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국회 과반의석을 겨우 넘겨서 공수처 법안이 통과된다 하자. 통과되었으니까 상황이 진정될까? 대결 국면은 더 심화되고 커질 것 같아. 자유한국당이 머리띠 동여매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결사적으로 선포하면 어떡하지? 지금이 딱 그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되고 있다는 거지. 나경원-황교안 체제 이후 자유한국당 하는 것 봐온 사람들은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도 유념해야 할 거야.
 
지금은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라는 의제가 하나로 들러붙어 버렸어. 이걸 가려내고 떼어내서 개혁의 출발점을 다시 세울 때야. 진보와 보수, 내용도 공허한 민주당 중심 진보 vs 자유한국당 중심 보수의 웃기는 허상을 깨버릴 때야.
 
그렇다면 어쨌든 양 진영을 아울러서 전체 사회 여론으로 합의된 의견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공직자, 특히 대통령 권력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부패와 비리 범죄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봐줄 수 없다는 것이지. 그럼 이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바로 여기에서 개혁이 출발해야 하는 것 아냐? 그런데 거기에 ‘검찰 개혁’이라는 의제를 들러붙게 해놓은 다음 아예 환원해버린 게 누구더라?
 
공수처 수사관과 직원의 부패 비리는 또 누가 견제하고 수사하나? 검찰과 경찰이 하나? 공수처가 수사하고 기소하면 어차피 검사가 국가를 대변하여 공소를 담당할 텐데, 공수처 수사와 기소 결과가 부실하거나 권력 편향적으로 부당하게 진행된 게 나오면 그때는 또 어떡하지? 결국 공수처-검찰-공수처-검찰-공수처-검찰... 이런 반복 순환 속에서 언젠가는 균열이 일어나다가 형사사법 체계가 헝클어지거나 터지면 어떻게 하지?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 인사권도 행사해, 국정원도 직속이야, 공수처장도 임명해, 감사원, 국세청도 작동시켜, 경찰은 행정안전부 지휘를 받아, 이거 뭐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어. 권력은 한 사람의 선의만으로는 결코 제어될 수 없는 것이니까. 공수처장 임명은 국회동의를 거치면 되고 추천 위원에 야당 몫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논리는 다 상황 논리지. 정치 환경이 변하고 의회 의석수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한국 정치 수준으로 짐작하면 충분히 대통령의 사정기관이 되고도 남지. 만약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고, 다음 대선에서 극적으로 정권을 획득했다고 치자. 그때는 공수처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고 은밀하게 반대 세력을 옥죌 수 있지. 상상하기도 싫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고위공직자일 텐데, 얼마나 지능적인 범죄 수법을 쓰겠어. 그거 수사하려면 아무리 문제 있는 검찰 조직이라고 욕을 하지만 70여 년간 쌓아온 수사 노하우라는 게 있는 거지. 그거 무시하고 공수처 수사관 임명할 수 있을까? 결국 검찰의 수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럼 뭐야? 지금 그렇게들 난리치는 ‘검찰 개혁’이라면서 공격하는 그런 바람도 실현되기 힘들 것 같은데? 검찰이 힘이 더 세지지 말라는 법이 없지. 과연 문재인 정부가 힘으로 공수처를 밀어붙여서 법안을 통과시킨 뒤에 극단적인 갈등을 해결할 만큼 유능한가? 아니라고 봐.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역시 아니라고 봐. 아직도 갈 길은 멀었음을 최근의 사태를 통해 경험했거든.
 
검사들도 사람이니 범죄를 저지르고 기득권과 지위를 이용해 부패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 그런데 또 검찰은 어차피 권력형 범죄를 수사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하는 준사법기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정치 권력과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그게 민주주의의 건강한 모습이기도 해. 따라서 검사들 개개인의 과오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문제와 흔히 말하는 권력기구 개혁에 수반되는 형사사법 시스템 개혁은 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하고 재정립하는 것과 검사들 개개인의 과오, 또는 조직으로서 검찰의 태도나 행태의 변화는 별개의 해법과 종합적인 쇄신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전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와 범죄’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나는 결국 검찰 내 전담 수사부서를 두는 방법밖에 없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역시 특검을 제대로 하면 된다는 거지. 그리고 검사에 대한 감찰의 효율성 높이고, 검찰 스스로도 계속 연구하고 쇄신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검찰이 수사력을 통해 지위를 남용하는 문제는 대통령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아래에서 위로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은 권력이 위에서 유도하고 만들어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의회와 시민사회의 논의와 요구에 맡겨야 한다는 거지.
 
또한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한 수사를 만약 국정원이나 경찰이 1차로 수사해서 검찰에 넘겨버리면 검찰이 과연 공소 기각을 할 수가 있을까?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법안은 잠만 자빠져 자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도 다 검토해야 해. 그런데 그동안 뭘 개혁했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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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00:36 2019/10/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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