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광주로 다시 서울로
총 10번정도 이사를 다닌 거 같다.(물론 내가 다녔다기 보다는 부모님이^^)
그래도 지금 집이 이제 9년째 살고 있으니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일것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면 가구와 같은 부피가 큰 물건들은 아무래도
세월의 상처를 온몸에 새기게 되고 자잘한 물건들은 그것들이
꼭 필요하거나 아주 쌩쌩한것이 아니면 떠날때의 미련들과 함께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 많은 이사에도 꿋꿋히 함께 따라다니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이놈들은 우리집에서 산 지 얼추 30년에 가까운 것들이다.
나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우리 식구가 된것들
먼저 이유식 숟가락
'거버'던가? 어릴적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암튼 그 이유식 회사에서
나온 아기 이유식용 작은 숟가락이 부엌 수저통 한 구석에서 조용히 다른 수저들을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기의 입에 쏘옥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손잡이 부분은 약간 동그랗게 아기의 얼굴같은것이 조각되어 있다.
다른 놈들도 다 10년은 넘은 녀석들이어서 뭐 풋풋한 신입생같은 녀석은 없지만
암튼 저 작고 무뎌진 숟가락은 이제는 커피를 휘휘젓는 용도로만 쓰인다.
이 녀석은 나보다 살짝 늦게 우리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이야 천연그대로의 이유식을 부모들이 선호할테지만 옛날에는 '거버'처럼 인공적으로 가공된 이유식이 몸에 더 좋다는 믿기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두 번째로 분
빛이 바랜 하늘색 네모난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분은 지금 욕실의 구석에서 여전히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아마도 아직 말을 못했을 아기였을때(그때는 참 남들이 보기에도 제법 괜찮은 인간이었겠다 싶다ㅋㅋ) 목욕을 마치고 난 아기의 엉덩이에 토닥토닥 하얀 가루를 두들겨 줬을 것이다. 아기의 몸냄새와 분의 향기가 어우러진 집안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를 것이다.
체질이 많이 바뀌어서 땀이 많이 줄었지만 요새도 여름철엔 종종 샤워를 마치고 그 분을 땀이 많이 나는 부위에 두드려주곤 한다. 이 녀석은 나보다도 먼저 우리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누군가가 선물로 줬다고...
마지막으로 맥도날드 쟁반
아직 한국에 맥도날드가 없었을 시절(아마도... 맥도날드가 한국에 언제 들어왔을까?)부터 우리집에 있었던 쟁반. 미국으로 오래전에 이민간 큰이모가 준 쟁반인데 우리엄마가 결혼하면서 가져왔다고 하니, 이 녀석은 나보다 더 오랜세월을 우리 엄마와 보낸 것이다. 쟁반에는 맥도날드의 피에로가 해변가에서 보물상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고, 문어 한 마리가 그 보물상자를 바닷속으로 가지고 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다. 지금이야 뭐 맥도날드 따위야 마구 싫어하지만 어렸을 때 화려한 색채의 맥도날드 쟁반을 좋아했었다. 그놈은 참 튼튼한거 같기는 하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깨지기는 커녕 이하나 안나가고 있다니. 김치전 부쳐서 올려놓기 딱 좋은 쟁반
아마도 이 녀석들도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조금 더 오랫동안 있을지도 모르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추억하거나 애써 기억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려 한다. 어쩌면 그것들이 버려지거나 부서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왠지 나에게는 한순간에 버려진다는 느낌 보다는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그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내가 깨닫게 된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래된 물건들에 대한 나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