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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30 Hajun Chang's Kicking Away the Lad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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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jun Chang's Kicking Away the Lad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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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사다리 걷어차기], 서울: 부키, 2004

서장 – 선진국들은 실제로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는가

제1부 경제 정책과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ITT
1. 개발도상국 시절 선진국들의 따라잡기 전략
2. 선진국의 앞서가기 전략과 신흥 산업국가들의 대응
3.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한 몇 가지 통념과 실제

제 2부 제도와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바람직한 관리 체제
1. 선진국에 있어서의 제도 발전의 역사
2. 개발도상국들의 제도 발전의 역사

제 3부 선진국의 경제 발전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의 재인식
2. 경제 발전을 위한 제도의 재인식
3. 제기 가능한 반론들에 대하여
4.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서장 - 선진국들은 실제로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는가
- 오늘날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international development policy establishment; IDPE)은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에 따라 정부의 제한적인 거시 경제 정책과 국제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 민영화와 규제의 폐지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와 건전한 관료주의(good governance), 독립적 사법권, 지적 재산권을 포함한 재산권 보호, 투명한 시장 중심의 기업 지배 구조와 독립된 중앙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 등의 영미식의 바람직한 제도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9쪽)
-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되고 있는 이러한 정책과 제도들은 선진국들의 과거 경제 발전기에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었다. 또한 선진국들이 이러한 정책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경제 발전 단계에 다다른 것도 아니었다.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은 우선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정통적 견해를 반박하는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조합하고, 선진국들이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이용했던 정책과 제도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인 조감도를 제시하고자 한다(21쪽)
- 이를 위해 경제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의 의미와 중요성을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정치경제의 국민적 체계]를 통해 당시의 영국과 미국이 통념과는 달리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유치 산업 보호 육성 전략을 취한 최초의 국가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자유무역이 비슷한 수준의 산업적 발전을 이룬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때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당시 영국의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이 독일을 포함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교하는 것은 “정상에 오른 사람이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하였다. 이는 아담 스미스와 세이가 강조했던 자유무역 옹호론과는 근본적으로 대비되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자국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정부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유용한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22-25쪽).
- 리스트는 방법론적으로 경제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에 입각하고 있었다. 이는 “기술, 제도, 정치적 환경의 변화들을 고려한 가운데 지속적인 역사적 패턴을 찾고, 그것을 설명할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들을 현재의 문제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2차 대전 이전에 유럽의 지배적인 경제학파였던 “독일 역사학파”(폴라니와 숀필드, 바그너, 슈몰러, 좀바르트, 막스 베버 등)의 산물이다. 이후 이는 John Commons를 경유해 “미국 제도주의 학파”에 영향을 주게 되고, 2차 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개발경제학자들은 주로 이 역사적 접근법을 전개해 나갔다(Arthur Lewis, Simon Kuznets, 그리고 Alexander Gerschenkron, Albert Hirschman, C. Kindleberger 등). 최근 20여 년간 경제학계 내의 “개발경제학”과 “경제사학”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접근법은 신고전주의 접근법에 의해 대체되었다.
- 결국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현 선진국들(Now-developed Countries; NDCs)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하는 ‘바람직한’ 정책과 관리 제도의 유용성을 역사적 접근법을 이용하여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의 1부에서는 현 선진국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추진했는가를 비교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2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고안 도입된 제도와 그 발전의 역사를 추적하고자 한다. 3부에서는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권고하는 경제 발전 전략과 정책들의 성격을 논의하고자 한다(29-35쪽).

