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수우익이 원하는 것



보수우익은 지난번 황우석 사건을 통해 자신들이 당했던 모욕을 되돌려주고 싶은게다.
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놀랍고 경의적인 일은 조선일보와 같은 적반하장의 주장과 논조가 어떻게 여전히 주요언론으로써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이다.
황우석 때 더는 발뺌하기 어려워진 최후의 순간까지 황우석을 두둔하고 그를 구국의 영웅처럼 묘사하던 조선일보가
모든 증거가 드러나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그에게 비판적 기사를 내보내던 당시의 그 천박하고 염치없는 행보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미네르바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던 시기 그의 글에 열광하던 팬들이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검찰이 그의 직업과 학력을 공개했을 때 난 황우석 사태 때의 그 "비이성들"이 걱정처럼 떠올랐다.
만약 그때와 같은 인지부조화가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 속에서 발생한다면?
하지만 지금 검찰의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비판이 황우석 때와같은 이러한 인지부조화의 상태인가?
오히려 검찰이 이를 유도한 측면들은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네르바의 체포 이전에 이미 그의 나이 및 경력에 대해 그동안 그의 발언을 토대로한 어느정도의 일반화된 추측이 있었고 체포되기 직전 작성한 그의 마지막 글을통해 이러한 추측을 본인을 통해 사실확인을 받은 순간,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긴급 체포"를 단행했다.
우습게도 검찰은 자신들이 잡아들인 것이 "진짜 미네르바"인지 가장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긴급체포를 단행했고 그리고 가장 의심스러운 대목을 먼저 공포했다.
"미네르바는 전문대 졸 실업자!!"
"거짓정보로 시장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죄목이면서 대체 시장에 무슨 악영향을 미쳤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면서 "진짜 미네르바" 여부에 대해 여론이 들끌을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을 가장먼저 건드린건 확실히 석연치않다.

여전히 "미네르바의 진짜 여부"는 인터넷에서 논란 중이고 시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검찰에대한 비판의 맥락은 이와 무관하게 명백하고 바람직하게 흐르고있다.

"국가가 인터넷에서 국가 정책을 비판한 개인을,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없이 몇 가지 사실관계의 다름을 근거로 <거짓 정보 유포>라고 체포-구속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다"

반면 보수우익이 이번 사건을 통해 싸우고 싶어하는 것이 누구이며, 무엇을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 이 조선일보 만평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네르바 교주그림 밑에 있는 촛불.....
인지부조화에 빠져 울부짖는 "광신도들".....

촛불로 대표되는 정부비판세력을 "전문대 출신의 실력없고 별볼일 없는 백수 인터넷 사기꾼"에게 놀아난 "미친 인간들"로 매도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난과 매도의 근거로 녹아있는 "학벌주의"의 추잡함이란....!

"대한민국의 영웅 황우석 박사님!!" 사진을 들고 울부짖던 극단적 우익들처럼 지금 누가 미네르바를 영웅이라 부르고 그를 교주로 떠받들고 있단 말인가!
위 만평이 가장 들어맞는 황우석 사건 때 그들을 두둔하던 조선일보가 체포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정황적 조건에 의해 던져지는 자연스러운 의구심조차도 마치 미네르바에 대한 광신적 추종으로 매도한다. 이런 낯 간지러운 짓을 뻔뻔하게 해대는 조선일보 따위의 찌라시가 대한민국의 주요언론인한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

처음부터 이런류의 싸움을 정권이 기획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수구우익의 나팔수 조선일보의 논조로 저들이 원하는 진흙탕 싸움이 무엇인지만은 확실해졌다.
그 더러운 싸움에 우리가 몸을 담글 이유는 없다.
우리의 싸움은 자명하다.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한다.
"대체 미네르바가 국가신인도와 금융시장에 어떤 악영향을 주었는가?"  -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는 정부가 문제삼은 외환시장을 교란했다는 미네르바의 글들이 실제로 시장에 아무런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반면 강만수의 헛소리가 외환시장과 환율에 어떻게 심하게 악영향을 주었는지 대조해 보여준다.(아래 그래프 참조)

그리고 우리의 비판과 주장은 다음과 같아야한다.
"미네르바 구속은 인터넷과 언론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며 인권유린이다!!"
"미네르바 구속은 경제를 파탄낸 정권이 자신의 책임과 잘못은 한 개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123168386032_20090112.JPG
     (출처: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2612.htm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제위기... 그리고?

가히 한 세기 한번 있을까말까한 결정적 전환점이다.
게을러 그동안 리뷰하지 못했던 지금 금융공황과 관련된 최근 2년여의 글들을 리뷰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언가 백가쟁명식 난리법석이 날만도한데.... 좌파적 논의들은 의외로 간략하다.

하나. 포스트 케인지안 류의 "금융세계화 비판".
주로 가히 현재 금융경제학을 평정한 위험분산을 모델화한 CAPM (자본 자산 가격화 모델)에 대한 공격들인데... 나름 정밀한데 구지 밟아찍지 않아도 이미 상황 자체가 소위 현대적 금융모델이라는 이 모델링과 금융화 기법이 끝장났다고 봐야지싶다. 허... 책장에 꼿혀있는 금융경제학 교과서 몇권이 졸지에 쓰레기가되는 시점을 목격하고 있는것이야.
하지만 역시나 단순히 자본이동 및 금융화에 대한 규제로 모아지는 해법은 역시나 아니올시다이다.

둘. 장기적 자본 축적 위기.
우선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기초한 장기적 순환의 마지막 국면으로 금융적 확장국면의 종결로 보는시각.
혹은 맑스의 공황론에 기초해 이윤율 하락의 경향과 과잉 축적의 위기로 보는 시각. 논자들에 따라 좀 다르지만 60년대 이후 불황의 장기적 축적 위기의 연속에서 이해함. 구체적인 지점에서 논자들이 이윤율 하락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그로스만의 이윤율 하락에 기초한 이론적 접근과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주로 자본간 과잉경쟁에서 이해한 로버트 브레너의 차이 정도가 구분될 수 있겠지만, 현재적 논점은 아니라고 보임.
그리고 정통적인 이윤율 하락경향보다는 바란-스위지 이론에 기초해 자본잉여의 투자 아울렛 부족에서오는 과잉축적론적인 접근도 몇편 보인다. Monthly Review 4월호에 실린 Foster의 글이 대표적인데 금융위기로부터 실물경제위기를 설명하는 금융세계화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훌륭했지만, 잉여자본의 투자 아울렛이 부족한 원인이 바란-스위지에게서는 독점자본형태로부터 설명되는데... 이론의 원초적 근거에 대한 보충없이 결과만을 따온건 좀 허술해보인다. ㅡ,.ㅡ

전체적으로 현재의 금융위기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축적체제가 70년대 공황위기와 브레튼 우즈체제의 붕괴의 난관을 달러 헤게모니의 확장을 통해 공황을 지연시켜온 것이며 이것이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것으로 이해하고있다.
논점에선 사라졌지만, 신자유주의를 독자적인 축적체제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조절이론 내지는 사회적 축적체제론 내부의 논쟁은 이것으로 독립적인 축적체제가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축적체제의 정치적 강압과 금융적 확장을 특징으로한 최후국면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듯 싶다.

