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에서http://blog.jinbo.net/DAHG/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2023-08-17T02:22:21+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2023.8.15. 송령이골 벌초푸르른 날http://blog.jinbo.net/DAHG/2732023-08-15T22:51:21+09:002023-08-15T22:46:09+09:00<p>'송령이골' 벌초(2023.8.15.)</p>
<p>* 제주 4.3.유적지, 1949.1.12. 의귀리전투에서 산화한 인민유격대 대원들의 집단매장지</p>
<p><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8310477337.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1899169391.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1415173823.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8176076936.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6021679691.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3455874193.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8751825912.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4646232657.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8812454720.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3095219453.jpg" style="float: left;" width="500" /><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1328072828.jpg" style="float: left;" width="500" /></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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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200회 및 2023년 시농제 축문 -</h2>
<h3> </h3>
<h3>2023년 계묘년(癸卯年) 삼월 스무닷새날,</h3>
<h3>제주시 월광로 12, 담을텃밭에서,</h3>
<h3>‘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 참여하는 농민들, 셀러들, 소비자들이</h3>
<h3>제주도 농사의 신(神)이신 백주또 백주할망, 자청비 세경할망님께 고합니다.</h3>
<h3> </h3>
<h3>함께 한 6년입니다.</h3>
<h3>함께 이어 온 200회 개장입니다.</h3>
<h3>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자연그대로농민장터는 열렸습니다.</h3>
<h3>지난 3년간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조차도 자연그대로농민장터를 꺽지 못했습니다.</h3>
<h3>매주 토요일 오후, 농민과 셀러와 소비자들이 만나, 함께 이 직거래 장터를 지켜왔습니다.</h3>
<h3> </h3>
<h3>우리는 기억합니다.</h3>
<h3>6년전, 5개 농민단체가 자연그대로농민장터를 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얘기를.</h3>
<h3>“이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를 통해,</h3>
<h3>생산자인 농민이 소비자를 살리고, 소비자인 시민이 농민을 살려, 생산과 소비가 다시 하나로 이어져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h3>
<h3>농민이 제주의 흙과 자연을 살리고, 그 흙과 자연이 다시 농민과 시민을 되살려, 자연과 인간이 다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h3>
<h3>농촌이 도시를 살리고, 도시가 농촌을 살려, 농촌과 도시가 하나의 제주공동체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h3>
<h3>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는 맹세를.</h3>
<h3>이 다짐과 맹세를 앞으로 6년 더, 200회 더 함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h3>
<h3> </h3>
<h3>백주할망 님! 세경할망 님!</h3>
<h3> </h3>
<h3>2023년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습니다.</h3>
<h3>산수유, 수선화, 매화, 살구꽃, 앵두꽃에 이어 벚꽃까지, 봄의 전령사들이 손짓하고 있습니다.</h3>
<h3>달래와 냉이, 땅두릅, 쑥이 겨울땅을 열어젖히며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h3>
<h3>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과 발은 바빠지고, 마음은 설레어집니다.</h3>
<h3>자청비 세경할망이 가져다주신 오곡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장터의 농부들이 올해도 건강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h3>
<h3>애기 때부터 함께 했던 준영이는 올 봄에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h3>
<h3>준영이가 농민장터와 함께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h3>
<h3>녕인이 올해는 꼭 양조장을 복원하여 다시 농민장터를 막걸리장터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h3>
<h3>볍씨학교의 새로운 친구들이 스스로 농사지은 밀과 템페로 농민장터와 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h3>
<h3>2023년 자연그대로농민장터가 매주 아로마소벤오일의 오일향과 장끼마마의 허브향, 그리고 모전자전의 전 내음과 밀랍초의 향으로 은은하게 가득 채워지길 기원합니다.</h3>
<h3>언니네텃밭 토종씨앗 이음이 어나더페이지를 열고, 그 정성과 열정이 다시 지구별가게와 둥지콜렉션, 꼬달스봄떨이를 지켜나갈 수 있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h3>
<h3>2023년 자연그대로농민장터에 달콤한 바람이 새롭게 불기 시작합니다.</h3>
<h3>그 부드러운 바람이 지수할망과 지수할아방의 가슴을 다시 설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h3>
<h3> </h3>
<h3>무엇보다 2023년 자연그대로농민장터가 농산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친환경 소농과 소농이 만나고, 소농과 수공예업자가 만나고, 또 생태를 고민하는 농민과 소비자가 만나서, 농업의 가치, 노동의 가치, 생태의 가치에 대해 맘껏! 원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장터가 되길 바랍니다.</h3>
<h3>농산품과 수공예품을 사고 파는 것을 통해, 그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고 확산해나가는 ‘자연그대로농민장터’가 되길 원합니다.</h3>
<h3>온라인이 판매가 대세라고 하지만, 우리는 직접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h3>
<h3>그 고집이 어리석어 보이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직접 만나서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입니다.</h3>
<h3> </h3>
<h3>백주할망 님! 세경할망 님!</h3>
<h3> </h3>
<h3>200회를 함께 이어 온 자연그대로농민장터에는</h3>
<h3>준영이가 있고, 볍씨가 있고, 녕인이 있으며, 나루가 있습니다.</h3>
<h3>이들을 아끼고, 이들을 믿고, 또 함께 하는 많은 농민장터 농민과 수공예업자와 소비자들이 있습니다.</h3>
<h3>그래서 자연그대로농민장터는 적어도 앞으로 200회는 더 이어갈 것입니다.</h3>
<h3>2023년, 계묘년(癸卯年) 삼월 스무닷새날!</h3>
<h3>오늘은 다시 그 첫걸음을 내딛는 날입이다.</h3>
<h3>2023년 농사와 농민장터의 씨앗을 뿌리는 날입니다.</h3>
<h3> </h3>
<h3>2023.3.25.</h3>
<h3>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참여자 일동</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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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1c 변혁을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p>
<p> </p>
<p>박성인 /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장</p>
<p> </p>
<p>지금 한 걸음을 내 딛을 때인가? 너무 이른가?, 아니면 늦었는가?</p>
<p>준비가 됐는가? 우리가? 아니면 노동자민중이?</p>
<p>현실적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의지라도 있는가?</p>
<p>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현실로부터? 아니면 이념으로부터?</p>
<p>아니 어떤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가? 우리는 대체 뭔가?</p>
<p>새삼스럽게 ‘21c 변혁’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 연재를 기획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을 온통 휘젓고 지나갔다.</p>
<p>“과연 지금 이 논의를 할 수 있는가?”와 “더 늦기 전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p>
<p>어떻게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p>
<p>명색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가 되겠다고 자임하면서 아직도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니---.</p>
<p>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p>
<p>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우리 안으로만 수줍고 조심스럽게 가둘 수는 없다.</p>
<p>고민을 나누고, 드러내어 토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p>
<p> </p>
<p>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p>
<p> </p>
<p>“노동자와 민중은 자신들들에게 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혁명’을 통해 다른 길을 찾는다”고 했는데, 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p>
<p>저임금과 삶의 불안으로 고통받는 850만의 비정규 노동자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규직 노동자들, 직업 자체를 가져볼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실업자들, 저임금 속에서 가장 바닥의 일을 떠맡은 45만의 이주노동자들, 400만이 넘는 금융피해자, 농업포기정책과 기업농 정책으로 하향 분해되는 300만의 농민들, 또 끊임없는 해체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불안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300만 자영업자들, 철거민과 노점상들,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한 1,000만 빈곤의 시대. 20:80의 양극화의 시대.</p>
<p>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완성’됐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p>
<p>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10년 결과 드러난 한국사회의 감출 수 없는 자화상이다.</p>
<p>이것만인가? 이는 한국사회라는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반대편에는 1,000조원에 가까운 과잉 유동자본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은행이든 해외투자든 초과이윤 확보를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채무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은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억대 연봉자가 늘어난다. 재산과 소득은 물론 교육, 의료 혜택 등 경제와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양극화와 불균형은 점점 심화된다.</p>
<p>이와 관련한 조사 통계와 분석 자료는 신문 지상에, 학계 보고서에 넘쳐난다.</p>
<p> </p>
<p>이쯤 되면 뭔가 일어나도 일어날 법하다.</p>
<p>그러나 현실은 어떤가?</p>
<p>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노동자,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는가?</p>
<p>IMF 이후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지킨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p>
<p>비정규 노동자들, 장애인, 이주노동자들, 실업자들, 금융파산자들, 도시빈민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잠깐 이슈화할 뿐,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창출과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해결가능하다는 목소리에 묻힌다.</p>
<p>20 대 80의 구조, 사회적 양극화는 구조화되었다.</p>
<p>그러나 80의 원인이 20이 아니라, 모든 80이 20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환상이 전 사회를 휩쓸고 있다.</p>
<p>‘경쟁’과 ‘승자독식’은 당연하고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p>
<p>“모두 부자되세요.” 부(富)는 더 이상 감추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최고의 가치가 됐다.</p>
<p>그래서 세상은 더욱 살만할 것인가?</p>
<p>그래서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인가?</p>
<p>누구에게는 살만하고 누구에게는 살만하지 않는가?</p>
<p> </p>
<p>이제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갈 것이다</p>
<p> </p>
<p>이 점에 대해 우리는 얘기해야 한다.</p>
<p>거칠고 공허한 듯하지만, 그래서 아직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p>
<p>경제성장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p>
<p>그러나 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경제는 더욱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p>
<p>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모두가 다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지금의 양극화와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p>
<p>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은 더 이상 전가되는 고통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p>
<p>그 때 그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p>
<p>그 다른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 지, 노동자 민중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그 대안으로 서 나가려고 한다.</p>