제 1부 경제 정책과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ITT 정책

1장 개발도상국 시절 선진국들의 따라잡기 전략

이 장에서는NDCs와 NICs가 개발도상국 시절 어떠한 종류의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을 사용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고자 한다. 도표 1.1 [발전 초기 단계에서의 공산품에 대한 선진국의 평균 관세율] 참조(43쪽)
1. 영국 – 튜더 왕조 시기의 국내 모직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 보호 정책(다니엘 디포의 설명 인용), 조지 1세 시기의 1721년의 상법 개정 조치(원자재에 대한 수입 관세 폐지 및 관세 환급 조치 시행, 제조품의 수출 관세 폐지 및 수입 제조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등), 18세기 후반 산업 혁명의 성공 이후 지속된 산업 장려 정책(보호관세, 식민지 국가들의 모직 제품들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 등), 1815년의 자유 무역을 위한 국제적 압력, 소위 자유 무역 제국주의(free trade imperialism) (곡물법 및 관세의 폐지 조치)- 1850년대의 영불 자유무역협정 체결, 1880년대와 20세기 초반의 보호주의로의 회귀(Joseph Chamberlain과 Tariff Reform League의 부상)(48-56쪽)
2. 미국 – “근대적 보호주의의 모국이자 철옹성”(Paul Bairoch), Alexander Hamilton의 [Reports of the Secretary of the Treasury on the Subject of Manufactures]- “정부가 유치산업들이 감수해야 하는 초기 손실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면 외국과의 경쟁 및 타성으로 말미암아 단기간 내에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산업들이 미국에 설립되지 못할 것” 여기에는 수입 관세와 수입 금지 등의 적극적 보호 조치가 포함됨, 1816년 관세 체제의 변화(모든 수입품에 대한 35%의 관세 부과 조치), 1824년과 1828년의 혐오 관세, 1832년의 40% 수입 관세 부과 조치, 1846년의 51가지 주요 수입품에 대한27%의 관세 부과, 관세 문제는 노예제도 폐지와 함께 남북전쟁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 1913년 민주당의 집권과 언더우드 관세법안의 통과, 그러나 1930년 다시 비꼰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제정을 통한 보호주의로의 회귀,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주의 주창, 그러나 이 경우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주의 정책(자발적 수출 억제 Voluntary export restraints, 다자간 섬유 협정 Multi-Fibre Agreement에 의한 섬유 및 의류에 대한 쿼터제 유지, 농업 분야에 대한 보호와 지원금, 반덤핑 관세를 이용한 일방적 무역 제재 등)을 일관되게 추진, 또한 1862년 Morrill Act의 제정 이후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 연방 정부 차원의 농업 연구, 공교육 및 교통 시설에 대한 투자 확대, 군수품 조달과 연구 개발 투자, 컴퓨터, 항공, 인터넷 분야에 대한 연방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지원금, 제약업계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막대한 연구개발 지원 등등(56-69쪽). 미국의 경제 성장과 경제학계를 이끌어 나갔던 사람들은 레이몬드와 매튜 케리 및 헨리 케리와 같은 미국식 보호무역주의 체제의 창시자들이었음.
3. 독일 – 통념과는 달리 1834년부터 1870년대까지 독일의 관세율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음, 비스마르크의 집권 시절1879년 도입한 관세 인상도 비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낮은 수준이었음, 독일은 관세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장려하기 위한 적극적 산업 정책의 측면에서 유심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추진된 수출 제조업에 대한 독점권 부여, 무역 보호, 수출 보조금 지급, 자금 투자 등, 특히 철강 산업과 금속, 무기 산업에 대한 지역별 집중 투자 정책, 이후 추진된 다양한 형태의 연구개발 지원,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산업 박람회의 개최, 기업 카르텔 정책 및 적극적 사회정책 등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69-74쪽)
4. 프랑스 – 통념과는 달리 프랑스 혁명 이전의 콜베르주의 하의 강력한 개입주의 정책 시기를 제외하고, 프랑스는 결코 정부 주도의 경제 체제를 구축한 적이 없었음, 시민 혁명 이후에는 오히려 자유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이후 나폴레옹 시기 하에서 정부가 기술 발전과 사회간접자본의 개발 및 다양한 연구 교육 시설을 설립하는 등의 산업 정책을 추진했음, 1892년에 이르러 나폴레옹 3세가 추진하던 산업 정책이 후퇴하고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하였으나, 이는 구체적인 산업 발전 계획이 부재한 결과임, 이러한 과정은 제3공화국 하에서도 마찬가지, 2차 대전 이후에야 프랑스는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한 투자 유도 계획(indicative plan)을 수립하고 공기업 확대 등의 산업 정책을 추진해 나갔음. 영국과 프랑스의 보호주의 도표 1.2 참조(77쪽)(74-79쪽)
