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2012 겨울 자유인문캠프 '사유, 감각, ...
- 얀웬리
- 2011
-
- 중앙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2)
- 얀웬리
- 2011
-
- 블로그 이전(4)
- 얀웬리
- 2011
-
- '청년운동'의 정치학(1)
- 얀웬리
- 2011
-
- 20대, 냉소적 속물들의 인정투쟁
- 얀웬리
- 2011
제목: 중앙대 본부측에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똘몽입니다.
먼저 잔디광장을 관리하느라 고생이 많으신 학생지원처와 학내무단집회에 대하여 빠르게 대응하신 행정지원처의
교직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중앙대 운동권 잔당들과의 결전의 날이기에 이렇게 아침부터 글을 씁니다.
한국대학생연합 문화국장이 "오늘 오후 6시, 모여라 중앙대로!"라고 트위터에 남긴 것처럼,
오늘 오후 6시에 벌어지는 잔디광장에서의 무단집회는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주말에 어느 누군가는 직접 가위를 들고, 운동권 잔당들이 무단으로 걸어놓은 플랭카드를 직접 잘라내었고,
또 어느 누군가는 건물내 그들이 무단으로 붙인 대자보를 떼내었습니다.
집행권한이 학교 본부측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작위나 방조 여부를 묻지않고) 집행의 한계때문에
정의로운 중앙人 유저들이 중앙인 커뮤니티를 벗어나 직접 행동에 옮긴것입니다.
시험기간인지라 전공서적의 내용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나갈지경인데,
운동권 잔당들의 패역무도한 행태와 본부의 미숙한 대처때문에 다수의 중앙人들은 머리가 너무나 아픕니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부터, 저는 중앙대 본부의 교직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시험기간이라도 당분간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운동권 잔당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강행하려는 학내무단집회가
열리지 않도록 최대한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학내무단집회가 강행된다면, 이는 학교본부의 무능함이 증명되는 꼴입니다.
저는 단지, 불법이 정의를 이기는 세상이 여기 중앙대에서는 실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할뿐입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하시고,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서연고중성!
- 나쁜 학내무단집회에 착한 거부를 하며, 대한민국과 두산과 중앙대를 사랑하는 정의로운 중앙人 똘몽 드림 -
<문화과학 66호> 2011.06
-------------------------------------
0. 들어가며
20대를 호명하는 다양한 사회적 명칭 중 ‘청년’은 정치적 함의를 가장 농후하게 띄는 규정이리라. ‘학생’이라는 규정이 단순한 사회적 신분을 넘어 배움을 추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함축하고 있다면, ‘청년’이란 호명에는 왕성한 활동력과 때 묻지 않은 진취성을 바탕으로 사회변혁과 역사진보의 밑거름 역할을 해달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청년이 서야 조국이 선다.’와 같은 낡고 친숙한 구호는 청년세대와 역사적 소명의식과의 연관성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청년’ 개념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요즈음 청년세대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 근거하는 ‘G세대’, ‘N세대’나,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지시하는 ‘88만원세대’, ‘IMF세대’로 불릴지언정, 더 이상 ‘청년’이나 ‘지성인’으로 호명되지 않는다. 대학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청년층 대다수가 대학생 신분을 취득한 탓도 있고, ‘청년운동’ 개념에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던 민족주의 이념의 역사적 쇠퇴∙변형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년’ 개념의 현실적 유효성을 무엇보다 위협하는 것은 그것이 환기시키는 모종의 ‘정치성’이 아닐까. 무한경쟁의 압력 하에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현 시기의 20대에게 청년의 사회적 책임이니 역사적 사명이니 하는 요구는 기성세대의 회고적 투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적 이미지에 불과하다. ‘꼰대’들만이 시효가 다한 청년의 망령을 불러낸다!
그러나 대학생을 포함한 20~30대 청년계층이 고용 없는 성장과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를 핵심기조로 삼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동일한 사회경제적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당사자들의 집단적 연대와 실천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 또한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진리’이다. 이처럼 자명한 진리를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강박적 몸짓으로부터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과오와 지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이 사회가 훌륭한 법을 가지고 있지만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소박한 진실의 느낌으로부터 출발해 그러한 진리를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텄다. 청년운동의 역사를 반추하고 그 정치적 함의를 재구성하려는 우리의 시도 또한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에의 열정으로부터 출발한다.
1. 청년학생운동의 개념과 역사
청년층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였겠지만 ‘청년’이 하나의 사회적 계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중세 유럽의 신분질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발달할 당시 청년층은 성인 노동자와 대비해 반숙련 노동자, 견습공, 단순 노동자로 존재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구조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유럽에서 초기의 청년운동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 개선하고 청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착취와 차별에 대항해 1848년 이탈리아 도제직공의 여러 동맹에 속한 청년들이 노동조합을 창설한 것이 노동청년 조직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즉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청년은 특정 연령의 인구나 계급∙계층을 가리키는 범주라기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출현한 역사적 개념이며, 청년운동은 다양한 계급∙계층에 속한 청년 일반의 경제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계층운동에서 출발한 것이다.
서구의 청년운동이 노동운동에 기초하여 태동한 것과 달리 아시아를 비롯한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청년운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로부터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봉건적 질서의 잔재를 극복하여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출현했다.학생운동의 역사에 관한 립셋의 광범위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식민지 국가나 발전도상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근대적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정치적 삶의 창조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한 국가들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근대적 지식과 가치로 무장한 엘리트 계층을 필요로 하고, 고등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은 보편적인 서구식 가치 및 지식의 전파와 더불어 국가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이중의 과업을 부여받는다. 이들 학생들은 자기 나라가 위계적인 국가 간 관계에서 억압되고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식을 민감하게 지니며, 그들이 배운 유럽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의 전통에 입각해 현상 비판의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된다.반제 반봉건의 기치 아래 펼쳐진 중국의 5.4운동이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우리나라에서 청년운동을 탄생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 3.1운동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것은 대체로 191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서구의 경우 일반적으로 청년운동의 주체가 노동청년으로 규정된 데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청년이 “근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신체가 청년이라고 해도, 마음이 늙어서 아무런 희망도 용맹한 기상도 없는 사람은 청년이 아니라 ‘ 늙은이’였다.”즉, 봉건성을 부정하고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적, 정치적 지향성의 측면에서 청년이 규정된 것이다.
근대 초기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정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던 역동적 시간이었다. 이 창조 충동은 과거와 철저하게 단절하고 새로운 국가/사회/문화/문학을 건설하려는 낙관적 전망으로 분출했다. 1900년대 전후의 시기에 근대 잡지와 신문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청년’이라는 용어는 이 창조와 파괴 열정의 표상으로 호출된, 미래를 담지하는 상징적 주체의 이름이었다.
청년운동의 초기에 이러한 청년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주로 학생과 지식인층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학생층은 아직까지 전체 인구에서 매우 제한된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표 1>에서 보듯 일제에 의해 공인된 초등교육기관이었던 보통학생 재학생 수는 1911년 3만 여명에 불과하다가 1920년대를 지나고 나서야 큰 증가세를 보인다.더욱이 식민지기 내내 고등교육집단의 크기는 전 학생인구의 0.2% 수준만을 유지하고 있었다.즉, 식민지기의 학생이란 대부분이 보통학교 학생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유산계급의 자녀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연도 |
조선인 인구수 |
보통학교 재학생 수 |
각종 사립학교 재학생 수 |
서당 재학생 수 |
|
1911 |
13,832,376 |
32,384 |
57,532 |
141,604 |
|
1914 |
15,620,720 |
62,019 |
59,885 |
204,161 |
|
1917 |
16,617,431 |
75,883 |
43,643 |
264,835 |
|
1920 |
16,916,078 |
107,285 |
51,463 |
292,625 |
|
1925 |
18,543,326 |
385,687 |
55,622 |
208,310 |
|
1930 |
19,685,587 |
459,457 |
45,977 |
150,892 |
|
1935 |
21,248,864 |
720,757 |
70,128 |
161,774 |
|
1940 |
22,954,563 |
1,385,944 |
69,981 |
158,320 |
- 출처: 오성철, 「식민지기 초등교육 팽창의 사회사-전북지역 사례연구」, 『초등교육저널』, 1999, Vol.13에서 인용하여 재구성.
