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동물해방론 자체는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해서..
고통을 기준으로 하는 건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데 그걸 보편화하잖아요.
소위 말하는 탈근대적 가치에 근대적 어법을 갖다 붙이니까 앞뒤 연결이 부자연스럽죠.
다양함의 혼란스러움을 즐기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듯...
개인적으로는 동물성과 식물성의 구분이 훨씬 타당하다고 봐요.
물론, 어디까지나 ~성이라는 것이지 카테고리화하는 건 아니니까 그 나름대로 한계가 있고 보편화할 수 없지요.
그리고, 그게 오히려 이 구분의 장점이라고 보구요.
(예를 들어 식물성의 동물을 먹는 것과, 동물성의 식물을 먹는 것은?! 같은 문제. 사실 이걸 보편화한다면 종교 내지는 코메디겠죠.)
딱히 명확히 보이는 고통이나 불편함을 무마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당장에 저만해도 근대공장에서 찍어내는 육류는 먹지 않고 있죠)
동물해방론보다는 좀 타당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동물해방론 자체는 정치적으로만 활용되고 있고, 철학적으로는 별로 다뤄지지 못 하고 있거든요.
솔직히 논리 전개 자체는 철학적으로 다루기엔 좀 ㄱ- 하잖아요.
(기반으로 가져가는 자유와 권리 등에 대한 논의는 솔직히 근대 초기의 철학에 가깝다는 느낌이구요.)
그러다보니 현재 동물해방론을 사용하는 단체들을 보면 상당히 보수적이거나 종교적이죠. (...)
인간이나 동물이 왜 소중한가...라면, 저는 존재 자체가 소중할 수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소중은 존재가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제발 '권리'라는 본질적 언어를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줬으면 하죠. 서로 무턱대고 권리라고 우겨대는 거 정말 싫3)
권리 개념 말이에요, 도롱뇽 소송같은 거요, 제도 사회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권리 쪽이 대안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해서 타당하면 그게 먹히잖아요? 그러니까 필요하지 않을까, 적-_-의 개념으로 적을 압도-_-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 안 해도 되면 좋겠지만.
사실, 도롱뇽 소송이 권리의 측면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죠.
제도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제도권에 언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 하는데,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그렇다면 도롱뇽의 케이스처럼 오히려 다른 극단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는 거죠.
대개 제도에 공격하는 방법론은 동시에 다른 힘들을 동시에 사용하거든요.
권리의 개념은 반드시 상충되기 때문에 다른 힘의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죠.
단적으로, 흡연권과 건강권은 어떻게 정리가 될까요?
게다가 육식의 문제로 보면 그걸 제도화하면 오히려 위험하죠.
완전 채식 파시즘이잖아요.
딱히 적이 없는데 적을 압도한다는 것도 좀 글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