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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6
    경제학과 영어교육광풍
    왼쪽날개

경제학과 영어교육광풍


왼쪽날개님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에 관련된 글.

지난번 쓴글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메신저로 "호~ 경제학 이론중에도 제법 쓸만한 내용이 있군~"이란 평을 들었다.
게시판 찌질이들 얘기를 하면서 흔히 널리 인용되는 경제학 경구를 사용해보았는데 역시 괜한 오해를 샀다.
서른 넘도록 이따위걸로 학위공부를 하고있는 내 입장에서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류) 경제학 이론중에는 결코!! 쓸만한 내용은 단 한개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 글을 쓰면서 왠지 찜찜했는데 결국 이런 해명글을 써야하는 번거로움을 사고야 말았다.

훈장질스럽고 아는척하는 것 같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지난번 경제학 내용 소개를 좀더 해야할 것 같다.
지난번 설명한 것처럼, 이 얘기는 구매자-판매자 사이의 재화와 거래에 대한 정보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경구와 같은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즉, 이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하나의 문제설정이 되겠다.

이론에있어서 "문제설정"이란건 이론 자체의 결정적 차이를 형성하는 분기점같은 것이다.
예를들어 민노당의 대선실패를 "참패"가 아닌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문제를 설정하는 것은 단순히 "대선이 어땠느냐?"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상황에 대한 문제설정을 이루는 순간, 이것은 대선결과에 대한 책임, 향후 당 운영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 당의 방향 등 모든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동시에 셋팅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구가 전제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셋팅하는 문제설정 이면의 것들을 우리는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항상 산업조직론, 금융경제학의 첫장을 장식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렇다. 정보 비대칭으로인한 시장실패는 기업 및 산업조직과 관련제도, 금융기관과 조직 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이 '시장실패'를 교과서 첫장에서 아주 잠시동안... 한 학기 수업시간 중 첫 시간의 15분 동안 잠깐의 찰나로 인정해주는 이유다.
시장이 실패할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시장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시장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게 매우 정상적이라는 말이된다.
즉, "시장실패"라는 문제설정 자체에는 민노당 대선참패를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노골적이고 뻔뻔한 앙큼함이 도사린다. 이러한 문제설정에는 "계급"이나 "착취" 따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경제학 이론을 조금 더 전개해보자.
악화가 양화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문제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것이 있을까?
가장 기초적인 예는 판매자 측이 시그널(signal)을 보내는 것이다.
지난번 예로 든 중고 카메라 시장을 다시 예로 들면, 진짜 신동품을 판매하려는 판매자는 자기 물건이 진짜로!! 신동품임을 보증(warranty)하는 방법이 있다. 판매 후 문제가 있을 경우 "한달 이내 반품 가능"이라든가, "카메라 무상 AS 기간이 몇 개월 더 남았다든가"와 같은. 이럴 경우 시장에서 진짜 신동품과 가짜 신동품은 가격 차별이 가능해진다.

이번엔 가장 흔하게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노동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서 반드시 주의요망! 모든 교과서에서 한결같이 다루는 이 예에도 아주 앙큼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답니다~!)
삼성 이건희가 신입사원을 뽑고있다.
대체 어떤 년놈들이 회사에서 노조따위 안말들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개처럼 일할지 관상만으로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다들 자기 소개서에는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 깃발이 태극기 대신 세계 도처에 펄럭이는걸 어릴적부터 가슴 쿵쾅대며 자부심에 쩔어살았다고 적고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하면 빨갱이물은 한방울도 안섞이고 똘똘하고 능력있는 삼성맨/삼성우먼에 어울리는 사원을 뽑을 수 있을까?
교과서에 따르면, 노동력을 판매하는 측에서 시그널을 이용하는 것이다.
저는 서울대 나온 놈입니다. 저는 토익이 950점을 넘는 뇬입니다. 저는 자격증이 열개도 넘는 답니다... 등등등. 이렇게해서 자신은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중에서 운명을 뛰어넘는 타고난 5%임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여기서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여 이론을 조금 더 전개한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 가정은 전혀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삼성맨으로 되기 좋게 어릴적부터 데모하는 곳 근처는 얼씬도 안하고 시키는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한 청년이 노동시장에서 시그널로 사용하기 위한 토익 성적을 획득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맨날 데모나 하고 시키는 거에 가재미 눈 뜨며 살아온 불량 빨갱이가 동일한 토익 성적을 획득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보다 적다고 가정하자. (아주 타당한 가정이다 ㅡ.ㅡa)
그런데 시그널이 되는 이 토익 성적이 개별 노동자의 노동생산성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가정하자 (교과서에서는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 한국의 영어교육 광풍에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가정이다. 대체 오랜지를 "어륀쥐~"로 발음하는게 노동생산성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때 토익 성적은 시그널로써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토익성적을 내는데 드는 비용은 생산성 향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되고 이 비용이 노동력 판매자에게 전부 부담되는 한, 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면서 비용 대비 효율이 후지기 이를데없는 이런 시그널을 누구도 사용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다음 장에서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좀더 효율적인 방법들 (금융 시스템, 기업 시스템) 로 넘어간다.

하지만 모든 산업 조직론, 금융 경제학 교과서에서 예로드는 위의 노동시장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체 이 미친 "영어교육 광풍"을 어떻게 이해해야한단 말인가? 우리는 서구적 자본주의의 합리성 밖에 있는 야만적인 자본주의라서 그런건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경제학 교과서들이 애당초 셋팅해놓은 "문제설정"의 함정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대체 민노당 대선참패를 "실망스러운 결과"라는 문제설정에서 시작하는 한 어떻게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판매자와 구매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를 시장의 동일한 경제주체로 가정하고 이들 사이의 계약의 문제를 "정보의 대칭성"의 문제로 바라보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세계에는 어떠한 갈등도 "권력관계"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들의 시각에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임금차별의 문제는 시장에서의 정보교란의 문제일 뿐 자본주의라는 착취체제가 낳은 체제의 고유한 산물임을 애당초 그 "문제설정" 자체에서 비켜간다.

왜 경제학 교과서조차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영어교육 광풍이 한국의 교육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왜 사회와 삶에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젊은이들이 오랜지를 "어륀지~"로 발음하는데 목을 매달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영어가 직업의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따위와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사회는 단지 "미친" 사회일 뿐이다. (진보진영에서 이 문제를 "미친짓" 쯤으로 바라보는 것도 따라서 본질을 비켜섯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영어가 "생산성"을 구별하는 시그널이 아니라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시그널로 한국사회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영어교육 광풍은 실용의 측면이 아니라 계급관계를 끊임없이 구별하고 차별해야하는 한국의 극렬한 (천박함이 아닌 -대체 "고상한" 자본주의란 그럼 뭐란말인가? 자본. 그 자체는 태생적으로 천박하다)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의 필연적 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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