<p>아직은 작고 미숙한 목소리이자 몸부림이지만, 대안을 찾는 노동자민중들에게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p>
<p>다른 세상이 ‘막연히’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p>
<p>우리의 얘기가, 우리의 바램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다.</p>
<p>우리의 역량이 그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인지 아직 자신할 수는 없다.</p>
<p>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광풍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는 현실에서, 21c 초반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사회세력만이 아니라, 어정쩡하고 밋밋한 이른바 진보 정치세력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끝까지 함께할 동반자가 있음을,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세력도 있음을, 무의미한 소수가 아니라 유의미한 다수를 지향하는 세력도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세워나갈 것이다.</p>
<p> </p>
<p>사실 늦었지만, 그래서 그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p>
<p>“이념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서 출발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새로운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당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망을 갈증하고 있다.</p>
<p>한국전쟁에 이은 53년 정전 분단체제가 이후 50년간 한반도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지형을 근본적으로 규정해 왔듯이,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에서 형성된 정치 사회 지형이 그 후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왔듯이, 96~97년 총파업과 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형이 여전히 지금의 지형을 규정하고 있듯이, 지금 형성되고 있는 정치 사회지형은 이후 10년 20년에 걸쳐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나갈 것이다.</p>
<p>구조적인 전환기이다.</p>
<p>53년 정전 분단체제가 변화하고 있다.</p>
<p>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와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라는 두 가지 모순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p>
<p>87년 민주화체제는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진보진영이 체제내화됨으로써 이미 해체 혹은 완성되고 있다.</p>
<p>97년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는 한미FTA와 뒤 이은 제2의 구조조정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p>
<p>이런 구조적인 전환기에, 의미있고 현실 가능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서기 위해, 우리는 얘기를 시작할 것이고,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p>
<p> </p>
<p>아직도? 가능한가?</p>
<p> </p>
<p>“아직도?”라고 반문하지 말기 바란다.</p>
<p>우리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제기해 나갈 것이다.</p>
<p>그리고 ‘21c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p>
<p>빈곤과 양극화,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양산, 온갖 사회적 범죄, 환경 파괴, 공황, 그리고 군비증강과 전쟁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 ‘자본주의’가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p>
<p>이 자본주의 체제가 영구불변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최선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p>
<p>쉽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p>
<p>여전히 우리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 발을 딛고 있고, 그 속에서 먹고 살고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p>
<p>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했던 20c의 여러 실험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p>
<p>또한 자본주의의 최대 능력은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확신시키는데 있다는 얘기도 빈말이 아니기 때문이다.</p>
<p>그래도 우리는 시작할 것이다.</p>
<p>다른 이유는 없다. 왜?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p>
<p>‘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도, ‘반권위주의’도, ‘반전평화’도 ‘반신자유주의’도 ‘반자본’의 전망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
<p> </p>
<p>“21c 변혁, 현실적으로 가능한가?”</p>
<p>충분히 물을 수 있다. 또 물어야 한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p>
<p>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p>
<p>어떻게?</p>
<p>투쟁은 상대적인 것이다.</p>
<p>물론 지금 우리의 힘은 약하다.</p>
<p>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점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p>
<p>위기에 직면할수록 자본은 그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p>
<p>헤게모니적 지배력은 약화된다. 폭력적 지배라는 그 본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다.</p>
<p>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금융화, 무장화, 노동유연화는 자본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일 뿐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p>
<p>‘공황’과 ‘전쟁’은 그 위기의 직접적인 표현이다.</p>
<p>물론 ‘자본’의 위기는 곧 노동자 민중에게도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p>
<p>그래서 노동자민중이 그 자본과 운명을 함께 할 수도 있다.</p>
<p>노동자민중이 자신의 생존의 위기가 바로 ‘자본의 위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세상을 만드는 주체로 서 나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p>
<p>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p>
<p>“불가능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p>
<p> </p>
<p>‘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p>
<p> </p>
<p>우리는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이루어 놓은 많은 자원을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자원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p>
<p>자본주의가 갖는 그 엄청난 능력 - 동원할 수 있는 물적 자원, 정보력, 조직력 등-에 위압당하지 않고, 그 엄청난 능력 이면에 감춰진 모순과 약점을 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p>
<p>사슬 그 자체를 끊을 수 있는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p>
<p>우리는 단지 ‘비판’만하는 투덜이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을 책임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있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가길 원한다.</p>
<p> </p>
<p>우리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p>
<p>“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p>
<p>우리는 이미 20c 실험의 실패로 수많은 고통을 받아왔다.</p>
<p>회의와 패배주의가 우리를 짓누르고, 심지어 정치적 조롱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p>
<p>그러나 지난 십 수년간 우리는 20c 실험의 실패에 대해 부둥켜안고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새롭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p>
<p>우리는 청산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책임하게 해체하지도 않았다.</p>
<p>그렇다고 마냥 대책 없이 부등켜안고 고집하지만도 않았다.</p>
<p>우리의 대안에 대해 혁신하고자 했고, 확장하고자 했고, 재구성하고자 했다.</p>
<p>우리의 오류와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의 강점과 보듬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연구했고 토론했다.</p>
<p>우리는 ‘21c 변혁’에 대해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이라 생각한다.</p>
<p>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논의와 실천이 우리 스스로를 ‘21c 변혁’을 위한 주체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p>
<p>이미 이러한 시도는 현실에서 시작됐다.</p>
<p> </p>
<p>그래서 우리는 ‘21c 변혁’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우리의 거친 생각과 판단을 드러내려고 한다.</p>
<p>‘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20세기 변혁전략에 대한 평가’로부터 우리는 ‘21c 변혁’의 상과 경로를 모색할 것이다.</p>
<p>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어떠한 정치적인 실천을 해나갈 지에 대해 고민의 단면을 드러낼 것이다.</p>
<p>‘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주체를 세워나가고, 또 어떠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p>
<p>물론 아직 우리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의 과정이 남아 있다.</p>
<p>10년, 20년 넘게 실천과 이론으로 단련된 우리 동지들은 빈틈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치열하게 토론할 것이라 판단한다.</p>
<p>하나하나의 논의가 어떻게 우리의 정치적 실천과 연결되는지, 그런 정치적 실천이 노동자 민중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과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구체적이고 진지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할 것이라 판단한다.</p>
<p>물론 이 논의는 우리 내부의 논의만은 아니다.</p>
<p>다행히 이런 수준의 논의가 여러 조직들에서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다.</p>
<p>논의의 속도와 수위를 맞춰 함께 활력 있게 진행되길 기대한다.</p>
<p> </p>
<p>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p>
<p>이 기획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될 것이다.</p>
<p> </p>
<p>1.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p>
<p>2. 20c 변혁전략, 평가와 교훈</p>
<p>3. 21c 변혁의 조건, 현대 자본주의</p>
<p>4. 21c 변혁전략에 대해</p>
<p>5. 노동자계급정당</p>
<p> </p>
<p>이 구성은 필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p>
<p>또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지면을 할애해서 논쟁을 진행해 나갈 수도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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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lass="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375rem; padding: 0px; font-weight: var(--wgt700,700); color: inherit;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size: 2.8125rem; line-height: 1.375; letter-spacing: -0.075em;">[목요♨탕]“21세기 볼셰비키, 이 시대의 변혁 출발점 되고 싶다”</h3>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weight: 300; color: inherit;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40px; font-size: 1.4375rem; letter-spacing: -0.025em; border: none;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비정기 목요일에 만나는 뜨겁고 내밀한 제주인 인터뷰-2</h4>
</header>
<section class="article-view-content" id="articleViewCon"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flex; flex-wrap: wrap; color: rgb(30, 30, 30); font-family: "Apple SD Gothic Neo", "Helvetica Neue", Roboto, "Noto Sans KR", "Malgun Gothic", dotum, Arial, sans-serif; font-size: 16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article class="grid body" style="box-sizing: inherit; flex-basis: 0px; flex-grow: 1;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div class="clearfix"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div>
<div class="sticky-article" id="snsAnchor"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display: flex; flex-wrap: wrap;">
<aside class="article-sns"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flex; flex-flow: column wrap; flex: 0 0 220px; max-width: 220px;">
<article class="grid" style="box-sizing: inherit; flex-basis: 0px; flex-grow: 1;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height: 5187.69px;">
