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광흥 선생 수업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이야기를 전했고, 진 선생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듯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매우 흥미로와 하는 것 같았구요.
사회구성체논쟁에 대한 재평가는 거듭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 나름대로는 탈식민주의가 새로운 재평가의 지점을 확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매우 가설적이기 때문이 뭔가 단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유학파"가 진정한 문제였는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하겠고, 적어도 저는 박현채 선생이 "이론주의"에 대한 경계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구를 좀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론주의“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에서의 학문하기가 궁금하네요. 학교, 학과, 연구소, archives, 인력배치, 지원프로그램 등등. 이와 관련 structure in dominance/지배심급에 푸고의 dispositif가 겹치네요. 지배심급이 인식의 문제라면 푸고의 dispositif는 [권력이 현실적으로 관철되는] 서사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식민/분단/냉전이란 지배심급하에서의 학문하기에도 „대안적 주체성“ 문제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관련 „타자되기“가 뭘까, 나아가 학문의 „타자되기“란 뭘까 궁금하네요. 플라톤이 „국가“에서 쫓아낸 „글쟁이“들이 떠오릅니다. 경계인으로서의 문학하기, 파울 첼란이 „Huhediblu“란 시에서 보여준 mimesis와 folie를 넘다드는 문학하기와 학문하기가 어떻게 „비판적 혼합“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그리고 이건 결국 대안을 넘어서서 (독)Gegenmacht (counterpower)가, 그런 „장치“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가의 문제가 아닌가 하구요. 그리고 이건 „장치“와 함께 정치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당의 문제가 아닌가 하구요.
제가 보기에 '민족'을 다른 심급과 비교해서 그 모순의 운동이 주체를 갖지 않는 역사적/관계적/매개적 포괄 심급으로 보고, '민족 운동'을 다른 심급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관계적이고 관통적인 역사적 '민족주체성'에 대한 인식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민족'은 이른바 '전체 운동' 또는 '전선체 운동'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 변혁의 기초이자 방향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거듭 강조되어야 할 것은 '민족' 자체는 현실 정치 속에서 주체를 가지지 않는데, 주체를 갖는 실체화된 ‘민족 운동’은 아주 쉽게 국가주의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별도로 ‘민족’이라는 관계적 심급을 제외하고, 나머지 심급들 내부에 과잉결정을 도입할 수 있을지, 또는 ‘민족’과 기타 모든 심급들 사이에 과잉결정을 도입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과잉결정과 관련해서 구조와 주체(화)의 관계의 문제도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논의가 많이 복잡해져서 지금은 논의를 보류해야겠습니다.
암튼 그런 맥락에서 남한에서 80년대 말의 '이론주의'의 문제는 사실상 정세적으로 ‘계급’적 심급의 부상에 따르면서 일정하게 '정치중심주의'를 보여줬지만, 역사적 '민족주체성'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지식생산이 정치를 위한 각성으로서의 비판적 인식의 역할을 더이상 맡지 못하면서 오히려 정치로부터도 멀어지게 되는 역설적 현상인 듯 합니다. 그 이후에는 ‘정치’ 자체를 사고하기 위한 포스트 주의와 정치철학 담론들이 확대재생산되었던 것 같구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의 문제는 궁극적 아포리아였고, 탈식민/탈제국의 문제설정 없이 이 문제를 지역/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지적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제3세계에서 이 문제는 식민과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는데 남한에서는 계급과 민족을 하나의 ‘국가’ 내부의 구조인과적 심급으로 이해했던 것 같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적 특수상황에서 둘을 결합하는 모델을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실상 ‘이론’만 남고, ‘사상’은 사라졌으며, ‘정치’의 역사적 기초는 이론적으로는 사라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문이나 지식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포괄적 관계/매개의 주체성으로서의 ‘민족 주체성’을 여러 다른 심급을 통해서 표현해내는 것이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보입니다.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은 사실상 그러한 전형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비판적 혼합’은 과잉결정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규범적 수준에서만 긍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