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욱 선생님의 토론문에서 왕휘는 프랑크와는 조금 다른 위치로 파악되고 있다. 아부 루고드의 논의를 빌려와 왕휘를 서구중심주의와 프랑크 사이의 '중간'적인 곳에 위치시키는데, 그 '중간'이 가능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아래에 그 일부를 인용해 놓았다. 백승욱 선생님의 토론문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두 번째 것이 본래 토론문이고, 인용한 첫 번째 글은 추후편집되어 황해문화에 실린 판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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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시아 상상의 난점들 -- 왕후이 글에 대한 토론` [황해문화], 2003년 봄호, 250-57쪽
"월러스틴의 ‘서구중심주의’나 더 나아가 맑스의 ‘서구중심주의’라고 하는 것도 기실은 16세기 이후 세계자본주의와 더불어 나타나는 단절점이 갖는 의미를 두드러지게 부각시킴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 단절점을 경시하게 되면 프랑크처럼 근대자본주의 세계의 역사적 종별성을 무시하게 되고, 반대로 이 단절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비유럽세계의 구체적 역사과정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왕후이의 길은 그 중간으로 보이는데, 그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더 천착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