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의 도시

from Scrap 2010/07/21 10:51

 

오늘 아침 신문 - 내가 살고 있는 도시 - 사람 하나하나의 사연 - 그 무게

 

 

[한겨레 2010-07-21] 철거촌서 두달만에 발견된 어느 노인의 주검 - ‘눈 먼’ 자들의 도시

 

[한겨레 2010-07-21] 중독·병마에 쓰러져도…주검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한겨레 2010-07-21] 노숙인 사망률, 일반인의 2.3배

 

철거촌서 두달만에 발견된 어느 노인의 주검 - ‘눈 먼’ 자들의 도시
소지품 지폐 두장·버스카드…경찰 ‘70대 자살’ 추정할뿐
“빈집 된지 반년 넘었는데 누가 죽어간들 알 턱 있나”
 
 
한겨레 이승준 기자 메일보내기
 
 
» 70대 노인이 목을 매 자살한 걸로 추정되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3구역의 빈집 앞에 20일 오전 경찰의 접근금지 표시가 설치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끼이이잉…, 깡깡깡.”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왕십리 뉴타운 3구역 개발이 진행중인 탓에 곳곳에서 빈집의 담벼락을 허무는 인부들의 쇠망치질 소리가 요란했다. 아직 떠날 곳을 찾지 못한 인근 소규모 공업사들은 날카로운 연삭기 소음을 내뱉고 있었다. 공업사들 뒤편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3층짜리 주택 주변으로, 경찰은 ‘접근 금지’라고 적힌 노란 줄을 쳐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주일 전인 지난 14일 이 집에서는 처참하게 부패한 주검 한 구가 발견됐다. 철거를 위해 석면 해체 작업을 하던 한 인부가 이를 발견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담벼락 아래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주검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하체 일부를 빼곤 살이 썩어 뼈만 앙상했다. 텔레비전 케이블이 목에 감겨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주검을 수습했지만, 주검은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신분증도 없었다. 주머니엔 만원짜리 두 장과 버스카드 1장이 전부였다. 부패한 주검엔 지문도 남아 있지 않았고,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어 사진으로 탐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푸른색 반팔 남방과 남색 양복바지, 낡아빠진 구두가 남아 있었지만, 인근 주민들 가운데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철거촌 빈집에 들어와 한동안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빈집 2층의 3평 남짓한 좁은 방에는 그가 몸을 뉘었던 낡은 매트리스와 빈 소주병, 음료수 캔 3개가 뒹굴고 있었고, 고장난 냉장고 위엔 부패한 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흔적들에서도 여전히 그가 노숙자였는지, 아니면 이 지역에서 쫓겨난 세입자였는지, 그도 아니면 인근 공장 노동자였는지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경찰은 주검을 부검하고, 디엔에이(DNA)와 틀니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경찰은 “가출인 조사, 수배자 조회 등을 하고는 있지만, 치아가 틀니여서 대조를 할 수도 없고 디엔에이 분석도 범죄경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 신원 파악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검안의는 “70대 노인의 자살로 추정되고, 사망 시점은 최소 3주에서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고 판단했다.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택한 뒤에도, 그는 오랫동안 방치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주검이 두 달 가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철거작업으로 인적이 끊긴 탓이다. 그가 머물렀던 빈집은 대로변에서 채 30m도 떨어지지 않았다. 집 주변엔 ‘금속 연마’, ‘선반 가공’ 등의 간판을 단 공업사들이 있었지만, 공업사 사람들도 “그쪽으로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금속공장에서 26년 동안 일해온 이아무개(50)씨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떠나고 빈집으로 남은 지 6개월이 넘었는데, 누가 어떤 사연을 갖고 들어와 죽어간들 알 턱이 있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재개발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꽁꽁 옭아맨 때문인지 주변의 주민들은 체념한 듯한 반응이었다. 이곳에서 20~30년 동안 쇠를 만져왔던 이들은 “이젠 우리도 여기서 떠날 날도 얼마 안 남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영업을 하는 이아무개(44)씨는 “가뜩이나 재개발 이주보상 문제로 골치가 아픈데, 주검이 발견됐다고 하니 불안하고 마음이 뒤숭숭하다”고 푸념을 했다.

 

하지만 그뿐, 이날 오후 뜨거운 햇살 속에 골목은 여전히 금속음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전처럼 굵은 땀방울을 훔쳤다.

철거 자재와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흩어진 주택가 사이로 철거 인부들은 부지런히 망치질을 하고 장비를 날랐다.

 

여전히 그 노인이 누구인지 모른 채 재개발 지역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중독·병마에 쓰러져도…주검 곁엔 아무도 없었다
영등포 쪽방촌의 죽음 올해만 15명
제대로 된 치료도 못받고 주검 며칠째 방치되기도
가족은 수소문해도 외면
“올핸 장례만 치르다 끝나 자활·의료지원 확대 시급”
 
 
 
한겨레 송채경화 기자 메일보내기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오물에 찌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영등포 쪽방촌은 무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가로·세로 2m도 채 안 되는 좁은 쪽방에서 도는 선풍기는 연신 더운 바람을 뿜어냈다. 주민들은 수시로 골목에 물을 뿌렸다. 10년 전 집에 불이 나 가족을 잃은 뒤부터 혼자 쪽방 생활을 하고 있는 유아무개(62)씨는 “1층은 좀 낫지만 2층은 햇볕이 들면 도저히 집 안에 있기가 힘들 정도로 찜통이 된다”며 “밤에는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잠을 잔다”고 말했다.

