지워지네요. 해킹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고 프로그램상 버그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적겠습니다.

'안녕하세요님'은 노동자들의 노동대가가 어떻게 결정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가 가능성은 거기서 추론됩니다. 그리고 복지가 성공한 나라는 게젤이 제시한 것과 비슷한 토지공공임대제를 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핀란드가 그렇다고 합니다.(완전하지는 않지만)
$low | 2017/05/10 23:14 URL EDIT
추가하자면, 반론을 하시려면 논리나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여야 합니다. 질문을 하려면 위의 글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되는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셔야 하고요. 명확하지 않은 소통은 귀한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정독한 다음에 질문을 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low | 2017/05/11 23:00 URL EDIT
안녕하세요 님의 글을 가끔씩 곱씹어 읽고 있습니다. 이 분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 하면서요. 앞으로 가끔씩 댓글을 달겠습니다. 저는 이 소통이 마라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끝날 수가 없지요.

님의 표현 중 어떤 부분은 매우 혼동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지대를 재원으로한 복지프로그램때문에 실질 노동대가가 커지면 그 늘어난 실질 노동대가만큼을 땅주인이 더 높은 지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에서 볼 때나 이론적으로 볼 때도 오해하신 게 아닌 가 싶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렇지요. 지대세가 전가된다면 노동자들의 실질노동대가는 늘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님의 그 표현은 "지대를 재원으로한 복지프로그램 만큼 땅주인이 더 높은 지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에서 볼 때나 이론적으로 볼 때도 오해하신 게 아닌 가 싶습니다."라고 하시는 게 적절합니다. 말꼬리 잡는 것 같을 수도 있는데 엄밀하게 논리를 전개해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지적 드리는 것입니다.
$low | 2017/05/11 23:00 URL EDIT
그리고 "전가가 직접적이라면, 그 복지국가의 임대료 또는 땅값이 매우 비싸야 하겠네요"는 불편합니다. 님이 반론을 하고 싶으시면 복지국가의 임대료 또는 땅값이 저렴한 실례를 찾아서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예를 들어주신 것도 아니고 그저 실비오 게젤의 이론에 대하여 어설프게 의심만 불러일으키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는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low | 2017/05/11 23:03 URL EDIT
게젤의 이론에 따르면, 복지정책에 성공한 나라들의 정책을 일부만 가져오는 것은 효과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핀란드처럼 국토의 핵심지를 국유화하는 성과도 없이 그냥 복지만 더한다고 그 효과가 지속되리라고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low | 2017/05/11 23:03 URL EDIT
노동이 먹고 살 수 있는 몫은 남아있을 수 밖에 없지요.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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