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용산범대위

[10/24] "10.24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와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10.24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와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2009-10-24,  서울역 광장과 용산참사 현장

 


△ 24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에서 "10.24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가 용산 범대위 주최로 열렸습니다.

 

 24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가 용산 범대위 주최로 열렸습니다. 이번 추모대회는 "용산참사 해결촉구 노동자 결의대회"와 함께 했습니다.

 

 노동자, 철거민, 사회단체 회원 등 약 2천여 명이 참가한 집회의 첫 순서로,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이 발언을 했습니다.
임성규 위원장은 “탄압이 강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이라고 했습니다. 임성규 위원장은 “대한민주 공화국이 명박 공화국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파업찬반투표 자체를 무산시키라는 지침이 난무한다. 공무원법 57조 복종의 의무를 남용,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 자체를 금지한다.” 임성규 위원장은 정운찬 총리가 “자신의 아픔인 것처럼 눈물까지 글썽이고 돌아가자마자, 검찰이 전국철거민연합 동지들에게 7~8년을 구형했다”라고 규탄했습니다. 따라서, “용산참사도 노동자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임성규 위원장은 “현장을 조직하자”라고 주문했습니다.

 

 성신여대 몸짓패 메이데이가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등의 노래에 맞춰 공연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용산범대위 조희주 대표가 발언을 했습니다. 조희주 대표는 “노동자·민중들이 힘을 모으면 용산참사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풍물패 미르가 사물놀이 공연을 했습니다.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김경호 목사가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김경호 목사가 발언을 했습니다.
김경호 목사는 재개발을 두고 “20년을 거기 산 사람들을 거기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이는,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런 정책을 펴는 이유는 “상위 1퍼센트가 51%를, 10퍼센트가 84%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김경호 목사는 “민중이 민중을 위한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로, 고 양회성 열사의 부인이신 이영덕 씨가 발언을 했습니다.
이영덕 씨는 “정운찬 총리가 이명박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운찬 총리를 두고 “가식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영덕 씨는 “신부님들이 단식을 하시다가, 문규현 신부님이 쓰러지셨다”라고 했습니다. 왜 신부님 같은 분이 쓰러지셔야 하느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노래패 꽃다지가 ‘주문’ 등의 노래를 공연했습니다.
노래 공연을 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용산참사 해결, 정부가 나서라!”라는 글귀가 적힌 풍선에 매달았습니다. 노래 공연 끝 부분에, 함께 풍선을 날려 보내며 집회를 마쳤습니다.

 


△ 저녁 7시에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어김없이 미사가 치뤄졌습니다.[사진제공=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저녁 7시에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어김없이 미사가 치뤄졌습니다.

 

 이 날 미사에는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을 포함하여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미사 말미에 문정현 신부가 동생 문규현 신부의 용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날 오전 11시 면회시간에 동생 신부의 세례명인 “바오로”를 부르니 눈을 번쩍 뜨면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면서 크게 기뻐하면서 여기 참가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군사독재가 물러난 자리에 ‘자본독재’가 들어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용산참사도 자본독재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용산 투쟁은 ‘세입자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문 신부는 동생 신부의 일을 계기로 마음을 다시 가다듬은 듯 “길게 가자”라고 말하면서 11월 2일 서울시청 앞 광장 시국미사 참석을 적극 요청했습니다.

 

→ 관련글 : [용산현장매일미사] 진실에 눈을 뜹시다-10월 24일 미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8/29]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추모의 날 투쟁보고입니다.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추모의날 투쟁보고!

 

2009-08-29, 서울시청 일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7개월이 흘렀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서울광장을 열어 열사들의 분향소를 차리고 지키자”라는 요구에 따라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의 날 행사가 29일 가열차게 진행되었습니다.