그런데 이런식의 입장들에 대해서 나로써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는데...
1. 신자유주의를 2차대전 이후 축적체제의 연속으로 이해할 때, 따라서 단순히 조절양식의 변화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자본편향적인 사회정치적 상부구조의 변화, 달러 헤게모니와 연관된 금융세계화로 신자유주의가 특징지워진다.
이건 기간 유연전문화테제에 대한 연구나 조절이론의 포스트-포디즘에 대한 연구등 70년대 이후 노동과정의 변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들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된다.
다른한편, 기간의 신자유주의적 정치보수화를 단순히 노동-자본 간의 계급적 관계에서 힘을 자본측에 유리하게 구성하는 측면으로만 설명하기엔 확실히 설명력이 부족하다. 그것은 계급간 표면적인 정치적 힘에 대한 역학을 넘어 노동과정에서 계급간 대립과 관계 변화가 정치적 표층을 어떻게 재구성해왔는가로 이해해야만 이 정치적 형태의 30여년이 넘는 장기적 연속성을 설명할 수 있다.

즉, 신자유주의체제란 포디즘적 축적체제의 위기에서 체제 붕괴를 제어하기위한 상부구조의 재구성을 한축으로하며, 새로운 축적조건을 갖추기위한 새로운 기술적 환경의 등장, 새로운 계급적 관계의 맹아적 출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축적 조건을 자본의 축적 체제로 구성하는데서 발생하는 기술적, 계급역학적 문제들로인해 체제이행이 지연되었던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2. 이러한 시각에 기초할 때, 거의 모든 좌파적 논의들이 합의하고 있는, 2001년 넷 버블과 지금 2008년 금융버블을 동일한 금융적 확장국면의 연속과정, "쌍동이 버블"로 이해하는 현재 시각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다.

미국에서 발행된 "2008년 대통령 경제보고"에 실린 다음의 그래프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유용하다.

Capture1.gif

위 그래프는 총 자본이윤에서 금융이윤이 차지하는 비율을 5년평균변동값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래프에서 Y축 값이 증가하는 것은 실물부문의 상대적 위축과 금융부문의 상대적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바란-스위지의 시각에서 투자아울렛을 찾지못한 자본이 금융부분으로 몰리는 현상으로 볼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 추세에서 볼때 6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를 전반적인 경향성에서 하나의 싸이클로, 금융적 확장국면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 옳다.

다만, 여기서  "넷 버블"로 평가되는 2001년 버블 붕괴 직전, 따라서 버블의 확산과정으로 평가될 수 있는 95년부터의 소위 "신경제" 기간동안 금융부문 이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오히려 넷 호황의 붕괴 이후 자본이 급속히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이 투기적 금융부문으로 급속히 몰려간 것으로 보아야한다.
즉, 95년 이후 신경제 기간동안 확대된 "주식거품"은 그 자체가 실질 투자배출구를 찾지못한 자본이 금융부문으로 후퇴한 것이 아니라 실질 투자로 과도하게 몰리면서 발생한 "거품"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 산업이 주로 주식시장을 통해 투자자본을 유치하는 미국의 독특한 금융구조의 특징 때문에 자본의 금융적 확장국면과 동일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동안 과도하게 확대되어 투자구를 찾지 못하던 자본이 이 시기에 미친듯이 이윤을 찾아 몰려들었던 것이다.

즉, 체제이행의 실패의 핵심은 2001년 넷 버블 붕괴에서 발견된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과잉축적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본의 미친 기대를 허물어트린 좌절의 기원. 새로운 생산성, 새로운 시장, 새로운 소비를 향한 신기원이 신기루가 된 결정적 한계.
자본은 네트워크를 발견했고, 시장화를 시도했지만 그것이 좌절되었던 장면으로 나는 2001년 금융공황의 실체를 이해한다.

이후, 순수한 투기적 금융으로 후퇴한 자본은 마침내 붕괴했다.
모든 좌파적 논자들이 동의하듯 이 공황은 70년대 이후의 과잉축적, 더 길게는 2차대전 이후 미국주도의 세계체제의 결정적 붕괴시점을 의미한다. 국가개입을 통한 경기조절이 자본의 단기순환을 조절하면서 과잉축적을 구조화했고 그 구조적 축적과잉을 돌파하기위해 신자유주의적 체제변화를 장기적 축적체제의 마지막 순환지점으로 구성했다. 그렇다면 다시 케인즈로의 복귀는 이 체제위기의 무엇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문제는 그래서 다른 체제의 상상력을 상실한 이 시대, 이 붕괴 이후의 세계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중국의 헤게모니로 대체된다?, 새로운 브레튼 우즈체제가 수립된다?
우리는 우리의 대안도 모르고있지만, 자본이 이 체제 이후 어떻게 나아갈지는 원인에대한 많은 분석들에 비해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있다.

질문은 어떠한 표면적 정치구조와 금융구조의 변화에 던져져서는 안된다.
자본은 축적체제의 근원적 변동을 추진하지 않고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서있다.


하나의 가능한 대안은 30년대 대공황을 극복했던 2차대전 당시의 시나리오다.
세계대전을 통해, 자본간 살육을 통해 미친 축적을 모조리 소비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미국과 세계대전을 치룰 것인가?
그렇다고 미국 스스로 시발하기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실패의 상흔이 너무 크다.
불가능한 조건이다.

혹은?
살인적 불황. 인구의 절반이 실업에 빠지고, 수많은 기업이 가격 경쟁 속에 도산하고, 단기적 투기를 통한 극심한 금융투기와 불안이 확대되고, 개발도상국들에서 정치적 내전이 발발하고....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이런식으로 불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30년이 넘는 과잉축적을 소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불황의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향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세계는 혼돈이다.

그렇다면 또는?
자본의 역습.
시장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혹은 시장 이데올로기의 근본적 전환을 통한 시장 내부로 외부의 효율을 포섭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자본 그 자체의 축적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이념들, 사회적 관계를 축적의 관계들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노력들, 사회적인 것들에 대한 사유화와 사회적 효율의 긴장들에 대한 포섭의 노력들....
그리고 계급의 새로운 투쟁들... 더불어 새로운 진보적 미래에 대한 또다른 비전들!

