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블로그 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저의 경우 전공자들의 담론구조에 머물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오' 님과 같은 분들과의 의견교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블로그의 글들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 학습진도와 사유의 진전, 퇴보, 확장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전문적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그 전문성을 일반적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위 '학제간'이라는 유행어와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좀더 화학적 결합을 중시하고, 이론 전체의 구조적 틀 속에서 문제를 사고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부분적으로 가설적인 상태이긴 하지만, 아래에서 '왕휘'의 문제성을 보는 나름의 각도로서 그의 노신연구와 중국현대성 연구의 상관성을 제기한 바 있다. '反抗絕望반항절망'이라는 제목을 갖는 그의 박사논문에서 드러나는 노신연구의 실존철학적 기원성(물론 현재로서는 매우 가설적이다)이 오히려 왕휘의 '변화'를 '지속성'의 효과 아래에 종속시킬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물론 다케우치 요시미의 매개가 갖는 의미도 매우 징후적이다. 나는 여기에서 '拒絕遺忘'(망각에 대한 거부)이라는 인식론적 과제를 제기하는 전리군(錢理群, 첸리췬) 선생의 작업이 갖는 대비성(對比性)을 주목하고, '공백' 또는 '망각'을 통해 주체화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반서구적(또는 전통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철학적으로 슈티르너, 니체, 하이데거, 포스트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물음이 관건이었던 것 같다. 존재로서의 어떤 '본질'(주체, 기원, 목적)을 찾는 것은 결국 특수주의(비교불가능성)로 귀결되고, 개념, 논리, 이성을 부정한다. 이성에 근거한 판단의 유효성 자체를 버리지 않으려면 모종의 '비존재론'이 필요한 것 같고, 이는 알튀세르가 찾아 정식화 하려고 했던 마르크스를 위한 철학으로서 '유물론'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발리바르가 개념화한 'transindividuality'는 존재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비존재론'인 듯 하다. 결국 비존재론의 내용으로서의 '관계'는 사실 '구조'인데, 여기서 '구조'는 비목적론적 변증법의 원리를 내재한 대상에 대한 개념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