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칼럼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실로 엄청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대중들에게 숨겨진 어떤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알약처럼 대중들이 갇혀있는 '투명한 경제감옥'의 벽면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모피어스: 자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겠지? 토끼굴 속에 빠진 기분 말이야.

 

네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모피어스: 자네 눈빛에서 그게 보여. 깨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얼굴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진실과 그리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네. 운명을 믿나, 네오?

 

네오: 아뇨.

 

모피어스: 왜지?

 

네오: '내가 내 인생을 다스릴 수 없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모피어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 자네가 왜 여기 있는지 얘기해주지. 그건 자네가 뭘 알고 있기 때문이야. 뭘 알고 있는지 자네는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느껴져. 살아오면서 언제나 느꼈지.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그게 뭔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히 뭔가 잘못 됐어. 그게 마음 속의 덫처럼 자네를 미치게 하지. 날 찾아오게 된 것도 그 느낌 때문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오: 매트릭스?

 

모피어스: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네오는 고개를 끄덕인다.)

 

모피어스: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에 있지. 심지어 지금 바로 이 방에도 말이야. 자넨 그걸 볼 수 있어. 창 밖을 봐도 보이고, 텔레비전을 틀어도 보이지. 출근할 때도,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자넨 그걸 느낄 수 있어. 그건 자네가 진실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일세.

 

네오: 무슨 진실이요?

 

모피어스: 자네가 노예라는 것,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네도 감옥에서 묶인 채로 태어났지. 자네가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만질 수도 없는 감옥 말이야. 자네 마음의 감옥. (잠시 후, 한숨을 쉬며) 안타깝게도 매트릭스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이 알려줄 수는 없네. 자네 스스로 봐야 해. 이건 마지막 기회야. 돌이킬 수 없지. (왼손을 펴며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보여준다.)

 

모피어스: <일반이론>을 읽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자네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가끔 정부가 개입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지금처럼 노예로 살아가는 거야. (다른 손을 펴서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보여주며)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읽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게 되고, 난 자네한테 토끼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줄 거야. (잠시 후 네오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손을 뻗는다.) 명심하게. 내가 주는 것은 전부 진실일 뿐이야.

(네오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펴서 읽는다.)

 

모피어스: 어때? 감이 오나?

 

네오: (책장을 넘기며) 음...충격적이군요. 우리는 애초에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잘못 설계했어요. 그래서 땅과 돈을 쓰면서 멍청하게도 '지대'와 '이자'라는 요금을 내야 하죠. 우리가 일한 대가 전체를 받지 못하고 그만큼을 도둑질 당하는 것이죠.

 

모피어스: 맞아. '땅사유권' 그리고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는 것' 이 지대 이자 매트릭스가 생긴 근본원인이지.

 

네오: 재화는 썩고 낡고 보관하는데 비용이 드는 반면, 돈은 그 액면가가 불변하죠. 그래서 돈은 교환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지만 재화는 바로 교환되어야 합니다. 기다릴수록 손해가 커지니까.

 

모피어스: 그래서 재화를 가진 쪽이, 돈을 가진 쪽이 유리한 만큼에 상응하는 조공을 그 사람들한테 바쳐야만 재화와 돈의 교환이 이루어진다네. 그 조공을 '기본이자'라고 하지. 교환이 조건부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래서는 안돼. 돈은 사회의 몸에 흐르는 혈액과 같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세포가 괴사하듯이, 돈이 흐르지 않으면 사회가 파괴되지. 사회는 사람들의 분업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분업은 돈을 매개로 하네. 돈이 흐르지 않으면 분업은 마비되고 따라서 사회는 파괴될 수 밖에 없지. 한 때 흥했던 여러 문명들이 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온갖 부조리한 사건들은 멸망의 징후일세. 그걸 막으려면 돈이 규칙적으로 순환되도록 만들어야 해.

 

네오: 그래서 게젤은 “스탬프머니로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자”고 했죠. 그러면 사람들은 돈을 쌓아둘 수 없고, 돈은 규칙적으로 순환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모피어스: 멋진 해결책이지. 실제로 그 방법은 1930년대 대공황의 늪에서 오스트리아 뵈르글의 경제를 되살렸네. 이론 뿐 아니라 실천에서도 완전한 해법이지.

 

네오: 그런데 지금은 왜 그 방법을 안 쓰죠?

 

모피어스: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에서 금지해버렸지. 국가화폐가 무용지물이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야. 웃기는 얘기지. 만일 국가화폐가 교환매개물로서 제 기능을 발휘했다면 뵈르글은 스탬프머니를 발행할 필요가 없었을 거야. 국가화폐는 스탬프머니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가진 결함, 다시 말해 돈 액면가가 불변하는 속성 때문에 이미 무용지물이었던 걸세.

 

네오: 그렇다면 게젤의 방법이 지역 단위에서 실천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군요. 스탬프머니가 정부화폐가 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탄압이 아니라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모피어스: 그것이 우리들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네.