아직은 혼돈 그 자체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엄청난 격변기, 낡은 것들이 죽고 새로운 것들이... 착취의 갈퀴와 해방의 창으로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그러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밑에 엄청난 것들이 꿈틀대고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자유주의의 종말? -신자유주의 강화와 좌파의 몽상

신자유주의의 종언?

영국을 포함한 유럽과 금융위기로 폭탄을 맞은 미국에서 "은행 국유화"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유화"라는 단어의 상징성으로인해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것도 오직 좌파에서만.
이제 좌파에게도 별로 멋져보이지 않는... 이거 왠지 1920년대 소련이나 동구에서 완장차고 다니며 "당-국가"로 모든 생산수단을 집중해야한다고 믿던... 철지난 뭔가를 떠올리게하는 "국유화"의 단어를 들으며 어찌돌아가는 영문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신자유주의, 좀더 재수가 좋으면 자본주의 자체가 아작이 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환상에 빠지고들있다.

조금 냉정한 좌파들은 적어도 사태가 "자유방임"을 성경구절처럼 암송하며 민영화, 부자들을 위한 감세, 복지예산 삭감, 자본자유화를 특징으로하는 워싱턴 콘센서스(Washington Consensus)가 아작나고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을 복원하는 "케인즈의 복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나마 냉정을 유지한다. 좀더 침착하게 시장과 국가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좌파적 대안부재에 대해 반성도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 모두에서 사태의 인식 자체가 심각하게 잘못되어있다.
"국유화"라는 단어가 풍기는 별로 유쾌하지않은 추억 속의 좌파와 짝꿍먹던 "공산주의 국유화" 이미지말고, "신자유주의 국유화"의 측면이 어떤 것인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월가에는 어떤 일이?!

우선 이 국유화 계획이 발표되기 전, 2년 동안 미국 은행들과 월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이 엄청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미친듯이 불어터지던 시점, 돈없고 별로 갚을 능력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꼬셔다가 돈을 빌려줘서 집을 사게하고 이 집을 다시 담보로 잡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을 빌미로 이 담보 대출을 다시 증권화해서 전 세계에 팔아먹은 월가의 CEO들과 투자 설계사들!!
이 부실은 곧 터지고 말꺼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하던 2006년 한해, 골드만 삭스는 자사의 CEO와 투자설계사들에게 보너스로 (연봉이 아니라 보너스다!) 총 160억 달러 (19조 2천억원) -월가 전체가 아니라 골드만 삭스라는 은행 한 곳이다- 를 지급했다. 그해에 월가의 톱 트레이더들은 평균 5천만 불 (6백억원)을 보너스로 받아 처먹었다.
그리고 다음해 2007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후에도 이 보너스는 겨우 4.7% 삭감된 상태로 유지되었으며, 같은 해 미국 5대 은행은 (메릴 린치,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 리만 브라더스, 베어 스턴스) CEO와 트레이더들에게 총 660억 달러 (79조 2천억원)을 지급했다.

한국에서 깡패들 거느리고 사채돌리는 이들이 하는 "카드깡"을 현대적 금융으로 포장하여 벌어진 이 미국발 금융위기는 말 그대로 사기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 모두가 행복하다.
없는 돈에 돈 빌려 집 산 사람도, 이 집을 담보잡은 은행도, 그 은행으로부터 이 현대판 카드깡을 증권으로 구매한 사람도.
하지만 바보가 아닌한 누구나 알고있다. 집값은 항상 오르기만 할 수 없다는걸.
금융에 빠삭하다는 이 전문가와 CEO들이 아무리 위험분산을 설계하더라도, 오히려 이 분산을 통해 집값이 폭락하는 순간 금융위기는 모든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발발할 것이라는걸 몰랐다는건 넌센스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대부분이 불행하다.
모기지 대출을 받은 미국의 서민들, 재태크 해보겠다고 이 증권을 산 미국의 중산층, 미국의 달러화의 기축통화력에 기대 미국의 부실자산을 사들은 개도국 국가 기업들, 이 부실 위에서 미친듯이 소비하는 미국의 수요에 기대 생산하는 FTA에 목매다는 수출국가들... 모두 아작이 나고 있다.

그렇다면 한 해에 수백억원씩 보나스로 받아처먹은 월가의 대단한 님들은?
이제 당분간 보나스는 없겠다. 큰일 나셨다. 그래서 한푼도 뱉어내는 일은 없겠다.


신자유주의 은행 국유화 - 단물은 지들이 다빼먹고 책임은 국민이 지는!!


좌파를 혼란에 빠뜨리는 신자유주의 정권들에 의해 단행되고있는 "은행 국유화"는 지난 2월 영국에서 노던 로크 은행의 일시적(!) 국유화로 이미 선례가 있다. 현재 미국에서 9개 상위 랭크 은행들의 부분(!) 국유화 계획이 진행중이다.

영국과 미국의 은행 국유화 계획에서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국의 브라운 총리가 노던 로크 은행의 국유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제한 것이 이 국유화는 향후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민영화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은행 국유화 계획은 M&A를 통해 그나마 수익성이 있는 파트들은 국유화 이전에 판매하고, 오직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분과 같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파트를 국가가 사들이겠다는 점이다.
 
추가로 미국 대선 레이스의 몇 장면.
어제 메케인은 버지니아 유세에서 오바마의 몇몇 사회복지 정책을 근거로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공격했다. 두 후보 모두 "감세"를 동일한 성경구절로 읊고있는 가운데, "저놈은 가짜!!"라는 소리다.
그놈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놈 다에게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체 감세정책을 확장하고, 오바마 너는 거기다가 쥐꼬리만한 사회보장정책도 추가하면서, 지금 기록적인 재정적자 속에서, 대체 공적자금 7000억 달러와 은행 매입 자금에 의한 적자는 어떻게 충원할래?"

답? 바보냐? 민영화!!

"국유화"라는 단어에 삘이 꼿힌 좌파들은 무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맞다. 지금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있다.
부자들의 돈잔치로 경제가 파산나는 순간,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그 부실을 떠안았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은행 국유화 계획이 촌구석 강단에서 워싱턴으로 복귀한 케인즈주의자나 무덤을 파고나온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라 민영화, 감세, 자본시장 자유화를 성경구절처럼 외치던 대가리의 동일한 뇌주름에서 발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그 잘난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국가가 개입해서 열라 해처먹은 부자놈들이 안전하게 빠지도록, 그 부실덩어리는 국민들이 지고 버티어서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실이 해소되면 다시 부자들의 손에 안전하게 인도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신문에 미국이 은행국유화에 신중해야하며 우리는 전혀 무관하게 묵묵히 민영화의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칼럼을 써대는 그 잘난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주둥이가 동일한 금융파산이 한국에 닥치면 거품을 물고 공적자금 투입과 은행의 일시적(!) 국유화를 외칠 거라는데 아니면 앞으로 나는 평생 연애 못한다고 있지도 않은 애인을 걸겠다.(있지도않은 애인 담보 발언! - 서브프라임 모기지란게 이런것이다 -_-;;;)

영국의 노던 로크 국유화 때 "자본"이라는 성령의 실체보다는 "시장 자유화"라는 경구에만 끝까지 충실했던, 그래서 부실을 국민에게 떠넘기지말고 파산케하라!고 떠들어주신 보수당의 그림자 내각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고지식해도 양심에는 원형 탈모증은 있었던게다.
원형 탈모증따윈 없이 양심에 숱 무성한 우리나라 정치하는 것들, 경제학자들, 경제 전문가들.... 그 더러운 주둥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는 너무도 뻔하지않은가.