그리하여 이 시기 청년운동은 주로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가운데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성격과 사회주의적 성격이 혼재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전자는 소위 ‘애국계몽운동’이라 일컬어지는 흐름으로 을사조약 이후 무장투쟁을 배제하는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학교 설립과 신문∙잡지의 발간, 산업 진흥 등을 통해 경제적∙문화적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문화계몽적인 성격을 띤 이들 초기 청년단체들은 반일독립과 근대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기치 아래 광범위한 청년층을 조직하고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청년운동의 동향은 1920년대 초반부터 유학파 청년 사회주의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사회주의적 청년단체를 결성하여 새로운 사상을 선전하고, 워싱턴회의 및 소련의 피압박 민족에 대한 지원 등을 목격하면서 국제정세를 새롭게 자각함에 따라 급격히 사회주의적 경향으로 경도되기에 이른다. 특히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을 계기로 사회주의 계열이 청년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가운데 1920년대엔 1926년의 6∙10 만세운동,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 등 청년학생운동의 분수령이 된 운동들이 연이어 발생했다.특히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학생운동이었으나, 이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대규모의 조직적인 학생운동은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져들게 된다.
해방 이후 좌우대립의 혼란스러운 정국 하에서 청년학생단체들 사이에서도 좌우대립 구도가 첨예해진 가운데, 1946년 7월 미군정에 의해 ‘국립 서울종합대학안’(국대안)이 발표되면서 학생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해방 직후 일제 잔재의 청산과 교육의 민주화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가 드높은 가운데, 미군정은 부족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경성대학과 서울 근교의 9개 전문학교를 통합하고, 일제 치하에서 친일 교육에 몸담았던 인사들을 대거 재임용하는 국대안을 발표했다. 이에 학생들은 국대안이 학원의 관료화, 군정의 학원 간섭, 각 단과대학의 자주성 박탈 조치라고 비판하면서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국대안 반대투쟁은 경성대학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총 57개 학교가 동맹휴학에 참여하였고, 참가 학생은 4만 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들끓었던 민중운동의 힘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단절되었고, 이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반북․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잡으면서 암울한 독재정권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정통성이 취약했던 자유당 정권은 진보당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해 더욱 강화하는 등 억압적인 정치를 펼쳤다. 한편 미국의 원조와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경제는 1957년을 고비로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게 된다. 국민총생산 성장률이 1957년 8.1%에서 1960년 2.5%로 떨어졌고, 1960년 총 실업률은 34.2%(완전실업률 8.2%, 잠재실업률 26%)에 이르렀다. 결국 이승만 정권의 학정과 경제 불황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폭발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반대투쟁으로 시작된 4월 혁명은 전국 각지의 고등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가운데 대학생과 사회단체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대대적인 민중항쟁으로 발전했고, 끝내 12년간에 걸친 자유당 독재정권의 종언을 이끌어냈다.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청년학생운동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 1969년의 3선 개헌 반대운동 등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형태로 분출되었으나, ‘긴급조치 9호의 시대’로 대변되는 제도적인 탄압 속에서 실패와 좌절로 점철되고 만다. 그러나 1970년대의 학생운동은 비록 4∙19혁명과 같은 거대한 운동 양상을 띠지는 않았지만 1970년의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1974년 ‘민청학련사건’ 등을 거치면서 기독교 학생운동자들이 노동현장과 농촌, 빈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민중운동에 동참함으로써 이후 청년학생운동을 민중지향적 운동으로 성격지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특히 전태일의 분신 사건은 당시 소수의 사회적 엘리트층이었던 대학생들에게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역할에 대해 자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현장론’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기에 이른다. ‘현장론’은 “변혁의 주체 세력은 학생이 아닌 노동자이며, 노동자들을 의식화․조직화하려면 지식인들이 노동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역량을 키우려면, 학생운동은 직접적인 정치 투쟁을 지양하는 한편 학생들이 졸업한 뒤 노동현장의 활동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노동현장 진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이에 아직 소수이긴 했지만 학생운동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더 급진적이고 의식적인 인자들 중심으로 노동현장 진출이 서서히 늘어났다.
광주민중항쟁의 핏빛 역사로부터 출발한 1980년대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이 이념적으로 성숙하고 조직적으로 체계화 되면서 사회운동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한 시기로서 1987년 6월 항쟁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 학생운동은 운동노선 정립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학습을 전개함과 동시에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과의 연대투쟁도 활발히 진행하였다. 특히 1970년대 말 노학연대의 흐름과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기억은 학생운동이 자유민주주의라는 70년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주의’와 ‘노동운동 중심성’으로 정향되는 단절적 계기가 되었다. 실로 80년대는 민중이라는 정치적으로 상상된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시대였다.
책 속에는 가난하고 고통 받으며 무시당하다가 정권과 지배 세력의 손에 잔인하게 학살당한 민중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선배들은 천천히,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들 그리고 내게 가르쳐주었다. 〔…〕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론 속에서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 권력을 타도하고 공산주의를 건설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과학적인 논리를 이해하기 전에 민중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민중을 상상하고 민중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고, 민중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바로 일상의 문화가 된 것이다.
또한 광주항쟁을 변혁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속에서, 노동자 계급이 발전하지 못하고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광주항쟁이 실패했다는 평가에 따라 노동운동에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전두환의 쿠데타와 학살을 막지 못한 학생운동 및 지식인의 한계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80년대 학생운동가들을 사로잡았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사회 변혁의 중심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이념이 중요하게 사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70년대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노동현장에 투신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80년대에는 노학연대의 이념 하에 조직적으로 대규모의 학생운동가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하게 되었다.학생출신 노동운동가들의 활동은 비밀리에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오하나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초중반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학생운동가가 대략 수천 명에서 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은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를 통해 비합법적인 소규모 학내외 기습시위 형태에서 벗어나 공개적인 정치집회와 투쟁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부는 학원 내의 정치활동을 용인함으로써 학생운동이 비합법적 활동기간 동안 누려온 선도적인 상징성을 봉쇄하고 학생운동권의 급진적 이념이 일반학생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학생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학생운동권은 대자보와 유인물, 자체신문, 보고서, 영화 등의 선전매체를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들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념서적의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학생운동권의 의식과 인식도 첨예해졌다.이를 통해 학생운동 안에서 ‘사상 노선’을 둘러싼 논쟁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학생운동 내부에 공유되던 민중 담론이 한국 사회의 성격과 구조적 변혁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크게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또는 민중민주주의라고 표현되는 운동 엘리트의 이데올로기와 민족통일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기존의 민중주의적 이데올로기 등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이러한 논쟁은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현실의 대중적 실천과 결합하지 못한 점, 사상적 수준의 조야함 그리고 엘리트의 급진적 이데올로기가 대중 이데올로기로 전화하는 데 실패한 점” 등 그 한계 역시 분명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은 1987년의 6월 항쟁을 계기로 4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면서 정점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학생운동 진영은 정치적 민주화와 냉전체제의 해체, 경제성장과 분배구조의 개선에 따른 소비문화의 확산 등 변화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념적 혼란과 방황을 겪게 되고, 199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 뛰어들었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하는 등 급진성을 잃고 제도정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또한 운동 엘리트 중심의 사고와 학생회 조직의 관료화와 제도화라는 내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학생대중에 대한 영향력과 지도력도 점차 잃어가게 된다.이런 상황에서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대표되는 9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세력은 ‘통일투쟁’에 매진하다 결국 정권의 탄압과 대중의 외면 속에 영락의 길을 걷고, 유럽의 신좌파운동을 참조한 새로운 문화운동 형태의 학생운동 또한 대학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이내 사그라지고 말았다.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청년학생운동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청년학생운동의 게토화와 기성질서에 대한 청년세대의 완전한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종속. 따라서 오늘날 청년학생운동은 가히 무에서 유를 재건해야 하는 단계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청년운동’의 재구성