 

네오: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케인지언이 아닐까요? 그 사람들 설득하는 게 쉽지 않겠는데요. 그 사람들은 도그마에 갇혀 있어요. 과거 맑스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피어스: 안타까운 일이지.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은 실제로는 종교집단과 다를 바 없다네. 실제 현상과 괴리된 도그마를 붙잡고 평생을 허비하지. 아마도 그건 그 도그마를 자기들 밥줄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일 걸세. 이 책의 2014년 판은 우연히 제3의 인물을 통해서 케인지언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모 교수에게 전달됐네. 하지만 그 교수는 움직이지 않았네. 그 책을 받은 이후 공중公衆을 향한 그의 강의를 보면 알 수 있지. 그 강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케인지언으로서 그의 정체성이 강화된 것 같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너무 폭삭 늙어버렸다든지, 알량한 자존심이 작용했을 수도 있네. 어떤 사람들한테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진실을 발견했느냐'. 그 사람들은, 자기가 붙잡고 있는 생각들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진실을 자기 스스로 발견하지 않는 한 결코 환영할 수 없다네. 그 교수한테 책이 전달될 때 실비오 게젤의 원문 텍스트도 함께 알려주었다고 들었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2년이 지났네. 하지만 그는 실비오 게젤을 배우고 언급할 만한 지성이나 양심이 없었음이 이후 행보를 통해서 입증되었네. 난 이렇게 생각하네. 케인지언들이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대에서 멋지게 퇴장하는 게 아니라 질질 끌려나가게 될 거라고 말이야. 진지한 물음에는 진지하게 답해야 하네. 그게 예의지.  

 

네오: 물론 그렇죠. 그런데 만일 '기본이자'라는 조공을 계속 바칠 수 있다면 경제는 잘 돌아가지 않을까요? 조공을 바쳐서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조공을 바친 만큼 벌충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나는 조공을 바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왠지 자본가들이 그렇게 둘러댈 것 같거든요. 걔네들은 그 조공을 받아먹고 사니까요.

 

모피어스: 그건 불가능해.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과 생산수단은 모두 돈을 투자해서 만드네. 돈이 기본이자라는 조공을 뽑아내기 때문에, 돈으로 만드는 상품과 생산수단 역시 기본이자 이상을 뽑아내야 하지. 그렇게 하지 못하면 돈은 제공되지 않고, 그러면 생산은 멈추고, 실업자가 양산되고, 경제위기가 오는 거야. 그런데 만일 어떤 상품과 생산수단으로 기본이자 이상을 벌어들인다고 가정해보게. 그러면 이익이 나니까 각 경제주체들은 경쟁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겠지. 하지만 생산을 늘릴수록 가격은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기본이자를 벌충할 수 없게 되네. 따라서 그 조공을 계속 바칠 수는 없지. 경기침체가 와서 생산이 줄어들고 공급이 수요에 비해 줄어들어야 다시 기본이자를 낳을 수 있네. 그러면 생산이 늘고, 일자리가 늘고, 다시 호황이 찾아오지. 이런 식으로 인류의 생산은 일시적으로 늘더라도 언제나 기본이자를 뽑아낼 수 있는 정도로 다시 수렴하네. 사회가 생산할 수 있는 부의 총량이 제한되는 거지.

 

네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사회의 빈곤을 낳을 수 밖에 없군요. 사람이 10명인데 빵이 1개밖에 없으면 1개를 10등분해서 나눠먹어야 하니까요. 아니 그것마저도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나머지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가? 그런데 모피어스, 그렇게 무제한으로 생산을 늘리면 환경이 파괴되지 않을까요?

 

모피어스: 실비오 게젤을 모르는 생태주의자들은 그런 염려를 하지. 하지만 그건 기우일세. 오히려 게젤의 방법은 환경을 되살리는 유일한 방법일세. 기존 환경운동은 환경이 파괴될 수 밖에 없는 근본 원인을 놔두고 그것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결과들을 강제로 억제하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네. 그런 방법은 효과가 없어. 사람들이 매일 소비하는 물건들을 보게. 대부분 비닐봉지나 스티로폼에 포장되어 집에 도착하지. 그러면서 가끔 북극곰이 불쌍하다며 남 얘기 하듯이 떠들어대는 게 환경운동의 현주소일세. 그런 식으로는 지구의 자연환경이 복구될 리가 없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환경을 살리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지. 실비오 게젤은 그렇게 유도할 수 있는 해법을 제공해. 아래 그래프를 보게. 이 그래프는 두 가지 돈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보여주네. 여기서 '늙지 않는 돈'은 지금 우리가 쓰는 액면가가 불변하는 돈이고, '늙어가는 돈'은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는 돈을 말하네. 비유적인 표현이지.

그림 설명: 1-돈이 만들어내는 기본조건 2-투자의 방향

 

늙지 않는 돈을 쓰면 정기적으로 이자가 붙네. 따라서 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때는 같은 기간 안에 그 이자보다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할 걸세. 즉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정신이 팔리지. 이 과정에서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반면에 늙어가는 돈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네. 따라서 그 돈을 투자할 때는 장기적으로 더 적은 감가상각을 추구하게 되네. 다시 말해 좀 더 장기적인 전망을 바라보고 재화, 건물 등을 만들어내지. 그러면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게 돼. 망가지기 쉬운 일회용 제품을 양산하는 게 아니라 오래가고 유행을 안타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거야.

또, 늙어가는 돈은 인구를 분산하는 효과가 있네. 인구집중은 실업에 대한 리스크를 피하려는 데서 비롯하지. 시골보다 도시에서 일자리 구하는 게 쉬우니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그 사람들이 싸질러대는 막대한 오염물질이 환경을 파괴하지. 그 양은 자연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어서네. 그런데 늙어가는 돈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니까 쌓아둘 수 없네. 사회 구석구석을 순환할 수 밖에 없지. 돈이 순환하면 실업은 사라지네. 따라서 인구가 집중될 필요가 없고, 오염물질이 나와도 자연이 자기정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지.