5. 스웨덴 –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6년의 보호주의적 관세법 시행, 18세기 후반의 보호주의의 후퇴, 1880년부터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농업 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관세 조치 시행, 정부의 신기술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 산업 지원금, 공기업을 통한 관민 협력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건설(철도 건설, 수력 발전, 통신 시설 등), 철강사무소(the Iron Office)를 통한 가격 카르텔 유지, 보조된 융자금 지급, 정보 공유 등, 정부의 ‘기술력(technical capabilities)’ 축적을 위한 학업 및 연구 지원, 공교육과 고등교육 제도 등, 1932년 사회당 집권 이후의 살츠요바덴 협정 체결과 1950-60년대의 ‘렌-마이드너 계획(Rehn-Meidner Plan)’의 채택, 노동자들에 대한 재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수립 집행 등등(79-84쪽)
6. 유럽 소국(84-90쪽)
7. 일본과 동아시아의 NICs - 1858년에 체결되어 1911년까지 지속된 불평등 조약의 제약 하에서 1868년 수립된 메이지 유신 정부의 적극적 산업 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음, 조선, 채광, 섬유, 방위 산업 분야에서 국가소유의 시범 공장 또는 선도 공장(pilot plant)을 설립, 이 기업들은 민영화 이후에서 거액의 정부 보조금을 지급 받음, 정부 주도하의 막대한 사회간접자본 확충(민간 투자자들에 대한 이권 제공, 철도회사에 대한 정부 지원금, 전신설비 등), 일본형 공기업 제도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논의 필요, 외국의 선진 기술과 제도의 도입(각종 법규와 군대 조직, 중앙은행과 대학제도 등)을 위한 정부의 투자와 정책, 1911년 불평등 조약의 종결 이후 일본 정부는 유치 산업 보호, 수입 원자재의 가격 인하, 사치품의 소비 억제 등의 ‘집중적(focused)’ 관세 개혁을 추진함, 1920년대의 산업 합리화 정책(카르텔 결성 및 기업 합병 유도), 1931년의 주요산업통제법 실시, 1930년대 군사력 확대를 통한 수요 촉진, 기술 파급 효과 및 중공업 발전 등등; 195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 동아시아 각국의 급속한 산업 발전의 원인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 대한 간단한 언급, 전반적으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취한 경제 성장 전략은 18세기 영국, 19세기 미국, 19세기 후반의 독일, 그리고 20세기 초의 스웨덴이 취했던 산업 발전 전략과 유사하면서도 훨씬 더 복잡하고 미세하게 조정된 것들이었음, 예컨대 수출 보조금은 지급하였으되, 수출 관세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수출용 원자재 및 기계 수입에 관한 관세 환급 조치가 널리 행해졌음, 투자 유도 계획과 정부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의 보완적 투자(complementary investments)를 대체함, 무분별한 국내 산업간 경쟁을 관리하기 위해 회사의 설립, 퇴출, 투자 및 가격 결정에 대한 정부 규제 조치가 취해짐, 기술 향상과 사양 산업의 안정적 규모 축소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 등이 취해짐, 포괄적인 인적 자원 계획(comprehensive manpower planning)과 이를 위한 고등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지식 및 기술의 학습과 관련된 정책을 산업 정책의 테두리 안에 통합시킴, 기술 허가 및 외국인 직접 투자를 기술 전이 및 파급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규제함, 교육, 기술 훈련, 연구개발 등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 경제 등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실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언급이 필요함 –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타이완의 경우 금융 위기와 거시 경제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일본의 최근의 장기 불황은 정부의 산업 정책 탓이 아니다, 오히려 부적절한 금융 자율화 조치 거시 경제 운용상의 미비점들이 더욱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의 경우 채무의 증가는 1990년대 중반 적극적 산업 정책이 소멸된 상태 하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부의 ITT정책이 최근의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정부의 규제 정책의 소멸이 ‘중복 과잉 투자(duplicative over-investments)’를 더욱 용이하게 함으로써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91-99쪽)

