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손호철교수의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역사의 간계 혹은 도구 운운한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요. 우선 이런 부분.
"마르크스는 잘못된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이긴 하지만 영국의 인도지배를 분석한 글에서 영국의 식민주의가 탐욕의 산물이고 잔인무도한 부도덕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도의 오랜 봉건적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역사의 도구'라고 분석한 바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며 문득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제가 맑스 연구자도 아니고 맑스를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지만 서구중심도 아니고 서구중심주의라는 표현은 납득이 가지 않네요. 맑스가 영국이 역사의 무의식적 도구 노릇을 했다고 한건 그 상태에서는 인도에서 근본적 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맑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도의 정치적 양태가 아무리 변화 무쌍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사회적 조건은 먼 옛날로부터 19세기까지의 첫 10년에 이르기까지 변화하지 않은 채 존속해 왔다."
무려 2천년동안..
헤겔도 인도는 중국과 달리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할 능력이 없다고 해요. 인간들이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박되어서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고 헤겔이나 맑스나 역사의 진보를 인간이 공동체의 부품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가는 발전과정으로 보고있는데 인도는 그 상태로는 가망이 없다고 봐요. 그런데 유시민이 영국이 인도에 저지른 짓처럼 근본적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호들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손 교수가 NL운동이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와 성과를 전유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편, 서구중심주의나 유럽중심주의는 보통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이나 탈식민주의De-colonialism/De-imperialism에서 제기하는 핵심적 논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저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동일한 비판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 80년대 후반 이후 그런 경향이 강해지면서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사고하지 못하는 NL과 분리된 PD가 등장했던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구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제가 마르크스주의적 보편성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역사를 진정 '유물론'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회는 자본주의적 현대화 이전에도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현대성과 맞물리면서 서로 다른 궤적을 갖는 역사를 그리게 됩니다. 저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변혁이 세계적 수준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무차별적인 공동체로 갈수도 또 가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할지는 몰라도 일종의 세계주의적/보편주의적 독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처음부터 '무'에서 온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무'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성의 논리는 무엇보다 먼저 특수성을 전제로 해야지 외부적 보편주의적 관점에 의해 타자화되지 않는 1) 반엘리트주의적 기층 대중운동, 2)반제국(보편)주의적인 사회변혁과 맞물리며 세계적 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포스트식민주의나 탈식민주의에 대해 전혀 몰라서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공유할 수 없음이 가슴 아프네요.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영국의 인도지배를 있는 그대로 읽었을 때 맑스의 그런 관점을 잘못된 서구중심주의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님이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서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모든 사회가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특수성이 아니라 고유성 혹은 개별성(singularity)이겠죠. 특수성이라는건 우리처럼 분단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저의 얄팍한 독서로는 맑스는 역사를 특수성의 극복의 문제로 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과연 계급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자들이 부르주아 통치 자체의 위대함과 과도적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이 머슴짓은 더욱더 역겨운 것으로 되어간다네."
마르크스가 역사를 특수성의 극복이라고 봤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차별적인 공동체들의 묶음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고, 국가 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이 역사적 제약 속에 있었다고 한다면 마르크스를 이렇게 단정짓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별성이나 고유성의 문제는 특수성과 분리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고유성을 역사유물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수성을 매개로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인식론적 판단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고유성은 특수성에 환원되지 않지만 일정하게 갈등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는 당대 속에서 이전의 역사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되기도 하지요.
제가 괜한 얘기를 해서 본문과는 상관없이 대화가 이어져 죄송하군요. 어쨋든 제가 아는데로만 얘기하자면 맑스와 헤겔에게서 보편성-특수성-개별성 범주는 보편성이 출발점, 특수성이 매개항, 개별성이 종착점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 범주는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개인에 해당되는겁니다. 그룬트리세 서설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회 속에서 생산하는 개인들 - 따라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개인들의 생산이 당연히 출발점이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개인들이 바로 특수자들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개인, 따라서 생산하는 개인도 비자립적이고 더욱 커다란 하나의 전체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