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 서중석의 『한국현대민족운동 연구』 1, 2 세 권을 읽어보면 해방 공간은 현재 진행 중인 남북대화, 북미협상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어. 국내에 출간된 지 20~30년이 다 되어가는 방대하고 자세한 책들이지만, 충분히 검토되고 소화되지 못한 주제들이 많다는 점은 확실해. 통한이 뼈에 사무치는 지난 세월 70년이야.
 
개인적으로는 여운형과 박헌영이 협력하지 못한 게 진정 안타까워. 모스크바 3상 결의대로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당시 해방 조선에 수립되었다면 좌우연립 내각이 들어서고 전쟁은 막을 수 있었을 거야. 일본 패전 후 갑자기 다가온 해방 정국에서 재건된 조선공산당은 아마도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분립한 상태에서 여운형 중심의 근로인민당과 힘을 합쳐 좌우합작을 주도할 수 있지 않았나 해. 당시 좌익 사회주의 세력은 민족해방운동 경력 면에서 정통성과 기반이 해외 민족운동 세력이나 대부분 친일로 돌아선 민족개량주의 세력보다 훨씬 막강했으니까 가능할 수도 있었지. 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 연구 과제 중 하나야.
 
미군은 38선 이남에 진주한 다음 경찰과 관료들을 기존 친일 세력으로 채워 넣었지. 하지만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을 의식할 때 결국 일정한 범위의 친일파 청산은 불가피했을 거야.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합의 사항은 조선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어.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협의하에 최대 5년 이하의 조선 국가 독립을 후견하자는 신탁통치안 문제는 그에 앞서 수립될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와 조선민주주의 제단체를 끌어들여 작성할 문제였으므로 잠정적인 것이고, 충분히 헤쳐 나갈 만한 이니셔티브가 부여될 상황이었지. 전체 4개 항으로 된 모스크바 3상 결의문이 그저 ‘신탁통치’라고만 유포되고 민족운동 진영 가운데 김구의 한독당이 가장 앞장서 반대했지. 서중석 교수에 따르면 이것은 당시 언론 보도의 왜곡과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한국 정치 세력의 한계로 나타난 흐름이고, 반탁운동은 실제로 김구 진영의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거지. 상하이-중경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는 당시 독립된 민족국가 건설 과제를 두고서 정치 세력들 간에 평가가 달랐어.
 
어쨌든 미소공동위원회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남과 북에서 따로따로 정부가 수립됐지.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미소공위를 통해 한국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김구와 이승만을 골칫덩어리로 여긴 적이 많아. 특히 당시 미국 국무성과 미군정 세력은 이승만을 권력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일 인물로 평가했어. 그런데 어떻게 됐나? 결국 미군정은 이승만을 활용하기로 택했고 미국무성은 한반도 현지의 미군정과 이승만 일파를 수용하는 노선으로 옮아간 거지. 하지는 한때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을 진행하려고 했어.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의 소용돌이 이후 남로당이 좌우합작을 거부하고, 해방 직후부터 정치 테러를 수차례 당했던 여운형은 결국 테러로 암살당했어. 이로써 좌우합작은 붕괴된 거야.
 
 
당시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 모두 ‘자주 독립된 민족국가 건설, 친일파 반민족 행위자 처단, 토지개혁’이라는 세 가지 공통된 정치적 토대 위에 서 있었어. 이것이 상호 합작으로 실현되지 못한 점은 지속적인 연구 과제야. 여운형과 박헌영 중심 세력이 협력 노선을 취했으면 친일경찰과 관료들, 지주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극우 한민당 중심 세력, 권모술수로 점철된 수수께끼 같은 인물 이승만 세력을 고립시킬 수 있었을 거야. 그럼 북한 지역에서 설령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토지개혁을 완수했더라도, 또 남한에서는 그보다 좀더 늦게 정치 합작이 이루어졌더라도 단일독립정부를 전국 총선거로 결국 구성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아마 내각책임제로 구성된 좌우연립정부가 구성되었을 거야.
 
한번 상상해 보게 돼. 좌익에서는 여운형, 박헌영, 김일성, 김두봉, 김원봉, 백남운 같은 인물들이, 그리고 우익과 중도 세력에서는 안재홍, 김규식, 홍명희, 김구 등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당시 국제 정세의 규정력이 너무 셌어. 미국이 루즈벨트를 거쳐 트루먼으로 대통령이 바뀌고 국제주의 평화노선에서 소련 봉쇄정책으로 기울면서 사실상 38선 이남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었어. 이승만은 집요하게도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방향으로 미군정과 국무성을 움직이려고 공작과 전술을 편 것 같아.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1948년부터 1950년까지 3년여간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해. 모두 정치 테러와 공격의 희생양이고 친일경찰과 관료기구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유격대 활동과 38선 근처의 충돌로 죽어간 이들이야. 경상남북도에서, 제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그리고 곳곳에서 벌어진 비참한 역사야. 사실상 내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이제 70년이 흐른 시점이야. 북한과 미국이 각각 인공기와 성조기를 내걸고 싱가포르에서 정상 간 합의를 이루었어. 신뢰를 구축하여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해야 한다는 약속을 했지. 남북한 군사긴장 완화로 군사분계선 근방 GP 초소가 철거됐어. 철도도 연결하겠다고 조사사업도 벌이고 있어.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 합의가 선언되었어. 문재인 정부는 “평화는 경제다”라고 외치고 있어. 그런데 과거 역사를 잘 봐야 돼. 한국 내 정치 세력이 민심을 수렴하고 안정된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과 실패한 근대 통일민족국가의 미완 과제를 이루는 길은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어.
 
한반도 주민의 진정한 바람은 뭘까? ‘남북협력, 공동번영, 주변국과의 우호와 연대, 실질적 평화 조치를 확대’하는 길을 계속 늘리고 넓히라는 거야. 경제 논리로만 남북관계를 접근하면 한계가 많다고 봐.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제와 압박을 견지하는데 한국 정부가 신북방, 신남방 경제만 외치면 운신의 여지가 막 넓어지나? 사실 철도사업이 당장 급한 게 아니잖아? 제재 완화를 추진하려면 남북 특수 관계와 전통에 입각하여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같은 기존 사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미국을 설득하고, 설령 거부당하더라도 미국을 상대로 직접 말해야 오해의 여지가 없잖아. 언론 인터뷰로 애매한 입장 발표하거나 다른 나라들 만나서 지지 부탁하고 우회적으로 제재 완화 언급하는 게 한눈에 보이니, 외교상 뭔가 건너뛴 듯 안 맞아 허술해 보이고, 그러니까 미국이 짜증나고 워킹그룹이니 뭐니 만든 거 아니겠어.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권력에 유불리함 따지면 안 돼. 경제 소득 격차와 불평등 완화를 추진하면서 분열을 통합하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정치로 나가야 해.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해. 남북관계를 거창한 경제 비전만으로 서투르게 접근하지 말았으면 해. 남북관계와 주변 국가의 대외정책 역사를 재검토했으면 해. 말보다 자기 능력을 검토하고 정치외교 전략과 실천 방안을 장기적 안목으로 꾸준히 추진하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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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17:54 2018/11/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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