안개 속의 신자유주의

사실 지금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를 고민하는 것은 배부른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 한국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의 본편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오로지 달러와 깡패적 힘에 의지하는 미국의 "생산없는 소비"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국의 기업들은 미국이 또 다시 "면죄부" 같은걸 그려내고 그걸 증권화해서 금융버블로부터 미친듯 소비해대지 않는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어떻게 강타하는지 곧 뼈저리게 채감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 헤게모니에 근거한 자본 세계화의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것은 축적체제의 하나의 일면일 뿐이다.
축적체제란 보다 다층적인 사회적 구성의 총체로부터 파악되어야한다.
그것은 노동과 자본의 태초의 만남을 보여주는 노동과정, 그것을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조절하는 제도적 장치들과 국가체계, 그리고 이러한 국가들간의 국제적 관계와 헤게모니.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의 위기는 단지 "금융세계화"의 단층에서가 아니라 축적체제의 총체적 구성 속에서 파악해야하며 이로부터 그 위기의 깊이를 가늠해야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다른 측면들, 비정규직 양산을 기초로 착취를 사회화한 신자유주의적 노동과정을 포함한 작금의 착취체제의 근본적 종식인 것인가?

난 단연코 아니라고본다.


위기의 기원

사실상 지금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미 2002~3년 경 발발했던 소위 인터넷 공황의 재발이다.
사태의 본질은 따라서 그 기원에 있다.

약 95년부터 미국에서 "신경제"라는 이름으로 10년가까운 장기호황이 어떻게 거덜났었는지 기억을 더듬을 필요가있다.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신기술이 생산성을 혁신하고 지식과 정보의 새로운 상품화로부터 자본이 이윤의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했다는 미친듯한 믿음이 미국을 휩쓸었다. 그리고 지금의 불황을 있게한 "집값은 영원히 오른다"라는 미친 믿음보다 왠지 보다 그럴싸하고 정말 그럴것같은 "디지털의 혁신의 속도에 의한 영원한 호황"이라는 광신적 믿음이 판을 쳤다.

예배당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는한 행복"한 것처럼, 새로운 기술과 환경이 실물 경제를 영원히 끌어올릴 것이란 걸 믿는한 자본은 행복했다.
믿기에 주식가격은 매일매일 뛰어올랐고, 이게 오를 때마다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가격을 실질자산으로 착각한 어리석은 미국인들의 미친듯한 소비에 케인즈식의 "유효수요"는 잘도 창출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상품을 빨아들여 소비해대면서 세계를 부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뻥이었음이 엔론 등의 회계부정이 드러나면서 거품이 터졌다.
잠깐, 지금 사태와 달리 여기에는 좀더 분석의 여지가 남아있다.

마르크스의 공황론은 "이윤율 하락"을 공황의 장기 주기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이윤율이 곤두박질 친 지점에서 자본끼리 피터지게 싸워서 과잉생산을 자본 간 살육으로 해소하는 방식이 유행이었다. 물론 단기적 싸이클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방식이 행해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축적체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방식이 이루어진다.
노동과정의 변화를 통한 토대적 재편에서 이러한 토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국가 제도적 상부구조의 재편까지.
보통 우리가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이야기할 때 이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축적체제를 의미한다.

2002-3년 경의 인터넷 불황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토대적 부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즉, 지금의 노동과정에서의 새로운 현상이 과거 증기기관의 발명과 철도개설, 혹은 포디즘적 생산라인의 구축처럼 생산성과 노동-자본관계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새로운 변화를 현실화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원인은 둘중의 하나다. 정말 아무것도 벌어진게 없었거나, 벌어지긴 했는데 자본이 이를 상품화하고 자본관계에 포섭하는데 실패했거나.
보통 이문제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좌파들은 전자라하고, 난 후자라한다.

그동안 내글을 좀 꼼꼼히 읽어봐준 이들은 내가 벌써 "네트워크" 문제로 돌아와있다고 감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이글에서 또 장황히 설명하기엔 글도 길고 주제도 살짝 벗어난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강조되어야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제부터 본편이 시작될 것이고, 이로부터 위기 극복을 위한 자본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대두될 것이다. 몇몇 경제블록들을 현실화 할 수도 있고 새로운 블레튼 우즈체제를 현실화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상부구조의 변화들은 반드시 토대로 직행할 것이다.
"자본이 노동을 새롭게 착취하는 신천지"를 믿었다가 인터넷 불황으로 아작났던 자본은 아예 토대를 벗어나 "땅투기"를 줄줄이 꼬아서 한번더 버블을 맛봤다. 덕분에 토대없는 금융적 확장의 쓰디쓴 끝맛도 함께 맛봤다.

그래서 이제 자본은 다시 귀환한다.
머나먼 월가가 아니라 우리의 공장으로.
영혼까지 뽑아먹는 착취의 칼날을 정비하고, 하루짜리 비정규노동으로 우리를 빨아먹기위해.
심지어 해고되어 방안에서 웹써핑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여가와, 소비와 아이디어 모두를 이윤화하는 새로운 대륙을 향해... 자본은 닻을 올린다.

신자유주의는 지금 후퇴가 아니라 본격적인 궤도를 향해 출발하고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저항의 유쾌한 상상력



오늘 새벽 시위본대가 차도에서 강제해산된후 생겨난 새로운 시위법.
경찰이 진압 전 방송으로 "차도를 점거하는 것은 불법행위오니 해산해주시기바랍니다"라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듯.

건널목 양편에 서있다가 파란 신호로 바뀌면 촛불을들고 차도 중앙으로 몰려가 구호를 외치다가 신호가 바뀌면 마저 길을 건너고 대기. 신호 바뀔때마다 반복.

위법 운운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에게 비폭력으로 저항하면서 도로에서 인도위로 몰려나자 그들이 말하는 법과 제도의 빈공간을 위트있게 파고드는 이 엄청난 저항의 상상력....



