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여기지 않는 성교육 표준안의 세 가지 문제 
 
 
글 | 쥬리
 
공교육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에 순응시키는 노동자 양성 과정(보울즈와 긴티스)’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공교육은 순응적이고 무성적인 청소년, 성적으로 억압된 여성, 이성애중심주의를 내면화한 국민, 성소수자임을 숨기는 성소수자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이러한 기능은 성교육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특히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성교육표준안>에서 명문화되었습니다. 아래에서는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에 따른 성교육 과정 자료를 참조하면서 현재 공교육의 성교육에서 ‘무성적인 청소년 만들기’ ‘성적으로 억압된 여성 만들기’ ‘이성애중심주의를 내면화한 국민 만들기’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무성적인 청소년 만들기
 
 
성교육표준안에 따른 중학교 성교육 과정 중 한 차시는 그 주제를 <성 욕구의 조절>로 두고 있습니다. 이 차시의 학습문제는 ‘청소년기의 성 욕구와 금욕이 필요한 이유’와 ‘청소년기의 성 욕구 조절 방법’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차시에서는 ‘운동이 부족할 때 자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진다며, 성 충동이 생기면 운동을 하거나 ‘창조적인 활동’, ‘또래 활동’으로 성 에너지를 발산하라고 말합니다. 성욕을 회피하라는 것이죠.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건전한 이성 교제와 예절>, <성에 대한 책무성>, <효과적인 거절 방법>, <성관계와 임신의 책무성>, <성욕과 성 욕구의 해소> 등을 제목으로 한 차시들이 있습니다. <건전한 이성교제와 예절> 차시에서는 건전한 이성교제를 위한 예절로 ‘학생 신분에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만날 것, ‘청소년기는 미완성 단계이므로 일시적인 충동에 따라 움직이지 말’것을 제시합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이성 교제를 하는 이유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위한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보통의 배타적인 로맨스 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청소년기의 그것은 원인이 설명되어야 할 만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성 친구를 사귄다면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 것이라는 간접적인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책무성>과 <효과적인 거절 방법> 차시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성적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부분은 성 행동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어요. 여기서 활용하는 ‘성적으로 무책임한’ 사례는 고등학생 커플이 술을 마시고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성관계를 제안하고, 여학생은 곤란해 하는 사례입니다. 
 
<성관계와 임신의 책무성> 차시에서는 청소년이 성관계를 하는 이유를 ‘성호르몬의 분비’ ‘정상적인 성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 ‘성적 호기심의 충족’ ‘또래집단의 압력’으로 제시하면서, 청소년기에는 행복하고 책임 있는 성관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한 청소년의 성관계 자체를 문제로 보면서 성관계를 하면 심리적인 상처를 받을 것이고, 미혼모가 될 것이며, 질병을 얻게 될 것이고, 낙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죠. 또한 성관계를 하기 위해서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욕과 성 욕구의 해소> 차시에서는 ‘건전하게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자며 학습 문제를 제시하는데, ‘식욕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듯이 성욕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며 운동, 취미 활동, 봉사 활동 등을 하며 성 욕구를 해소하라고 말합니다. 이성과 단 둘이 있을 때 성적 충동이 일어나면 ‘화제를 바꿔 보거나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교육표준안의 내용은 청소년의 성이 그 자체로 문제라는 주장과 성적 행동을 한다면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협박을 완곡하고 상세하게 풀어 쓴 것에 불과합니다. 청소년의 성을 낙인찍는 사회, ‘불건전한 이성교제’라며 청소년의 관계를 처벌하는 학교와 발맞추어, 청소년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에 대해 문제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성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하게끔 성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억압된 여성 만들기
 
 
 