요약하면 오염물질의 절대량이 줄어들고, 그 줄어든 오염물질마저 분산되어 자연이 받는 부담을 크게 줄이는 걸세.

 

네오: 생태주의자들에게는 복음이군요.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왜 그동안 묻혀 있었죠?

 

모피어스: 게젤은 1919년도에 구스타프 란다우어의 초청을 받아서, 당시 혁명으로 태어난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에 재무부장관으로 취임하지. 거기서 자기 계획을 실현하려고 했어. 하지만 맑스주의자들은 그를 오해했고 끈질기게 방해했네. 때마침 정부군의 공격으로 공화국이 무너지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지.

그리고 게젤 사후에는 케인즈가 그의 책 <일반이론>에서 게젤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했어. 이 반론은 사실 중대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세계의 어느 경제학자도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네. 그들은 케인즈의 반론을 맹신했거나 자기들의 양심을 아프게 찌르는 게젤의 텍스트를 보지 않으려 했고, 그 덕분에 게젤의 이론은 수십 년 동안 봉인되고 말았지. 우리가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개혁을 도입하려면 우선 그 봉인을 해제해야 해. <케인지언에게 보내는 편지>는 바로 그 해제작업이네. 이 편지는 세계 최초로 게젤에 대한 케인즈의 반론을 논리적으로 분쇄하지. 케인즈의 생각은 '기존 화폐제도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틀 안에 갇혀있었고, 그의 권위를 숭배하던 동시대인들의 생각도 그 안에 함께 가두어버리고 말았네. 그의 한계가 인류의 발목을 잡았지. <케인지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도약이 될 거야.

 

네오: 케인즈는, 공짜돈 개혁을 하면 돈의 대체물들이 생겨서 게젤이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했죠. 사람들이 감가화폐를 버리고 귀금속이나 외국돈으로 갈아탈 거라는 얘기죠.

 

모피어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오: 맞는 얘기 아닌가요? 저라도 매달 액면가가 꾸준히 감가상각되는 돈보다는 액면가가 영원히 유지되는 돈을 갖고 싶을 거에요.

 

모피어스: 그래, 저축매개물로 말이지?

 

네오: 네, 누가 생각해도 후자로 저축하는 게 이익이니까요.

 

모피어스: 맞는 얘기야. 하지만 교환매개물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공짜돈 개혁을 하면 돈은 교환매개물로만 사용된다네. 게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돈은 확실히 교환매개물인 동시에 저축매개물이 될 수는 없어. 그건 박차를 가하면서 제동을 거는 꼴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Ⅲ. 돈은 어떠한가 13. 지폐발행 개혁

“it is clear that money cannot be simultaneously the medium of exchange and the medium of saving - simultaneously spur and brake.” -Silvio Gesell: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3: Money as it is 13. REFORM OF THE NOTE-ISSUE

 

지금 돈은 어떤가? 두 가지 기능이 하나의 도구에 들어있지. 그래서 돈은 규칙적으로 순환할 수 없네. 저축매개물로 쓰려면 돈을 쌓아두어야 하고, 교환매개물로 쓰려면 돈을 처분해야 하네. 이처럼 두 기능은 서로 맞서고, 두 기능을 하나에 집어넣은 지금의 돈은 애초에 잘못 설계된 거지. 화폐제도에서 우리는 조개껍질을 쓰던 원시인과 별 차이가 없네. 그저 관습으로 돈을 사용할 뿐이지, 교환을 더 잘 매개하려면 어떻게 돈을 설계해야 하는지 몰랐지. 실비오 게젤은 그 방법을 발견한 걸세.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한다면 두 기능은 분리되네. 그 돈은 교환하는데만 쓰고 저축하는데 쓸 수 없지. 돈은 교환매개물 역할만 하고 저축매개물은 다른 것들이 하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설계된 돈은 교환매개물로서는 무적無敵이네. 다른 대체물은 나올 수 없지.

 

네오: 왜죠?

 

모피어스: 그레셤의 법칙을 알고 있나?

 

네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내쫓는다. 금화를 사용할 때 금의 함량을 낮춰버린 돈을 찍어내면 금의 함량이 높은 돈은 집에 쌓아두고 함량이 떨어지는 돈만 사용한다는 거죠. 

 

모피어스: 잘 알고 있군. 그런데 잘 생각해보게. 저축매개물로는 금의 함량이 높은 게 좋은 돈이지. 하지만 교환매개물로는 금의 함량이 낮을수록 좋은 돈이라네. 사람들은 그 돈을 쌓아두지 않고 기꺼이 재화와 교환할테니 말이야.

 

네오: 그건 그렇죠.   

 

모피어스: 자, 그럼 케인즈가 말한 귀금속이나 외화가 교환매개물로서 게젤의 공짜돈을 대체할 수 있겠나?

 

네오: 아뇨,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액면가가 감가상각되는 돈을 먼저 처분할 테니까 귀금속이나 외화보다는 공짜돈을 사용하겠죠. 하지만 생산자, 노동자들이 그 돈을 안 받아주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액면가가 감가상각되는 돈보다는 액면가가 불변하는 돈으로 받고 싶어할 것 같은데요. 그러면 공짜돈은 돈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 아닌지?

 

모피어스: ^^ 우리 처음으로 돌아가보세. 자네가 한 말이네.

재화는 썩고 낡고 보관하는데 비용이 드는 반면, 돈은 그 액면가가 불변하죠. 그래서 돈은 교환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지만 재화는 바로 교환되어야 합니다. 기다릴수록 손해가 커지니까.

