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은 국가라는 거대한 아성 앞에서 스스로를 자각한 개개인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메시지로 구성된 영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익숙한 체념적 경구는 “죽은 바위를 산 계란이 타고 넘는다”라는 비약적이고 서툴게 변조된 비유를 통해 낯설어진다. 데모로는 바꿀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역설하는 자칭 속물 세법 변호사 송변의 면전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이 발언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바로 그 진우의 육신을 앞에 두고 송 변호사가 다시 역설함으로써 진우의 기억을 일깨운다.
이 순박한 어법의 빈자리를 영화적 이미지가 채워 나간다고 할 수 있다. 단연코 그 이미지의 화신은 진우의 어머니 순애와 송 변호사라고 보이며, 여기에 고문 경관 차동영의 음습함과 육중한 이미지는 두 인물의 진정성을 반대편의 극단에서 더욱 드높인다.

 

고문 경관 차동영은 자신을 증인으로 불러낸 송변에게 짐짓 강약까지 실린 경멸조의 목소리로 설교한다. 국가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영장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절차도 무시하는 당신에게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냐며 되묻는다. 당혹스런 낯빛을 애써 억누른 차동영이 정색을 하고 고함을 친다. 변호사가 국가 뭔지도 모르느냐고. 송변이 대답해준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국가는 국민이다.” 이 대결에 앞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이미 고문 경관 차동영은 자신의 국가관을 논변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보여준 적이 있다. 송 변호사가 고문 증거를 찾아낸 현장에 들이닥쳐 그를 초죽음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패고 악마의 성문 밖으로 끌고 나가 내동댕이친 바로 그때 애국가가 울려 나온다. 상당히 강박적인 포즈로 경건하게 가슴에 손을 얹는 차동영. 난데없는 폭행에 아연실색해진 송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송변에게 그 장면은 뚜렷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기괴한 현실의 광기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마지막 공판 방청석에 앉은 진우의 어머니 순애를 감싼 순청백색 한복. 그것은 고문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내지르는 비명,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아 주검 안치소까지 헤매던 어머니의 처절한 눈물로 잔혹한 권력의 야수성을 빨아 널려 다려낸 삶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순애가 피멍투성이 아들의 등짝을 보는 순간, 그 아들의 혼미한 눈빛과 얼굴을 보는 순간, 구치소 간수를 향해 멱살을 쥐고 달려들어 바닥에 패대기치고 오열하는 장면과 겹치는 색깔이다.
국밥 장사 아줌마 순애의 희고 푸른 한복은 말해준다. 인간을 말살하는 국가는 자기가 살아온 역사를 잊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죽은 바윗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판정을 가득 메운 변호인들은 다시 부화된 계란들이며 이들은 죽은 국가의 교리를 해체하여 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역사적 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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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21:22 2013/12/2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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