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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 폭력을 지켜라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요즘 같은 기간에 글을 안 쓰면 사람들이 '저 인간 중간 고사 기간에 안보이는 걸 보니 학생이겠군'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한 동안 또 글을 쓸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해도 별 상관 없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쓰려니 귀찮아서 또 다시 한동안은 글을 쓸 수 없었다 ... 탄력을 받아 척척척 일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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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이란 나쁜 것이야."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때 별로 인상 깊지는 않았던 담임 교사가 했던 인상 깊었던 말이다. 왜 그것이 인상 깊었던 것일까? 즈음 해서 읽었던 간디 전기에 나온 비폭력주의에 대한 생각이 나서? 그리고 나서 담임 교사가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어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체험 교육이 이어져서?

 

  청소년도 인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최근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왕따 문제는 필자가 한글을 떼기 전부터 살인적으로 존재해 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꽤나 길고도 잔혹한 폭력-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이 결합된-이 피해자에게 가해졌고 그는 사방에 도움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남'의 일에 말려들어봤자 피곤할 뿐이라는 것을 애들도 배울 나이가 되었고 교사는 특별 관리 대상-성적이 좋거나 부수입을 제공해주는-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친구는 지루한 폭력에 대해 개인적인 복수를 통해 이 고통스러운 관계를 종식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그것은 싸움이 되었고 교사는 이러한 행위는 '악'이라는 규정지었고 복수자에게 복수를 가함으로서, 그의 도덕적 근원을 파괴시킴으로서 이 짧은 저항을 종결지었다.

 

  역시 학교는 사회를 배우는 곳인 모양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회에서의 일들과 묘하게 닮아있다. 학교에서 온갖 폭력이 횡횡하듯이 사회에서 역시 온갖 폭력은 횡횡하고 있고, 교사가 특정한 폭력에 대한 복수자로 등장하듯이 대표적인 폭력 기구인 국가는 특정한 폭력에 대한 복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그 폭력을 근절하고자 노력한다.

 

영화보면서 가장 불쌍했던 캐릭터. 병구도 참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생님은 어떠한 복수 서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어떤 폭력을 사회에서 구축하고자 하는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그 문제를 남한의 어느 영화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유형의 폭력이 나온다. (A) 육성회비를 안낸다고 애를 몽둥이로 개패듯이 패는 선생. 몽둥이 찜질로 소년 수감자를 통제하는 교도관, 파업 진압 과정에서 노조 활동가의 골통을 깨버리는 구사대의 몽둥이질(몽둥이가 많군!), 동물인간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의 화학 약품에 노출되는 노동조건 (B) (A)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 (C) (B) 가해자에 대한 국가의 복수.

 

  국가는 (A)의 폭력에 대해서는 복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B)의 폭력이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영화에서와 같이 극단적이 아니더라도-국가는 반드시 (A) 가해자를 위해 보복을 한다. 물론 '폭력은 나쁜 것이야'라고 되뇌이며 폭력의 독점자로서 자신 이외의 모든 폭력에 보복 서비스를 가한다는 듯한 외피를 쓰고 있지만 우리의 선생님의 몽둥이는 누구를 위해 두개골을 울리는가.

 

여담이지만 그다지 폭력적으로 생기진 않았다

 

  (A)는 왜 묵인되는가의 문제는 왜 (A)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가의 문제로 돌아간다. 영화에서는 그 문제의 원인을 아틀란티스인들이 심어놓은 유전자에서 찾고 있는데 진상은 고고학의 발전과 게놈프로젝트의 진척에 의해 밝혀질테고 여기서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원인을 찾아보자. 애를 잡아가면서까지 수업료를 뜯어내야하는 교육 시스템, '자살'한 수형자가 끝도 없이 양산되면서까지 지키고자하는 사유재산의 성경(법체계), 그리고 임노동 관계.

 

  더 크고 일상적인 폭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은 끝도 없이 양산된다. 그러한 폭력에 맞서는 폭력에 대해 우리의 선생님은 폭력은 나쁜 것이라며 또 다른 폭력으로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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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구가 칼로 찌른 게 담임인지 그를 왕따시키던 급우인지 영화를 보면서 구분할 수는 없었다. 편의상 담임이라고 해뒀는데 어차피 둘 다 죽었을테니 적당히 넘어가도록 하자. 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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