 

네오: 제가 깜박했군요. 생산자, 노동자는 기다릴 수 없어요. 재화나 노동은 팔리지 않고 기다릴수록 손해가 커지니까.

 

모피어스:  그래서 공짜돈은 제대로 작동할 걸세. 뵈르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케인즈는 어디서 실수했을까?  그는'유동성'이란 개념을 만들었어. 유동성은 '돈으로 갈아타기 쉬운 정도'를 뜻하네. 현금화하기 쉬운 것들이 유동성이 높은 거지. 그의 머리 속에서는 세상의 재화들이 유동성이 가장 높은 것에서 낮은 것 순으로 쭉 나열되어 있지. 그 중 첫 번째 것을 넘어뜨리면 그 뒤에 있는 놈이 돈의 지위를 차지하고 다시 그 놈을 쓰러뜨리면 다음 놈이 돈의 지위를 차지한다는 그런 얘기였네. 하지만 왜 돈으로 갈아타는 게 중요해졌을까? 돈의 액면가가 고정불변하기 때문에, 부를 손실 없이 쌓아둘 수 있었기 때문이지. 돈이 낳는 이자 이상을 벌어들일 때만 돈은 다른 재화들과 교환되고 그 외의 경우에는 다시 돈으로 복귀하는 거야.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 언제든지 돈이라는 지점으로 내뺄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지. 이제 우린 알 수 있지. 그런 일은 그저 기존 경제질서, 다시 말해 돈이 제대로 교환매개물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얘기라는 걸. 돈이 돈노릇(교환매개물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그런 대체물들이 나와서 설치는 것이고, 돈이 돈노릇을 제대로 한다면 그런 대체물은 사라진다는 걸 말이야. 돈이 제대로 돈노릇을 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가진 재화가 서로 막힘없이 교환된다는 걸 의미하네. 그것은 안 좋은 시장상황에서 도피하려고 돈으로 갈아타고 돈을 쌓아두게 되는 그런 동기를 처음부터 부숴버리지. 그러므로 게젤의 개혁은 케인즈 경제학이 세워진 기초가 되는 전제를 무너뜨린다네.     

 

네오: 케인즈는 기존 경제질서의 틀 안에 갇혀 있었군요.

 

모피어스: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이지. 아니면 상상은 했는데 기존 자본주의를 구하고 싶어서 대충 둘러댔는지도 몰라. 케인즈보다 멍청한 바보들은 그의 말을 믿어버리고 말이야. 사실 그가 말한 '유동성'이란 단어조차 문제가 있네. 유동성하면 liquidity, 즉 액체(liquid)처럼 흐르는 성질을 말해. 일반적으로 돈이 규칙적으로 흐르는 것은 경제주체들한테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돈가뭄에 시달리는 시장은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말을 좋아하지.이처럼 '유동성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네. 하지만 케인즈의 유동성은 실제로는 고정성(solidity)이네. 돈을 액면가의 손실 없이 쌓아둘 수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견고함(solidity)이 거기서 나오지.  우리는 공짜돈 개혁으로 그 견고함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네. 먹물들이 백성들을 혹세무민할 때 긍정적인 단어로 자기들의 진짜 의도를 감출 때가 있네. '유동성'은 그 한 가지 예라고 봐야 할 거야.      

 

네오: 그렇군요. 그런데 양적완화를 해서 돈값을 낮추면 굳이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지 않아도 돈이 재화와 교환되는 것 아닌지?

 

모피어스: 미국과 유럽에서 그런 고육지책을 썼지. 하지만 그건 사기라네. 그런 방법에서는 돈 대부분이 쌓여있고 극소수만 교환을 매개하지. 그리고 그 쌓여있는 돈은 언젠가 갑자기 거대한 수요가 되어 시장에 몰려들겠지. 그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걸세. 

 

네오: 그럼 양적완화를 중단해야 하는 건가요? 하지만 그냥 중단하면 시장이 다시 돈가뭄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모피어스: 잘 지적해주었네. 그래서 공짜돈 개혁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거야. 애초에 양적완화를 한 까닭이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공짜돈 개혁을 하면 돈이 규칙적으로 돌고 따라서 양적완화를 중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실제로 돈의 순환속도가 지금까지 빨라지면 훨씬 더 적은 통화량으로도 분업을 유지할 수 있네. 수요는 돈의 양 곱하기 돈의 순환속도니까. 순환속도가 증가되는 만큼 돈의 발행량은 줄일 수 있지. 이 모든 주장은 뵈르글과 슈바넨켈헨의 사례에서 이미 실증되었네. 이런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바로 양적완화를 중단하면 세계경제는 더 불안해질 걸세. 당장 남미의 상황을 살펴보게. 베네수엘라는 하이퍼인플레가 왔고 아르헨티나도 위태롭네. 

기존 자본주의를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돈이자를 낮추거나 돈의 양을 늘리는 방법 밖에 없다네. 그 두 가지 가운데 아무것도 안하면 백성들의 불만이 서서히 차올라서 결국 혁명으로 가겠지. 

 

네오: 하이퍼인플레이션 아니면 혁명이군요? 

 

모피어스: 그걸 막으려면 그 전에 공짜돈 개혁을 해야지. 

 

네오: 그런데 공짜땅 개혁 말입니다. "땅과 천연자원을 국유화한 다음에 공매로 임차하고 지대는 복지로 쓴다" , 이거 헨리 조지의 생각과 좀 비슷한 것 같은데요?