 

5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 영등포 쪽방촌에서 올해만 15명이 주검이 되어 실려나갔다. 이 쪽방촌의 사망자 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지난해부터 쪽방 사망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며 “올해는 장례만 치르다 다 지나갈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4월 쪽방에서 당뇨와 알코올중독 등으로 숨을 거둔 함금실(54)씨의 주검은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함씨의 남편 김아무개(51)씨는 아내의 주검과 한 이불을 덮으며 며칠을 보냈다. 함씨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김 소장은 “부부가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쪽방을 찾아가 보니, 두 분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아저씨에게 ‘아주머니는 건강하시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어 계속 물어보니,

그제서야 ‘이상하게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불 사이로 나온 함씨의 다리를 만져보고 온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경찰서 지구대에 신고하고 장례를 치렀다.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김씨는 현재 의정부힐링스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이춘식(74)씨는 폐암으로 죽었다. 고향이 이북인 그는 6·25 때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뒤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쪽방촌에 없다. 이씨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의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다 7년 전 홀로 이곳 쪽방촌에 정착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 담배와 술이 생활의 전부였던 이씨는 결국 폐암을 얻었다. 쪽방에서 잠깐 한 할머니와 살림을 꾸리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이씨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자 떠났다. 진통제로 하루하루 고통을 버티던 이씨는 결국 지난 5월4일 좁고 지저분한 쪽방 안에서 숨을 거뒀다. 장례식에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는 2003년 이후 모두 99명의 주민이 숨을 거뒀다. 2003년 9명이었던 사망자는 한때 주춤하는 듯하다가 2009년 18명, 2010년 상반기 15명 등으로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용산, 종로, 동대문, 남대문 등 서울 시내 다른 쪽방촌에서도 매년 1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6월8일 간경화와 신부전증으로 숨을 거둔 김아무개(55)씨는 20년 전 헤어진 아들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와 주검 포기각서를 썼다. 가족이 포기각서를 쓸 경우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장례는 정부가 대신 치른다.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7살 때인 20년 전에 멈췄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린 아들을 무참히 때렸고, 아들의 머리는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아들은 그 뒤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아버지와는 전화도 한 통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포기각서를 썼던 아들은 다행히 상담소의 설득으로 친척들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 김씨의 유골을 모셔갔다.

 

 
» 급성폐혈증으로 숨진 이홍영씨가 살았던 서울 영등포의 쪽방에 새로 이사 온 노인이 20일 오후 홀로 점심을 먹고 있다. 5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 쪽방촌에서 올해만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쪽방촌에서 숨을 거둔 이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알코올성 질환이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숨진 99명 가운데 35명이 간경화, 알코올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15명은 암, 13명은 당뇨, 고혈압, 뇌출혈 등 노인성 질환으로 사망했다. 폐렴, 결핵 등을 앓다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이도 8명이나 됐다.

 

오범석 나눔과미래 사무국장은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담기관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며 “자활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일반 회사에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생활 패턴을 교정해주는 인큐베이팅 시설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간사도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엠아르아이(MRI) 등 일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있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기초생활수급자나 노숙인은 비급여 항목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노숙인 사망률, 일반인의 2.3배
외상·간질환 주요인…주민등록 말소 등으로 지원 못받아
 
 
한겨레 길윤형 기자기자블로그
 

해마다 열악한 환경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쪽방촌 거주민들과 노숙인들의 실태는 우리 사회의 최극빈층이 맞닥뜨리고 있는 열악한 의료 현실을 잘 보여준다.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산업의학)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인(1685명)의 사망 원인을 집계한 결과, 이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전체의 23.3%를 기록한 손상·중독·외인성 질환(38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간질환(262명·15.7%), 암(195명·11.7%) 순환기계질환(192명·11.5%) 등의 순이었다.

 

이는 노숙인들이 오랜 거리생활을 통해 입은 ‘외상’과 무분별한 음주 등으로 인한 ‘만성질환’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5년 현재 인구 10만명당 노숙인의 사망률은 1311.2명으로 보통사람 평균보다 2.34배나 높고, 30대 노숙인의 경우 일반인보다 사망률이 5.14배나 높았다.

 

문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안전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와 가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호기관 등의 도움으로 병이 발견되더라도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포자기한 채 생활하는 것이다.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치료비를 감당하려면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돼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부양 의무자가 살아 있어 수급자격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 등 쪽방 밀집지역은 그나마 구호기관이 관심이라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거리 노숙자들의 경우 누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파악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김윤이 연구원은 “재개발 지역의 경우 장기간 방치되는 빈집이 생겨 범죄자의 은신처나 자살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며 “조합이나 업체가 재개발 지역의 빈집을 관리하는 행정조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2010/07/21 10:51 2010/07/21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