우리가 시효가 다한 ‘청년운동’ 개념을 재구성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 문제해결의 주체였던 과거의 청년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그 자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민족해방운동, 해방 이후 독재정권 하에서의 반독재 민주화운동, 1980년대 이후 민족자주 및 민중해방운동의 성격을 지니면서 전체 변혁운동의 선도자 역할을 해온 청년학생운동의 흐름은 그 자체 한국사회의 특수한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폭압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남북대립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전후 절대빈곤의 경험을 거치면서 자유경쟁과 평등한 분배보다는 국가 주도 하에 소수재벌을 중심으로 신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원 체제였으며, 국제적인 냉전구조 속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었다.이러한 지배구조 하에서 시민사회는 애초에 존재할 틈바구니도 없었고, 생산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소수의 특권층인 청년학생층만이 지배구조의 정당성에 문제제기를 수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학생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평가할 때 각 시대별 대학생들의 객관적인 사회적 지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4.19혁명이 전개되었던 1960년대에는 대학생 수가 약 8만 여명이었으며, 1970년대에도 40만 명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 졸업정원제 폐지를 계기로 학생정원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100만 명을 넘어섰다. 80년대 당시 조사에 따르면 운동권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학생의 수효는 0.3%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정원 1만 명의 대학에는 적극적인 운동권 학생이 약 30명 정도 되며, 전국 100만 학생 가운데는 약 3천 명의 운동권 학생이 있었다는 것이다.물론 학생운동에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세력을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은 수가 있었겠지만, 전체 학생대중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매우 소수의 집단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무장되어 있고 실천적으로 급진적이었던 학생운동권 세력은 언론기구와 학생회 등 학내대표기구를 장악했고, 각종 시위와 집회에 수천에서 수만 명의 학생대중을 동원하였으며, 도덕적∙정치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운동은 기본적으로 청년학생계층의 계급적 이해관계나 권리보다 전체 민중과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경제적 이해를 대변하고 투쟁의 선봉에 서는 ‘전위’ 내지 ‘동맹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왔다. 나아가 이들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엘리트 지식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은 영예로운 호칭이라기보다 매우 고통스러운 존재론적 모순의 표현이었다. 80년대 대학생들에게 지식인은 관념성, 나약함, 회피의 상징이었고, 단순하고 투철한 ‘노동자’의 삶이야말로 이상적인 인간형이었다. 이들에게 ‘지식인적이다’는 말은 속물성과 소시민성을 의미하는 ‘쁘띠적’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고, 가장 뼈아픈 비난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계급을 벗어나 노동자 계급이 되길 간절히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인식은 의식적인 전투성과 집단성의 추구, 일부러 ‘없는 집’ 출신인 것처럼 ‘빈티’ 내기 등 다소 작위적인 하위문화의 형성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 사회지도층이었던 학생의 지위는 고등교육의 보편화와 더불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과도기적 지위의 예비-노동자로 전환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1981년 대학 졸업정원제의 실시와 1995년 대학정원 자율화 정책으로 대략 1990년대 중반을 계기로 대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대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일정한 조정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이 개편되면서 청년학생층은 급기야 상대적 과잉인구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
연도 |
전문대학 학생 수 |
대학생 수 |
계 |
|
1965 |
23,159 |
114,635 |
137,794 |
|
1970 |
33,483 |
161,313 |
194,796 |
|
1975 |
62,866 |
220,483 |
283,349 |
|
1980 |
165,051 |
448,515 |
613,566 |
|
1985 |
242,117 |
1,140,942 |
1,383,059 |
|
1990 |
323,825 |
1,280,693 |
1,604,518 |
|
1995 |
569,820 |
1,655,819 |
2,225,639 |
|
2000 |
914,397 |
2,219,715 |
3,134,112 |
|
2005 |
856,564 |
2,409,909 |
3,266,473 |
|
2010 |
772,509 |
2,555,016 |
3,327,525 |
|
1) 전문대학 학생 수는 각종 전문학교 포함 2) 대학생 수는 교육대학, 산업대학, 기술대학, 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사내대학 포함 * 연도별 「교육통계연보」를 통해 재구성하였음. |
|||
현재의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를 아우르는 현 청년세대는 IMF위기 이후 20대에 진입한 이들로, 고용 없는 성장과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를 핵심기조로 삼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세례를 정면으로 맞아 과거의 청년세대와 달리 노동체제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우선 2000년 이후 전체 실업률은 3~4%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20대 실업률은 7~10%대 수준을 오르내리면서 전체 실업률의 2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수치일 뿐 청년층이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그보다 몇 배 더 높다. <표 4>를 보면 2010년 1/4분기 기준 청년층의 실업률은 9.1%로 37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비경제활동인구 230만여 명중 재학생을 제외한 취업준비생과 ‘그냥 쉼’으로 응답한 ‘백수’ 계층을 포함하면 광의의 취업애로계층은 100만 명을 넘어 청년실업률은 20%에 육박하게 된다. 청년층 5명 중 1명은 취업이 되지 않아 직간접적인 고충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가사를 돕고 있다고 응답한 40만 여명의 비경제활동인구를 더하면 취업애로계층의 범위는 더욱 확대된다.
|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1/4 |
|
생산가능인구 |
6,874 |
6,741 |
6,653 |
6,584 |
6,496 |
6,425 |
|
경제활동인구(A) |
4,559 |
4,401 |
4,298 |
4,187 |
4,101 |
4,071 |
|
(참가율) |
(66.3) |
(65.3) |
(64.6) |
(63.6) |
(63.1) |
(63.4) |
|
취업자 |
4,207 |
4,061 |
3,992 |
3,894 |
3,779 |
3,700 |
|
(고용률) |
(61.2) |
(60.2) |
(60.0) |
(59.1) |
(58.2) |
57.6 |
|
실업자(B) |
352 |
340 |
306 |
293 |
322 |
371 |
|
(실업률) |
(7.7) |
(7.7) |
(7.1) |
(7.0) |
(7.9) |
(9.1) |
|
비경제활동인구 |
2,316 |
2,340 |
2,355 |
2,397 |
2,395 |
2,354 |
|
육아·가사 |
563 |
514 |
496 |
470 |
459 |
442 |
|
재학·학업 |
1,034 |
1,080 |
1,137 |
1,166 |
1,156 |
1,132 |
|
취업준비 |
335 |
403 |
406 |
444 |
417 |
448 |
|
그냥 쉼 |
241 |
225 |
215 |
220 |
268 |
231 |
|
기타 |
142 |
118 |
101 |
98 |
95 |
102 |
자료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원 자료, 각 년도.
게다가 201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20%를 차지하는 20대 임금노동자 340만여 명중 50%에 해당하는 170만 여명이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신규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고용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특히 <표 5>에 따르면 신규고졸자의 경우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비율이 80%를 넘어서는 등 학력에 따른 불평등도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1994~95 |
1996~97 |
1998~99 |
2000~01 |
2002~04 |
|
|
신규고졸 |
상용직 |
42.4 |
39.6 |
21.2 |
17.5 |
17.0 |
|
임시직 |
50.5 |
51.1 |
54.5 |
51.0 |
44.3 |
|
|
일용직 |
7.1 |
9.4 |
24.3 |
31.5 |
38.7 |
|
|
신 규 전문대졸 |
상용직 |
54.0 |
55.3 |
37.1 |
39.1 |
37.5 |
|
임시직 |
39.5 |
39.6 |
49.6 |
46.9 |
50.1 |
|
|
일용직 |
6.6 |
5.1 |
13.3 |
14.0 |
12.4 |
|
|
신규대졸 |
상용직 |
61.5 |
62.8 |
40.5 |
49.4 |
51.1 |
|
임시직 |
34.3 |
34.6 |
51.1 |
43.2 |
43.0 |
|
|
일용직 |
4.2 |
2.7 |
8.4 |
7.4 |
5.9 |
|
최근의 각종 고시열풍이 보여주듯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취업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살인적인 경쟁을 치르고 있지만, 기계화∙자동화에 따른 산노동의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발전경향을 고려할 때 바늘구멍은 더욱더 비좁아질 것이다. 이들은 현재와 같은 고용시장 환경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얻기 힘들며, 그렇기에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는 변변한 방 한 칸을 마련하기 힘든 세대이고, 자연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한 세대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정치적 투쟁의 경험이나 연대성의 체험이 전무해 해방의 전망과 비전에 대해 가장 회의적인 것이 바로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겪는 전망 없는 절망의 체험은 급기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표출되고 있다. 즉 이들 세대는 단순히 노동시장에서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포함해) 삶 전체를 착취/배제당하고 있으며, 한국사회 특유의 제반 사회경제적 모순을 한데 응축하고 있는 세대인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경제력에 힘입어 노동시장에서 한 자리를 꿰찬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주변부 노동인구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하는 운동이 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불안정노동의 폐해를 한 몸에 떠안고 있는 청년세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운동’이 될 것이다. 