 

모피어스: 비슷하지.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어. 헨리 조지는 알다시피 결국 보수질서와 타협해버리고 말았네. 지대를 조세로 몰수하자고 했고, 땅사유권은 그대로 남겨뒀지. 그런 방법으로는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없네.

 

네오: 왜죠? 지대를 몰수하면 마찬가지 아닌가요?

 

모피어스: 잘 생각해보게.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로 결정된다네. 노동자들이 땅주인의 땅에서 그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그 초과분은 임대료로 내는 거지. 정부가 지대세로 얻은 수익을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그래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늘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늘어난 이점은 지대를 끌어올리고 지대는 기존 경제시스템에서 개인이 사유하지. 따라서 모든 복지정책의 효과는 땅사유권으로 무력화되는 것이네. 헨리 조지가 경제현상을 더 정확하게 관찰했다면 땅사유권을 결코 남겨두지 않았을 거야.

 

네오: 잠시만요, 그 논리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지금 현재 주인이 없는 땅은 거의 없잖아요? 그러면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야 할텐데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지금도 어느 정도 벌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죠?

 

모피어스: 게젤에 따르면, 공짜땅은 세 가지 종류가 있네. 첫째, 말 그대로 진짜 공짜땅. 둘째, 명목상의 대가만 받고 빌려주는 거의 공짜땅, 셋째, 실제 공짜땅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 다시 말해 기능적 공짜땅. 예를 들어 1층 건물을 10층으로 만들면 9층에 해당되는 땅이 생기지. 또 10평 땅을 농사짓다가 친환경비료를 줘서 100평 땅만큼 수확량이 늘면 90평의 땅이 늘어난 셈이지. 또 1명의 사업자가 어느 점포에서 300만원을 버는데 누군가와 그 점포를 공유해서 둘이 600만원을 벌면 300만원 어치를 벌 수 있는 공짜땅이 만들어진거지. 이처럼 땅을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에 의하여 등장하는 공짜땅을 세 번째 공짜땅이라고 하네. 노동자들의 노동대가는 이 세 번째 공짜땅으로 결정된다네.

 

네오: 그렇군요, 눈에 보이는 땅만 생각하다보니 그걸 놓쳤군요. 그런데 모든 복지정책의 효과가 땅사유권으로 무력화된다면...  여태까지의 사회운동은 도대체 뭐였죠? ^^;

 

모피어스: 삽질이었지. 그것은 시지프스의 노동과 같네. 끝이 없지. 그런 식으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네

지금까지 사회운동은 아무 대안 없이 징징대거나,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대증요법에 불과했다네. 그래서 한 가지 요법을 쓰면 그 부작용으로 또 다른 문제 열 개가 생겼지. 그리고 다시 그 열 개의 문제에 대하여 각각 다른 요법을 덧붙여야 했다네. 미친 짓이었지. 우리가 투덜대는 '현대사회의 복잡함'은 사회문제에 대하여 대증요법만 쓰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라네.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인류는 근본요법이 아니라 각각의 사회문제에 대하여 단기적 즉효를 낼 수 있는 대증요법에 매달리지. 그 요법이 낳는 장기적인 부작용은 무시하고 말이야.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거야. 더 많은 변수를 넣고 계산해서 더 정확한 미봉책을 찾으려고 인공지능도 만들었지. 하지만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의 결함, 그리고 거기서 비롯하여 천 갈래 만 갈래로 분화증식한 현대문명의 병적인 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진실을 볼 수 있는 단순한 통찰력'이.

지금까지의 사회운동은 그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었지. 무엇보다 그 운동들은 자기 이익을 쫓는 '사람의 변하지 않는 본성'을 보지 않았기에 늘 중간에 좌초되고 말았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에 바탕을 두고 있네. 게젤은 모든 사회악의 뿌리인 '화폐제도와 토지제도의 결함'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바로잡아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네. 개인은, 자기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만 사회의 진보에 동의할 거야. 이건 너무 명백한 걸세. 만일 사회의 진보가 어떤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손해를 준다면 그는 진보에 동의할 수 없을 거야. 아니 오히려 반대할 거야. 생각해보게, 자네 가족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돈을 많이 벌면 그린피스에게 우호적이겠나? 자네가 게임회사를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면 그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도 관련성을 부인할 걸세. 자네가 군수산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많이 벌면 심지어 전쟁에 찬성할 수도 있어. 자네 집 지붕에만 폭탄이 떨어지지 않으면 말이야.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며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은 원전을 짓지 않아도 더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조건에서만 원전 폐쇄에 동의할 걸세. 중독적인 게임을 개발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그런 게임을 만들지 않아도 더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조건에서만 그런 게임을 만들지 않는 것에 동의할 걸세. 다시 말해 사회운동은 대중의 반작용을 유도해서는 안되며, 따라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은 진보세력한테 대단히 중요한 과제일 수 밖에 없다네.

 

네오: 대중의 반작용을 유도하지 않으려면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일치시켜야겠군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할까요?

 

모피어스: , 아니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파시즘을 채택해서는 안되네. 히틀러 나치스당의 25개조 강령에서 제11조와 제17조를 보게.

 

제11조 노동 및 근로를 동반하지 않는 소득의 폐지(이자 노예제의 폐지)
제17조 민족적 욕구에 적합한 토지제도의 개혁, 공공적 필요의 목적을 한 토지의 무상몰수에 관한 법령의 제정, 지대의 폐지 및 모든 토지 투기의 억제. <히틀러> 홍사중. 한길사

 

네오: 뜻밖이군요. 히틀러도 지대와 이자를 폐지하자고 했네요.