<div class="infomation-box"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background-color: rgb(249, 249, 249); border: 1px solid rgb(17, 17, 17); box-shadow: rgb(17, 17, 17) 3px 3px 0px;">
<div class="editor"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1.25rem; border-bottom: 1px dotted rgb(17, 17, 17);"><span class="name"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1.3; display: block; overflow: hidden; margin-bottom: 0.25rem; font-size: 1.1875rem; letter-spacing: -0.075em; color: rgb(17, 17, 17); text-overflow: ellipsis; white-space: nowrap;"><span class="show-for-sr" style="box-sizing: inherit; width: 1px; height: 1px; overflow: hidden; clip: rect(0px, 0px, 0px, 0px); position: absolute !important;">기자명</span>조수진 기자</span><a class="email" href="mailto:sujieq@gmail.com"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2; color: rgba(0, 0, 0, 0.5);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 display: block; overflow: hidden; font-size: 0.875rem; text-overflow: ellipsis; white-space: nowrap;">sujieq@gmail.com</a><a class="more user-point"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List.html?sc_area=I&sc_word=%EC%A1%B0%EC%88%98%EC%A7%84&view_type=sm"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2; cursor: pointer; display: block; margin-top: 0.625rem; font-size: 0.8125rem; color: rgb(227, 47, 102) !important;">다른 기사 보기</a></div>
<ul class="infomation"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1.25rem; list-style: none; line-height: 1.6; font-size: 0px;">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0.9375rem; display: block;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2; color: rgba(0, 0, 0, 0.5); vertical-align: middle; letter-spacing: -0.025em;">입력 2019.10.10 22:15</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5rem 0px 0px; padding: 0px; font-size: 0.9375rem; display: block;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2; color: rgba(0, 0, 0, 0.5); vertical-align: middle; letter-spacing: -0.025em;">수정 2022.08.04 14:41</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5rem 0px 0px; padding: 0px; font-size: 0.9375rem; display: block;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2; color: rgba(0, 0, 0, 0.5); vertical-align: middle; letter-spacing: -0.025em;">댓글 <a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830#reply"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inherit; color: rgb(112, 112, 112);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2</a></li>
</ul>
</div>
<ul class="quick-toolkit"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2rem auto 0px; padding: 0px; list-style: none; line-height: 1.6; display: flex; flex-wrap: wrap; align-items: center;">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flex: 0 0 20%; max-width: 20%; text-align: center;"><button class="tool fontsise-btn" style="box-sizing: inherit; font-family: "Apple SD Gothic Neo", "Helvetica Neue", Roboto, "Noto Sans KR", "Malgun Gothic", dotum, Arial, sans-serif; font-size: 0.8125rem; line-height: 1; margin: 0px auto; overflow: hidden; appearance: button;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radius: 50%; background: rgb(38, 42, 51); color: rgb(255, 255, 255); outline: 0px; cursor: pointer; display: block; width: 35px; height: 35px; font-weight: 300;" title="본문글씨 줄이기" type="button" value="down">가</button></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flex: 0 0 20%; max-width: 20%; text-align: center;"><button class="tool fontsise-btn" style="box-sizing: inherit; font-family: "Apple SD Gothic Neo", "Helvetica Neue", Roboto, "Noto Sans KR", "Malgun Gothic", dotum, Arial, sans-serif; font-size: 1.125rem; line-height: 1; margin: 0px auto; overflow: hidden; appearance: button;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radius: 50%; background: rgb(38, 42, 51); color: rgb(255, 255, 255); outline: 0px; cursor: pointer; display: block; width: 35px; height: 35px; font-weight: var(--wgt500);" title="본문글씨 키우기" type="button" value="up">가</button></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flex: 0 0 20%; max-width: 20%; text-align: center;"><button class="tool" style="box-sizing: inherit; font-family: "Apple SD Gothic Neo", "Helvetica Neue", Roboto, "Noto Sans KR", "Malgun Gothic", dotum, Arial, sans-serif; font-size: 1.375rem; line-height: 1; margin: 0px; overflow: visible; appearance: button; padding: 0px; border-width: 0px; 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radius: 0px; background-image: initial; background-position: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background-repeat: initial;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color: rgb(30, 30, 30); outline: 0px; cursor: pointer;" title="인쇄" type="button"><i class="icon-print" style="box-sizing: inherit; line-height: inherit;"><span class="show-for-sr" style="box-sizing: inherit; width: 1px; height: 1px; overflow: hidden; clip: rect(0px, 0px, 0px, 0px); position: absolute !important;">바로가기</span></i></button></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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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class="grid" style="box-sizing: inherit; flex-basis: 0px; flex-grow: 1;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height: 5187.69px;">
<article class="relation"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clear: both;">
<h4 class="titles"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25rem; padding: 0px; font-weight: var(--wgt700,700); color: inherit;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 font-size: 1.0625rem; letter-spacing: -0.04em;">관련기사</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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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0.9375rem; padding: 0px 0px 0.9375rem; font-size: inherit; display: flex; flex-wrap: wrap; border-bottom: 1px dotted rgb(17, 17, 17);"><a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153"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5; color: rgb(30, 30, 30);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 display: inline-block; position: relative; padding-left: 0px; font-size: 0.9375rem; letter-spacing: -0.0125em; flex-basis: 0px; flex-grow: 1; overflow: hidden;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target="_self">[목요♨탕]‘제주다움’을 좇는 눈</a></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0.9375rem; padding: 0px 0px 0.9375rem; font-size: inherit; display: flex; flex-wrap: wrap; border-bottom: 1px dotted rgb(17, 17, 17);"><a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334"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5; color: rgb(30, 30, 30);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 display: inline-block; position: relative; padding-left: 0px; font-size: 0.9375rem; letter-spacing: -0.0125em; flex-basis: 0px; flex-grow: 1; overflow: hidden;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target="_self">[목요♨탕]살아남은 자의 ‘떨림’ 때문에 그리고 또 그렸다</a></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0.9375rem; padding: 0px 0px 0.9375rem; font-size: inherit; display: flex; flex-wrap: wrap; border-bottom: 1px dotted rgb(17, 17, 17);"><a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922"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5; color: rgb(30, 30, 30);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 display: inline-block; position: relative; padding-left: 0px; font-size: 0.9375rem; letter-spacing: -0.0125em; flex-basis: 0px; flex-grow: 1; overflow: hidden;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target="_self">[목요♨탕]중산간의 달밤에 간절하게 붙들리다</a></li>
<li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0.9375rem; padding: 0px 0px 0.9375rem; font-size: inherit; display: flex; flex-wrap: wrap; border-bottom: 1px dotted rgb(17, 17, 17);"><a h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953" style="box-sizing: inheri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line-height: 1.5; color: rgb(30, 30, 30); text-decoration-line: none; cursor: pointer; display: inline-block; position: relative; padding-left: 0px; font-size: 0.9375rem; letter-spacing: -0.0125em; flex-basis: 0px; flex-grow: 1; overflow: hidden;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target="_self">[목요♨탕] 청년 안김현정...바라보고 실천하다</a></li>
</ul>
</article>
</article>
</aside>
<div class="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0px 0px 40px; flex-basis: 0px; flex-grow: 1; width: auto; max-width: 100%; min-width: 0px;">
