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간만에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보니.... "에디터스 하이"라는 저의 조어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마감 때 밤새서 원고를 보다 보면, 하품을 하다 하다 지쳐서 문득 눈이 밝아지면서 오자도 큼지막하게 보이며, 원고와 전면적으로 만나는 평정한 상태가 가끔 오죠. 특히 미친 듯이 힘들게 편집한 책인 경우에... 일 년에 몇 번 안 오는, 그러나 그 맛에 이 글자 파먹는 직업을 못 때려치는 진맛.
책이란 편집자의 손을 떠나가면 제 나름의 생명을 지니는 존재인지라... 한 권의 책에게 생명을 주려면 제 생명의 일부가 들어가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뭐 그런 약간 조물주스런 생각을 하곤 하지요.
모든 책에서 에디터스 하이를 느끼는 건 아니고, 유달리 그것을 요구하는 책이 있어요. 그렇게 제 일부가 그 책 속에 흘러들어가면 얼마간의 요양 기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대신 책을 통해 제 생명력의 활동 범위는 더 넓어지는 것이고, [요양 기간을 적절히 보내기만 하면] 도마뱀꼬리처럼 재생되는 기분도 드니까... 매번 이전의 저와는 다른 저로서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 뭐 그런 종교적 환상이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