 

모피어스: 하지만 어찌 됐나? 중요한 것은 과정일세. 목표가 같아도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파괴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할 수 있지. 지대와 이자를 폐지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면 공짜땅 공짜돈 개혁 밖에 없네.

 

네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모피어스: '파시즘'이란 자본주의를 채택할 때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네.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자유는 공허하지. 그것은 고립, 분리, 소외를 뜻하네. 왜 그럴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경제활동이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그 네트워크가 단절될 때 고독한 개인은 파시즘을 통해서 구원을 찾는 것이네. 그 사람들은 광신적인 종교활동이나 정치활동으로 자기의 외로움, 또는 '쓸모없는 자기'를 잊으려고 하지. 그 사람들은 '텅빈 자유'보다는 '노예 되기'를 선택하네. 그렇게 하면 더이상 외롭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사람과 사람을 반드시 생산적인 일로 연결해야 하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의 충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하지만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경제위기로 이런 생산적인 연결을 끊어버리지. 역사적으로 경제위기 이후에 파시즘이 대두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하네.

 

네오: 모피어스, 하이에크에 따르면 집단주의 계획경제가 파시즘을 유도했다고 하던데요.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이 나왔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모피어스: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주기적인 경제위기가 집단주의 계획경제로 가는 충동을 만들어내지. 경제위기가 없었다면 그런 식의 계획경제가 나올 필요가 있겠나? 그래서 '자본주의-계획경제-파시즘'은 하나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해야 하네. 하이에크는 계획경제가 기존 자본주의의 결함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네. 그는 원인(자본주의의 결함)은 놔두고 결과(계획경제)만 억제하려고 했지. 사실 하이에크도 기존 체제만 고집한 건 아니었어. 다음의 글을 읽어보게. 

 

There is nothing in the basic principles of liberalism to make it a stationary creed, there are no hard-and-fast rules fixed once and for all. The fundamental principle that in the ordering of our affairs we should make as much use as possible of the spontaneous forces of society, and resort as little as possible to coercion, is capable of an infinite variety of applications. There is, in particular, all the difference between deliberately creating a system within which competition will work as beneficially as possible, and passively accepting institutions as they are. Probably nothing has done so much harm to the liberal cause as the wooden insistence of some liberals on certain rough rules of thumb, above all the principle of laissez-faire   -F. A. Hayek The Road to Serfdom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들 가운데 자유주의를 변화 없이 정체된 신조가 되게 하는 것은 전혀 없다. 즉,  구체적 내용이 한꺼번에 고정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그런 경직된 규칙들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문제를 푸는데 있어 가능한 한 최대한 사회의 자연발생적 힘을 이용하고, 가능한 한 최소한에 그치는 강제력에 의존한다는 기본원리는 무한하게 변용되어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경쟁이 가능한 한 최대한 유익하게 작용하도록 체제를 의식적으로 창출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제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거친 경험법칙들에 대한 집착, 특히 자유방임의 원리에 대한 아둔한 고집만큼 자유주의의 명분에 해를 입힌 것은 없다.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하지만 하이에크는 '경쟁이 가능한 한 사회에 유익하게 작용하는 새로운 체제'를 구상해내지 못했다네. 그는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하지. 

The purpose of this book has not been to sketch a detailed programme of a desirable future order of society.​

이 책의 목적은 장래의 바람직한 사회질서에 대한 자세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정답이 아닌지 안다고 해서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아니지.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면서 기존 자본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네. 하지만 실비오 게젤은 제시했지. 그게 바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The Natural Economic Order'라네. 

 

네오: 하지만 지도자가 강제로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야 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하죠?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모피어스: 중산층을 움직여야 하네. 중산층은 지금까지 자본가들을 서민층한테서 보호해주는 방어막 역할을 했어. 중산층이 자기 현실에 만족하는 한, 서민층의 분노는 자본가를 무너뜨릴 수 없네. 그건 '소수의 목소리'로 전락하지. 하지만 중산층이 현실에 불만을 품고 진보를 향해 움직인다면 어찌 되겠나? 보수질서를 유지하는 방벽이 무너지겠지.

 

네오: 그건 그래요. 중산층이 열심히 일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을 서민층이 복지정책으로 공짜로 얻으면 중산층은 열받겠죠. 또 중산층이 '노력하면 상류층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한 보수질서에 큰 변화는 없을 거구요. 중산층은 서민층을 얕보고 자본가를 동경하죠. 그러한 태도에서 자본가들이 만든 질서는 유지될 수 있었고요. 만일 중산층이 '진보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진보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상황이 역전될 겁니다. 좋아요, 모피어스. 중산층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모피어스: 우선 잘못된 정책에 더이상 힘를 보태서는 안되네. 정치가들이 내놓는 정책들을 살펴보게. 그 정책들은 언제나 아주 섬세하게 충산층과 서민층을 이간질시키지. 서민층은 어떤 정책이 자기한테 이익을 줄 것 같으면 그 정책이 중산층을 털어먹든 상류층을 털어먹든 상관하지 않아. 극도로 단순하지. 하지만 중산층은 생각이 달라. 중산층을 털어서 서민층을 채워줄수록 중산층은 보수화될 걸세. 그건 사회운동을 다람쥐 쳇바퀴 돌게 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 것 같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나 제자리야. 인류가 그런 단순한 원리를 수천년간 깨닫지 못하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네.

