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자료 잘 읽고 갑니다. 주제에 관하여 너무 모르기 때문에 제가 이해한 것을 정리해보고 헤르더에 관하여 한 마디만 첨가할까 합니다.
우선, 쉬지린은 중국 패러다임이라는 대함이 출항하여 지나간 물길을 뒤따라가면서 형성된 중국의 지식지형을 반계몽적, 보편 이성에 대항하는 역사주의 사조로 규정하고 그 두 갈래 현상을 전개한 후에 이사야 벌린을 인용하여 이런 역사주의를 비코와 헤르더가 말한 역사주의에 대조시킨다고 요약해 봅니다.
역사주의를 반계몽적, 보편 이성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이사야 벌린의 지적은 천부당 만부당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헤르더가 엄연한 공화주의자였고 프랑스혁명을 적극 지지했다는 것은 괴테가 헤르더를 “나무랄 데가 없는 쟈코뱅”(“Jakobiner reinsten Wassers”)이라고 일컬었던 표현에서 잘 드러나는데 헤르더는 그가 이야기한 역사주의를 오해하여 국가주의를 운운하는 사람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민족국가(Nation)란 것이 무엇인가? 약초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커다란 정원이다. 누가 과연 탁월한 것과 미덕만 모아놓지 않고 어리석음과 오류까지 온통 한군데 모아 논 이런 집합체에 아무런 구별 없이 기대여 다른 민족국가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낭만주의-독일 리에송”에서 재인용)
그리고 쉬지린이 지적한 중국의 역사주의가 올바른 역사주의로 전환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헤르더가 역사주의 이념을 착안하게 된 것이 1769년 5월 17일 흔들림 없는 땅을 떠나 배를 타고 출렁거리는 바다로 나아간 데 있다면 중국의 패러다임이 출항하여 흔들리는 국제무대에서 올바른 역사주의로 전향할 수 있다는 희망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