현재 정규직 대기업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은 점차 고령화 되고 정규직의 신입채용 비중이 낮아지면서 청년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고, 청년세대와의 정서적・문화적 괴리감으로 인해 청년들의 노동조합 참여유인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문화적 괴리감은 때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한국사회의 경우 압축적 근대화로 인해 불과 10년 터울의 세대 사이에서도 단절적인 감정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단적인 예로 소위 세대론을 둘러싼 기성세대와 20대 간의 감정적인 논쟁에서 엿보이듯 현 시기의 20대들은 기성세대의 동원과 계몽의 전략에 대해 가히 알레르기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적∙감정적 주체성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운동 형태를 발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학생운동의 재구성이 아니라 굳이 ‘청년운동’인가. 오늘날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서면서 대부분의 청년세대가 대학생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범주가 나머지 20%에 속하는 비대학생 청년노동자층을 배제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정치운동에 학생대중을 동원하려 하거나 조합주의적 실천에 매진해 온 기존의 학생운동은 ‘노동자운동/사회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생은 사회적 특권층이라기보다 ‘지식 노동자’로서 ‘잠재적 산업예비군’이라는 열악한 경제적 지위에 놓여 있는 계층이다.따라서 대학생층의 이해관계를 넘어 광범위한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며 이를 사회운동에 접목시키는 ‘노동자운동/사회운동으로서의 청년운동’을 통해 청년층에 부과되고 있는 계급적 착취와 적대의 선을 명확히 설정하고, 새로운 감수성과 욕망의 배치로 특징지어지는 전복적인 운동 형태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동안 다분히 조직논리에 따라 편의적으로 나누었던 ‘학생운동’과 (대학생을 제외한 청년층으로 구성되는) ‘청년(단체)운동’이라는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고등교육을 통한 지배 엘리트의 육성을 추구하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에서는 학력자격의 획득을 통한 계급적 신분상승의 구조가 정착되었고, 이는 교육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교육수요의 꾸준한 증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회적 일자리는 축소되는 가운데 대학진학률은 80%를 웃돌면서 학력자격의 인플레이션은 정점에 이르렀고, 취업을 둘러싼 세대내 경쟁은 극대화되었다. 학력자격의 가치하락에 직면해 상층부의 계급분파들은 학력자격의 상대적 희소성과 그에 따른 계급구조 내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교육투자를 강화했고, 그것이 사교육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조기유학 열풍으로 나타났다. 최근 목도하고 있듯이 우리사회의 지배계급 분파는 지구화된 교육시장에서 극대화된 이동성을 바탕으로 하층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자녀들에게 상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력자격 가치하락의 가장 큰 희생자는 현재의 대학생들이라기보다 애초 학력자격 없이 노동시장에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학위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이제껏 무학력자들에게도 개방되어 왔던 직위들을 점진적으로 학력자격 소지자들이 독점하게 되는데, 이 현상은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학력자격의 가치하락을 제한하는 효과를 갖고 있지만 무학력자들에게 제공되는 취직 기회를 제한하고(즉 ‘좁은 문을 통해’) 그리고 장래에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학력적으로 미리 규정하는 것을 강화하는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한때 고졸자들의 유망한 취업진로였던 9급 공무원 시험에 대졸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나, 취업을 위한 학력 및 스펙 요구사항이 점차 높아지는 것은 최근 학력자격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역학과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학생이건 비대학생 청년층이건 이 계급투쟁의 역학과 구조에 지배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객관적 기회와 주관적 기대 사이의 격차’를 극대화하여 학력자격의 소유자들에게 심각한 자존감의 훼손을 야기할 뿐더러, 저임금 노동의 자리마저 꿰차지 못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고학력 빈민층을 양산하고 있다. 고학력 시간강사와 소위 명문대생의 연이은 자살 소식, 말 그대로 “굶어 죽은” 고(故) 최고은 작가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이에 대해 사회가 내놓는 대답은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라.’거나 ‘눈높이를 낮추라.’는 질책뿐이고, 이때 제공된 가격에 노동력을 팔기를 거부하는 방법 말고는 학력자격의 가치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방도가 없는 이들의 실업자로 남아있겠다는 선택은 “일종의 (개인적) 파업의 의미”마저 띠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급성을 탈각하고 있다는 이유로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는 ‘세대운동’의 또 다른 판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세대와 계급을 대립적인 개념인 양 표상하는 것은 역사적 구조와 주체적 행위 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통속적인 오해에 불과하다.
역사적 구조와 변증법적 긴장을 이루는 것이 역사적 주체라고 할 때, 주체는 개별 분산된 개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구성되며, 이렇게 구성된 집합적 주체가 일정한 시간대 별로 경험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공통의 이념과 감정의 물결에 휩쓸린다고 할 때 그런 주체를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각 세대는 물론 언제나 계급적으로 분할되어 있기에 동질적 단위가 아니다. 그러나 한 시기의 단면을 잘라볼 때 나타나는 한 사회의 다양한 계급들 역시 동질적 단위가 아니라 시계열적으로 구분되는 세대별 차이들로 변화해 간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시공간적 리듬과 주기들의 겹침의 결과로 인해 어떤 세대들은 계급투쟁에서 상대적으로 더욱 능동적이라면 어떤 세대들은 더 수동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계급모순이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 구조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기본모순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모순은 일상생활에서는 노동, 교육, 문화, 여성, 소수자, 지역과 생태 등 다양한 부문에서 세대별 행위주체들 간의 갈등으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만 불균등하고 이질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즉, 우리는 총자본-총노동 관계에서 발생하는 해소될 수 없는 적대적 모순과 상호 존중해야 할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적대가 작동하는 공간은 총자본-총노동 간의 모순이 자본과 국가 권력의 유착에 의해 관철되는 계급투쟁의 복잡한 회로이다. 이러한 적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역-생태-젠더-인종-세대의 분할선을 따라 다양하게 치환되거나 응축된다. 그러나 지역-생태-인종-세대간 경계들은 계급투쟁의 극복에 따라 저절로 사라지는 단순한 사회적 차이나 갈등이 아니다. 이런 경계와 차이들은 일부는 자연적, 생물학적인 차이들이자 일부는 문화적 차이들로서 이런 차이들은 대부분 상보적인 연결망을 구성하는 것이지 본래적으로 적대적인 차이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자본과 국가는 언제나 사회적 적대의 선을 문화적, 성적, 인종적, 지적 차이들의 계열로 ‘전치’시키고, 노동계급 내부의 위계적 분할이나 세대간/세대내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저항의 힘을 분산시키고 저항세력을 분열시킨다. 정규직 기성세대와 비정규직 청년세대, 남성 정규직 노동자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다양한 불평등과 위계적 분할을 도입하는 것은 자본의 동학이지,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심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급투쟁의 장소인 사회적 적대의 지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다양한 존재론적 차이들의 평등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상의 논의를 따를 때, 산업노동자의 임금투쟁만이 계급투쟁이고 다른 형태의 투쟁들은 계급투쟁과 무관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혼동과 오류에 불과하다. 나아가 계급투쟁의 국면에서 역사적으로 조형된 주체성과 감정구조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오늘날 전례 없이 만개한 소비 경제와 기업 자본주의의 결합 속에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조직화된 산업노동자 계급이 더 이상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이기를 그쳤다는, 또는 그것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잠재적으로만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노동력의 위계적인 분할구도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물질적 소비수준의 유지와 체제안정에 대한 중간계급의 욕구를 공유함에 따라 보수적이며 심지어 반혁명적인 세력이 된다. 객관적으로 즉, ‘즉자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중요한 혁명계급이지만, 주체적으로 즉, ‘대자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들 계급은 생산 과정에서 차지하는 기본적인 위치와 그들의 수적인 우세 및 착취의 무게에 따라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혁명계급이다. 하지만, 이들 계급의 잠재적인 혁명적 힘의 발현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상품소비와 매스미디어를 통해 주입된 허구적 욕망을 거부하고, 새로운 욕구와 만족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유를 실천하는 새로운 주체성으로의 이행을 전제한다. 마르쿠제는 이를 “사회주의를 위한 생물학적 기초”로서 정식화한 바 있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계급의 급진화는 의식의 사회적인 포획에 의해 꾀해진, 그리고 피착취자의 예속을 영속화시키는 욕구의 발전과 만족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곧 현존 체제의 기득권은 피착취자의 본능적 구조에서 양육되고, 억압의 지속은 단절―해방에 필요한 선행 조건―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존 사회를 자유로운 사회로 이행시킬 급진적인 변화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인간 존재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된다. 즉 인간이 가진 생의 필수적인 욕구와 만족이 모습을 드러내는 “생물학적” 차원으로까지 말이다. 그러한 욕구와 만족이 예속의 삶을 재생산하는 한에서 해방은 생물학적 차원의 변화―즉 다양한 본능적 욕구, 그리고 육체뿐 아니라 정신의 다양한 반응을 말이다―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본능적 욕구와 정념을 지닌, 인식의 수준이 아니라 ‘생물학적’ 수준에서 완전히 새로운 주체성의 출현과 사회운동의 조직을 청년세대에게서 기대하고 있다. 현 시기 한국사회의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은 조합주의의 틀 안에 머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신규 청년노동자층과의 연대에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노동계급이 수동적이거나 보수적인 기능을 갖게 될 때, 이행의 촉매는 ‘외부로부터’ 작용하게 된다. 우리는 이를 68혁명의 역사와 한국 사회 학생운동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잠정적인 가설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전망이라는 점도 인정해야만 하겠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청년세대 역시 객관적으로는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인 혁명계급이지만, 주체적으로는 불안에 휩싸여 변화를 꿈꾸지 않는 ‘냉소적 속물’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체성을 주형하고 있는 권력의 배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숙고해볼 시점이다.
