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에 대한 본질주의/특수주의적 또는 옥시덴탈리즘적 접근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모종의 인종주의/국민주의/국가주의적 위험으로 나타난다면, nation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은 nation의 보편성을 전제함으로 인해 국가간의 역사구조적 차이를 무차별화하는 '이론적 국민주의'를 띠며, 구체적 현실 속에서는 외부적 보편주의와 공모할 위험으로 나타난다.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헤겔의 대논리학이 아니라 정신현상학을 인용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강연자가 잘못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
"자의식은 즉자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존재한다. 그것은 자의식이 또 다른 자의식을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의식이란 인정과 승인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방적인 행위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뭔가 생산적인 것은 쌍방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마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인정하듯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써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의식의 본질적 특성이 완전히 벌거벗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 그 외양을 최초로 만들었던 그런 순진한 형태로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삶이 팽창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개체의 주체성 구성의 차원에서 action과 reaction의 통일적 이해는 헤겔을 원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일정한 지속성과 역사적 구조를 갖는 한 사회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대중의 action과 reaction은 헤겔의 논의로 설명이 가능할까? 사회 집단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의 action의 측면은 결국 마르크스적 변증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탈식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 가능성은 이렇게 개체와 사회라는 서로 다른 주체를 설정하는 것과 관련되는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개념의 변증법이라는 헤겔적 틀을 폐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인식 주체와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