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동화로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친숙했던 이름, 돈키호테와 걸리버. 세르반테스와 스위프트의 각 작품의 완역본은 작중 인물들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고된 인생 역정이 함께 깊이 새겨진 대작임을 충분히 알려준다.

 

『돈 키호테』를 불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세르반테스는 갤리선의 노예 생활을 해야 했고, 레판토 해전에서 팔 한 쪽을 잃었으며, 인생 후반기에는 모함을 받아 쓰라린 고통을 겪기도 했다. 120여 년 후에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의 작자 스위프트는 명예혁명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등으로 뒤얽힌 영국과 유럽 일대의 격변기를 통과했고, 정치와 종교 영역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 한가운데서 인간 본성의 타락과 실상을 온 몸으로 경험한다.

 

두 시기 모두 작자들의 조국인 스페인과 영국이 강대한 세력을 펼치던 때였고, 이 작품들은 풍자의 수법으로 당대의 표면이 아닌 심층을 뚫고 들어간 문제작이다.

 

세 르반테스나 스위프트 모두 고도의 문학 기법을 훈련해서 작품을 썼다기보다는, 독특한 그들의 기질과 성실한 기록가로서 자기 수행을 거치며 작품을 내놓았을 것이며, 후대에 그들의 작품을 놓고 사람들은 ‘위대한 풍자문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으리라. 사심 없는 작가의 영혼, 즉 독자나 청중의 평가에 자신의 자아를 종속시키지 않는 대담한 자세로부터 하나의 영원한 작품이 형상을 얻게 되었다.

 

두 작품의 차이도 있다. 시골 기사 돈키호테는 애초부터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돌아버린 상태에서 농부 산초 판사와 애마(愛馬) 로시난떼, 그리고 가상 인물이자 모험의 최종 이유인 둘씨네아 공주와 함께 온갖 고난을 겪으며 세상을 방랑한다. 작품에 개입하는 관점은, 주인공 돈키호테뿐만 아니라 산초 판사의 인생관, 둘의 모험을 방해하는 고향의 신부와 이발사와, 그리고 각 여정에서 만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의 관점이기도 하고, 이런 복합된 관점이 시끌벅적하게 얽히다가 결국 돈키호테의 죽음으로 끝난다. 모두들 돈키호테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진실한 인간됨을 기린다.

 

걸 리버는 교육을 잘 받은 의사요 항해술사로서 조금은 막연한 여행에 자기 몸을 내맡긴다. 그는 돈키호테보다는 개인적 관찰력을 더욱 발달시키고 혼자서 그 역경을 감내하다가는 구사일생으로 귀환한다. 소인국, 거인국, 공중에 떠다니는 섬나라 라퓨타와 그 식민지, 그리고 모든 인간 본성과 덕성의 이상 세계인 휘넘국(말들과 야후들의 나라)을 거치고 돌아오지만, 휘넘국에서 만난 야후, 즉 인간의 추악함이 농축된 이들을 보고는 조국에 돌아와서도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채 다소 우울한 처지에서 지난 시간들을 반추한다.

 

『돈 키호테』는 다분히 문학적 재능과 해학이 가득한 한 판의 굿거리 같은 느낌을 준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작가의 세계관이 치밀한 관찰자 시점 속에 녹아든 일종의 교훈 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아니 세르반테스와 스위프트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2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계의 가장 본질적 문제를 파고든 주도면밀한 정신의 결정체이다. 돈키호테도 걸리버도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자기 각성에 이르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자기 인식"이란 것이 얼마만큼 얻기 힘들며, 또한 중요한가 하는 화두였다.

 

세르반테스와 스위프트 모두 인생을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 경험을 기록하기 위하여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작품 세계를 일구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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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블로그 20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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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8:46 2012/06/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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