한때 운동권 내에서 68혁명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런류의 상상력을 꿈꾸었더랬다.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 정말로 몰랐던 사실은 저항의 상상력은 방에 앉아서 이루어지지않는다는 점이었다. 제도와 권력과의 직접적인 충돌 속에서 비로서 아이디어는 살아나고  제도와 권력을 파열하는 힘을 창출한다.



마치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듯 재기발랄함으로 밤새 공권력과 싸운 지친몸으로 웃으면서 신호등을 건너고있다. 정말 놀랍지않은가... 이 창조적 저항의 상상력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해들


국민과 한나라당-이명박 사이에 거대한 오해가 있었다.

1.
국민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지난 10년간 정권을 잃었던 수구세력의 재집권을 통해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저들의 본질에 대한 아주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2.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자신들의 대선승리가 자신들이 떠들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국민들의 진정한 동의라고 "오해"했다. 수없이 "공안정국"을 형성하던, 국민위에 정권이 군림하던 그 시절이, 권력자들의 파렴치한 축제가, 파쇼적 통치가... 이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집권으로 다시 가능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지난 10년의... 그 하찮은 민주주의가 모든걸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지난 10년간 권력의 밖에서 이들은 정말 모르고있었던 것이다.

3.
이들은 자신들이 집권하던 시절... 거리를 진압하는 공권력 없이는 단 하루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늘 거리에서 공권력의 대상이던 "운동권"이 지금 다시 거리에 나섰다고 "오해"하고있다.
물대포와 사과탄, 전경의 발길질이 난무하는 이 폭력의 장면은 그때 그시절 거리에서 공권력과 마주섯던 운동권인 나는 전혀 새롭지도, 크게 놀라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장면들이 몸서리치게 놀랍고 두려운 것은,
이 폭력의 대상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않은 아주 평범한 일반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 정권은 집권 3개월만에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있다!

아마 거리에 선 이들이 그때 그시절 "운동권"이었다면,
혹은 지금의 시민단체, 노동단체, 학생조직들이었다면
이런 대치와 폭력을 예상하고
당연한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집회를 사수하려는 이유로,
적당히 투쟁을 고양하려는 목적으로,
하지만 사태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수위에서
돌과 쇠파이프, 화염병으로 무장하였을 것이다.
늘 그랬듯....
투쟁은 격렬하지만, 조절될 수 있는 수위에서,
시위는 정세의 흐름을 잡으려는 정권과 "운동권"의 '거리의 정치'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항쟁은 평범한 민중들이 결합함으로써
시위가 더이상 어느 누구도 조절할 수 없게되는 순간,
정권과 운동권의 예상을 벗어나는 순간 발발했다.

2002년부터 거리의 광장에 익숙한 일반 시민들은
지금 그들이 전혀 익숙하지않은 권력의 폭력과 마주했다.
이것은 이 정권의 결정적 실수가 될 것이다.

이들은 지금껏 거리에서 촛불을 모으면 바램이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경험을 지닌 이들에 불과했다.
지금까지와달리, 권력의 완강한 저항과 독선으로 수만의 촛불로도 바램이 이루어지지않는 순간,
이들은 이미 요구의 수위를 "정권타도"로 높여잡았다.
투쟁의 하강기를 항상 고려해야하고, 거기에서는 반드시 어떤 성과를 움켜쥐지 않으면 다음 투쟁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운동권"은
결코 집권 3개월의 정권을 투쟁으로는 끌어내릴 수 없으며,
정권 타도의 요구는 결국 투쟁의 하강기에 스스로의 대오를 괴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결코 이런 어리석은 구호를 내걸 수 없다.

"정권 타도"의 구호는 지금 다음 투쟁을 기약하지않기에 가능하고
그래서 정말 "끝"을 보지 않으면 수습될 수 없는 국면으로 들어서고있다.
이젠
정권도
운동권도
그 어느누구도
투쟁의 수위를 조절할 수 없게되어가고있다.

무장도 하지않은 일반 시민을 향한 저 폭력이 만약 한두번만이라도 더 재발된다면
시민들이 스스로의 도덕적 가치로 무장한 "비폭력"을 해제하고
자기방어의 의지로 돌을 잡는 순간
항쟁의 도화선은 점화된다.

이 미친 정권은
지들이 떠들어온 "잃어버린 10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지 지금 당장 파악하지않는다면
자신들의 공권력이 마주하고 있는것이 늘 그래왔던 운동권이 아님을 모른다면,
모든 항쟁은 시민들이 "운동권"과 함께 돌을 든 순간이었고
지금은 역으로 시민들이 먼저 거리에 나섯고 이들이 폭력에 맞서 돌을 드는 그 순간이
바로 항쟁의 시작임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코 올해를 넘길 수 없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정권이 노무현 정권이처했던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며, 정권 말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을 예상했지만,
이토록 빠르게 스스로 결정적 위기로 빠져들것을 예상치는 못했다.
정말 이토록 어리석고
이토록 무능력할줄이야.....
그리고 이토록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수 있다니....
정말 할말이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친소파동과 광장의 10대


1.
한국이란 사회는 경이적이다.
한국사회를 이성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도대체가 불가능하다.
아니, 좀더 정확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한국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지성과 패러다임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비이성적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변화와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이며 합리인 패러다임의 부재, 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지성과 지식인의 무능, 자기사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박제화된 이념과 지식이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광장을 형성한 이들은 끊임없이 그 집결과 해산을 반복하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궤적을 형성했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 노무현의 극적인 당선과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통해 대중의 광장 집결이 좌파적 분출을 형성하는 듯이 보였다면, 황우석 사태, D-War 논쟁 등을 접하며 이 집단적 결집이 극우적으로 표출되는 상황을 목격했다.

아마 이것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일듯하다.

우선 대중들이 기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치적 자각은 유일하게 "집단적 힘"에 대한 자각과 그 힘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집단적 자신감, 그리고 그 결집을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집단화에 대한 긍정"일 것이다. 그 집단화가 포퓰리즘의 전형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공포감은 오직 정치적으로 반대의 위치에서 집단화된 대중과 마주섰을 때 비로서 경험된다. 이 경험을 통해 우익은 이를 "통제"할 정치적 필요성을 배웠고, 좌파는 황우석 사태와 D-War 논쟁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대중의 광장으로의 집결이 정치적으로 좌우를 끊임없이 갈지자 횡보를 해왔다는 것은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의 무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대중이 끊임없이 분출되어 나오게되는 한국사회의 특정한 일관된 원인이 있다. 대중은 자신이 느끼는 위기를 다양한 정치적 계기를 통해 표출하지만 모든 정치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위치에서 재빠르게 이에 영합하거나 반대의 위치에서 그 비합리성과 집단적 광기를 경멸한다. 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는 정치. 정치적 결집의 계속된 비일관적 표출은 어떠한 정치도 대중의 위기에 대한 답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줄 뿐이다.