3. 청년세대의 주체성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삶이 전면화 되면서 우리는 자신의 ‘생존’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설정하라는 권력의 명령을 체화해야만 했다.
97년 체제는 세 가지 생존의 형식을 보편적인 과제로 설정하였다. 첫째, 파괴적인 구조조정, 불황, 실업,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경제적 생존’이 그것이다. 경제적 생존의 공격적 형태는 사회적 정의나 공공성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추구되는 치부와 강박적 노동형태이다. 그것은 경제행위의 건강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불안을 동력으로 추진되는 병든 노동, 가령 ‘일중독’으로 귀결된다. 둘째, 사회의 도덕적 존엄성이 훼손되고 파괴된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과시가 지배하는 왜곡된 인정투쟁의 공간에서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적 생존이 그것이다. 사회적 생존의 공격적 형태는 성공지상주의 혹은 입신출세주의 혹은 노골적인 속물주의(snobbism)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질병과 죽음을 넘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생존이다. 건강하고 장수하는 삶은 모두가 꿈꾸는 것이지만, 신자유주의적 생존주의는 이를 신성화하고 상품화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오직 육체적 조건으로 환원시키는 소위 ‘무차별적 건강주의’를 조장한다. 이 세 가지 생존의 중첩(부유, 성공, 장수)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바로 97년 체제의 한국 사회가 전시하는 영웅적 판타지의 주인공들인 ‘생존자’들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 시기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공통된 것이었지만, 청년세대에겐 학력자본의 가치하락과 더불어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더욱 절박한 요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 세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모순은 “세대내 경쟁”으로 치환되어 당사자들 사이의 무한 군비경쟁을 초래하게 되었다.
한때 타파해야 할 구습이었던 학벌주의가 대학사회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왕좌를 꿰차기 시작한 것이 대략 이때부터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동건홍/국숭세단/광명상가/한서삼…’으로 이어지는 대학서열과 스펙 쌓기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되었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학교발전을 저해하는 공동체의 적’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대학서열화는 일차적으로 보수언론이 주관하는 대학평가와 글로벌한 대학경쟁 구도의 보급을 통해 유포되지만, 그것을 적극 지지하는 학생들의 ‘자발적 협력’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군비경쟁’으로 대학간 상호 경쟁적인 등록금 인상을 통해 투입해야 할 비용은 꾸준히 증가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상된 등록금은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투자되기보다, 상품으로서 대학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물증축에 우선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스펙경쟁은 개개인의 수준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이라 할 수 있다. 스펙 요구사항이 높아질수록 개인들이 투여해야 하는 에너지와 비용은 증대하지만, 취업 자격요건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손해될 것이 없다.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모두가 동시에 군비경쟁에 투입하는 비용을 줄이기로 합의하면, 모두 이전에 비해 줄어든 비용으로 경쟁에 참여하게 된다. 게임에 참여하는 비용은 줄었지만, 게임의 룰은 그대로이므로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게 혜택을 입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약속을 규제할 제 3자의 개입이 없을 때, 개별 행위자는 최적의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상대방이 ‘군축’을 하리란 보장이 없을 때 나 홀로 ‘군축’을 감행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만 이롭게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즉, 개인들 간의 군비경쟁은 결국 악무한적 순환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군비경쟁을 규제하여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제 3자로서 정부가 개입하거나, 당사자들의 집단적 연대를 통해 게임의 룰을 변형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논리를 체화하고 있는 현 시기 청년세대에게서 집단적 연대의 움직임이나 의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집단적 연대의 조건들이 열악해졌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의 몰락으로 대학 내에서 집단행동을 조직하기 어려워졌고, 과거 대학공동체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던 공동체성이나 연대성의 경험이 없으며, 학점관리와 취업준비에 전념하느라 절대적인 여유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과연 청년세대는 이 악무한의 생존경쟁을 전복하고 싶어 하긴 하는 걸까? 단적으로 등록금 문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저조한 관심만 보더라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대학가에선 후안무치한 경쟁의 투사들이 ‘우세종’의 지위를 차지한 지 오래다. 최근 들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에 대한 대학생들의 자성이 ‘규범적’ 수준에서조차 제기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실제로 주변 20대들의 솔직한 토로에 따르면, 대학서열화에 따른 경쟁이 피곤하긴 하나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등록금인하에 대한 요구가 적은 것도 대학서열의 논리가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소위 서울 소재 명문대 학생들에게 고액 등록금은 ‘대학의 격’을 나타내며, 학교발전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대학평준화나 서울대 해체처럼 대학개혁의 일환으로 제시되는 각종 정책들에 관심이 적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서울대가 해체되면 연고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테고, 전국의 대학을 평준화 하면 해외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자식들이 특권층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각 개인에겐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고, 대학서열은 개인의 능력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지표이다. 우월한 계급지위를 차지하려는 공통의 열망과 인정투쟁이 존재하는 한 무엇을 지표로 삼건 서열화와 위계구조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성한’에 속해 있건 ‘지잡대’에 속해 있건 일단 공정한 게임의 룰에 따라 획득한 지위를 받아들이고, 열정과 조건이 허락한다면 사닥다리의 윗자리를 향해 분투하면 된다…. 그리하여 지방대에서 ‘In 서울’로, ‘중경외시’에서 ‘서연고’로, ‘문사철’에서 ‘로스쿨’로 향하는 끝없는 이동이 시작되고, 독학사부터 편입학까지 이를 돕는 방대한 시장이 형성된다.
대입을 향한 20년의 ‘한 줄’ 경쟁, 그리고 그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스펙경쟁에 삶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청년세대에게 이러한 현실인식은 자명한 것이다.
경쟁의 외부에 단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20대에게 경쟁은 인위적인 게임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사회의 작동원리인 양 여겨진다. 그래서 게임 자체를 거부하거나 게임의 룰을 전복하려 하는 대신, 더욱 엄격한 룰의 적용을 요구한다. 더욱 엄정한 학사관리와 상대평가 실시, 룰의 위반자들에 대한 철저한 불이익, 무임승차하는 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 〔…〕 그들에게 게임은 모든 것이며, 외부는 없다. 즉, 세상은 언제나-이미 닫힌 공간이며, 따라서 현실은 절대적으로 긍정된다. 20대의 현실 인식은 “어쩔 수 없다”와 “안 될 거야 아마”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한다.
의미 없는 군비경쟁으로 삶이 피폐해지지만,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이 세대는 자신이 처한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묻는 대신 개인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며, 개인 단위의 경쟁과 고립되고 파편화 된 삶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성공 신화’에 빠져 부단히 자기-계발을 하거나, 경쟁을 포기하고 스스로 ‘루저/잉여’가 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주체성의 모델만을 가지고 있다.
‘벌거벗은 삶’의 고단함과 피폐함, 그리고 출구에 대한 전망 없이 목을 죄여오는 권력의 거대한 힘은 주체들을 존재론적 유아들, 자신을 어린아이나 애완동물처럼 귀여운 존재로 변모시키는 칭얼대는 주체들로 구성한다. 약한 자는 귀여움을 통해 강자로부터 일정한 안전을 제공받을 수 있다. 나아가 귀여움의 태도는 현실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사전에 극단적인 충돌을 방지하는 약자간의 협약과도 같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귀여운 존재들이다.
… 무치(無恥)의 裸身, 그것이 저 천진난만하고 해맑고 온순하고 무해하고 앙증맞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물+속물들인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식인’도 ‘노인’들도 ‘대학생’도 ‘군인’도 ‘조폭’도 이종격투기의 ‘챔피언’도 ‘성직자’도 심지어는 ‘귀신’도 이제는 모두 귀여울 뿐이다. 모두가 적당히 모범적이며, 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줄 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괴롭게 살지 말자. 쉬운 길이 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산 수 있으면 속물이고 어떻고 동물이면 어떤가? 부끄러울 것 없다. 인생 뭐 있는가?
