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대미 외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사실 더 종속적이다. 말로는 주권과 평화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항상 미국의 대외 전략에 말려든다. 김대중 정부는 부시 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다음에도 햇볕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견인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에 대규모 비전투 병력을 파견하고 나서 지지층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김선일 씨가 처참히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뭘 얻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 노무현 정부도 미국의 북한 관련 PSI 작전에 대한 참여를 거부하고, 전작권 환수와 자주국방이라는 정책은 갖고 있었다. 적어도 구호는 아니었다.
 
이 정부는 독자적인 대외 전략이 거의 안 보일 지경이다. 신남방이니, 신북방이니 하는데 그것도 어떤 전략적 토대가 섰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냥 해외 정상들만 만나서 회담하고 서로 약속하고 악수한다고 성과가 나오겠냐. 남북협력도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결국 트럼프의 압박과 제재 프레임에 걸려 한미 워킹그룹에 발목잡히고 말았다. 교황청은 왜들 그렇게 쪼르륵 달려가서 북한 방문해달라고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김정은 답방은 지금 이 시점에 가능하지도 않은데 기대해서 뭘 할 거냐.
 
이니셔티브를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걸 오히려 미국에도 나눠주고, 북한에도 나눠주고, 중국과 러시아에게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같고, 일본하고는 지소미아 종료하겠다고 세게 한판 붙을 듯 하더니만 이제는 그 나라 의회 의원이 와서 문희상 국회의장한테 1+1+α 입법 요청까지 하네. 여기에 어디 주권이 살아 있으며, 확고하고 독자적인 평화 노선이 견지되고 있단 말이냐?
 
이란-미국 간 군사 충돌이 번져서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니고, 두 나라도 군사력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시점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로 강하게 파병을 압박했길래 오히려 중동 긴장 고조에 기여하는 이런 결정을 내린단 말이냐? 청해부대가 아무 일 없이 복귀해도 국회 동의 없이 이런 안보 관련 중요 결정을 내린 나쁜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국익도 물론 아니다. 혹시라도 한국의 젊은 군인들이나 중동 교민이나 사업체들이 해를 입는다면, 그 정치적 책임은 완전히 문재인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당연히도 이번 결정은 그토록 되뇌는 한반도 평화 경제 구상의 진정성을 대외적으로 훼손시킬 것이다.
남의 나라 해역에 긴장을 높일 수 있는 이런 식의 파병을 하면서 어찌 자국과 주변 해역의 평화를 그렇게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미국과 관계 악화도 부담스러우니 파병하고 나서, ‘유사시’라는 개념을 넓게 해석하고는 이란뿐만 아니라 주변 중동 국가들에서도 군사 충돌이 일어날 수 있으니 파병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사후 정당화하며 설명하는 것밖에 더 되냐?
 
문재인이 2017년 9월 푸틴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번엔 한국 수입 원유의 70%가 오간다는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조성하는 여론에 편승해서 이럴 때는 윗동네에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하고, 저럴 때는 자기 동네 원유 공급 끊길까 봐 걱정해서 병력을 파견하겠다니 러시아 푸틴이 웃겠다. 도대체 청와대와 민주당의 독자적 대외 전략은 무엇인가?
 
국방력은 군대의 물리적 규모나 무기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2차 대전 후 이곳 저곳에서 벌여놓은 전쟁에서 그동안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겠나? 이라크는 지금 드론 폭격과 미사일이 오가는 제3국 땅이 되어 버렸다. 미국이 전쟁판 벌여놓았던 바로 그 땅이다. 국방력의 전제는 정치외교 전략과 대내 정치의 지도력에 있다. 문재인 정권은 깊이 각성하라.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을 규탄한다!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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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01:33 2020/01/2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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