<article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d="article-view-content-div"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margin-bottom: 5rem; padding-left: 1.25rem; padding-right: 1.25rem;">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11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11"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96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11_578.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지난 8월30일 낮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가장자리 농원’. 눈앞에 다가온 가을에 밀려나는 게 서운한 듯 늦여름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3천여평 정도 되는 밭 어귀엔 백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농장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낌새를 알아채곤 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농원 주인 박성인(61)씨가 나와 기자를 맞았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35년. 검질(‘김’의 제주어) 매는 게 가장 힘들다는 ‘초보’ 농부 박성인씨가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기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 이상을 ‘노동’에 천착했다. 30년 전과 비교해 지금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지금 우리 곁에서 어떤 이는 곡기를 끊어가며, 또 어떤 이는 감금에 가까운 경찰의 제지 속에서, 또 어떤 이는 끝이 잘 보이지도 않는 고공 철탑에 올라가며 우리 사회의 노동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박성인씨를 만나 대한민국 노동의 현주소를 물어봤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대학생활 1년, 답 찾을 수 없어 바로 노동현장으로”</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1978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딱 1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학과 수업도, 동아리 활동도 10대부터 품었던 삶에 대한 고민에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낀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79년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를 한 1982년. 비로소 박씨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게 된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때는 기득권이었던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버리고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게 시대적 흐름이었어요. 군대를 제대하면서 민주화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던 곳이 바로 노동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복학 신청만 해놓고 바로 (노동)현장에 들어가게 됐죠.”</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수많은 사회문제 중 왜 하필 ‘노동’이었냐고 묻자 그는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어떻게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한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노동이에요. 그런데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70~80년대 특히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았어요.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가장 천시당하는 존재였죠.”</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에게 있어 노동운동은 사회를 변혁하려는 시도이자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어릴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p>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12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12"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96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12_5710.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4.3, 노동, 그리고 민주화…모두가 연결된 개념”</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지난 35년 그리고 앞으로 그의 삶을 ‘노동’과 연결해준 계기는 바로 제주4·3이었다. 그는 제대 후 1년 가까이 제주에서 지냈다. 이 기간 그는 4·3을 통해 ‘민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다. 4·3 당시에 민중이 부당한 공권력과 미 군정에 맞서 싸운 정신과 80년대 민중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자본권력에 맞서 싸운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친구인 김수열 시인과 걸어서 제주도를 한바퀴 돌며 4·3을 겪었던 동네 할머니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많이 깨닫게 됐습니다. 당시 항쟁하고 죽어갔던 이들의 정신을 지금 시대의 우리가 어떻게 되살려내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그게 바로 오늘날의 ‘노동운동’이라고 본 겁니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노동’, ‘4·3’ 그리고 ‘민주화’, 이 모두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혀지자 그는 공개적으로 “노동운동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강연을 통해 “4·3의 진실은 딱 노동운동의 진전만큼만 밝혀진다”는 그의 믿음을 전하고 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두 차례에 걸친 감옥생활 3년9개월…치열하게 노동 공부했다”</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박씨는 1986년 ‘다산보임사건(이념서적을 일본 등에서 들여와 운동권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의식화 학습을 한 혐의로 출판기획사 다산·보임 관계자들을 구속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한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당시 그는 노동운동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부터, 현장인 밑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기 시작했다. 출소한 후엔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자, 하청업 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펼쳤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1991년엔 제파PD(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소련의 현실사회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을 모두 억압적인 사상이라 비판하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등장하는 자본주의가 해소된 사회를 추구할 것을 주장한 계열) 그룹에서 활동하다 다시 국가보안법 혐의로 붙잡혀 2년3개월간 감옥생활을 했다. </p>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10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10"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96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10_575.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리고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목도했다. 박씨에게 이 시기는 ‘끝’이라는 충격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전환점이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때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 많은 경우가 절망해서 전향하기도 했죠. 그 사람들에겐 세계사적으로 희망이 무너진 거예요. 근데 전 충격을 덜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 공부할 때 소련을 모델로 보고 한 게 아니고 한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했거든요. 징역 살면서 현실사회주의가 왜 패배했는지, 근원적으로 공부하고 접근을 했죠.”</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노동은 인간 그 자체…자신이 할 일 자신이 결정하는 ‘노동의 해방’ 추구해야”</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박씨는 노동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말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 그 자체’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는 “노동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실현시키는 역할을 한다. 끊임없는 노동을 통해 인간이 지금의 인간으로 발전하고 변화한 것”이라며 “노동이 인간 그 자체라는 점에서 자신이 할 일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노동의 인간화’ 또는 ‘노동의 해방’”이라고 강조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이 ‘노동은 힘들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힘든 일일 때이고 다른 경우는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해야 하거나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받지 못할 때”라며 “전자는 과학기술이나 기계 발명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지만 후자는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이어 “인류 역사가 발전하려면 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가사 등 ‘필요노동’에 들어가는 노동력은 줄여가고 줄인 만큼 사람들이 예술이나 취미활동과 같은 자유로운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과학기술 등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필요노동’에 투입되는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히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동시간은 단축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이런 모순 현상의 원인이 ‘계급의 양극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층은 자신의 24시간을 필요노동에 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고소득층의 24시간은 어떤가요? 계급 간의 문제가 여기서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이 시대의 필요노동과 자유노동이 어떻게 분배되고 배치되는지를 보면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이 어디쯤 있는지 볼 수 있죠.” </p>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09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09"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96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09_5659.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지난 8월30일 제주시 노형동 가장자리 농원에서 만난 박성인씨. (사진=김재훈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가장 중요한 사회경제 민주주의는 후퇴”</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박성인씨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사회경제 민주주의의 후퇴를 꼽는다. 일상과 노동현장에서의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강조하면서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8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외치면서 선거와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386세대’ 대부분이 민주화 문제를 그저 정권 교체 정도로만 생각한 거죠. 정권이 바뀌면서 민주주의가 정착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사회경제 민주주의는 오히려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사회경제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위치도 변방으로 밀려났다. 노동자 간 연대도 점차 균열되기 시작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87년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파업과 노동조합 결성 등을 통해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을 이뤄냈죠. 당시엔 대기업 노동자들이 싸워서 임금 인상을 얻어내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어요. 그때까진 조직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노동자 연결고리, 97년 IMF 이후 깨져”</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노동자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깨지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정리해고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정리해고라는 게 생기니까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등으로 노동자 계층이 나눠지면서 소수의 노동자가 전체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선순환 구조가 차단된 거죠. 자본이라는 지배세력이 집요하게 갈라놓았습니다. 그리고 노동계에선 노동자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고요.”</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는 한국 사회 노동운동의 한계로 적절한 전략과 주체의 부재를 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민주화의 일부로 시작됐다가 민주화 문제로만 그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비롯한 한계들이 오늘날 노동의 위기로 표현된다. </p>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13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13"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96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박성인씨가 지난 5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그대로가 아름다워, 필요어수다! 양' 문화제에 함께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13_268.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박성인씨가 지난 5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그대로가 아름다워, 필요어수다! 양' 문화제에 함께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노동운동은 민주화를 위한 싸움인 동시에 노사 간 계급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자본에 맞선 싸움이 돼야 합니다. 한국은 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반자본주의 전략을 미처 마련 못 했다고 봅니다. 주체도 없었고요. 그 상황에서 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다 흔들려버린 거죠. 경제 위기는 노동자에 대한 공세가 가장 심해지는 시기거든요.”