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읽으면서 내 책읽는 습관을 많이 반성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문자중독증을 의심할 만큼 뭔가 읽는 걸 좋아했는데, 그저 책 읽는 시간으로 도피한 것일 뿐

제대로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읽는 습관이 더 나빠졌다.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이나 몇 마디의 소개글을 보고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 책을 소개하는 몇 개의 단어가 되었다.

내게 책을 읽는다는 건 맥락과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의미를 다룬다는 내용적인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집에는 내 책만 책장 다섯 개를 채우고도 남는데, 그 중 안 읽은 책이 반이요

읽어놓고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 책이 반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책을 제대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사실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반평생을 세상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수단으로 책을 봤는데 늦게서야 세상을 직면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보게 된 걸까.

 

올 초부터 책읽을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내가 알고싶은 주제를 몇 개 정한 다음 그 주제에 관한

책을 한 권씩 정했다. 그리고 같이 책 읽을 사람을 몇 명 찾아서 책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들어서 지지난 주에야 준비모임(을 빙자한 술자리)을 가졌다.

나를 포함해 4명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모임. 2주에 한 번씩 모여 자유롭게 토론을(술을) 할 예정이다.

 

내가 정한 주제는,

 

1. 경제학의 역사

2. 국가, 사회, 시민, 개인 등 사회과학의 개념 성립사

3. 인권의 개념과 발전사, 국내외 쟁점들

4. 세계화, 신자유주의, 노동, 이주노동의 역사와 쟁점들

5. 기후변화, 환경/생태

6. 좌파생물학과 기술결정론의 쟁점들

7. 좌파 미학과 예술론의 쟁점들

8. 법과 사법체계, 노동관련법의 현황과 쟁점들

 

각 2주씩 해서 총 16주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준비모임에서 8번 주제가 좀 튄다는 의견이 있어

제외하고 총 7개 주제에 14주 예정. 일단 첫 번째 주제로 읽기로 한 <갤브레이스가 들려 주는 경제학의 역사>를

이번 주 모임에서 토론하기로 하고, 다른 주제에 관한 책은 의견을 모아서 정하기로 했다.

 

하버드대 명예 교수인 갤브레이스가 경제학사 개론서로 쓴 이 책은 평소 경제학설도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에 딱 맞는 책이다.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하여 고전 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주장을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설명하는 한편 화폐나 공황같은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도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맥락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설명이 명쾌하고 재미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나서서 사람을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읽기(술)모임이 재미있게 진행됐으면 좋겠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멤버들이라 토론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모임을 위해 퀴즈를 준비해 갈 생각이다. 벌칙은 아마 술먹기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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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2 19:57 2012/04/02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