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구치 선생의 글에서 손가 선생이 반복하여 강조하던 내용들이 확인되고, 진광흥 선생의 '민간'의 기원도 확인된다. 그가 동일하게 '민간'을 강조한 전리군 선생에 주목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유추된다. 개별 사회의 특수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서 나는 이들의 관점에 일정하게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정치성의 전개와 관련해서 역사성이 고려된다는 측면, 즉 역사성의 타자로서의 당대의 정치성을 더욱 고려한다는 점은 그들과 차이를 형성한다.
아무 의도 없이 맨손으로 역사의 바다로 진입할 것을 요구하는 미조구치 유조 선생이지만, 그 역시 중국의 역사에서 '민중의 정치 참여'라는 근대성의 핵심적 가치를 가지고 역사에 진입함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민중', '정치', '참여'의 함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그가 제시하는 역사학의 방법론과는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방법론적으로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는 존재론적 현상학적 모티브('민간')에 기초하는 것 같고, 그런 맥락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연구의 법칙성을 외부적인 것으로서 선형적/목적론적 역사단계론으로 환원하여 매도하지만, 실제로 그 역시 '민중의 정치참여'라는 모종의 근대적 정치관을 전제하고 중국 역사를 '내부적으로' 탐구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읽었듯이 미조구치가 그의 '근대'을 버리지 않는다면, 즉 전체의 보편적 관계성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 '근대'의 함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각 개별 사회의 특수성의 역사적 인식의 맥락에서 역사로의 진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를 목적론적 역사관으로 오해하고 내팽개칠 것이 아니라, '근대'의 보편적 관계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유력한 비판과 구조의 법칙성 분석에서 '근대'의 함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별적 특수성을 발견하는 거기에서 역사적 '직관'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직관은 자질이나 소양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지적 능력의 표현일 뿐이다. '직관'과 '존재'에 대한 천착은 개념적 인식을 도와주지 못한다. 오히려 개념적 인식을 거부할 경우 종교적인 것 또는 영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현실의 복잡한 모순들과 그 속의 주체들의 삶으로부터 구조의 역사가 전개되고 이는 집단적 실천과 관계된 새로운 역사적/구조적 인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지적인 작업 속에 '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지적 실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개념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 '직관'과 '지적실험'을 '사상'과 결부지으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사상'을 이론적/지적 실천으로 규정하고 싶다. 예술도 그러한 실천의 하나일 것이고, 그러한 실천들의 장을 '문화'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민간'은 기본적으로 지배계급과 대비되면서 현존하는 역사 속에 기입되지 않은 주체들, 즉 민중의 역사적 공간이자 그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시좌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화'는 인식론적 층위에서 '민간'을 사상적 자원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론적 요구는 현실적 모순으로부터 파악되는 정치성으로부터 온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지적 유희 또는 모종의 '탈식민주의적 엘리트주의'에서 오기도 한다. 미조구치도 그러한 위험이 없지 않고, 진광흥 및 손가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난폭하게 얘기하면, 창조성과 계급성 사이에서 그들은 창조성을 선택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이 경우 그들은 돌아갈 '정치'가 부재할 뿐더러, 무의식적으로 '정치'와 공모하게 된다.
어제 蔡孟翰이라는 대만 출신, 영국 수학, 일본 대학 재직 중인 연구자가 와서 '동아시아의 과거는 서방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캠브릿지에서 정치경제학과 국제관계를 전공했다고 하는데, 근래에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정하게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심에 기초해서 이런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동아시아를 얘기하는데 자기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고, 그저 왕휘가 어쩌고, 미조구치가 어쩌고, 타케우치가 어쩌고 하는 독후감 수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장난스런 유치한 발표를 한다. 게다가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진광흥 선생에게 한방 먹었다. 유럽/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 같은 구조르 유치한 채 거울놀이를 하고 있다는 충고였다. 암튼, 동아시아가 유행이긴 한 모양이다.
그것보다도 진광흥 선생이 첨언한 부분이 중요한데, 미조구치는 후기에 다다르면 '근대'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보편주의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다. 그가 종축과 횡축의 긴장을 유지했었는데, 어쩌면 횡축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보이지 않았는가 추적해볼 수 있겠다. 이는 진광흥도 거의 유사하다. 모든 개념은 실재와 불일치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개념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결국 예를 들어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적합하지 않다면, 개별 '국민국가'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방향과 '국민국가' 자체를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방향이 있을텐데, 후자를 제시할 단계가 아니라면 우선 전자의 차원에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론적 인식틀을 통해 사회를 볼 때, 그 사회의 역동성과 역사적 궤적이 포착된다면 그 인식틀은 무용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이론적 인식틀은 전지구화되어 있지만, 사회의 역동성은 제각기인 상황에서, 역동성이 포착되지 않는 사회의 지식인은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횡적 인식틀을 넘어 종적으로 역사로의 우회를 감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이러한 자신의 구체적 상황을 종종 일반화하여 너희도 그렇지 않느냐고 문제제기하지만, 사실 적어도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제한적이지만 일정하게 포착되고 분석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운동과 이론의 분리는 훨씬 일찍 완결되었을 것이다. 미조구치가 중국을 참조하면서 일본을 볼 때, 진광흥이 한국을 참조하면서 대만을 볼 때 아마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그들이 방법적으로 '탈정치'적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개별적 특수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일정한 보편주의적 근대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설정하고 계보학적/종적 역사성에 대한 탐구로 진입할 경우 불가피하게 옥시덴탈리즘의 혐의를 갖게 되는 문제로 인해 결국 '근대'는 폐기되는데, 그렇게 갈 경우 본래 탈식민주의가 비판했던 포스트모더니즘과 결과의 측면에서 다르지 않게 된다. 결국 변증법의 부재, 즉 정치성이라는 타자를 고려하는 방법과 기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