</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는 노동자끼리 서로 공격하는 구조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일례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귀족 노조’라 일컫는 태도를 지적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우리나라 기업들이 회사에 쌓아둔 사내유보금이 엄청 납니다. 또 금융소득자 등 불로소득자가 굉장히 많고 재벌이나 오너들의 연봉이 노동자에 비해 지나치게 높죠. 이런 부분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귀족노조’라며 노동자가 노동자를 공격하기 바쁘죠. 이런 구조를 더 이상 용인해선 안 됩니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노동, 결국 정치의 문제”</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박성인씨는 바로 지금이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위기라면서도 새로운 전환기이자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80년대 이후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미 마련됐다. 노동3권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조합 조직율은 10%에 불과하다. 특히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먼 얘기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렇다면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해온 노동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그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90년대 말에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시도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죠. 지금은 이른바 진보정당이라 불리는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가장 약화돼 있기도 하죠. 하지만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이게 지금 시기의 가장 관건이라 봅니다.”</p>
<div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1.2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figure class="photo-layout image photo_191616 float-center bigsize" data-idxno="191616" data-type="photo" style="box-sizing: inherit; display: inline-block; margin: 0px auto 1rem; position: relative; cursor: pointer; max-width: 600px; float: none !important;"><img alt="지난달 8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앞에서 열린 농민장터에서 박성인씨가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 장터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린다. (사진=조수진 기자)" src="https://cdn.ijejutoday.com/news/photo/201910/220830_191616_5132.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figcaption style="box-sizing: inherit; padding: 0px 0.625rem; margin-top: 0.75rem; font-size: 0.8125rem; font-weight: var(--wgt400,400); line-height: 1.625; color: rgb(119, 119, 119); text-align: left;">지난달 8일 제주시 연동 농어업인회관 앞에서 열린 농민장터에서 박성인씨가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 장터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린다. (사진=조수진 기자)</figcaption></figure>
</div>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1.25em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weight: var(--wgt500,500); line-height: inherit;">◇“지난 30년은 노동, 앞으로 30년은? 아직 고민 중”</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30년이 넘도록 박성인씨를 붙잡은 것은 ‘노동’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간 그의 삶은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까.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물론 농사를 잘 짓는 게 가장 중요하죠. (웃음) 지금 가장 고민하는 건 앞으로 최소 30년 내가 붙잡고 가야할 게 무엇인지입니다. 방향이 잡히면 지난 30년 그랬듯 전력을 다해서 또 30년을 갈 겁니다. 그중 하나가 자연재배 농사 원리를 정리하고 교육하는 일, 또 다른 하나는 제주의 미래를 위한 정책 이론과 전략을 개발하는 일입니다.”</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그에겐 30년 이후에 불리고 싶은 별명이 있다. 21세기 볼셰비키. </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em;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text-align: inherit;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지난번 서승 교수가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때 ‘이 시대 마지막 볼셰비키’라고 하더군요. 웃고 넘어가긴 했는데… 문득 30년 이후에 21세기의 볼셰비키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역할이 되고 싶거든요. 환갑이 넘은 지금도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p>
<div id="tem-type-5"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div class="wrappe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auto; padding: 1rem 3.75rem 1rem 1.5rem; display: inline-block; text-align: left; border: 5px solid rgb(213, 213, 213); position: relative; font-size: 1.3rem; transition: width 0.3s ease-in-out 0s;">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em;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4px;"><span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41, 128, 185);">박성인,</span></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em;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4px;"><span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41, 128, 185);">1959년 제주 출생.<br style="box-sizing: inherit;" />
1978년 연세대 사회학과입학.<br style="box-sizing: inherit;" />
1982년 제주 학습모임 참여.<br style="box-sizing: inherit;" />
1983년 다산보임그룹 참여.<br style="box-sizing: inherit;" />
1986년 다산보임사건으로 구속.<br style="box-sizing: inherit;" />
1988년 울산지역 노동현장 취업.<br style="box-sizing: inherit;" />
1989~1990년 울산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 간사.<br style="box-sizing: inherit;" />
1991년 제파PD사건 구속.<br style="box-sizing: inherit;" />
1995~2007년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정책위원장·부소장·소장)<br style="box-sizing: inherit;" />
1999~2008년 노동자의 힘(기관지위원장·대표)<br style="box-sizing: inherit;" />
2009년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위원회 강령위원장.<br style="box-sizing: inherit;" />
2010년~ 사회주의노동자계급정당준비위원회 중앙위원.</span></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em;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4px;"><span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41, 128, 185);"><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 2- 학출활동가의 삶의 이야기, 유경순> 참조</span></span></p>
</div>
</div>
<div id="tem-type-5"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5rem; padding: 0px; text-align: center;">
<div class="wrappe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auto; padding: 1rem 3.75rem 1rem 1.5rem; display: inline-block; text-align: left; border: 5px solid rgb(213, 213, 213); position: relative; font-size: 1.3rem; transition: width 0.3s ease-in-out 0s;">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em;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4px;"><span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41, 128, 185);">박성인의 '나의 삶과 사상에 영향을 끼친 10인'</span></span></p>
<p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inherit; line-height: 1.8em;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font-weight: var(--wgt300,300); color: rgb(0, 0, 0);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span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4px;"><span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41, 128, 185);">1.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독일 출신 신학자;1906~1945)<br style="box-sizing: inherit;" />
2. 시몬 베유(Simone Weil·프랑스 출신 사상가;1909~1943)<br style="box-sizing: inherit;" />
3.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독일 출신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1818~1883)<br style="box-sizing: inherit;" />
4. 엥겔스(Friedrich Engels·독일 출신 철학자;1820~1895)<br style="box-sizing: inherit;" />
5. 레닌(Vladimir Il'ich Lenin·러시아 출신 혁명가이자 소련 초대 국가 지도자;1870~1924)<br style="box-sizing: inherit;" />
6.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폴란드 출신 사회주의 이론가;1871~1919)<br style="box-sizing: inherit;" />
7. 체 게바라(Che Guevara·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1928~1967)<br style="box-sizing: inherit;" />
8.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네덜란드 출신 철학자;1632~1677)<br style="box-sizing: inherit;" />
9.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미국 출신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1883~1983)<br style="box-sizing: inherit;" />
10. 이반 일리치(Ivan Illich·오스트리아 출신 신학자이자 철학자;1926~2002)</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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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박성인 / <제주투데이> 2021.02.15.</p>
<p> </p>
<p>4·3특별법 개정은 우리 사회 민주화 진전의 성과</p>
<p>미국의 책임 규명·사과 없는 ‘완전 해결’ 어불성설</p>
<p>'특별한 지원' 아닌 수식어 없는 ‘배·보상’이 돼야</p>
<p>4·3의 정명은 과거의 문제이자 오늘의 문제</p>
<p> </p>
<p>‘4·3특별법’ 개정, 우리의 성과이지만 그 성과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p>
<p> </p>
<p>73년이 걸렸다. 잊혀지고 지워지길 강요당하며 공포와 고통 속에서 침묵한 50여년 세월에 더해, 1999년 ‘4·3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이라고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이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고, 마침내 2021년 2월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희생자 배․보상, 군사재판의 무효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다루어지기까지.</p>
<p> </p>
<p>물론 아직 10여일이 남아 있다. 행안위 전체회의를 거쳐 큰 이변이 없다면 법사위와 26일 본회의에서 통과가 될 것이다. ‘피해 구제를 통해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4·3특별법 개정은 이번 임시국회가 사실상 마지노선인 만큼, 여야간 합의에 의해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여러 쟁점에도 ‘4·3특별법’ 개정안은 통과될 것이다. 아니 통과되어야 한다.</p>
<p> </p>
<p>아직 섣부를 수도 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다시 용역 결과와 보완 입법과정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이번 4·3특별법 개정이 제주도민과 유가족분들께 조금이라도 위로와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비극적 제주 현대사의 한 매듭을 지었으면 한다. 70여년이 넘는 ‘고통과 피해의 역사’에 한 매듭을 지었으면 한다.</p>
<p> </p>
<p>우리는, 제주도민은 이런 매듭을 지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아 긴 침묵 속에서도 끝내 기억해 왔고, 우리 세대는 4·3의 학살 경험으로부터 뼛속 깊숙이 새겨진 두려움과 패배주의를 조금씩 이겨내 왔으며, 마침내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이제사 말햄수다”고 외쳐왔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4·3특별법 개정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성과이자 한 매듭이고, 우리 사회 민주화 진전의 성과이다. 두 세대에 걸친.</p>
<p> </p>