한편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등장은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으로서 국가의 과잉-통치를 비판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결’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기획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자기-계발의 이상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 근래 회자되는 ‘기업가 정신’이다. 자기-계발의 주체는 조직논리나 계층구조에 순종하는 유순한 주체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창조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주체이다.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에게 퇴직은 부당한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일 뿐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타자의 의사에 따르거나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자신의 행위에 대한 평가를 자각하면서 자기가 설정한 척도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하고 사정하는 자기-평가/자기-감사의 주체이다. 따라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자기-계발의 주체는 자기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므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그 책임을 타자나 조직에 돌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규율’이 추구하는 주체상이다. 이처럼 자기-계발(자기 통치)의 주체가 향유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자유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첫째, 자기 통치의 주체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항상 불안과 불만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으며, 어떤 지표와 수치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의 심신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하여 각종 평가 기관이나 카운슬러, 테라피스트 등과 같은 전문가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둘째, 자기 책임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는 환경에서 사회적 문제가 능력의 결여나 자기 관리의 실패와 같은 개인적 문제로 환원된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주체에게 내가 지금 왜 선택해야 하는가,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와 같은 일련의 가능한 반문은 애초에 봉쇄되어 있다. 결정의 지연은 자기 통치 능력의 결함을 드러낼 뿐이다. 셋째, 각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타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타자의 좌절이나 실패는 조금 안타깝기는 해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 된다. 내가 나 자신의 삶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지고 있는 이상, 타자도 그의 삶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그/녀의 삶의 파탄은 그/녀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통치하는 주체의 이러한 상호 배타성은 특히 ‘자유의 규율’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간주된 타자에 대해 징벌적인 태도를 갖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타자는 자기 통치의 굴레 속에서 해방된 개인이지만, 나에게 있어선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로부터 “나는 나”라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정신이 출현한다. 생활과 노동, 불행의 모든 조건들이 개인화되고 개별화되면서 접촉에 대한 히스테리적 욕구가 늘어가고, 내가 ‘나’이고 싶을수록 공허함만 더해간다. 물론 접촉에 대한 욕구와 무관하게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타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90년대 후반 이후 대학가의 주된 화두가 ‘소통’이었다는 것은 접촉과 소통 상실의 시대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증하지 않는가.
나, 너, 우리는, 마치 매표소 창구를 따분하게 지키고 앉아 있듯, 우리의 자아에 매달려 있다. 〔…〕 항구적인 반半파탄 상태, 만성적 괴멸 상태에 처한 자아를 지탱하는 것이야말로 작금의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비장의 요령이다. 〔…〕 더없이 탐욕스런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가장 생산적인 자아이며, 지극히 사소한 계획에 자신을 열정적으로 쏟아 부었다가 조금 지나면 원초적 유충 상태로 얼마든지 되돌아갈 위인인 것이다.
이러한 ‘자아의 요새화’와 개인화 경향은 공적인 영역으로부터의 후퇴와 조응한다. 자유가 공공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거기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의미하게 되면서, 공적인 것 일반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멸시가 뒤따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집단적 연대의식과 공공성의 복원을 위해 무엇보다 타자와의 관계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자기 책임과 개인화의 논리에 따라 타자와의 ‘공간’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격리시킨 개인들은 타자의 삶에 생긴 불행한 사태에 대해 도외시하게 된다. 나의 자유와 이익만을 따지는 개인에게 청년 불안정노동의 현실은 내가 비정규직이 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 이상의 아무런 도덕적, 정치적 의미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비정규직 비율이 50%에 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와 내 친구 중 한 명은 불안정 노동의 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타자의 자유 상실은 비단 타자만의 자유의 상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자에게 관심을 갖고 타자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은 자기의 당면 이익과 전혀 상관없다 하더라도 ‘세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4. 삶의 향유권에 대한 즉각적인 요구
2000년대 중반 IT 거품이 꺼지면서 ‘청년실업’이란 말이 등장했다. IT거품에 따른 창업 붐으로 일시적으로 가려져 있던 고용시장의 실상이 청년실업 100만의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조직적 연대 대신 자기-계발의 이상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투쟁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이어 채 몇 년도 안 되어 ‘청년실업’을 넘어 ‘청년빈곤’이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알바,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등 불안정노동이 청년층 대다수의 현실이 되었고, 그 와중에 물가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어 인상된 등록금 부담은 이들을 이중삼중으로 압박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휴학해서 알바를 하고, 졸업 후에도 수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취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청년실업’에서 ‘청년빈곤’으로, ‘빈곤’에서 ‘자살’로,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근 10년 내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벼랑을 향한 경주’를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벼랑’까지 내몰린 것은 아니라며 자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력자본과 스펙을 근거로 한 계급상승과 탈락의 메커니즘은 모든 집단이 똑같은 목적, 동일한 특성을 향해 동일한 방향으로 달려갈 것을 전제하고 요구하고 있다. 이때 요구되는 특성들은 결국 선두를 점하고 있는 집단에 의해 대변된다. 상위집단은 하위집단을 경쟁에서 떨쳐내고 변별적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스펙의 요소를 부과한다. 이러한 서열적 특성은 사회집단에게 일종의 ‘순서’, ‘거리’, ‘차이’ 등으로 표상되고, “특정한 시점의 기성질서는 필연적으로 시간적 질서”로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각 집단은 바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하위집단을 자신의 과거로,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상위집단을 자신의 미래로 갖기 때문이다.(진화론적 모델이 그토록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집단들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시간의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른 여러 차이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다.”이러한 메커니즘은 결국 계급 간 차이를 계기의 순서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실제로는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데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환상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쟁 투쟁은 현존하는 계급 간 차이에 의해 이미 불평등하게 조건 지워져 있다. 일례로 <표 6>을 보면 대학생의 등록금 마련방법은 70% 이상이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소득 하위 층일수록 학생 스스로 대출이나 알바를 통해 마련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하위 층일수록 등록금 마련을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하고, 이는 결국 경쟁 투쟁에서 추가적 비용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 패자’로서 이 경주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은 기다림의 환상을 깨고 경주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지배집단의 목표와 가치체계 자체를 전복시킬 필요가 있다. 경주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선행자들의 목표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
구 분 |
계1) |
부모님 (가족)의 도움 |
대출2) (학자금대출, 일반대출 등) |
스스로 벌어서 마련 |
장학금 |
기타 |
|
2010 |
100.0 |
70.5 |
14.3 |
8.6 |
6.5 |
0.1 |
|
남자 |
100.0 |
72.5 |
12.8 |
8.9 |
5.8 |
0.1 |
|
여자 |
100.0 |
72.5 |
12.8 |
8.9 |
5.8 |
0.1 |
|
가구별 월평균소득 |
||||||
|
100만원 미만 |
100.0 |
66.2 |
18.9 |
5.0 |
9.6 |
0.3 |
|
100~200만원 미만 |
100.0 |
56.6 |
22.7 |
12.3 |
8.3 |
0.0 |
|
200~300만원 미만 |
100.0 |
70.0 |
14.3 |
10.0 |
5.7 |
0.1 |
|
300~400만원 미만 |
100.0 |
74.0 |
13.0 |
8.1 |
4.7 |
0.2 |
|
400~500만원 미만 |
100.0 |
77.0 |
5.6 |
9.6 |
6.6 |
0.3 |
|
500~600만원 미만 |
100.0 |
87.7 |
4.3 |
4.7 |
3.3 |
0.0 |
|
600만원 이상 |
100.0 |
84.7 |
5.8 |
4.3 |
5.1 |
0.2 |
주1) 대학생(휴학생 포함)
주2) 대학생 본인의 대출을 의미
* 출처 : 통계청 <사회조사보고서> 2010.