2장. 선진국의 앞서가기 전략과 신흥 산업국가들의 대응

1.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앞서가기 전략
영국은 미국을 필두로 한 식민지 국가들의 제조업 발전을 막기 위한 일련의 강력한 정책을 도입하였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1차 산업품의 생산을 권장했고, 일부 제조업 활동은 아예 금지했으며, 영국 상품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식민지 상품의 수출을 금지했고, 식민지 당국이 관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2. 반(半)독립 국가들에 대한 앞서가기 전략
영국은 공식적인 식민지뿐만 아니라 당시 개발도상국들의 제조업 발전도 저지하려 했는데, 이때 주로 사용한 방법은 19세기의 소위 ‘불평등 조약’을 통해 자유 무역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약들은 대체로 (오늘날과 유사하게) 관세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관세 자주권을 박탈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개도국은 1차대전 이후에야 관세 자주권을 회복했으며, 이 국가들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한 시기는 (다른 정책 자주권을 포함한) 관세 자주권을 회복한 이후이다.

3. 경쟁 국가들에 대한 앞서가기 전략
영국은 유럽의 경쟁 국가들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고, 따라서 자국의 앞선 기술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데 중점을 두었다. 기술 인력의 이민과 매수를 금지하는 법은 1719년부터 1750년, 1825년까지 개정을 거듭하면서 효력을 발휘했으며, 다른 한편 기계의 수출을 금지하는 입법도 1750년부터 1781, 1785, 1842년까지 계속 이어졌다.(산업스파이, 기술자 매수 등의 갖가지 합법적․불법적 ‘기술 따라잡기’ 노력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기술력’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각종 정책의 수립이 필요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술 인력과 기계의 유입만으로 신기술을 습득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를 반영하듯 기술 인력의 이민과 기계 수출에 대한 영국의 금지령은 점차 폐기된다.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제도 및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국제적 차원의 지적 소유권 체제가 19세기 후기에 출현하기는 했지만 외국인의 지적 재산권은 공공연하게 침해되었다.

3장.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한 몇 가지 통념과 실제

1. 초창기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한 역사적 통념과 사실들
● 따라잡기에는 유치산업 보호와 적극적 ITT 정책이 사용되었다 -- 보호 관세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국가들이 바로 자유무역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패턴의 예외적 경우에 해당되는 국가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벨기에 정도뿐이다. 이 세 국가는 산업혁명 기간 동안 최첨단 기술 국가였기 때문이다. ITT 정책의 채택 여부와 산업화 성공의 필연적 연관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으나, 18세기 영국부터 20세기 한국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ITT 정책을 사용한 국가 중 많은 나라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
● 영국은 자유 무역과 자유방임 경제 국가였는가? -- 영국은 널리 알려진 통념과 달리 여러 측면에서 ITT 정책의 개척자 역할을 했으며, 산업 패권을 확고히 확립하고 자유 무역을 채택한 19세기 중반까지 유치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ITT 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자유 무역 정책을 채택한 것도 자국의 산업을 촉진시키려는 욕망에 기인한 것이다. 코브던을 비롯한 자유 무역론자들은 영국이 곡물에 대한 수입 관세를 폐지하면 경쟁국의 제조업 발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근대 보호주의의 아버지’이자 철옹성, 미국 -- 유치산업 보호 논리를 최초로 체계화한 국가는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은 한 세기가 넘는 동안(1816~1945) 그 어느 국가보다도 더 열심히 이 논리를 실행에 옮겼다.
● 통제 경제 체제의 대표 주자, 프랑스에 관한 진실 -- 프랑스는 전통적 통제 경제 체제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19세기 대부분의 기간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영국, 특히 미국보다 여러 면에서 더 자유방임주의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프랑스가 현재의 간섭주의 국가 이미지를 얻게 된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명백한’ 개입주의 정책을 통해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 독일은 과연 유치산업 보호의 발상지였나? -- 정부 개입을 통한 ‘따라잡기’를 추구하긴 했으나 광범위한 보호 관세를 적용한 적은 없다.
● 스웨덴은 개방형 경제의 대표 주자로 꼽힐 수 있는가? -- 광범위한 보호 관세를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전략 부문에서 보호 관세를 활용했으며, 사회간접자본과 주요 산업 분야에서 관민 협력 방식을 발전시켰다.
● 외부 제약으로 제한 당한 근대 일본 정부의 적극주의 -- 불평등 조약들이 만료된 1911년 이후에야 일본은 보호 관세를 주요 요소로 포함한 더욱 포괄적인 산업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ITT 정책을 통해 일련의 인상적인 혁신을 일구었다. 당시 일본이 이룩한 뛰어난 경제 실적은 보다 다양한 정책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어떻게 정부 개입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드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 도둑에서 파수꾼으로 - 경제 발전에 따른 정책의 변화 --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에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여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2. 관세만으로는 안 된다 - 유치산업 보호의 다양한 모델
보호 관세가 경제 성장에서 유일한 또는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은 아니었다. 수출 보조금, 수출 상품의 제조에 사용된 수입 원자재에 대한 관세 환급, 독점권 부여, 카르텔 조직, 정책 금융, (정부) 투자 계획, 인적 자원 계획, 연구개발 지원, 관민 협력 기반 제도 장려 등등... 산업 발전을 추구하는 ‘모든 국가에 딱 들어맞는 하나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았다.