2.
매번 그 분출은 새롭고 경이적이다.
이번 미친소 파동에서 한가지 새로운 것은 "10대들"이 거리로 나섯다는 점이다.
우석훈 류의 얄팍한 사이비 지성인들은 여기에 잽싸게 세대론을 가져다 붙인다. 20대가 88만원 세대라면 지금의 10대는 "막장세대"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줄줄이 특집글들을 통해 "웹 2.0" 개념을 본따 이들을 "2.0세대"라고 지칭한다.
이들에게서 왜 전통적인 계급적 분석의 접근보다 세대론의 접근이 필요한지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고찰은 엳보이지 않는다. 그저 매스미디어가 원하는 특정 사태를 지칭하는 아이콘을 필요로하고 그 아이콘이 정치적 바람을 타고 "뜨는" 것을 바라는 얄팍함이 전부이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 S라인" 등등... 매스미디어의 천박함이 사태를 호도할지라도 이를 통해 사태를 이해하려해서는 안된다.

세대론의 문제는 특정 세대가 특정한 정치공간에서 형성한 자기 세대의 보편성이 시간의 경과를 통해 사회와 시대에 개입하며 영향을 미치는 일관된 정치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데 있다. 월드컵 때 광장에 쏟아져나와 여러 촛불집회와 정치적 경험들을 거쳐온 지금의 20대는 왜 광장에서 사라졌는가?
그들은 특정 연령에서 경험한 특정한 정치적 경험들을 시간의 경과 속에서 일정한 특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일관된 정치환경 속에서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본과 마주서는 특정한 위치의 변화들 속에서 자신의 표출을 달리할 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는 지금 자본과 어떻게 대치하고 있는가일 뿐이다. 계급론의 접근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너희의 얄팍한 상업적 지식이야말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있다.

3.
지금의, 특히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결코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위협을 넘어서있다.
시장은 자신이 사회적 수단임을, 인간의 경제는 오직 공동체의 과정임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개인을 착취와 극단적 위협의 나락위에 세운다. 근대 시장경제의 수립 이후 이러한 위기에대한 인간의 대응은 항상 공동체의 복원에 대한 요구였다. 이에 정치세력이 어떻게 응하느냐에따라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가 자본의 위기 이후의 간기를 매꾸어왔던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대중들이 공동체로부터 보호받고자하는 위기의 신호를 접하고 있고 (왜 2002년 월드컵 이후 기간 모든 사태가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색채에 쉽게 물들어 표출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해야만한다) 모든 정치세력은 그동안 이러한 신호에 무능하게 대처해왔다.

한편 이것은 분명 자본의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위기를 의미한다.
과거의 위기는 자본이 공장을 통해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이러한 착취의 범위를 확장하기위해 기업의 수직적/ 수평적 확장(독점자본)을 이루면서 발생하는 자본간의 경쟁이 유발하는 생산의 무계획성이 위기의 핵심이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러한 자본독점을 극단화해 국가화하거나 (소련식 국가사회주의) 국가 계획하에 종속(파시즘)하는 것이 위기 속에서 실패한 정치세력들이 부여잡은 극단적 파국의 해결책이었다.
반면 지금의 위기는 자본의 착취가 마침내 공장을 넘어 사회 일반으로 확대되었다는데있다. (네트워크.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내 주장의 핵심이다)
노동계급은 이제 결코 공장에서의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와 임노동 관계를 통해 정의될 수 없다. 노동계급의 구성의 동태성은 자본이 어떻게 자신의 착취의 대상을 규정하느냐에의해 우선 규정되고, 이러한 자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계급성을 형성한다.
우리는 광장의 10대를 바라보며 자본이 어떻게 교육의 공공성을 파괴하며 교육을 시장화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적 착취를 어떻게 확대하고 있는지를 고찰해야만하며, 광장에서 사라진 20대를 보며 자본이 자신의 착취를 임노동 관계 외부로까지 확대하면서 비정규직의 임시적 계약관계를 만연시키면서 "임노동관계에 포섭되는게 유일한 목적"이되도록 어떻게 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좌절시키는지를 보아야한다.

4.
미국 소고기 수입이 저지되든 아니든, 하나의 정치적 사태는 항상 일정한 결과를 통해 해소된다.
좌파는 황우석 때 대중의 반응에 경멸하고 지금 터져나온 대중의 분출에 고무되어있다. 늘 답답한 것은 좌파는 대중이 반응하고 있는 일관된 지형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황우석 때 우리가 경멸해야할 이면에 그 에너지가 지칭하는 반자본의 심층을, 지금 터져나온 투쟁에 고무되기 이전에 이것이 새롭게 경도될 위기를 결코 바라보지 못한다.
우익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이러한 에너지를 "통제"해야겠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학습의 결과였고 통제되지 않는 지금의 분출에 당황하는반면,
좌파는 어제 자신이 경멸하던 대중이 오늘 자기 옆에 있음에 넋놓고 황홀해하고 있을 뿐이다.
바보는 역사를 이룰 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홈페이지를 복원하다


지난 1월 갑자기 뽕빨나서 사라진 홈페이지를 복원했다.
겨우 받아놓은 홈피 데이터들을 복원하고 제로EX를 사용해서 새로 구축.
거의 미국생활과 함께한 홈피라
그간의 기록들이 나름 소중했는데... 안날리고 멀쩡히 복원성공. ㅜㅜ

이제 방학도 했고....
꾸준히 업뎃하고....
아마 이곳 진보넷 블로그와 같이 운영하지싶다. 글들은 주로 중복 게제겄지만.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theleft.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있는가...


92년 경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대학의 학생운동 그룹과 긴밀히 연계되어있던 한 고등학생 정치조직에서 활동중이었고 학내 활동과 관련하여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고 조직의 지역위에서 활동중이었다.
91년 5월 투쟁이 유서대필사건 이후로 처참하게 깨지고... 운동이 1년여를 표류하던 끝에 이제 당 건설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유일한 희망처럼 아주 은밀히 전해져왔다.
지금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가벼운 감기몸살을 몸에 달고 산듯한... 어떤 정치적 흥분상태.
그러던 어느날, 이것이 사건의 아무런 전후 설명도 없이 "당 건설 무산"이라는 소식으로 전달되어오고, 우리를 지도하고있던 대학 조직단위의 분열, 조직라인의 붕괴, 지도선 단절, 몸담고 있던 고등학생 정치조직의 공개활동으로의 전향계획 등을 쉴세없이 접하며... 열 여덟... 아직 채 성숙지도 못한 영혼과 육체를 휘감고 있던 정치적 흥분은 졸지에 수습할 수 없는 괴로운 열병이되어 괴롭혀왔다.