 

 오후 2시 추모예배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한문 광장 앞에는 경찰에 의해 철저하게 원천봉쇄 되었습니다. 2시 추모예배를 시작하기 위해 최헌국 목사님(예수살기 사무국장)이 '촛불 그리스도인' 현수막을 깔고 십자가를 내려놓자 경찰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사님을 대한문 밖으로 사지를 들어 끌어냈습니다. 경찰은 평화로운 종교행사마저도 '무엇이 부담이 되는지' 철저히 봉쇄합니다. 오늘날 이명박 정권의 현주소이자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 29일 오후 3시 30분, 서울시청 일대에서 "용산참사 해결 촉구, 추모 예배"와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 추모의 날"집회가 열렸습니다.

 

 1시간 30여분 가량 경찰과 실랑이 끝에 세분의 유가족과 대한문에 미리 모여 있는 3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용산 참사 7개월, 해결촉구 추모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찰봉쇄 때문에 대한문 추모예배에 함께하지 못한 참가자들도 경찰버스와 경력에 의해 만들어진 저지선 밖에서 자체적으로 규탄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추모기도회는 민중들의 찬송가인 “님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추모기도회 내내 용산참사 해결을 외면하고 수수방관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규탄발언과 구호가 외쳐졌습니다.

 

 김경호 목사님(들꽃 향린교회, 예수살기 총무)은 설교를 통해 “경찰이 우리의 행사를 봉쇄하는 것은 양심과 도덕, 참다운 정의감을 가진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경찰의 행동을 꾸짖었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에 ‘각자 자기의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에서 사람들을 초대하며 살아간다’라고 소개하면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정의의 소리이다. 정의의 소리가 불의의 정수리를 깨고 창이 되어 가슴을 뚫을 것”이라며 용산참사 해결에 수수방관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준엄하게 경고했습니다.

 

 이상림 열사 미망인 전재숙 님은 발언을 통해 “다섯 유가족은 이명박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고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구속수사, 검찰조사기록 3000쪽 공개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정정당당한 재판의 진행과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을 반드시 이루어내서 열사들을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다고 울부짖었습니다.

 

 박순희 대표(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는 "우리 국민들의 무관심과 외면이 아직 열사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민들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노회찬 대표(진보신당)는 규탄발언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정책에 대한 단 1%의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용산참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라”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또한 "결국 담을 넘는 것은 담쟁이라며 담쟁이와 같이 서로서로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제안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 잔디광장에 앉은 유가족과 시민들[사진제공=동글이세상 까페]

 

 오후 5시 30분경 추모예배를 정리하고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추모대회를 약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추모대회를 시작하려 하자 경찰은 유가족들과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폭력적으로 연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유가족 한분이 실신해 응급차에 후송되고 현장에서 10여 명의 시민들이 폭력경찰에 의해 연행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세분의 천주교 수사님들도 계셨습니다.

 

 이후 용산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과 유가족들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 모여 경찰의 원천봉쇄와 참가자 연행 규탄을 위한 항의행동을 진행하고 서울광장으로 이동하여 밤늦도록 완강한 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모일 때마다 이를 폭력적으로 원천봉쇄했습니다.

 

 대한문 옆 인도상에서 서울 평통사 권혁문 회원이 연행되었습니다. 이에 향린교회 교인들과 본부 김종일 사무처장의 수서경찰서 항의방문이 있었고, 8월 30일 오후 연행자들을 접견한 황현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용산 범대위 법률지원단)께서 불법부당한 연행이어서 문제가 많다고 판단하여 '체포적부심'을 신청하였고 그 심사결과에 따라서 밤 12시가 지난 후 연행자 7명이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 관련자료 : [상황종합] 8.29 범국민 추모의 날 상황(영상자료 추가)

 

→ 관련글 :[용산참사현장 풍경] =>8월 29일 - 용산 풍경 / 서울시청 앞 추모제 / 경찰 만행 모음

 

→ 관련글 : [행동하는 라디오 현장중계] 대한문 앞 촛불추모제 (8월 30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