3. 현 개발도상국의 경제 정책은 과연 바람직하지 못한가?
현재의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생산성 격차는 과거 시기보다 매우 크다.(19세기에 영국과 핀란드의 소득 비율은 2 대 1, 오늘날 최부국과 최빈국의 소득 비율은 50 대 1) 따라서 현 개도국들은 오히려 더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의 광범위한 무역 자유화 이후 개도국들에서는 대체로 낮은 관세율이 보편화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현 개도국들이 초창기의 선진국들보다 실제로 덜 보호주의적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2부 제도와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바람직한 관리 체제

1장. 선진국에 있어서의 제도 발전의 역사

1.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
현 선진국들에서 제한적 형태의 민주주의나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에 남성 보통선거권이 도입된 1848년이다. 현 선진국의 대부분이 남성 보통선거권을 도입한 것은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 사이의 시기이지만 이런 변화에도 반전(미국의 경우)이 있었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현 선진국의 대부분이 남성 보통선거권을 인정하였지만, 여성과 소수 민족에게는 여전히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 선진국들의 경우 그때까지도 매우 형식적인 의미의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룩한 당시에도, 첫째, 무기명 투표는 20세기까지 일반적인 투표 방식이 아니었다. 둘째 매표 및 선거 부정 역시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민주주의의 실행과 관련하여 발전 초기 단계의 현 선진국들과 현 개도국들을 비교할 경우 현 개도국이 실제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준다.(보통선거권 획득 시의 1인당 소득 비교)

2. 관료 제도와 사법권의 역사
관직 매매, 세금 징수 대행, 엽관제, 정실 인사 등이 보편화되어 있던 만큼 최소한 19세기 후기까지는 대다수 선진국들의 관료 제도에서 전문성과 투명성을 찾기는 어렵다. 프로이센을 필두로 하여 현 선진국들의 관료 제도가 근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의 개혁 덕분이었다. 사법권과 관련하여 ‘법의 지배’, ‘독립적 사법권’ 등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법관의 전문성, 판결의 질, 사법권 체제 관리 비용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재산권 보호 제도의 역사
투자를 위해서는 재산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주장보다는 재산권의 질적 측면을 측정하는 것은 수많은 요소들-계약법, 기업법, 파산법, 상속법, 세법, 각종 토지 관련 법규-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는 전반적인 수준에서 역사적으로 국가 간 비교를 할 수 있는 지적 재산권을 중심으로 보자.
● 재산권과 경제 발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 실제 경제 발전에서 재산권이 담당하는 역할은 매우 복잡하다.(기존 공동체적 재산권을 침해한 영국의 엔클로저, 재산 소유자들의 권리를 침해한 미국 서부 개발, 동아시아의 토지 개혁, 2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산업 국유화 등) 따라서 경제 발전에 중요한 것은 현행의 모든 재산권을 무조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알맞게 재산권의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지적 재산권 제도의 역사

