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강연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두 가지 였는데요, 하나는 테리 이글턴을 소개한 어느 영어영문학 교수가 테리 이글턴의 쓰임새(?)를 무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근본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는 것에서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탈정치화를 넘어 그릇된 방식으로 재정치화가 되고 있구나 싶어서 섬뜩했어요. 다른 하나는 청중의 질문이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건 물론 제가 직접 본 첫번째 질문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뭐라고 열심히 영어로 질문했지만 테리 이글턴은 그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영어가 한국어만큼 유창하지 않은 이상 동시통역 있겠다 그냥 한국어로 해도 될 것을 굳이 영어로 질문한 것도 좀 웃겼지만 저는 그걸 테리 이글턴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그 장면 전체가 탈맥락화에 대한 하나의 징후처럼 읽혀서 혼자 실실 쪼개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질문해 달라는 테리 이글턴의 요구에 질문자가 'What is knowledge?' 라고 간단하게 요약해 낸 것도 너무 재미있었구요. 그러니까 테리 이글턴 한숨 푹 쉬면서 '에혀~ 그래요 함 말해봅시다~' 이런 느낌으로 답변 시작ㅎㅎ
몇 일 동안 일이 있었고 블로그 스킨 가지고 장난을 좀 치느라 -- 시간만 날렸군요 -- 답이 늦었네요. 교수신문 인터뷰는 봤었는데 인터뷰가 아니라 단신 기사 정도더군요. 뭐, 역설적으로 테리 이글턴이 국내에서 가지는 위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제국의 시각에 젖은 한국의 식자(?)들이 근본주의를 '이슬람'으로 곧바로 인식하는 것, 또한 이런 주장이 보수 신문에서 구미가 당길만한 논의라는 건 징후적으로 보입니다. 모든 주의주장과 담론이 탈맥락과 재맥락을 거치지만, 한국에서 착지할 때 뻘밭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과도한 주관적 해석일 수 있으나, 영어로 질문 한 청중도 식민지적 '지식인'임을 과시하거나 그렇게 되려고 예비하는 학생처럼 보였거든요. 저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예전에, 랑시에르가 한국에 왔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건 좀 병인 듯 합니다. 좋게 보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픈 욕구로 보이나, 나쁘게 보면 명망가와 사적관계를 맺어보겠다는 팬심이나, 무지몽매한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자기 과시를 해보겠다는 건데, 학인의 팬덤화? 좀 과도한 해석이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