<p>갇히지 말아야 한다, 이 성과에. 갇혀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의 역사이기에, 우리가 매듭지어야 할 역사이기에, 이번 4·3특별법 개정은 우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화해’와 ‘상생’의 이름으로 매듭을 짓는다고 해도 아직은 ‘한 매듭’일 뿐이다. 누군가 4·3특별법 개정을 4·3의 ‘완전한 해결’이라고 주장한다. 학살 책임자에 대한 규명 없이, 특히 학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의 책임 규명과 사과 없이 ‘완전한 해결’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p>
<p> </p>
<p>‘위자료 등의 특별 지원?’ 한 발 물러서서 ‘위자료’라는 표현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특별 지원’인가? 4·3이 특별한가? 지난 4·3 70주년 이후 우리는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구호를 내걸고 ‘4·3의 전국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전국의 많은 국민들이 4·3의 비극에 대해 알게 됐고, 이번 4·3특별법 개정 과정에서도 함께 힘을 보탰다. ‘특별 지원’에 우리를 가두어서는 안된다. ‘4·3의 전국화’는 4·3을 전국에 알리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전국의 전후 민간학살의 역사가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진정 4·3은 전국화 된다. ‘특별 지원’은 바로 4·3 전국화의 한 측면을 가려버린다. 전후 민간인 학살과 4·3이 하나의 문제라는 것을 분리시켜 버린다.</p>
<p> </p>
<p>4·3의 전국화는 4·3을 전국에 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전국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그때 비로소 완성된다. 4·3을 포함한 전국의 전후 “국가폭력의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피해회복 조치이자 명예회복 조치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스스로를 치유하고 정의로운 국가로 거듭나는 길”이어야 한다. 4·3특별법 개정은 그 첫걸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수식어 없는 ‘배·보상’이 맞다.</p>
<p> </p>
<p>나아가 4·3은 제주도, 한반도 문제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구축과정에서 발생한 동아시아지역의 제노사이드의 일부이다. 이 문제까지 규명될 때 4·3의 ‘완전한 해결’을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4·3특별법 개정은 ‘완전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의 한 매듭이고, 아직은 그 두 번째 걸음을 향한 첫 발자욱일 뿐이라고.</p>
<p> </p>
<p>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3년 전 70주년 전야제 추모사에서 현기영 작가는 이렇게 썼다. “4·3항쟁의 대의명분은 옳았습니다. 그러므로 4·3의 조상님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4·3항쟁이 역사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했을 때야 비로소 4·3 원혼들이 편안히 진혼되어질 것입니다.” 4·3 정명의 문제이다. 4·3‘사건’의 성격 규정 문제이다. 이는 두 세대에 걸친 70여년의 역사를 뛰어넘는 문제이다. 100여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문제이다.</p>
<p> </p>
<p>4·3은 해방 후 미군정과 그 하수인인 친일세력, 서청 등의 탄압에 맞서 친일청산과 자주적인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염원했던 제주도민들의 항쟁이었다. 5·18이 학살로 끝났다고 ‘5·18학살’, ‘5·18사건’으로 불리우지 않듯이, 4·3항쟁이 학살로만, 피해자로만 자리매김되어서는 안된다. 4·3의 정명, 4·3사건의 성격 규명은 과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4·3항쟁이 제기했던 문제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3의 정명은, 4·3의 성격 규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진전만큼만 이루어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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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style="text-align: right;">2016.12.08.</p>
<p> </p>
<p>‘그 때 쿠바에 갔다 왔어야 했는데---.’ 지난 11월 25일 쿠바의 혁명가 카스트로가 90세의 일기로 사망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00년의 기억이었다. 당시 ‘노동자의힘’ 대표로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Marxism 2000’에 참석했을 때, 행사의 주관자인 호주 민주사회주의당(DSP, Democratic Socialist Party)은 그해 말 쿠바에서 개최될 국제연대 행사에 참여해줄 것을 제안했다. 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10여년간 쿠바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를 평가하는 국제컨퍼런스라고 했다. 당연히 카스트로도 참석해서 발언한다고 했다. 그 유명한 카스트로의 연설을 직접 들어볼 수 있고, 무엇보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전세계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대안을 모색하는 지를 직접 토론하고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행사여서 마음이 설랬다. 가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가지 못했다. 당시 조직 내 상황이 긴박했고, 국가보안법의 문제도 걸려 있어서 결국 포기했다. 지금은? 후회된다. 그 때 어떻게든 가봤어야 했는데.</p>
<p> </p>
<p>쿠바 혁명의 역사는, 그리고 쿠바의 혁명가들(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은 1980년대에 자생적인 첫걸음을 내딘 남한의 초보 사회주의 활동가들에게 ‘혁명적 상상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1980년대~90년대에 나도 초보 사회주의 활동가로서 당시 몇 권 번역되지도 않았던 쿠바 혁명과 쿠바 혁명가들을 소개한 책을 읽으며 한국에서 혁명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모색했다. 1953년 소수의 젊은 혁명가들을 중심으로 독재자 바티스타정권에 맞서 몬카다 군병영을 습격한 그 결기가 놀라웠고, 1955년 법정에서 한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던 최후변론이, 그 용기와 열정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7.26운동 조직을 이끌고 50년대 후반에 마에스트라 산맥을 중심으로 전개한 게릴라전을 보며, 후퇴할 산맥(?)이 없는 우리에게는 ‘노동현장이 산맥’이라고 판단했다. 1959년 1월 마침내 게릴라부대가 중심이 되어 반바티스타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했을 때, 그 성공과 혁명 유지의 핵심적 동인이 아바나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큐바혁명의 재해석>(바니아 밤비라)을 통해서 였다. 여느 혁명의 역사에서처럼 쿠바의 민주주의 혁명은, 민주주의의 철저한 진전을 통해, 토지개혁과 외국인 자산 몰수 등을 통해, 그리고 이에 개입하려는 지배계급과 미국의 반혁명 시도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갔다. 아니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만이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완성시킬 수 있고, 민주주의 혁명과 결합 없는 사회주의 혁명이 있을 수 없다는 점 역시 쿠바 혁명이 보여주었다.</p>
<p> </p>
<p>사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것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의 쿠바였고,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의 쿠바 현실과 그들의 고민과 해법이었다. 그래서 2000년에 쿠바 국제컨퍼런스에 가고 싶었다. 당시 사회주의 활동의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충격을 온 몸으로 맞부딪혀야 했던 남한의 사회주의 활동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는데---. 다행히 2000년대 들어 쿠바와 쿠바 혁명가들에 대한 책들이 번역되거나 쓰여져서 간접적으로나마 쿠바의 역사와 현실을 접할 수 있었다. 쿠바의 유기농․생태농업, 무상의료․기초의료, 문맹퇴지와 무상교육, 제3세계 국제연대 등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요시다 타로), <또 하나의 혁명, 쿠바의 기초의료제도>(린다 화이트포드 등),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요시다 다로), <피델카스트로-마이 라이프>(이냐시오 라모네), <체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 등의 단행본을 통해 널리 소개됐다. 이 자체만으로도 쿠바가 경제봉쇄와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더 진전시켰는지를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위기 속에서 그 위기를 극복해나간 방식이었다. 그들은 1990년 3월부터 ‘사회주의를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라는 토론을 쿠바 공산당 당원만이 아닌 전국민이 참여하는 대중토론회를 열고 그 토론의 결과로 ‘제한적인 개혁․개방’의 길(국영기업의 분권화, 자영업 부활, 개인의 달러 보유 및 사용 허용 등)을 결정했다. 가장 위기의 시기(‘평화로운 시대의 특별 시기’)에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개혁해 나가는 방안을 전국민적으로 토론하고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다시 한 번 이런 토론회를 개최해서 수렴된 내용을 정리해서 ‘경제개혁’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제개혁에 따른 여러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고, 자칫 쿠바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우려도 제기되지만, 쿠바는 위기 극복 방식을 ‘핵미사일’ 대신에 ‘민주집중제를 통한 경제개혁’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온전히 쿠바의 민중들이 스스로 책임져나갈 몫이 될 것이다.</p>
<p> </p>
<p>1950년대 이후 60여 년간 쿠바 혁명의 중심에 바로 혁명가 ‘카스트로’가 있었다. 이제 그가 혁명가로서의 한 일생을 마감했다. 카스트로는 생전에 자신의 개인숭배를 단호하게 반대했고,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개인독재로 흐르는 것을 막아왔다. 몇 년 전 제작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다큐 ‘카스트로’에서는 카스트로의 사망 이후의 쿠바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이 죽은 후에도 쿠바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카스트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을 쿠바 민중들 속으로 데려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당시 쿠바 민중들의 목소리는 이번 장례식장에 모인 수십만명의 민중들의 목소리에서도 다시 되풀이됐다고 한다. “나는 피델이다”(Yo soy Fidel). 1955년 법정에서 울려퍼졌던 카스트로의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는 선언은 그의 죽음과 함께 이렇게 이루어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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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22px;"><strong>제주, ‘가장자리’에서</strong></span></p>
<p> </p>
<p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size:16px;">박성인/가장자리 농원지기</span></p>
<p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size:16px;"><질라라비>2020.10월호</span></p>
<p> </p>
<p><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3912868919.jpg" style="float: left;" width="500" /></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뿌리! 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span></strong></p>
<p> </p>
<p><span style="font-size:16px;">땅속 깊이 내리는 것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그만큼 줄기를 위로 솟게 하기 위해서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칠흙 같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잎이 햇빛을 마주하게 하기 위해서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왼쪽으로 뻗는 것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꼭 그만큼 가지를 오른쪽으로 뻗게 하기 위해서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주근이 굵어야</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잔뿌리가 많아지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그 가는만큼 흙속 무기물을</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생명으로 바꾸어낸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뿌리!</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살아서 땅속 길을 내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죽어서 땅속 거름이 된다.</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시인은 꽃을 보지만,</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농부는 뿌리를 본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시인은 꽃을 통해 뿌리에 다다라야 하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농부는 뿌리를 통해 꽃을 기다려야 한다.</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8년차 초보농부다. 8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심하고 어설픈 ‘초보’ 농부다. ‘농사(農事)’라기보다 차라리 ‘농도(農道)’에 가깝다. 생태순환적인 자연농업으로 30~40가지 밭작물을 재배한다고 하지만, 하는 것마다 변변치 못하다. 8년간 겪어보고, 이것저것 주어들은 것도 있고, 책도 보고 해서 머리로는 자연농업을 조금 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이도 있고, 농사짓는 평수(2,500여평)도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지만, 역시 농사는 ‘몸’이 짓는 것이다. 체력뿐 아니라 몸의 리듬까지 농사를 짓게 몸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몸에서 농부다운 ‘농심(農心)’이 생긴다. 그래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집안에서 농사를 했었더라면, 귀향해서 농사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자연 농업’을! 몰랐다. 농사가 이렇게 힘들고 진입 장벽이 높은 줄은.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에 우연히 후배로부터 ‘자연농업’에 대해 소개받아 괴산에서 교육받고, 자연농업을 한답시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흔히 오해하듯이 자연농업은 ‘방치’가 아니다. 자연의 생태적인 순환을 이해하고, 그 자연의 흐름에 맞춰 그 땅에 맞는 자신만의 농법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자연의 생태적인 순환을 이해하려면, 흙과 미생물, 농작물과 종자, 농작물의 영양 관리, 검질(잡초) 관리, 병해충 관리, 기후 변화 등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할뿐 아니라, 필요한 조치를 ‘제때’ 해야 한다. 밭 만들기와 파종에서 수확과 보관까지 4계절의 변화에 맞춰 제때 해야 한다. 제때! 변화무쌍한 자연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제때를 알아내는 것! 안다고 하다라도 제때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 자연재배 농사 10년 안에 이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제 2~3년 남았는데. 그래서 여전히 ‘초보 농부’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검은 보리</span></strong></p>