그리고 또 어느날...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잡지가 창간되고 서점에서 나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공개정당이라는 "한국 노동당" 창당 소식을 이 잡지를 통해 전해들었다. 숨이 막힐듯한 답답함과 배신감...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후에야 자세히 안 일이지만, 당시 당건설 논의는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이라는 비합 지하 혁명정당이 창당 코 앞에서 당시 당건설 논의의 최대 계파였던 인민노련이 공개합법정당으로 노선을 전환하면서 (이른바 "신노선") 당건설이 무산되고 지금의 민노당, 진보신당의 전신인 통합 민중당 (한국 노동당과 민중당의 통합)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후로 오랜시간... 민노당이 17대 총선에서 10석의 의석을 내고, 그리고 지금 또 분화되도록... 개인적으로 당원가입이나 당 활동에 참가하지 않았던것은 여전히 비합전위노선을 추종해서, 공개적인 합법정당에 비판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어릴적 혼란에 대한 원망과 그때의 배신감 때문이었다.
가슴 속... 씻기지 않는 모종의 적대감은 흔히 좌파들의 민노당 가입을 주저케했던 민노당의 주사파 NL 따위가 아니라 진보정당 운동의 진정한 뿌리. 좌파 진보정당운동의 본류.... 인민노련의 신노선에 품었던 그 어릴적 배신감 때문이었다.

그럼 당시에 비합전위정당...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의 창당이 필요했던 것인가.
아마도 아니었을테다.
단지 난 그 흐름의 가장 밖에, 그 흐름과 전환의 무엇도 공유하지 못한체 그 정치적 결과들만을 수용해야했던 아직 소년티도 벗지못한 10대의 어린아이로써 대책없이 무언가 꿈꾸게하고, 어느날 또 대책없이 그것을 앗아간 그 운동과 비로소 마주하고 화해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게다.

지금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민노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4.9 총선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의 석패, 2.94의 당 지지율을 밤잠 설치는 안타까움으로 마주하면서 난 마침내 그 후로 15년 이상을 무언가를 찾아 갈망하게했던 어릴적 그 좌절의 근원과 마주앉아 마침내 화해했다.
그래, 어쩌면 "진보"는 당당하게 그렇게 제 길을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있다.
단, 그 흐름에 얽혀 길을 잃고, 또 다시 만나기까지...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은 그 시간이 홀로 서러웠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사람 용서할 수 없는 이가 있다.
92년 당시 한국 노동당 창당을 알려왔던 그 잡지에 실린 또 다른 기사 한토막은 당시의 나를 걷잡을 수 없이 흔들어댔다.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한 현장 활동가의 기고라며 실린 그 글은 사회주의와 혁명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경실련과 같은 시민운동으로 변혁운동이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성등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담고있었다.
그리고 그 필자는 지금 이번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김근태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민주화의 구 시대가 가고 선진화의 새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질문에, 아직도 그 질문을 기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16년이 지난 지금 답을 해주어야겠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있다.
이 혁명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좌절했던 "무장봉기의 가능성"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총칼로라도 뒤집어 엎고 싶었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절망감들에 대한 분노, 이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희망... 혁명은 하나의 정치적 사건과 행위가 아니라 지루한 과정이고 투쟁임을 당신이 좌절한 그 후 우리는 배웠다.
혁명은 지하에서가 아니라, 총칼로써가 아니라 매일의 투쟁과 연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인민의 생활과 땀으로 이루어짐을 비로서 알았다.
그동안 그 모든 변절이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의 전부를 뒤엎어야했던 그들이 겪었을 그 좌절의 시간이 나 스스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비로서 오늘에서야... 당신의 그 잘난 주둥이를 싸늘히 웃어줄 수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mb야... 근혜언니를 제발쫌....


진보신당의 2% 부족하고, 0.06% 부족했던 선거결과로 속이 뒤집어져서 다른건 하나도 안보였는데....
생각해보니 이번 총선. 참 무섭고 아찔하다.
정말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근혜 언니 아니던가말이다.
한국정치... 원래 웃겼지만 이 블랙코미디를 화룡정점의 극한으로 승화시킨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연대".... 보수정치세력이 아무리 천박했어도 그동안 자신의 보스정치, 파벌정치의 천박한 정체성을 이렇게 대놓고 드러낸적은 없었다. 이 말도 안되는 당명과 조직명으로, 당명에 붙어들어가는 근혜언니는 한마디도 안하고서도 자기이름 팔아먹는 것을 단지 무언으로 묵인해준것만으로도 당 밖에서 스물 여섯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공천파동으로 언니를 핍박한 당사자 이방호를 역시 주문 한줄 왼적없는 극강 내공의 "저주"만으로도 댕강 날려버리고 정치적으로는 엉뚱하기 이를데없는 민노당의 강기갑까지 당선시키는 초절정 정치파워를 발휘했다. 과거 승상님도 이정도는 못됐을껄?

이명박 당선 이후 인수위에서 "어륀쥐~" 씨부리고, 강부자 내각에 고소영 S라인으로 코드 맞춰주면서 민심이 분명 이반된듯한데 딴나라가 과반을 넘어선 것에 당췌 이나라 국민들 머릿속이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민심이반은 총선에서 드러났다.
엉뚱하게도 근혜언니가 초절정 정치내공을 지닌 절대고수로 등극하는 것으로!!!

지난 대선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이 승리함으로써 이미 끝나버린 거였다. 선거는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이명박의 정치적 대척점"은 여전히 근혜언니였고 정치적 패자로 핍박받으며 토라져 지역구에 눌러앉아 입만 다물어도 당밖으로 스물 여섯 (플라스 강기갑 1) 당 안으로 서른 다섯의 금뺏지를 찍어냈다. 언니의 조건상 정면으로 각을 세울 수 없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명박은 이미 시작부터 국민들로부터 맛이가게 얻어맞은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집어든 몽둥이를 잘못 잡았을뿐.

