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서울시네마아트에서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을 열었다. 국내에서 그의 영화란 「감각의 제국」(그것도 삭제판) 말고는 만날 수가 없었기에, 22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이 기회가 마지막이나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잊지 못할 한 편을 꼽으라면 눈물을 머금고 다른 수작들을 제치고서라도 「태양의 묘지(太陽の墓場)」(1960)를 들겠다. 그리고 이 강렬한 영화의 전반을 이끌고 나갔던 한 여인 하나코(花子)를 잊을 수 없다.

 

 

 

오 사카 부둣가 근처의 인력시장에서 막노동꾼의 관리자인 아버지와 살아가며, 이따금씩 뒤를 봐주는 의사와 더불어 혈액을 암거래하는 하나코. 이 주인공을 연기한 호노 가요코(炎加世子)의 얼굴에 맺힌 끈적거리면서도 투명한 땀방울, 불타는 듯 날카로운 눈매, 또랑또랑한 발음이 튀어나오는 입술, 그 뒤에 숨겨진 그늘, 그리고 인신매매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빈민 지역의 생활에 익숙해진 단단한 표정. 그녀의 얼굴에서는 인위적으로 조합된 단아하고 다소곳한 일본 여인상도, 유순하고 끈기 어린 한국 여인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나코의 존재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녀 주변에 얽히고설킨 여러 세력 관계와 당대 일본 사회의 은유이자 상징일 이 빈민 거주지의 실상 때문이기도 하다. 탁한 공기에 밴 불안한 욕망의 기운, 그 땅과 하늘을 휘감는 불그레한 태양 빛. 거기에 덧붙여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알함브라의 궁전」은 전후 일본에 대한 아이러니한 풍자라고 할 정도이다.

하나코는 조직 폭력단 사이의 알력 관계를 이용해 은밀한 거래를 반복하고,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세계에 끼어든 두 존재와 마주친다. 한 사람은 낯선 외부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얼마 안 가 일본이 소련과 전쟁을 하게 되면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곳의 삶도 끝나게 된다면서, 외국인에게 호적 매매를 주선할 테니 거추장스런 막노동 생활을 청산하고 돈을 벌라고 부추긴다. 하나코는 이런 상황들을 냉소하며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라고 일갈한다. 그녀의 진정한 관심은 스스로 조직 세계에 몸담고 싶다며 찾아온 조금은 유약한 인상의 타카시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코는 신입 조직원 타카시에 대한 자신의 은밀하고 치밀한 사랑의 성취 계획을 직접 드러내진 않는다.

 

 

 

타카시는 조직원의 자격을 얻기 위해 원치 않는 살인과 강간의 조력자가 된다. 자기가 조직 폭력단에 흘러들어온 이유는 막연했지만 그는 그렇게 인정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인신매매에 끌려들어온 한 여인을 도와주다가 더욱 복잡하고 어두운 세계에

 빠져든다. 그럴수록타카시의 눈빛은 번민에 가득 차고, 함께 살인과 강간을 저질렀던 조직원과 다툼 끝에 그를 죽이게 된다. 괴로워하는 타카시를 하나코는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두둔한다. 그리고 폭력단에게 남자 친구를 잃었던 소녀가 양심의 가책 속에 흔들리는 타카시에게 보복하려 드는 장면을 높은 건물에 올라 목격한 하나코.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 여자를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한 편 외도하는 부인에게 천대받으며 살던 한 남자가 자신의 호적을 팔아넘긴 뒤로도 나아지지 않는 무기력과 비참한 생활 속에 헤매다가, 결국 속아 넘어간 것을 깨닫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사건들이 복잡하게 뒤얽히던 중 타카시가 속한 폭력단이 라이벌 조직에게 궤멸당하고, 타카시는 아무도 보호해줄 세력이 없는 더욱 심각한 처지에서 패배자인 자기 조직의 보스와 다툼을 벌인다. 마침내 철로 위에서 뒤엉킨 채 보스와 타카시 사이에 총격이 일어나고 그들 위로 기차가 질주하며 지나가버린다. 이 장면을 목격한 하나코는 충격을 안은 채 이 살벌한 지역의 노동자들이 자주 모여드는 술집에 들른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이방인 선동가가 버릇처럼 사람들에게 헛된 환상을 부추기고 있다. 하나코는 그를 공격적으로 추궁한다. 정말 당신 말대로 더 잘살 수 있는 거냐고. 그러나 이러한 추궁은, 사랑했던 타카시의 죽음을 목격한 직후, 혈액 매매와 폭력단들 사이에서 자기 몸을 담보로 생존해오던 하나코가 격하게 폭로하는 전쟁의 허상이다. 또한 전후 일본의 불안한 고요와 안정 속에서 내던지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요 반항이다.

 

마 지막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웅변을 압축하고 있다. 마침내 사람들은 술집을 박차고 나가, 호적 매매를 통해 새로운 착취를 실행하려는 이 무위 도식가인 낯선 선동자의 숙소를 공격하고, 마침내 하나코의 명령에 따라 그녀의 아버지의 집마저도 부숴버리는 폭동을 일으킨다. 그 사이 사제 폭탄이 터져버리고 이 지역은 정말 전쟁을 치른 것처럼 폐허로 돌변한다. 검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잔해를 뒤로 한 채 하나코는 “이제 장사라도 해야지”라고 선언하면서, 한 빈털터리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매몰차게 떠난다.

 

이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가 쇼치쿠 영화사에 들어가 찍은 세 번째 작품이다. 전후 일본의 안보투쟁이 실패한 다음 무기력과 기묘한 충동에 빠진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그린 「청춘 잔혹 이야기(靑春殘酷物語)」(1960)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오시마는 집단 창작을 통해 정력적으로 영화운동을 이끌어갔고, 일본 영화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걸출한 작품을 많이 내놓았다. 오시마가 쓴 한 시나리오집의 글에 따르면, 호노 가요코는 이 영화를 찍기 직전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소년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어서, 영화를 찍는 동안 어떤 충동에 이끌려 그녀에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오시마는 나중에 호노 가요코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반 세기가 넘은 지금 호노가 살아 있다면 70대를 넘긴 연로한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저녁의 붉은 노을과 산 너머를 바라보며 격렬했던 젊음을 착잡하게 되새기고 있을까? 또 아니면 태양의 묘지처럼 폐허가 된 현실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세계에서 마지막 생을 이어가고 있을까?

 

[옛 블로그 201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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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8:10 2012/06/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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