4. 기업 지배구조 제도의 역사
● 유한 책임 제도의 역사 -- 16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후 몇 세기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유한 책임 회사가 특권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였다. ‘위험의 사회적 분산’의 중요한 수단으로..
● 파산법의 역사 -- 산업화 이전의 유럽에서 파산법은 주로 채권자들이 부정직하고 방탕한 파산자들의 자산을 몰수하고, 이들을 처벌하는 절차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파산자들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위험의 사회적 분산’
● 회계, 재무 보고, 공시 제도의 역사 -- 현 선진국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업 재무 보고 및 공시 의무에 관한 제도의 수준이 20세기에 들어서까지도 매우 조잡하였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경쟁법의 역사 -- 현 개도국에게 미국식 독점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오늘날의 정설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5. 금융 제도의 역사
● 은행과 은행 규제의 역사 -- 영국을 제외하고는 은행업 자체의 발전이 더디고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은행 규제를 위한 제도의 설립이 쟁점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현 선진국들의 은행이 전문적인 융자 기관으로서의 모습을 겨우 갖추게 된 것은 20세기 초 이후였다.
● 중앙은행의 역사 -- 화폐 발행 독점, 금융 시장 개입, 최종 대부자 기능 등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중앙은행이 탄생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미국의 경우도 1913년에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되었지만 1929년까지도 65퍼센트의 은행이 이 제도 밖에 있었다.
● 증권 규제의 역사 -- 일찍부터(1692년) 증권 시장이 발전한 영국의 경우에도 1939년까지 증권 규제를 위한 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증권과 관련한 포괄적 법규의 도입은 1986년에야 이루어졌다. 미국의 경우에도 1933년에 연방 증권 규제가 최초로 도입되었다.
● 공공 재정 제도의 역사 -- 현 선진국들도 산업 발전 초창기에 제한된 재정 능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17, 18세기에 세금 대리 징수제가 횡행할 정도였다. 직접세-특히 소득세- 징수 능력의 부재는 공공 재정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소득세는 본래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긴급 조세로만 사용되었다. 소득세의 부재는 빈곤 계층의 정치적 대변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료 기구의 제한된 행정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6. 사회복지 제도와 노동 제도의 역사
● 사회복지 제도의 역사 --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복지 제도는 발전의 마지막 단계 쯤에 수립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복지 분야의 개척자는 독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도입된 실업보험(1905)을 제외하고는 산업보험(1871)과 의료보험(1883), 국민연금(1889) 등을 최초로 도입했다. 현 선진국들의 사회복지 제도는 대략 1875년부터 1925년 사이의 50년 동안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 아동 근로 제도의 역사 -- 현 선진국들에서는 산업화 초기에 아동 근로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아동 근로를 규제하기 위한 최초의 진지한 시도는 1883년의 공장법이었지만, 이 법은 면직, 모직, 아마, 비단 산업에만 적용되었다. 1870년까지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아동 근로에 관해 겉치레용 입법 조치마저 하지 않았다. 현 선진국들이 ‘그래도 내실 있는’ 아동근로법을 도입한 것은 불과 20세기 초기의 일이었다.
● 성인 근로 제도의 역사 -- 성인 근로 시간을 규제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1844년의 영국의 공장법이었다. 이 법은 18세 이상 여성의 근로 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야간 근무를 금지했다. 그러나 갖가지 편법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다른 현 선진국들에 대한 정보는 더욱 단편적이지만 19세기 말 또는 심지어 20세기 초까지도 다수의 현 선진국들이 성인의 근로 시간과 근로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조차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

2장 개발도상국들의 제도 발전의 역사

1. 선진국의 제도 발전 과정 개요
- 선진국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요구되는 보통 선거권, 특허법, 기업 지배 구조에 관한 제도 (유한 책임 제도, 기업 재무 제도, 파산법), 시장 제도에 관한 법률 (중앙은행 제도, 증권시장법, 소득세 등), 노동 시장 정책 (성인 근로 시간 규정 및 아동 근로, 보건 및 산업 현장의 안전과 관련된 노동 법규 및 사회 복지 제도) 등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가능했다(206-208쪽).
- 1800년대 후반 경에 현재의 선진국들은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상당한 정도의 제도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을 동등한 발전 단계에 놓고 비교할 경우 당시 현재의 선진국들이 이룩한 제도 발전 수준은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기대되는 수준보다 상당히 낮은 것이었다(208-213쪽).

