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스즈키 세이준 포스트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있어, 여기에 조금 남깁니다(^-^). 스즈키 세이준이 "직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에는, 그가 고전적 영화 어법만이 아니라 일본에서의 영화 어법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말이며, 또한 일본 영화의 그 어떤 계보와 스타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정말 존경하는(*^-^*)!) 인문학자겸 영화비평가인 하스미 시게히코가 '계절의 부재'라는 주제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자신이 설정한 인물의 묘사를 위해 영화에서의 규칙들을 마음대로 위반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화안의 계절도 단 한 컷의 차이로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어 버리거나 겨울에서 여름으로 되돌아오고는 하는데, 이렇게까지 자연 법칙마저도 무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발명하면서 작업을 했던 사람은 (일본 영화의 4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그리고 나루세 미키오가 여전히 작업을 하고 있던 시대에) 그 당시 일본영화는 스즈키 세이준이 유일무이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의 영화(만화와 문학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같은 경우, 계절은 물리적인 시간의 지표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배구俳句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즈키 세이준은 자신이 감독을 하기 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에서의 어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연출을 하였으며, 그 연출의 기법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들은 오늘날에 와서도 충분히 볼만한 것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 그의 대단함 중에 하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언젠가 어떤 영화 저널에서 했던 영화 앙케이트에서 왕가위와 짐 자무쉬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 10 중에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넣은 것이 그냥 우연은 아닌 셈이죠).
그리고 한 가지만 덧붙이면(사실 할 말이 무지하게 많은데 할 말을 다 하자니 제 블로그에 포스트를 쓰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통 (정치적-미학적 의미 모두에서) '무국적-무정부영화'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 관한 수식어를 그의 삶과 관련시켜 생각해 보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스즈키 세이준은 1920년대에 태어났는데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최전선이었던 필리핀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운 좋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고, 종전 후에는 밥 먹을 돈도 없어서 영화를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을 전전하다가, 영화사에 취직을 하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별다른 고민 없이 영화를 만드는 직업을 선택했으며, 일반적으로 그의 영화적 전성기로 알려져 있는 1960년대의 일본은 (잘 아시겠지만) '전공투'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기도 합니다([살인의 낙인]이 1967년 작품입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만엔 원년의 풋불]도 1967년 작품이죠(^-^)). 그러니까 저런 시대를 거치면서 스즈키 세이준은 닛카츠의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영화사에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영화를 줄 곧 만들었던 셈인데,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면서 그의 영화를 보면 여러 가지 의미의 층들을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되도록 짧게 남기려고 했는데, 남기고 보니 전혀 짧지 않네요. 그냥 트랙백을 걸어서 긴 포스트를 쓸 걸 그랬나 봐요......(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