 
성교육표준안에 따른 중학교 성교육 과정 중 한 차시는 <남녀의 성적 반응의 이해>입니다. 이 차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성 인식과 성적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규정합니다. 남성은 성기자극과 시각적 자극만 느낀다면 여자는 다양한 요건이 갖추어져야 자극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친밀감이 없이도 스킨십을 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친밀감이 생겨야 스킨십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합니다. ‘성적 존재로서의 나 발견하기’ 활동 결과 예시 자료로는 남학생용과 여학생용이 따로 제시되는데, 남학생용에서는 몽정을 했을 때 쾌감과 남자가 된 느낌을 받으며, 친구들과는 야동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하고, 여자와 성관계하는 상상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학생용에서는 월경을 했을 때 불편했고 여자가 된 느낌을 받으며, 로맨스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친구들과는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과 포옹하는 상상을 한다고 말하죠. 성교육표준안은 여성은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성욕도 느끼지 않고, 성욕도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포옹이나 데이트 같은 것을 원하는 욕구로 느낀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의 <건전한 성생활의 조건> 차시에는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는 문장까지 제시됩니다. ‘성적 합리적 의사 결정’ 차시에는 성적 의사결정을 위한 조언이 나오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거절하라는 조언은 여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하지 말라는 조언은 남성에게 발화합니다. 
 
중학교 과정의 <성 욕구의 조절> 차시에서는 성 충동이 생긴 청소년들의 사례를 여섯 가지 제시하는데, 이 중 한 사례만이 여성의 사례힙니다. 게다가 남성들의 사례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강한 성욕이나 자위와 관련한 사례인데 반해 여성의 사례는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하고 싶어 하는 사례입니다. 남성의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여성의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남성에 비하여 수는 적지만 여성에게도 있는 일’이라는 언급밖에 없습니다. 
 
성교육표준안은 여성의 성욕을 남성에 비해 약한 것, 성관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여기며 내용으로 다루지도 않습니다. 이는 여성의 성욕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문화를 답습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교육을 초래하며, 교육을 받는 여학생들이 자신의 성에 대해 억압하는 태도를 내면화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성애중심주의를 내면화한 국민 만들기
 
 
성교육표준안에 따른 중고등학교 과정의 차시 제목들은 <바람직한 이성 교제>, <건전한 이성 교제와 예절>, <배우자의 선택과 이성관>, <이성과 의사소통 기법 익히기> 등입니다. 성교육표준안에서는 로맨스적 관계맺기를 ‘연애’라고 칭하는 대신 ‘이성 교제’라고 칭합니다. 동성 간 연애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으며, 제시되는 사례들도 모두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고민과 경험에 대한 내용이죠. 
 
 
 
 
중학교 과정의 <청소년기의 성 정체성> 차시를 보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성전환 수술에 대한 생각 등)과 동성 친구에게 감정을 느끼는(설레는 감정, 스킨십 욕구) 비율이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에게 적게 나타났다며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또한 성정체성 확립을 자신의 출생 시 부여된 성별을 수용하는 것으로 서술하면서 건강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정체감을 발달시킨다며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시스젠더가 아닌 성정체성을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낙인찍습니다. 
 
연애란 곧 이성 교제며, 이성 교제의 갈등은 연애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다른 성별이라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하는 성교육에서, 동성 간 연애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안은 응용을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성소수자인 학생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차별 문제나 그 차별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습니다. 이런 성교육은 이성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단순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성교육 표준안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성소수자인 학생들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인식하게 만들 위험 또한 있죠. 공교육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태도를 교육시키는 것은 심각하게 문제적인 상황입니다. 
 
정리
 
교육부가 성교육표준안을 발표함으로 인해 공교육에서의 성교육이 특별히 후퇴한 것은 아닙니다. 성교육은 원래 대부분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며, 청소년에게 순결과 금욕을 강요했습니다. 다만 이제껏 대안적인 성교육을 해왔던 일부 성교육자들, 성교육단체들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된 셈이지만, 전반적으로 성교육이 예전에는 더 나았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청소년은 판단력이 없으므로 까다롭게 엄선된 ‘건전한’ 것만을 교육해야 한다는 나이주의적인 인식, 교사의 수업 재량권에 대한 제약과 교과서 검인정제도 등이 작용하여 공교육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제거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겉핥기식의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는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과 성적 실천을 주체적으로 하는 것을 금지 당합니다. 그들의 존재나 성적 실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으로 드러나기에 부적절한 것, 금기시돼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국가와 공교육이 존재하는 이상 공교육에서 어떤 내용이 어떠한 관점으로 교육될 수 있는가는 공적인 공간에서 무엇이 이야기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써, 투쟁과 정치의 결과로 존재할 것입니다. 좋은 교육이란 ‘어른들 보시기에 좋은’, 권력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를 만드는 교육이어서는 안 되기에, 성교육이 청소년과 여성, 성소수자의 존재와 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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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00:29 2016/10/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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