그리고 진정한 공포는 여기에 있다.
이 수구꼴통들이 민중들에게 선사할 가진자들 배를 정말로 터지도록 불려주고 노동자 서민을 극한의 고통과 생존의 한계로 내모는 이 미친 세월이 2mb 정권 이후로도 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노태우 정권 때부터 그 어느 정권도 임기말 레임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두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우선 5년 단임제의 제도적 조건이다. 2년 반정도 흐르면 집권자는 뭐하나 재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당에서 애들은 차기 준비하느라 줄서기 바쁘고 차기를 노리는 건방진 애들은 서서히 나댄다. 집권기간 자체가 슈퍼파워 대통령제에 비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둘째는 87년 이후 한국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다. 경제적으로 국가주도의 후발도상국의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체제가 쫑나고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이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전략체제가 해체되는 시기였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전환기였다.
즉, 더이상 성장은 없다. 극렬한 착취만 있을 뿐.
집권 말엽... 이 척박한 삶에서 민중은 집권자에게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경제적 측면에서 분명 연속적인 과정에 있었음에도 87년 6월 민주화항쟁, 97년 정권교체의 정치적 변곡점들은 사회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근본적인 착시를 형성했다. 삶의 고통은 이땅에서 한번도 뒤바뀐적없는 지배계급에 의해 개발독재에서 신자유주의체제로 이행해오면서 가중된 것이지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집권세력의 변화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 아니다.  즉, 정치적 민주화와 야당세력의 집권은 한국사회체제의 반민중적인 일관된 변화과정의 궤도를 전혀 뒤바꾸지 못한체 민중들은 과거 수구세력의 재집권이 현실을 바꿔줄 것이라는 근본적 착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을 통해 우리가 여전히 같은 궤도 위에 있음을, 아니, 오히려 이 숨막히는 질주가 미친듯이 가속되는 것을 지금부터 경험해가면서 민중들은 정치적으로 무엇을 학습하게될까?
이명박 정권 기간은 진보정치세력에게는 분명 비상을 준비할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저 보스정치, 계보정치의 정치적인 극한의 낙후성이 또 한번 정치적 착시를 형성할 밑거름이 되고있다. 이번 총선은 이에대한 저주스런 징후이다.
단지 보스 밑에 밥그릇들고 줄서있는 저 저열한 싸움이 정치적 대척점으로 인식되고있다.

박근혜는 이미 노련미를 획득할만큼의 정치적 경험들을 축적했다.
그녀는 이미 이번 총선에서 마술처럼 벌어진 자신의 힘이 이명박과의 정치적 긴장을 통해 부여되고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 긴장에서 결코 상대를 압도해선 안된다. 상대가 자빠지도록 흔들어서도, 힘을 실어주어서도 안된다.
그녀는 적당히 당내에서 핍박받는 소수그룹 수장의 이미지를 유지하며 버티다가 집권 말기 이명박의 레임덕 속에 화려하게 당을 장악할 것이다. 직선제 개헌 이후 모든 대통령이 레임덕 기간에 그랬듯이 이명박은 탈당할 것이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밑에 다시 일렬종대하며 집권자를 공격하고 한꺼풀 벗어보는 뱀과 같은 탈피의 위장을 시도하겠지....
설령 이명박 똘마니들이 조폭 특유의 "의리"를 지켜 버티고 몽준이 같은 애를 세워서 버텨도 손해볼건 없다. 과거 열우당이 어떻게 침몰했던가? 애들 데리고 나오면 난파선에서 살아남으로려고 묻어나오는 애들 무수할껄? 들어갔다가 같이 언니 모시고 나오든, 당 밖에서 노회해서 더는 노욕부리기 힘든 회창이 나부랭이들하고 붙어먹어 버티던... 당밖에 있던 똘마니들까지 쓸어모으면 단방에 원내 제 1당이 될 수 있다. 집권 말기... 저 인기 하나도 없고 국민들에게 저주받는 정권을 깔끔히 털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위장하기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가 어디있나?

이 위장은 식상한 스토리지만 충분히 한번 더 속아줄만큼 완벽하다.
정동영이 노무현에게, 열우당이 청와대에 도마뱀이 꼬리자르듯 잘라내고 욕하고 대들어도 그 꼬리의 몸통이 누구인지, 결국 그들이 한몸임을 국민들은 정치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되려 같이 지랄하고 지 애비 욕하고 자빠진 후려자식 취급만 당할 뿐....

하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박근혜는 처음부터 집권자인 이명박과 맞짱으로 꼬나보며 살아나갈 힘을 얻었다. 한몸이지만 아닌듯... 이 예견된 착시는 몸서리치게 두렵다.

이명박이 정말로 부디부디 현명하기를... 제발 쫌 자신의 예정된 말로를 예견할 혜안을 갖고있기를.
제발제발 친박 나부랭이들 모조리 다 복당받아주고 근혜언니 따로만나 잘못했다고 싹싹빌고, 차기 약속 하늘땅 별땅 맹세하고 집권기간동안 손 맞잡고 함께가자고 해야한다.
안그랬다간 저 친박 나부랭이들이 한나라당 밖에서 회창이 떨거지들과 손 맞잡고 40석 넘는 규모의 보수야당 구성하고, 당 안에서 근혜언니 세력 35석이 이번 총선 근혜언니가 보여준 입다물고 당 밖과 소통하는 "염력정치"를 수행하면 쪽수로 이미 벌써 "여소야대"다. 결코 안정적으로 정치할 수 없다 명박아....
그러니 부디부디 근혜언니한테 싹싹빌고 손맞잡고 함께해.
그렇게 이 정권기간을 거치며.... 함께 망해 사라져다오. 제발제발제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총선결과

구지 예상못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내심 참담하다.
심노의 지역선거전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지엽적인 것들로 느껴졌다.
창당과정과 노심중심의 선거과정에도 말들이 많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원내 의석은 중요했다.
1석이든, 5석이든... 사실 원내에서의 의사결정과정에 아무런 영향력 없는 숫자다.
문제는 이 소수의 "의원"이 원외의 운동에 힘을 실을 수 있고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후 "의원"은 진보정당에 대해 운동의 기대치라는것에 대한 실질적인 물리력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노회찬은 될 줄 알았다.
심상정은 고전이래도 내심 기대했었다.
여론조사결과를 보며 정당득표율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았나싶었다.
그래서 심노에게 더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도 안되는 창당기간과 선거과정동안 진보신당에 쏟아질 수 있는 모든 비판의 원인은 사실 이러한 조건에 기인했다. "닥치고 총선!! 우선은 심노!!"

민노당의 한계와 함께 우리자신의 한계를 동시에 폭로했던 "종북주의" 논란에 대한 얕은 반성도 (즉, 우리는 "NL이 싫어요!!" 이상의, 민노당의 한계를 딛고 넘어설 진보의 대안을 지표화하지 못했다), NL 당권파를 제외한 진보정치운동을 아우를 전선의 형성도... 모조리 다 미뤄둔체 원내의석을 내기위해 달려왔다. 아무리 결과를 놓고 스스로 위로하려해도 분명 목표는 그것이었다.

심노의 탈락.
정당 득표율 2.94%.... (0.06% 모자랐다니. 미쳐버릴 지지율이다)

시베리아로 나왔지만 발가벗고 살아남아야하는 조건에 던져졌다.
이렇게 고단하게 처절한 조건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니...
너무 안타까워 할말조차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