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중요한, 하지만 아직 불안한 결심이 있는데, 바로 '중국 연구'에 대한 판단과 관련된다. 나는 본래 '중국 연구'와 '한국 연구'가 상호계기가 되어 일정한 효과를 내는 과정을 따라가려고 했다. 이는 방법으로서의 '중국'이자 '한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형식적으로 상호주체성을 따르지만, 내용적으로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개입해야 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이론적 사유의 공간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이론적 사유를 진행하기에는 내 주변의 상황은 훨씬 덜 국민적인 것이다. 상해에 와서 살아보니, 막연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 한국으로 못 돌아가지 않나 싶기도 하고...ㅋ
사실 이론의 발전적 계승 작업은 사회운동과의 관계를 빼 놓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우리의 사회운동을 객관화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판단하여, 이론과 운동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매우 무기력했던 것 같다. 특히, 늘 참조점을 유럽, 남미 또는 사회주의권으로 삼으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늘 뒤쳐진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이론적으로 늘 수입국의 처지에 머물도록 강제한 측면도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뒤쳐지고 앞선 것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노력과 능력일 뿐이다. 민중의 수많은 의식적 희생과 실천이 투여된 사회운동의 역사 자체는 이미 이론적 보물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사실 조금만 시야를 돌려 아시아에 주목하면, 사실상 21세기 새로운 혁명, 또는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좌파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곳은 거의 한국의 유일하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은 90년대 이후의 이론적 전환과는 그다지 무관해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이론적 전환으로 인해 이 가능성은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사회운동은 80년대에 축적한 양분을 소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