그리고 실비오 게젤의 방법이 알려질수록 유사상품(?)에 주의해야 하네. 토지제 화폐제를 건드리지 않고 문제를 풀어보려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겠지. 그게 시간낭비라는 걸 깨달을 때면 자네는 이미 폭삭 늙어있을 거야. 그래서 그 모든 거짓된 유혹을 뿌리치고 실비오 게젤의 해법을 주목해야 하네. '중산층이 지대와 이자로 빼앗는 것보다 빼앗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실비오 게젤의 방법으로 중산층이 자기들이 빼앗겼던 막대한 지대와 이자를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네. 자본가들은 게젤을 막기 위해서 중산층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제안을 하게 될 걸세. 경기부양책과 개발공약들이 난무할 것이고, 중산층은 다시 미혹되겠지. 하지만 중산층은 결국 깨닫게 될 걸세. 아무리 계산해봐도 게젤의 제안이 더 이익이라는 말이지. 자본가들의 회유책이 아무리 근사도 지대와 이자를 모두 폐지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네. 자본가들이 회유책을 제안하는 것은 바로 그 지대와 이자를 지키기 위함인데 당연히 그렇겠지. 자기 이익을 쫓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네. 그것만이 중산층의 반작용을 유도하지 않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 중산층에게 도덕으로 호소하면 안되고, 이익에 호소해야 하네. 백성은 그저 이익을 알 뿐이니까.

 

네오: 중산층이 개혁에 반발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자본가들도 개혁의 파도를 막을 수 없겠군요.

 

모피어스: 결코 막을 수 없지. 자본가는 극소수야. 한 줌도 안되는 사람들이 전체 인류를 다스리고 있네. 중산층과 서민층을 분열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중산층이 게젤의 개혁에 찬성한다면 그들이 뭘 할 수 있겠나? 권력은 자본가가 아니라 대중이 가지고 있네. 다만 지금까지 그걸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뿐이지.

 

네오: 하지만 모피어스, 중산층이 그것을 이해하고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식인들이 그런 자료를 만들어내고 공개해도 아마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연결되는데 긴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나라 전체의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를 통째로 개혁하는 것에 사람들은 큰 부담감을 느낄 겁니다.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나오면 큰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개혁을 도입하지 못하고 결국 우유부단하게 귀한 시간을 낭비하겠죠.



모피어스: 맞아, 현실적으로 한 번에 나라 전체의 토지제 화폐제를 개혁하는 것은 어렵네. 이론으로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만한 통찰력이 없는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게으르게 증거를 요구할 걸세. 우리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네. 어떻게 하면 되겠나?



네오: 흠...증거를 만들면 어떨까요? 한 나라 전체가 아니라 작은 도시부터 적용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 따르면, 실비오 게젤의 개혁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토지제 화폐제를 통째로 개혁하지 않고 한 나라의 토지제와 화폐제만 먼저 개혁해도 그 나라가 직면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아니라 한 도시에만 적용해도 효과가 있겠죠. '부분에서 전체로' 개혁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뵈르글도 그렇게 성공했으니까요.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이 손쉬운 것부터 작게 시작할 수 있죠.



모피어스: 계속해보게.



네오: 우리나라 지자체 가운데 부채로 허덕이는 작은 도시(읍단위)에 실비오 게젤의 개혁을 적용하는 거죠. 그 읍의 이름을 희망읍이라고 하죠.



모피어스: 한국판 뵈르글?



네오: 네. 구체적인 과정은 이렇습니다.

첫째. 공짜땅 개혁을 합니다. 즉 희망읍의 모든 땅을 국유화하고 공매로 임대합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늙은이들만 사는 조그만 시골이라면 국유화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겠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분업으로 지대가 오르면 그에 맞추어 임대료도 올려서 지대 상승분을 사유화할 수 있는 빈틈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임대료 수익은 그 읍의 복지재정으로 사용합니다. (예: 육아비, 교육비, 의료비, 통신비 등)

둘째, 공짜돈 개혁을 합니다. 즉 스탬프머니를 발행하여 희망읍 안의 재화나 노동을 교환하는데 사용합니다. 만일 희망읍 밖에 거주하는 사람이 희망읍의 재화나 노동을 산다면? 그 사람은 원화를 가지고 있으니 우선 원화로 살 테고, 희망읍 사람은 그 원화를 쌓아둘 수 있죠. 하지만 희망읍 밖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 재화를 팔 때는? 희망읍의 스탬프머니는 정기적으로 액면가가 감가상각되므로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안에 그 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즉 그 돈을 쥔 외부사람은 다시 그 스탬프머니로 희망읍의 재화와 노동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모피어스: 외부인은 '쌓아둘 수 없다'는 이유로 스탬프머니를 안 받아주지 않을까?



네오:그렇진 않을 겁니다. 적어도 안 팔려서 썩어버리거나 닳아버릴 상품의 재고를 가진 장삿꾼이라면 재고를 털려고 희망읍과 거래를 할 겁니다. 가만히 쌓아두면 손해이지만 희망읍에 팔면 다시 희망읍의 생산물을 살 수 있으니까 거래하는 게 이익이죠. 사실 모든 재화와 노동이 이런 속성에 묶여 있죠. 심지어 귀금속조차도 보관료나 보험료가 드니까요. 희망읍의 모든 판매자가 희망읍을 대표하는 어플에 자기들이 파는 상품 정보를 등록하고 검색하기 쉽게 만들어둔다면 이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겁니다. 스탬프머니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게 해준다면 희망읍 밖의 사람들도 자기들의 상품을 팔고 나서 희망읍의 스탬프머니 받는 것을 좀 더 편하게 느낄 겁니다.

