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기록해두어야해.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반복하지 않으려면.
짐을 정리하고 있다.
각자의 방향을 가기위해.
나를 살려내기위해.
그의 선택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 수도 있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는 지인들이 묻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다.
그냥 . 내 깜냥이다, 내 고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떠나기로 생각한데에는 어리석더라도 나름의 판단기준이 있다는걸
정리해두고 싶다.
그게 어리석은 기준일지라도. 어리석은 판단기준.
하나.
그는 자신의 욕망, 꿈을 선택했다.
그림을 함께 그려가자던 우리였는데, 그는 자신의 욕망이 점점 더 생기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그런 그의 무수한 그림들을 제어하는 삶에 지쳤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로부터 발생한 많은 것들로 무척이나 힘겨워했다. 특히 내가.
그리고 그 힘겨운 생활들 속에서, 그는 혼자 그리는 세상(세상을 위한 무언가라지만), 자신의 일을 선택했다.
내게는 통보와 같았다.
같이 만드는 삶으로 모든 모드를 전환했는데, 맘대로 모드를 끊다니.
그 배신감이 너무나도 나를 무너지게 했다.
해남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조건(부모님이 만들어놓은 터전,집들,그리고 부모님)과 기회가 있는 공간이지만 내게는 '그' 밖에 없는 공간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다.
내가 이곳에 남는다면... 몇년은 죽은 사람처럼 지내게 되겠지.
둘.
그가 그리는 그림은,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리고 그가 정말 그 그림 안에 들어가 그걸 직업이 아닌 삶으로 살아간다면
그건 정말 삶이 달라지는 거다.
삶이 다른데 같이 산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서로 다른 패러다임 속의 삶을 한 집에서 산다는 건. 그건 고문이다.
그는 그림을 다 그려놓고 내게 제안하기 때문에 작은 나로서는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다른 제안을 하기도 어렵다. 내가 그 그림안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깜냥의 사람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 나를 배려하거나 고려해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지 않았는가.
아프지만.
그의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지금은 결코 그럴. 그리고 그 성향은 어쩔 수 없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야한다.
사랑이라는 몹쓸 것이 계속 망설이게 한다. 제발.
여전히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나를 놓지 못하지만
언젠가 그것도 옅어지겠지.
그냥,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