<p> </p>
<p><span style="font-size:16px;">검은 보리, 알이 여물어간다.<br />
제 머리 무게를 감당하기에 벅찬,<br />
가는 보리대는<br />
흔들려야 버틴다.<br />
흔들리면서 버틴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검은 보리가 흔들리면서<br />
바람이 인다.<br />
바람이 봄을 조금씩 밀어낸다.<br />
초여름 볕이 따갑다.<br />
검은 보리가 영글어간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흔들리며 영글어간다.</span></p>
<p><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1" src="/attach/1496/2953452263.jpg" style="float: left;" width="500"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그래도 ‘8년차’다! 검질(잡초)과 버렝이(벌레)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밀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멋모르고 허무하게 밀리지는 않는다. 작지만 큰 깨달음도 얻었다. 자연 농업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먼저 최소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무엇을 하지 말기 위해서는 자연의 생태적 순환을 자연 자체로부터 배워야 한다. 자연 자체의 자생적인 복원력을 신뢰해야 한다. 그 바탕에서 농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것! 그것이 자연농업에서 농사 실력이다. 무엇을 하기는 쉬워도 무엇을 하지 않기는 어렵다. 자연에 대한 ‘신뢰’와 자연에 대한 ‘실력’이 없으면 힘들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문제는 ‘과잉’이다. 21c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이듯, 지금 농업에서도 ‘과잉’이 문제다. 제초제, 화학농약, 화학비료의 과다 사용을 통한 농작물의 과잉생산이 흙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인간의 건강을 헤치며, 결국 자연의 생태적인 순환을 파괴해 버리고 있다. 이런 농업의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농업에서의 자그마한 대안적 시도가 자연 농업이다. 그래서 버티고 있다. 자연 농업이 현실에서 지속가능한지를 직접 확인해보려고.</span></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생태화장실'이 부른다!</span></strong></p>
<p> </p>
<p><span style="font-size:16px;">오라!</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마려운 자는</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큰거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작은거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가리지 말고</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버리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뒤도 안돌아 보는 것!</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버리지 않으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살 수 없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살기 위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매일 버리는 것!</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모으고 모아</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썩히고 썩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땅심으로,</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다시 생명으로</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되살려 낼테니</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주저말고 와라</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가장자리 농원으로!</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생태화장실로!</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자급자족을 위한 텃밭농사가 아니라면,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작물을 수확하고, 가공하거나 보관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재배를 하는 소농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점은 힘겹게 재배한 농작물을 판매할 통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자연 농업은 농사 자체도 힘들지만, 판매는 더 힘들다. 그래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많은 경우 몇 년 힘겹게 시도하다가 농사를 포기하거나 관행농업(석유화학농업)으로 방향을 바꾼다. 당분간 자연 재배 소농을 위한 농업 정책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에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야 했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그래서 지난 2018년 10월에 자연재배를 하는 5개 농민단체들이 모여, 3무(무제초제, 무화학비료, 무화학농약)+Non GMO 농작물을 판매하는 주말(매주 토요일) 직거래장터인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를 열었다. 생산자인 ‘농민’이 직접 나서서 연 소규모 농민장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버텨온 결과, 다음 주에 100회 장터를 연다. ‘100번의 고집! 100번의 소통!</span></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자연그대로농민장터 ‘시농제’ 축문(2019.3.24.) 가운데서</span></strong></p>
<p> </p>
<p><span style="font-size:16px;">이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를 통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생산자인 농민이 소비자를 살리고, 소비자인 시민이 농민을 살려 생산과 소비가 다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농민이 제주의 흙과 자연을 살리고, 그 흙과 자연이 다시 농민과 시민을 되살려 자연과 인간이 다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농촌이 도시를 살리고, 도시가 농촌을 살려, 농촌과 도시가 하나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농민장터’가 그 씨앗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노동의 가치’, ‘농업의 가치’, ‘생태적 가치’, 그 가치를 공유하는 농민들끼리 만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고, 또 소비자와 소비자가 만나 그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고 확산해나가는 ‘농민장터’가 되도록!</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그래서 농민의 건강한 삶과 노동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의 바램과 충돌하지 않고, 이런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청정제주의 흙과 자연을 지켜나갈 수 있게 하는 ‘농민장터’가 될 수 있도록!</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포기하지 않고 끝내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span></p>
<p><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33" src="/attach/1496/1064681457.jpg" style="float: left;" width="500" /></p>
<p> </p>
<p><span style="font-size:16px;">‘검질이 안심하고 자라는 농원, 버렝이가 안심하고 먹는 농작물’을 모토로 내걸었다. 8년째 그 검질과 버렝이 때문에 속타고 허덕이는 한심한 농부다. ‘가장자리’에서. 근데 농사를 지을수록 몸이 땅에 뿌리를 조금씩 내려 발목을 잡는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게 내가 할 일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검질을 메고 버렝이를 잡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가장자리 농원’! 사실 한반도와 동북아의 가장자리인 제주도에서,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 놓인 가장자리 땅에서, 자연 농업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겠다고, 역동적이고 다양한 변화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아보겠다고, 그 의지와 바람을 ‘가장자리 농원’으로 표현했다. 8년차 초보농부!, ‘가장자리’에 발 딛고 서서 다가 올 태풍을 어떻게 맞을까?</span></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6px;">태풍과 소나무</span></strong></p>
<p> </p>
<p><span style="font-size:16px;">기회다</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솟구쳐 날아오를!</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내 뿌리가 발목을</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잡지만 않는다면</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꺾이지 않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엎드려 휘지 않고</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스스로 태풍이 되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태풍이 되어</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다시 솟구쳐 오를!</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6px;">뿌리에 발목잡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끝내 발목잡혀</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아우성을 치는</span></p>
<p><span style="font-size:16px;">소나무!</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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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사회학과 40주년에 부쳐, 2012년</p>
<p> </p>
<p>박성인/사회학과 78</p>
<p> </p>
<p>어떻게 할까 망설여진다.<br />
쓸까? 말까?<br />
그냥 써야 하니까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세대 사회학과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br />
고작 78년에 1년 정도를 다녔는데. 17년 만에 간신히 졸업장을 받기는 했지만.<br />
자꾸 뭔가 ‘학벌’을 중심으로 엮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br />
‘사회학’ 자체에 대해 배운 것도 별로 없지만, 사회학이 이 시대의 절박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어떤 질문과 답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미덥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p>
<p> </p>
<p>근데 내 삶에서 연세대 사회학과란 무엇인가?<br />
--- ‘진정’ 무엇인가?<br />
아~ 이 한마디는 해야겠구나.<br />
이 말만은 꼭 해야겠구나.<br />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애기를 할 수 있는가?<br />
내게 연세대 사회학과는 ‘78년에 함께 입학한 30여명의 동기들’이었다.<br />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만 그 후 살아가면서 언제나 보고 싶었고, 매번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고, 몇 년을 못 보더라도 늘 옆에 있을 거라는 아련한 느낌을 주는 동기들이었다.</p>
<p> </p>
<p>왜 그럴까?<br />
친한 듯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고, 멀리 있는 듯하면서도 늘 곁에 있다고 느껴지는---.<br />
이건 뭘까?<br />
‘아쉬움’?<br />
20대 초반의 그 젊은 시절을 4년간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p>
<p> </p>
<p>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br />
제주도 시골 촌놈이 처음 서울로 상경해서 사회학과 동기들에게서 느꼈던 그 ‘문화적 충격’들을.<br />
서울 표준말에 익숙하지 못해 늘 가슴이 답답했는데, 모두가 자신들의 갖는 생각이 또렷하고 말을 잘한다는데 놀랐고, 78년 3월 말인가 신입생 환영식에서 여학생들이 술을 잘 마신다는 거를 보고 놀랐고, 서로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거를 보고 놀랐다.<br />
지금 생각하면 그게 놀랄 일인가라고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 땐 그랬다.</p>
<p> </p>
<p>대학 입학 후 1년간 나는 겉돌았다.<br />
대학에 대한 기대는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br />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만 가면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라는 기대는.<br />
70년대 말이라는 시대 자체가 그랬는지, 아니면 대학이라는 곳이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여전히 그러한 건지 ---.<br />