이 단순한 시스템은 희망읍의 경제를 드라마틱하게 호전시킬 겁니다. 그 읍에 사는 사람들은 생산량을 계속 늘릴 수 있습니다. 생산하는 모든 재화가 머뭇거리지 않고 다 팔릴 테니까요. 돈을 일정 기간 이상 쌓아두지 못하고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서로의 재화를 교환하면서 넉넉해집니다. 그리고 그 노동대가는 땅주인 돈주인한테 빼앗기지 않고 모두 자기 몫으로 남죠. 땅을 빌리는데 임대료를 내지만 그 임대료를 내기 위해 자기가 생산하는 재화나 노동의 가격 안에 그 임대료를 포함시키고 임대료를 읍사무소에 내면, 그 읍은 임대료 수익을 읍민들 모두의 복지에 사용하니까 읍민들은 실제로는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과 같죠. 이 때 읍민들은 지대가 효율적으로 수집되도록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될 뿐이며, 구조적으로 결코 그 지대를 중간에서 사적으로 가로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읍민들은 읍 밖의 사람들과 거래하면서 스탬프머니 외에 원화를 얻게 되므로 원화는 많이 쌓아두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스탬프머니는 계속 교환매개물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기 때문에 희망읍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겠죠. 따라서 그 읍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넉넉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1. 그 읍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2. 다른 곳도 그 읍의 개혁을 모방하게 될 겁니다.

 

읍 두 개가 게젤의 개혁을 적용하며 경제가 성장하면 그 두 읍의 스탬프머니를 통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스탬프머니가 커버하는 시장은 점점 급격하게 성장할 겁니다. 희망읍의 스탬프머니 잉여금은 스탬프머니를 도입하기로 한 새로운 읍에 투자되어 이 과정을 가속화할 것입니다.(희망읍의 입장에서는 남에게 빌려줌으로써 저축할 수 있고 그 빌려준 돈은 다시 희망읍의 남는 재화나 노동과 교환될테니 이러한 투자를 환영하게 될 겁니다) 많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스탬프머니를 도입하고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이 화폐가 새로운 국가화폐로 공식적으로 인정될 겁니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그것을 바랄 테니 그렇게 되겠지요.


이것이 실비오 게젤 경제학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사회유기체social organism의 몸뚱아리에서 단 하나의 세포를 치유함으로써 그 효과를 온 몸으로 확산시키는 겁니다. 단 하나의 세포에 정상적인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유기체 전체의 불균형 상태를 조율하는 것입니다.



모피어스: 뵈르글은 토지사유제는 놔두고 화폐제만 개혁하지 않았나? 그렇게 해도 되지 않나?



네오: 그러면 지대 문제가 남아서 발목을 잡겠죠.



모피어스: 훌륭해. 게젤 경제학을 연구할 때 많은 이들이 화폐에 대한 아이디어에만 정신이 팔리지. 하지만 게젤의 해법을 정확하게 구사하려면 그의 토지개혁론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가 있네. 처음부터 공짜땅과 공짜돈을 함께 적용해야 해.

우리는 큰 맥락을 보았지만 이제 디테일을 함께 채워가야 하네. 게젤의 제자들이라면 스탬프머니 아이디어 정도에 감탄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되네. 그것은 게젤 연구의 첫걸음일 뿐이지. 이제는 이 해법을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해. 문제는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야. 자본가는 그저 자본주의에 효과적으로 적응한 사람들일 뿐이지. 만일 자본주의라는 불공평한 규칙을 바꾸지 않고 자본가만 욕하거나 그들의 부를 임의적으로 뜯어먹는데 만족한다면 그건 그저 시기심 많은 찌질이들의 구걸이 될 거야. 개혁의 대상은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여야 하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서는 자네 말대로 전세계에서 작은 도시 하나만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개혁하면 돼. 사회유기체의 몸에서 세포 하나만 치유해도 그것의 파급효과는 그 주변으로 빠르게 확산될 거야. 좋은 방법을 서로 자발적으로 모방하면서 변화는 생각보다 매우 빠를 걸세.

 

네오: 모피어스, 나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오랜 시간을 방황했어요. 이제 그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인류는 화폐제도와 토지제도가 만들어낸 매트릭스에 갇혀 있어요. 그 안에서 서로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있죠. 하지만 이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분열과 고통은 끝날 겁니다. 실비오 게젤의 방법으로 매트릭스를 파괴하겠습니다.

 

모피어스: 매트릭스는 파괴될 운명이네. 그 족쇄를 부수고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바로 자네야.

우리는 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려고 태어났네. '인간사회의 면역체계'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나왔고, 그 고통의 원인을 깨닫고,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그 방법을 행하려고 이 세상에 왔네. 역사의 모든 순간에 우리들은 존재했네. 해답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했지. 자네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부터는 운명을 믿어야 하네. 자네가 '네오'임을 믿어야 해. 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으므로. 자네가 세상에 대해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의문, 자네가 겪은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숨겨진 의미, 그리고 자네가 그 의미를 끝까지 추적하여 결국 해답을 찾아낸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절대로 우연일 리가 없으므로, 자네는 그 운명을 믿어야 하네. 자네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라면 NEO(Natural Economic Order)를 선택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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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7 16:38 2014/10/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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