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랑

from 문학 2012/06/25 18:16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리움, 연정, 헌신 그리고 둘의 행복. 이런 것들로 채색되어서가 아니다.
두 사람을 둘러싼 현실, 장벽, 그늘과 역사의 무게에 그 사랑이 상처받으면서 빚어 내는 진실 때문에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엮어 낸 진실한 사랑 혹은 비극적 결말 가운데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길상과 서희


최씨 집안의 몰락과 재건 과정 한복판에서 갈기갈기 찢긴 서희의 마음을 음으로 양으로 보살피던 길상은 서희의 외로움 절망적 고독이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어 주었다. 독립 운동과 수감 생활, 신분의 격차에서 오는 근원적 거리감.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장애들이 서희의 사랑과 길상의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 때문에 빚어지는 그들 사랑의 모습이다.

유인실과 오가다


순결한 이념, 인간에 대한 확신,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 식민지 백성 유인실과 패권국의 지식인 오가다를 이어 주는 끈은 바로 그러한 가치들이었다. 이 민족적 장벽을 허물려는 오가다 지로의 눈물겨운 자신과의 투쟁. 고통받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해방의 열망으로 오가다에 대한 자기 마음의 진실을 구속해야 했던 불꽃같은 삶의 여인 유인실. 만남과 헤어짐의 가슴 아픈 과정 속에서 그들이 결국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인간에 대한 믿음 그 힘겨운 믿음을 버리지 않은 것을 뜻한다.
그것이 생명을 잉태하게 하였으니 바로 그들 사이에 태어나 오가다의 조선인 친구 조찬하의 손에서 자라난 아들 쇼지이다. 그 아이의 자비롭고 연민 가득한 품성은 인실과 오가다의 사랑이 얼마나 가슴 아픈 진실인가를 드러낸다.

이상현과 봉순

 

지식인과 하층민, 소설가와 기생. 마치 인생의 종착점을 앞당겨 살 듯이 방황과 자학 속에서 살았던 이 청춘들만큼 외로움에 허덕이는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봉순이 자기 딸 아이를 낳아 길렀고 외로움과 자괴감 속에서 마약에 빠졌다가 결국 섬진강에 몸을 던졌다는 사실을 상현은 알게 되고, 결국 죄의식과 존재감의 상실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의 딸 이양현은 그가 한 때 깊이 사랑했던 서희의 양녀로 잘 자라 주었으며, 이야기의 최종 결말 부분에서 조국 해방의 소식을 처음으로 서희에게 전해 주는 이도 바로 양현이다. 아마도 망가진 이상현과 봉순의 인생 밑바닥에도 밝은 미래를 향한 애틋한 희망이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사랑을 지켜 준, 혹은 무의미하지 않게 해 준 것은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희망이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 또한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사랑이 그 희망을 더욱 진실되게 단련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힘겹고 서글프고 혹은 비극적이었다 해도 아름다웠던 것 아닐까.

 

[옛 블로그 200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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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8:16 2012/06/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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