2. 제도 발전, 그 멀고도 험한 여정
- 현재의 선진국들은 어떤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후 수십 년의 기간에 걸쳐 그 제도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 과정에서 수 차례의 역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예컨대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인 보통 선거권과 관료 제도, 기업 지배 구조와 관련된 핵심적인 제도인 유한 책임 제도 등은 그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후 수세기에 걸친 제도적 발전 과정을 필요로 했다(231쪽).
- 이처럼 현재의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제도 발전을 이룩하게 된 이유, 즉 제도 발전 과정이 이처럼 더디게 진행된 이유는 ① 다수의 제도들이 주어진 사회 구조 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거나, 채택되었더라도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② 이 제도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 같은 제도의 도입으로 손실을 입는 사회 세력의 저항이 있었으며, ③ 당시에는 이 제도들의 이면에 담겨 있는 경제 논리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으며, ④ 어떤 제도들은 감당이 되고, 그 제도의 이면의 논리들이 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적인 선입관 때문에 도입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⑤ 어떤 제도들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제도들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제도 발전이 더디게 이루어진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215-218쪽).

3. 현 개발도상국의 제도는 과연 바람직하지 못한가?
- 19세기와 20세기 초 사이의 현 선진국들의 1인당 소득과 현재의 개발도상국들의 1992년의 소득을 비교해 볼 때(도표 2.7, 220-221쪽), 경제 발전의 초창기에 있던 현 선진국들과 현 개발도상국들을 유사한 발전 단계에서 비교할 경우, 당시의 선진국들은 매우 낮은 수준의 제도적 기반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현 선진국들이 갖추고 있던 제도의 수준이 현 개발도상국들에 강요되고 있는 ‘국제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었다(223쪽).

제 3부 선진국의 경제 발전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장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의 재인식
- 모든 선진국들은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일관되게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제 발전의 관건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이전이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육성과 유치 산업 보호를 위한 정부의 직간적접인 정책 개입(보호 관세, 정부 보조금 지금, 기업 투자에 따른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하기 위한 제도의 수립 등)이 항상 수반되었다(230쪽).
- 비록 제도가 일반적인 규칙을 담고 있기 때문에 특정 산업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는 비효율적일 수 있으며, 새로운 제도의 수립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새로운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에 제한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231쪽).
- 그럼에도, 경제 발전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 이외에도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수립과 그 발전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각 국가의 기술의 상대적 낙후성과 국제 환경 및 인적 자원의 부존량 등에 따라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정책 수단을 다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231쪽).
- 그렇다면, 현 선진국들과 이들이 조종하는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정책은 과연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최근 20년 동안 나타난 개발도상국들의 저조한 경제 성장률은 현 선진국들이 제안한 경제 성장 전략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232-233쪽).
- 모든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제한한 ‘바람직한 정책’을 사용한 1980년 이후의 20여 년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사용한 1960-1980년 사이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결국 선진국들이 ‘바람직한’ 것으로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강요한 정책은 그 나라들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도지 않았으며, 사실상 현재의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정상에 오르자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233쪽).

