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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신경림
어지러운 눈보라 속을 비틀대며 달려온 것 같다
긴긴 진창길을 도망치듯 빠져 나온 것 같다
얼마나 답답한 한 해였던가
속 터지는, 가슴에서 불이 나는 한 해였던가
일년 내내 그치지 않는 배신의 소식
높은 데서 벌어지는 몰염치하고 뻔뻔스러운 발길질에
드러나는 그들 무능과 부패에
더러운 탐욕과 위선에
분노하고 탄식하고 규탄하기에도 지쳐
이제 그만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싶었으나
우리가 탄 이 거대한 열차가
그들의 난동에 달리기를 멈추면 어쩌나
철교가 무너지고 철길이 끊겨
어느 산허리를 돌다가 산산조각나면 어쩌나
불안하고 초조해서 너무도 초조해서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남북 사이에 낀 짙은 먹구름에
멀리 밖에서는 쉴 새 없는 전쟁과 폭력의 울부짖음
창 너머 먼 하늘의 별을 보며
잠 못 이룬 밤이 또 얼마였던가
이제 지는 해를 향해 서서 가슴을 쓸어내릴 때다
그래도 우리는 무사했으니
혼돈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룩하고
많은 것을 쌓았으니
지는 해를 향해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 끌고 가는 것은
큰 몸짓과 잘난 큰 소리가 아니라는 걸
추운 골목의 쓰레기를 치우는 늙은 미화원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아라
허름한 공장에서 녹슨 기계를 돌리는
어린 노동자의 투박한 손을 보아라
새벽 장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머리 허연 할머니의 언 손을 보아라
비닐 하우스 속에서 채소를 손질하는
중년 부부의 부르튼 손을 보아라
열사의 천막 속에서
병사의 다리에 붕대를 감는 하얀 손을 보아라
해가 지고 있다
내일의 더 밝은 햇살을 위하여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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