종철이와 기독교와 신에 대해서 토론도 해보고, 영철이와 ‘인간걱정반’에서 <광장>을 읽으며 시대에 대해 토론도 해봤다.<br />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 스스로에게 숱한 질문도 해 보고, 학교 후문 하숙집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붙들고 밤새 술을 먹어대기도 했다.<br />
그 때는 왜 산다는 것이 그렇게 공허하고 시시하게 느껴졌을까?<br />
왜 ‘대학’이라는 곳이 내가 기대했던 것을 이룰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br />
지금 생각하면 건방진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대학’이라는 게 참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br />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는데 ---- 대학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없겠구나는 생각만이 온통 나를 짓눌렀다.</p>
<p> </p>
<p>그래서 1학년을 마치자 그냥 ‘대학’을 미련없이 내려놨다.<br />
뒤도 안돌아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br />
1979년 11월 초에, 박정희가 죽은 뒤 며칠 안되서 군대로 갔다.<br />
휴학 처리는 부친께서 하셨다.<br />
덕택(?)에 군 제대 후 1983년에 다시 복학할 수 있었다.<br />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내 삶의 방향과 목표가 달라져 있었다.<br />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 현장으로 향했다.<br />
80년대라는 시대가 우리들에게 요구했던 ‘역사적 사명(?)’에 따라, 나는 사회학 학문은 하지 않지만, ‘사회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br />
그렇게 스스로 위안했다.</p>
<p> </p>
<p>그리고 그 후 30여 년이 흘렀다.<br />
그 사이 성수, 성남, 구로, 안산, 울산 등 노동현장을 돌고, 두 차례 징역을 살았다.<br />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노동관련 연구소를 만들어 10여 년간 노동이론과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지금은 출판사에서 인문사회과학 책을 만들고 있다.<br />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은 흘렀다.</p>
<p> </p>
<p>그 30여 년의 긴 세월동안, 78동기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그들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br />
아직도 아련하게 기억한다.<br />
80년대 중반 첫 징역을 살 때, 홀로 창살에 갇혀 있을 때, 그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 78동기들이었다. 사무치게 보고 싶어 했다.<br />
왜 그랬을까? 지금도 궁금하다.<br />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내 동기들이 가고 있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부러움 때문이었을까?<br />
젊은 날, 세상과 삶에 대해 동기들과 고민을 같이 나누고 함께 부대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p>
<p> </p>
<p>외롭고 힘들 때마다, 78동기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br />
그건 지금도 그렇다.<br />
간혹 영덕이나 성득이한테서 전화 와서 안부를 묻는다.<br />
전화기를 받는 순간, 마음은 30여 전으로 되돌아간다.<br />
78동기 모임에 자주는 못나가지만, 이멜로 동기들의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p>
<p> </p>
<p>그리고 너무 궁금하다.<br />
동기들 하나하나 살아왔던 30여 년의 세월이.<br />
동노도 궁금하고, 유경이도 궁금하고, 홍균이도 궁금하고, 경환이도 궁금하고, 용우도 궁금하고, 현옥이도 궁금하고 ---.<br />
그 세월 속에서 동기들이 겪었을 어려움이나 기쁨이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가 너무 궁금하다.<br />
언젠가 양말까지 벗어 앉아서 밤새는 줄 모르게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고, 내 얘기를 하고 싶다.<br />
어쨌든 한 시대를 함께 살아왔는데---<br />
근데 어떻게 1년 정도 맺은 인연뿐인데 이렇게까지 되지?</p>
<p> </p>
<p>사회학과 78동기들!<br />
니들과 35년을 함께 해서 너무 좋았다.<br />
너희는 내가 가지 않은 길이다.<br />
그래서 너희들은 내 마음에 아직도 설레게 남아있다.<br />
남은 세월도 그럴 거라 기대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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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
참 힘듭니다.<br />
이 글을 쓰기가 힘듭니다.<br />
이런 ‘추모집’에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고 싫습니다.<br />
동주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이 ‘추모집’이 아닙니다.<br />
고향땅 함덕 서우봉 밑 바닷가 모래해변, 때만 되면 고사리, 버섯, 곰취를 찾아다니던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 그가 농막이라도 지어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동백동산 곁 이 천 평 밭에,<br />
촌놈 동주는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p>
<p> </p>
<p>정녕 동주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그가 사랑했던 가족과 벗들과 지인들의 ‘마음’속이 아닙니다.<br />
생계를 위해 서툴게 농사짓던 감귤밭 검질(잡초) 작업을 위해 예초기를 들고 있어야 합니다.<br />
벗들과 밤 세워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열띈 정치토론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br />
그가 그토록 원했던 이 사회와 정치의 민주주의를 위해 열린 촛불 광장에 다시 발 딛고 서 있어야 합니다.<br />
지금, 동주가 있어야 할 곳은.</p>
<p> </p>
<p>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br />
동주가 없는 일 년이 무심코 흘러가버렸습니다.<br />
동주는 지금 여기에 없고, 왕방울처럼 꿈뻑이던 두 눈과 티 없이 맑은 미소도 없고, 쩌렁하던 목소리도 없고---<br />
그가 남긴 글과 사진들만 블러그와 페북에 외롭게 남아있습니다.</p>
<p> </p>
<p>동주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br />
블러그와 페북에 버섯에 대해, 농사에 대해, 이 사회와 정치의 민주화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을 즐겨했습니다.<br />
근데 동주가 진짜 원하고 그리워했던 것은 ‘사람’이었습니다.<br />
사람을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고 토론하고---<br />
그가 블러그와 페북을 통해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린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입니다.<br />
숨길 것 없이 자신의 온 몸과 온 느낌과 온 판단을 드러내고, 거칠 것 없이 사람들과 만나고자 했습니다.<br />
그래서 그가 남긴 글과 사진은 그가 그토록 만나고자 원했던 사람들에 보내는 절절한 손짓입니다.<br />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했습니다. 동주는!</p>
<p> </p>
<p>동주가 떠나고 나서야, 그가 남긴 글과 사진을 모두 묶으면서 비로소, 그가 살아왔던 삶과 그의 바람을 조금은 온전하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br />
그와 함께 했던 벗들과 지인들의 추모글을 통해서 동주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됐습니다.<br />
근데 지금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br />
지금 여기 동주가 없는데---<br />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미문화원 점거든 울산 노동현장이든 촛불항쟁이든 타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동주가 자신의 병 치유를 위해, 자신의 몸을 위해 모든 것을 걸지 않은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p>
<p> </p>
<p>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고향에 귀향한 내게 동주가 제안했던 여러 일들을.<br />
제주의 할머니들이 힘겹게 지은 농작물을 모아 팔 수 있는 온라인 유통망을 만들었으면 했습니다.<br />
분열된 진보진영이 하나의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결집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br />
제주도를 좀 더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도지사 선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직접 제안문을 쓰고 사람을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br />
이제 동주의 제안과 바람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됐습니다.</p>
<p> </p>
<p>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납니다. 언제 떠날 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br />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br />
특히 동주는! 지금은 아니었습니다.<br />
살아서, 살아서 여여(如如)했어야 합니다.<br />
뜻 그대로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살려면, 살아있었어야 합니다.<br />
여래(如來)는 “오는 것과 가는 것이 같은 사람”, 즉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지만, 동주는 살아서 여여(如如)했어야 합니다.<br />
살아야 여여(如如)할 수 있습니다.</p>
<p> </p>
<p>‘여여(如如)하게 살아보자’던 동주는 떠났습니다.<br />
그가 떠난 세월이 일 년이 됐지만, 동주는 지금 혼으로라도 되돌아와 무릎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br />
그가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가족들과 벗들과 지인 분들께.<br />
먼저 떠나가서 미안하다고.<br />
아마 동주는, 내가 아는 동주는 그럴 겁니다.<br />
“먼저 가서 미안해요.”</p>
<p> </p>
<p>동주의 명복을 빌며. 2019. 10.01.<br />
가장자리 농원에서, 박성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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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1. 음주 운전은 무조건 하지 말라! 걸리지 않을 정도면 괜찮겠지 하다가 음주운전이 습관이 된다.</p>
<p> </p>
<p>2. 운전 중 뜻밖의 상황에 처했을 때, 당황하거나 쫄지 말라! 침착하게 대처하면 다른 운전자들이 알아서 대처한다.</p>
<p> </p>
<p>3. 크던 작던 사고가 났을 때는 절대 자리를 피하지 말고, 사람 중심으로 대처하라! 사람이 다쳤는지 안다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것은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이 다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보험만으로는 안된다. 상대방이 다쳤을 때는 반드시 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p>
<p> </p>
<p>4. 운전은 ‘흐름’과 ‘탄력’이다. 도로 주행 중일 때 무조건 천천히 간단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다른 차들과 흐름을 맞춰야 한다. 도로가 언덕일 때, 오를 때는 탄력을 받고, 내려갈 때는 탄력을 죽여야 한다.</p>
<p> </p>
<p>5. 운전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잘 유지하는 것이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후미등으로 뒷차가 어느 정도 간격으로 따라오고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p>
<p> </p>
<p>6. 안전운전은 ‘예측’운전이다. 도로의 상황, 차의 주행 속도 등을 판단하면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지 예측하면서 대비해야 한다.</p>
<p> </p>
<p>7. 운전을 잘 한다는 것은 악셀레다를 잘 밟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중요하다! 특히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차를 정지할 때 브레이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p>
<p> </p>
<p>8. 빗길 운전을 할 때는 앞뒤차간 간격을 잘 확보해야 한다. 빙판길 운전을 할 때는 급출발이나 급정거를 하지 말아야 하고, 빙판길 내리막길에서 차가 미끌어질 때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꺾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사고가 더 커진다.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미끌어지게 놔두면서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p>
<p> </p>
<p>9. 야간 운전은 시야를 좁게 한다. 그래서 앞뒷차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운전하다가 졸리면 휴게소 같은데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라!</p>
<p> </p>
<p>10. 주차할 때 동작을 작게 하지 말고, 크게 해라. 우회전을 할 때는 먼저 오른쪽을 살핀 다음 곧바로 왼쪽을 살피고, 좌회전을 할 때는 먼저 왼쪽을 살핀 다음 곧바로 오른쪽을 살펴라.</p>
<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1496',263,'/DAHG','');"><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DAHG%2F263+%22%EB%91%90%20%EC%95%84%EB%93%A4%EC%97%90%EA%B2%8C%20%EB%93%A4%EB%A0%A4%EC%A4%80%20%27%EC%B4%88%EB%B3%B4%EC%9A%B4%EC%A0%84%20%EC%8B%AD%EA%B3%84%EB%AA%85%27%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DAHG%2F263&t=%EB%91%90%20%EC%95%84%EB%93%A4%EC%97%90%EA%B2%8C%20%EB%93%A4%EB%A0%A4%EC%A4%80%20%27%EC%B4%88%EB%B3%B4%EC%9A%B4%EC%A0%84%20%EC%8B%AD%EA%B3%84%EB%AA%85%27"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DAHG%2F263&title=%EB%91%90%20%EC%95%84%EB%93%A4%EC%97%90%EA%B2%8C%20%EB%93%A4%EB%A0%A4%EC%A4%80%20%27%EC%B4%88%EB%B3%B4%EC%9A%B4%EC%A0%84%20%EC%8B%AD%EA%B3%84%EB%AA%85%27','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DAHG/263?commentInput=true#entry26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