2장 경제발전을 위한 제도의 재인식
- 제도 발전 과정 및 전반적 경제 발전에서의 제도 발전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237쪽).
- 이와 관련하여, Good governance theory와 같은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이 오늘날의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강요하는 바람직한 제도가 과연 해당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설사 그것들이 유익하다고 할지라도, 재산권 이론, 기업 지배 구조 개선안, 중앙은행의 독립과 적절한 역할 등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권고안에 불과하다. 더불어 가장 훌륭하다고 간주되는 단일한 제도의 패키지는 존재하지 않는다(238쪽).
- 그럼에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일정한 제도의 수립과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예컨대, 도표 3.1(239쪽)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황금기(1950-1973년)’ 동안 현 선진국들이 이룩한 급속한 경제 발전은 경제 성장과 안정에 있어서 제도의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 현 선진국들은 적극적인 재정 제도, 완숙한 복지 제도, 엄격한 금융 시장 관련 법규, 조합주의적 임금 협상 제도, 투자 조정 제도 및 산업 국유화와 같은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였다(240쪽).
- 또한 2차 대전 이후 개발도상국들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당시의 선진국들보다 더욱 선진화된 제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에게 선진화된 제도의 향상을 요구하는 압력을 가할 때에는 이것이 오랜 기간을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현 개발도상국들이 동등한 발전 단계에 있는 현 선진국들보다 제도적으로 더욱 선진화되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에게 단기간에 새로운 ‘국제 기준’에 맞는 제도를 수립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바람직한 제도는 바람직한 정책과 겸비될 때에만 경제 성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인식되어야 한다(241-243쪽).
- 제도 향상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이 현실성을 띠고 추구되고 또 이와 함께 적절한 정책들이 추구된다면 이러한 압력이 경제 발전 과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위와 같은 요건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는 현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현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을 궁지로 몰아 넣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45-246쪽).

3장 제기 가능한 반론들에 대하여
- 우선,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권고하는 정책과 제도들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현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원조와 무역 정책, 국제금융기관들에 대한 통제권 등을 바탕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논리가 현실주의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불평등한 국제경제질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요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247-248쪽).
- 다음으로, 선진국과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IDPE)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는 제도와 정책이란 바로 국제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들인 만큼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현실론적인 반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첫째, 국제 투자자들이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이 권장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들을 과연 어느 정도로 중시하고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고(중국의 예), 이에 따라 설사 IDPE의 권고 사항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외국 자본의 유입 등의 경제 성장 가능성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며, 둘째, 설사 정책과 제도에 관한 한 국제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 외국 자본 유입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 메커니즘에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셋째, 특히 제도와 관련된 국제적 압력에 의해 어떤 ‘바람직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여도 정작 그것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면(실제로 군사 쿠데타, 선거 부정 및 매표 등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 소득세 탈루 등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이것이 저지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기대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으며, 넷째, ‘바람직한 정책’ 및 ‘바람직한 제도’를 규정하고 해석하고 장려하는 데 있어서 IDPE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어떤 개발도상국에 어떤 정책과 제도를 요구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들이 만약 국제 투자자들의 의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면, 이들의 정책 권고를 따르는 것은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다(249-251쪽).
- 세 번째 이견은 제도에 관한 ‘국제 기준’이 지난 한 세게 동안 향상되었으므로 개발도상국들은 현 선진국들이 100년 또는 150년 전에 사용한 제도를 답습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더욱이 오늘날의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이 과거 이룩한 제도 발전의 성과를 새로 구상하느라 고심할 필요가 없이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후발자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를 단순하게 선택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모든 국가들이 당장에 또는 최소한의 이행 기간을 거친 후에 ‘최소한의 국제 기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251-253쪽).

4장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우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과거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적용하지 않았던 국제 기준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이들이 권고하고 있는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들은 최근 20여 년 동안 성장 역동성(growth dynamism)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256쪽).
- 그렇다면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더욱 많이 알려져야 한다. 특히 경제 발전에서 정책과 제도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더욱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정책적 측면에서, 대부분의 현 선진국들이 개발을 진행 중이던 시기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던 ‘바람직하지 않는 정책’을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과 IDPE가 양해를 해주어야 한다. 역으로 개발도상국가들을 선진국과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국제개발정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입안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IMF, World Bank, WTO 및 기타 다자간 무역 협정의 규칙들이 개발도상국들의 적극적 산업 정책 추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의 적극적인 제도 개발이 권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영미식 제도를 단기간 내에 수립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 몇 가지 논의 사항
1. 경제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방법의 방법론적 이점과 한계(국제개발 및 경제사 분야에 대한 최근의 접근법과 신고전파 이론의 지식사회학적 배경을 중심으로)
2. 정부의 적극적 ITT정책에 대한 평가의 타당성과 국제무역론(자유무역 vs 보호주의)에 대한 함의
3. 동아시아 발전 모델과 그 평가에 대한 함의 정책 추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의 적극적인 제도 개발이 권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영미식 제도를 단기간 내에 수립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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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30 00:28 2005/06/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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