청년 불안정 노동의 심화 또한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자본축적의 변화한 동학에 따른 것이다.따라서 이때에도 경기회복에 대한 막연한 전망으로 묵묵히 기다리는 행위는 패자의 환상에 불과하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진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 이르기까지 자본은 더 많은 고용을 통해 더 많은 잉여노동시간을 착취함으로써 더 많은 잉여가치를 축적하려는 경향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도시와 공장들은 전국 각지를 넘어 세계 각지로부터 인구를 흡수했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압도적 부분이 농민에서 노동자로 전환되었고 노동세계 외부에 머물러 있던 여성, 원주민 등도 노동세계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예비군은 순환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존재로 간주될 뿐이었으며, 산업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경제투쟁은 서구에서 완전고용과 높은 사회복지를 보장하는 계급 타협적 정치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1968년 혁명에서 시작된 21세기 세계에서는 전혀 새로운 상황과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임시직으로만 고용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실업자는 순환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 구조의 효과로 인해 점차 확대되는 존재가 된다. 소수의 정규직 노동계급과 착취당한 자유마저 빼앗긴 실업자 사이의 광범위한 중간지대를 비정규직, 일용직, 알바족 등 광범위한 불안정노동계급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집합적인 계급의식으로 묶이지 못한 채 각자의 상이한 이해관계에 따라 분할되곤 한다. 정규직은 우선적으로 임금보다 정리해고에 관심을 갖고, 비정규직은 정규직화에 주로 관심을 가지며, 실업자는 구직과 사회복지 혜택에 관심을 갖는다.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이주 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 등을 통칭하는 ‘불안정 노동자’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고용’의 문제로 다뤄지곤 한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은 비단 고용형태 상의 차이만을 함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뒤따르는 빈곤과 불안, 억압과 갈등, 질병과 자살 등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차원의 문제를 포괄하는 삶 일반의 고통스런 경험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높은 등록금과 불확실한 취업전망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하루하루 알바로 청춘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세대에게 불안정노동의 현실은 주거와 결혼을 포함한 삶 전체의 착취와 배제,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불안과 공포로 체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단순히 시장상황에 의해 규제되는 고용문제로만 사고하는 것은 삶 전반에 관한 안전과 재생산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한계를 갖는다. 이는 고용만이 소득을 보장한다는 부르주아적 통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자본에 고용된 노동 외에 비고용의 노동들과 비임금의 노동들에 의해서도 생산된다.”(313) 자본의 축적은 고용 노동자의 부불의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지적인 활동, 여성들의 무상의 노동력재생산 노동과 돌봄 노동, 사회적 네트워크의 효과로 생산되는 지식과 창의력의 자본주의적 ‘전유’와 ‘수탈’에도 의존해 왔으며, 오늘날 후자의 비중은 갈수록 점증하고 있다. 따라서 부의 생산이 “고용노동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되지 않은 거대한 노동들에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용에 따른 소득 분배’가 적실하지 않은 것임을 시사”(314)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청년세대는 일부 유럽국가와 같은 사회임금의 보장(학업비와 일정한 생활비 보조 등), 등록금 인하(나아가 점차적인 무상교육의 실시), 불안정노동의 차별철폐와 최저임금의 상향 등 생활개선을 위한 경제적 요청과 더불어, 나아가 고용노동과 소득의 고리를 끊는 무조건적인 보장소득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노동권의 보장을 넘어 시민으로서 삶 전반에 대한 안전과 향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삶의 생산과 재생산에 다양한 형태로 참가하고 있는 오늘날의 생산조건과도 부합하는 것”(334)이다.
브라질의 「시민기본소득법」, 미국 알래스카 주의 영구기금 배당을 필두로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본소득’ 제도는 기여금, 자산 심사, 노동 요구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기본소득의 구상은 완전고용을 통한 소득보장이라는 전통적 명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문제의식 하에, 거꾸로 기본소득의 보장만이 여러 경로를 통해 완전고용의 길을 열어준다고 주장한다. 첫째, 기본소득은 일정한 임금 보조를 통해 고용노동자의 추가노동 압박을 줄여 노동시간 단축을 가능하게 해주고 둘째, 기본소득은 비자본주의적인 노동을 증가시켜 노동시장의 노동 공급 압력을 줄인다. 예컨대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나 독립예술가, 비인기 학문 전공자처럼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면 자신의 여유시간을 비자본주의적인 활동에 투여할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셋째, 기본소득은 내수 시장을 키움으로써 자본주의적 일자리도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만으로 대안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운동이 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광현에 따르면 기본소득 운동은 다른 운동들과 효과적인 연결망을 이루어 자본주의 극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입체적인 투쟁의 유기적인 부분이 되지 못할 경우, 그것이 정작 실현되더라도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시적인 보조금 지급이나 케인스주의적 타협으로 회귀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모델은 첫째, 전 국민을 상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현금 및 현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그것이 국민경제 전체를 위축시키지 않는 경제적 타당성에 입각해야 하고 둘째, 늘어난 자유시간이 자본주의적 자기계발이나 소비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자율적이고 연대적인 형태의 문화적 향유와 교통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주체성의 구성을 포함하는 후자의 기획을 위해선 각종 문화운동과 상호부조 네트워크 등의 프로그램이 긴밀하게 결부되어야만 한다.
물론 기본소득을 위해선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현물복지 체계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하고, 기존 지배계급이 전유하고 있던 부의 사회적 전유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만큼 정치적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며,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와 문화사회 건설의 이념을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상급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장을 열지 않았던가.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상교육, 무상주택, 무상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처럼 보편적 현물복지가 가능하다면 보편적 보장소득도 가능한 셈이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내 집 한 칸을 마련하는 데도 십 수 년이 걸린다는데, 어느 것이 과연 더 지난하고 불가능한 길일 것인가? 지젝의 재치 있는 비유처럼, 우리는 정치적 기획을 통한 자본주의 사회의 극복보다 생태적 파국에 따른 지구 종말을 더욱 믿는 전도된 이데올로기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구조적 약자에게 구조 내에서의 기다림이란 신용구매를 통해 일시적으로 부유층의 위치를 만끽하는 것과 같은 환상의 구조에 의해 지탱된다. 그러나 지불청구서가 도래하는 순간, 달콤함 환상은 이내 깨지고 쓰디쓴 현실만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러니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의 자유로운 시간과 삶의 향유권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고, 기획하고, 실천하자.
[실천문학 99호] 2010, 가을.
오늘날 20대는 보수화되었는가? 대답은, 단호한 ‘그렇다’이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함께 고용조건이 불안정해지고, 경쟁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한국인들은 보수화되었다. 굳이 보수적인 정치이념을 신봉하고 보수정당에 투표를 해서가 아니다.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 안위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욱이 20대는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은 인생을 걸고 전면전을 치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화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편이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일부 매스컴을 위시해 투표율의 작은 변화 따위에 호들갑을 떨며 20대의 정치성을 발견해 보려 애쓰지만, 오늘날 20대가 과거의 대학생들에 비해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졌다고 간주할 수 있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 20대가 정녕 보수화되었는가에 대한 시답잖은 논쟁은 그만두도록 하자. 오늘날 20대는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시하면서 사회적 의제에 무관심하고, ‘성공’ 외에 대안적 삶의 가치나 방식을 희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보수적이다.
20대 담론, 당위론과 결정론 사이
그렇다고 해서 일부 386세대처럼 20대를 ‘개새끼’로 몰아붙이며 정치적 각성을 요구하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20대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 세대의 주체성을 품성의 문제로 환원해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이 불필요한 오해를 양산하고, 문제를 명료히 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다. 386세대의 20대 비판에 대해 일군의 ‘20대 논객’들이 ‘꼰대들의 훈계’라며 극렬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데에서도 부작용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은 20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분석 없이 20대의 정치적 주체성을 비판하는 것은 몰지각한 ‘당위론’이며, 그러한 비판의 근저에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과거를 치장하고 스스로 보수적인 권력집단이 된 현재를 은폐하려는 동기가 강하게 놓여있다고 비판한다.
특정 세대의 주체성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처한 정치경제적 조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적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자연스럽게 ‘20대 동정론’으로 흐르는 경향의 위험성 또한 강조해야만 하겠다. 20대가 마주한 암울한 사회적 조건이 그들의 보수성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태의 규정성들을 추적하는 것과 주체의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는 “20대의 보수화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당사자들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구조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주체에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20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대가 자율적이고 책임감 있는 주체라는 점을 긍정하기 위해서이다. 칸트 식으로 말해 책임(의무)을 진다는 것은 자유로운 주체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한편, 20대 주체성 분석에 있어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한 분석만으로도 여전히 부족한 점은 남는다. 사실 20대가 처한 정치경제적 조건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은가.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하에서 20대의 고용조건은 앞으로도 별반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20대는 개발독재 시기에 축적한 부동산 자산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중산층을 형성한 부모세대나 이미 국가기관이나 기업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의 소득과 재산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소득만이 아니라 인맥과 연줄로 견고하게 무장한 채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식 ‘사회적 자본’의 규모에서도 결코 기성세대에 필적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이러한 ‘불평등의 세대간 전이’가 더욱 악화되리란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 20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견고한 현실 속에서 대다수 20대 독자들이 얻은 교훈은 “그러니 더욱 분발하자”였던 듯하다.
