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내내 불편했던 영화였는데... 마지막에 강제로 북에 끌고간 아들이 밥을 퍼먹고 있던 중 김준평이 사망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 불편함이 극도에 달했죠.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김준평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인 존재가 국가와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권위주의가 득세한 시기의 국가.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더 큰 권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빌어붙는 국가. 국가 뿐만 아니라 기업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이 될 수도 있겠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베틀 로얄을 보면서 느꼈던 공포감-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베틀 로얄이니까요-은 이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지만....
wyrd/ 아 구더기요! 구더긴지 보이지도 않았=_=;;; 그 고기는 돼지고기의 버리는 부분의 날 것이래요. 자세히는 모르겠;
행인/ 그 전형적인 가부장의 캐릭터를 뛰어넘는 추잡함과 불쌍함이 있는 캐릭터가 바로 김준평이 아니올지요. 북에의 귀순(?)이 큰 권력(국가)에 빌어붙는 모습이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 늙어서 왜 그랬을까, 정말 모르겠어요.
Bluemoon/ 어머 감사합니다. 제 검색 범위 내에선 재고본이 없네요. 도서관에도 없고요ㅠ_ㅜ
전혀 도움 안되는 정보지만 박철수 감독의 '가족씨네마'에서 아버지 역을 다소 어색하게 해냈던 이가 피와뼈의 원작자 양석일이에요. 얼마전 가족씨네마를 다시 보다가 그 사실을 알고나니 기분이 좀 묘하더군요. 예전에 가족씨네마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었고 전 '피와뼈'도 봐주기에 제법 괴로우면서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거든요. '흥미진진'이란 표현이 참 안어울리는데 딱히 적당한 표현도 안떠오르네요.
아아... 간만에 왔더니 볼 게 많네요 ^^ 건 그렇고요, 제가 이야기했던 "국가"는 북한이 아니라 "김준평"이라는 인물이 하나의 "국가"와 비유된다는 것이었어요. 국가도 더 큰 국가에 빌어 붙는 것. 예를 들면 한국이 미국에 빌어 붙는 것 말이죠. 김준평은 독립적으로 산 것이 아니었거든요. 약자에 기생해서 그들의 피를 빼먹은 동시에 체제라는 곳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적응해버렸죠. 약육강식이 통할 수 있는 시기에는 누구보다도 강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절대 체제에 대해서는 순응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김준평의 모습이었고, 거기서 행인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비열한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준평이 북송선을 탄 것은 일본체제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는 그저 좀 더 자신의 현실에서 자신이 편할 수 있는 곳으로 간 것뿐이죠. 더 이상 빨아먹을 피가 남아있지 않은 일본땅을 버리고 그동안 빨아놓은 것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북한땅으로.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어지간히 불편한 영화였던 것만은 분명하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