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올린 중국어의 한국어 원문]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 철거민 투쟁은 기본적으로 '생존권' 투쟁이다. 즉 재개발로 인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세입자 또는 거주민(대체로 도시 빈민)이 그 투쟁의 주체들이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저소득으로 인해 빈곤한 지역에 저렴한 주거 비용으로 거주하는 자들로서 재개발로 인한 보상금으로는 자신의 직장 및 생활권에서 안정적인 거처을 구할 수 없어 더욱 먼 곳 내지 더욱 열악한 곳으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에 종종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조건이 심각하게 열악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은 '왕가'가 그러한 의미의 철거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권' 등의 권리 담론 하에 상당수의 학생 및 지식인 등이 결집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아마도 '주거권'을 폭넓게 해석해서 '현대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결부 지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내가 보기엔 대중과 유리된 ‘지식인 중심적’ 담론이기 쉽다. 왜냐하면 ‘현대화’는 성찰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추구의 대상이기도 하며, 거기에서 물질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의 논리를 직접 끌어낼 수는 없고, 이는 일반적 상황에서 대중의 요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일부 낙후된 지역은 재개발을 통한 주민들의 삶의 조건 향상이 매우 절실하다. 이는 ‘반현대화’가 아니고, 도시 발전에서 재분배를 실현하는 ‘현대적’ 방식이다. 만약 지식인들이 문화적 유적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고 해도, 개발을 통한 낙후된 주거 환경 개선의 실익이 더 크다는 공동체의 대중적 합의가 있다면 개발 자체를 반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에서 주거권 보장은 철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의 명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수준의 주거 환경이 보상 등의 방식으로 보장되는지의 문제이다. 왕가의 경우는 그래서 주거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물론 이에 앞서 도시 재개발이 올바른 방향으로 계획되었는지에 대한 내용 및 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왕가 사건을 통해서 이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일반적 상황에서 도시 재개발은 낙후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몰아내 다시 게토 및 슬럼 등의 거주환경이 열악한 도시 빈민지역을 형성한다. 그래서 ‘주거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대만의 상황도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그러한 약소자의 피해를 해결하는 집단적 참여의 과정 속에서 그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왕가 사건의 경우 사건 자체가 그런 방식으로 이슈화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도시 빈민의 주거권 문제라는 대중적인 의제가 지식인 중심적이고 탈계급적인 ‘반현대성’의 의제로 치환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운동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사회의 진보와 변화는 지식인을 매개로 한 대중들의 각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식인과 활동가의 실천은 철저하게 대중들의 인식수준에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다.
최근 용산, 두리반, 마리로 이어졌던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서, 대만의 사례도 흥미로운 점이 있네요. 한국의 경우는,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사례들은 (도시 하층의) '주거권'이 논의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도심재개발로 인한 '재산권'을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요...그러니깐 정당한 보상 말이지요. (또 이런말하면 돌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로, 다분히 중간계층의 위기를 반영한 성격이 보이기도 하고요. 믈론, 도심재개발과 관련된 국가와 자본의 '탈취'와 각종 유무형의 폭력도 중요하지만요. 문제는 무슨 재산권이나 주거권이나 이러한 논의를 재기하거나 보다 충분히 논의를 진전시키지도 못하고, 일부에 미디어와 지식인, 학생, 활동가 등에 의해 투쟁 '쇼핑'으로 전유되는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이를 다루는 단위도 거의 없고요. 사실, 뉴타운 열풍이 불었을 때도 이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던 것 같고요.
도시공간이 공과 사가 어우러져서 예측 불가능한 그 어디론가 향하는, 예컨대 혁명으로 향하는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도시재개발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한 공과 사의 엄격하고 적대적인 구분으로, 도시공간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면에 주목하고 싶네요. 이런 맥락에서 주거권의 사회주의적 [재]해석이 필요하지 않나 하구요.
누락된 이야기를 첨언합니다. ‚슈트트가르트 21’이라는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 슈트트가르트시 중앙역 개조사업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이 시민운동을 계기로 하여 녹색당이 처음으로 주차원에서 정권을 창출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시민운동은 주거권문제보다는 도시공간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시민의 예민한 감각이 폭발한 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재밌는 것은 ‚슈트트가르트 21’ 이 2011.11.27 국민투표에서58.8% (반대 41.2%)의 지지를 받았지만 행정법원의 판결로 사업 일부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상황입니다. 지하수방출과 종보호법(Artenschutzgesetz)에 걸려서 그리 되었습니다. 중앙역 앞 공원의 나무에서 사는 딱정벌레류인 Juchtenkäfer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공사를 진행하려면 나무를 다 베어야 하는데 벌목이 금지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