따라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주체들의 상상적 인식, 즉 이데올로기적 인식이 아닐까. 오늘날 20대들은 본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이들은 현실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며, 사태를 변화시키려는 개인적 노력이 결국 본인의 손해로 귀결되리란 회의적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사회 변화에 대한 역사적 전망이 부재하고 대안적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기에, 이들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결에 몰두하게 된다. 다시 말해, 20대를 사로잡고 있는 보편적인 주체성의 형태는 ‘보수주의’라기보다 “나도 안다, 하지만…”의 형태를 취하는 ‘냉소적 실용주의’인 셈이다.
20대들은 이러한 전망과 희망의 부재를 ‘불안’이라 고쳐 부른다. 그들의 영혼이 불안에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생존경쟁에 내몰린 불안한 주체’라는 규정만으로는 20대 주체성의 특수성을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나아가 ‘불안’이라는 모호한 존재론적 개념이 사회적 실존 형태에 관한 구체적 인식의 가능성과 변혁적 행동의 전망을 봉쇄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삶을 조건지우고 있는 특수한 메커니즘을 마치 필연적인 운명처럼 자연화 할 때, 그들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동정’ 내지 ‘독려’일 뿐이다. 정녕 개인적 분투 외에 아무런 대안도 없단 말인가? 사실상 우리는 대안에 대해서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속물들의 군비경쟁과 인정투쟁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삶이 전면화 되면서 우리 사회는 자신의 ‘생존’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보았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개인의 절박한 관심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에 놓여지고, 생존을 위한 개인적 노력은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면제되어 절대적으로 긍정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성찰과 도덕을 배격하는 후안무치한 존재들, 즉 속물이 되었다. 속물적 에토스의 요체는 뻔뻔한 당당함에 있다. 치부와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와 천박함은 ‘생존경쟁’이란 마술적 기표 하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발견한다. 열풍처럼 유행했던 자기계발서들의 공통된 주문은 결국 “속물이 되라”는 것 아니었던가.
대학가에서 발견되는 가장 극단적인 속물적 주체로 소위 ‘훌리건’들을 꼽을 수 있다. 과거 대학 게시판 등지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며 대학서열 조작을 위해 게시판 테러를 일삼던 이들 훌리건들은 오늘날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들이 전파했던 대학서열화나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자연스럽게 대학사회에 정착되었고, 이제 대학생들 스스로 ‘서성한 중경외시’ 운운하는 대학레벨을 ‘스펙’의 한 요소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훌리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대학생들이 ‘훌리건’이 된 이상, 소수의 집단적이고 계획적인 음모는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식 구조조정부터 ‘학생사찰’ 의혹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앙대의 경우를 보자. 두산 재단이 들어온 이후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학내언론에 대한 탄압, 총학생회 등 자치활동에 대한 방해공작, 구조조정 시위 참여자의 징계, 퇴학시킨 학생에 대한 ‘사찰’ 등 반민주적인 행태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들의 예상과 달리, 탄압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재학생들의 여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세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 중 하나는 물론 기업식 구조조정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들이다. 이들은 대기업이 재단으로 들어온 것에 지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기업식 구조조정이 명문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순진한 보수주의자들이다. 또 다른 부류는 구조조정 반대세력들로 인해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어 대학레벨이 떨어진다며 걱정하는 ‘냉소적 속물’들이다. 이들은 학교본부와 재단의 행태가 반민주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나 시위 내용이 외부 언론에 알려져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학교 이미지 실추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학교본부와 재단이 될 터이지만, 이들에겐 이유 불문하고 저항세력들이 원인제공자로 간주된다. 탄압을 받건 부당한 대우를 받았건, 일단 그들이 참고 넘어갔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가의 속물들이 ‘학교 이미지’에 목숨 거는 이유는 대학의 등급이 연구역량이나 교육여건 따위가 아니라 ‘입결(입시결과)’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입결’은 신규 지원자들이 해당 대학에 갖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와 경쟁률에 의해 결정된다. 동일한 논리로 취업시엔 대학에 대한 기업의 평판이 고려된다. ‘학교 이미지’는 내적 본질이 아니라 순수한 외양이기에 ‘대학의 외관’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요즈음 주요 대학들은 건물을 증축하고, 학내에 대형마트 등 자본을 유치하고, 리모델링을 수행하느라 연중 공사판이다. 이것이 최근 몇 년간 물가상승폭을 뛰어넘는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 인하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드문 이유이다. 그들은 오히려 높은 등록금이 ‘대학의 격’을 나타내며, 외부인들에게 학교발전에 대한 전망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일종의 ‘군비경쟁’이다. 어느 한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고 건물을 증축하면, 나머지 대학들도 그 길을 따라야만 한다. 이처럼 상호 강화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투여해야 할 자원은 무한히 증대하게 된다.
‘스펙’은 개개인의 수준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이라 할 수 있다. ‘취업 8종 세트’라 불리는 스펙의 구성요소들이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정당한 기준이라고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기업들이 그 중 일부 요소를 자격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심지어 과연 스펙이 취업의 당락을 결정하는 지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은 궁극적인 확신이 없다. 그래서 ‘결국은 학교 간판이 좌우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이는 또 다시 대학레벨을 둘러싼 군비경쟁으로 귀결된다. 일종의 악무한적 순환논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군비경쟁의 법칙상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들이 군비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게임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20대의 생존경쟁은 ‘경제적 생존’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생존’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된다. 밥을 굶진 않겠지만 부모나 동료들로부터 ‘낙오자’라는 낙인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물론 거기엔 20여 년간 교육을 받고 밥벌이도 못한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인생을 저당 잡힌 부모에 대한 미안함 등 모든 인간적 고뇌가 함께 응축되어 있다.
‘정치적 요구’와 ‘대안적 상상력’을 조직하기
요컨대, 등록금을 밑천 삼아 대학순위 경쟁을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자원삼아 스펙경쟁을 펼치는 20대들은 ‘한 줄 세우기’라는 동일한 게임의 룰을 지키며 사회적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 줄 세우기’가 각박한 게임인 까닭은 비단 경쟁이 치열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로 하여금 동일한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20대의 꿈을 취업으로 환원시키고, 취업을 위해 요구하는 덕목들마저 모든 기업에서 동일하다. 업종과 직책을 막론하고 동일한 인재상을 원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기실 애초에 유능하고 적합한 인재를 뽑는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서로 암묵적 합의 하에 진행하고 있는 게임 아니던가. 게임의 흥미는 수행성에서 오는 것, 참여자들에겐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만족감이 제공된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선발과정을 무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군비경쟁으로 치닫지 않게끔 제어할 수는 있다. 과거 냉전시기 미․소간 군축합의를 이룬 것은 군비경쟁을 통해 안보가 증대하지 않으며, 결국 사회적 생산력을 불필요하게 낭비할 뿐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학순위 경쟁과 스펙 경쟁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등록금은 두 배 이상 올랐지만 대학의 연구역량과 교육서비스의 질이 그만큼 증대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기업이 원하는 높은 스펙을 갖춤으로써 개인의 업무능력과 잠재성이 증대했다는 증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참여자들이 투여해야 할 자원과 에너지, 경쟁의 강도만이 증대했을 뿐이다. 이는 비단 개인의 손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준의 낭비이다. 그러니 모든 대학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거나,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에 대해 집단 보이콧하는 등의 ‘정치적 요구’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면서,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 주장이기도 하다.
‘낙오자’가 되는 두려움에 기반해 작동하는 ‘인정투쟁’을 완화시키기 위해선 인정의 기준을 다원화시켜야 한다. 모두가 공기업과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최근 10년 내에 부상한 낯선 현상이다. 어엿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 자체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20대들 스스로가 그러한 관념을 마치 마주보는 거울 두 개에 비친 상처럼 상호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강박관념은 결국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한다기보다 ‘남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따라서 모두가 그런 믿음을 버리는 순간, 그 믿음이 지탱하던 현실 또한 붕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뛰쳐나온 김예슬의 행위는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대학에 남아 사소한 제도적 개선을 추구하는 대신, 게임 자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순 없겠지만, 그런 행위가 지닌 가치와 가능성을 긍정하고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현실이 실제로 ‘현실화’된다. 지젝을 빌어, 모든 실재는 ‘발생한 불가능’이 아니던가.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착한 거부, 직접 행동이라.. 조직적인 행동인지가 일단 궁금합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프라인 반대시위에는 4명이 나왔더군요. 당사자들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