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어쩜 ‘오염’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진보의 오염’을 운운하면서 역사의 현실에서 사라지는 국면에 서 있는 한국의 일부 자칭 ‘진보’.
‘진보의 오염’이란 표현에서 러시아, 중국, 남미, 아프리카, 아랍, 그리고 이북에서의 사회주의의 현실적, 실질적 경험에서 후퇴하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현실에서 발전시킨, 최소한 발전시키려고 노력한 사상들을 멀리하고 칸트로 떨어져 ‘순수’를 운운하는 ‘진보’. 처녀성은 지키면서 아이는 갖고 싶다? ‘진보’란 이름은 떼고 차라리 ‘신천지’와 같은 교단을 세우지. 그럼 밥벌이문제는 해결될 텐데.
떨어짐 혹은 후퇴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에 동작정지 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력에 의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의한 매우 자연적인 일이다. 근데,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의식적으로 확실히 더 떨어져야 한다. 헤겔 밑으로, 칸트 밑으로, 스피노자 밑으로... 그리고 기층[민중]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떨어짐은 다시 올라오기 위한 떨어짐이다. 나는 이 떨어짐의 바탕에 유적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라오면서 이 유적이성은 더욱 풍부하게 규정되어 유적존재가 되어야 한다. 현재 추상적으로나마 형성된 ‘인류’를 풍부하게 규정하는 상승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