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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생산/거버넌스 모델

해민님의 [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에 관련된 글.

김영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고, 언젠가는 관련 이슈들을 정리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데, 우선 단상 형식으로라도 영식님 글에 대한 비평겸 해서 제 의견을 정리해봅니다.

 

1. 우선 영식님 글은 두 가지 큰 이슈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대안적인 생산모델의 문제이고, 둘째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문제입니다. 영식님글은 첫째 문제, 대안적 생산모델에 대한 주목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주적 거버넌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2. 우선 대안적인 생산모델과 관련하여...
자유소프트웨어와 비슷한 맥락에서 위키페디아를 대안 모델로 지적하며, 열린음악운동, 오픈코스웨어 등 다른 정보공유 운동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하였는데, 이는 '공동창작, 협력적 생산'을 지나치게 협의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유소프트웨어, 위키페디아와 달리 문학, 음악, 미술 등 대부분의 창작물들은 공동 창작이 아니라, 개별 창작자에 의해 생산이 됩니다. 이에 대해 영식님이 아쉬움을 표현한 이유는 "개별 노동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기부 받아 이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생산 모델의 문제라기 보다는 저작물의 성격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저작물의 경우 꼭 공동 창작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죠. 또한, 지식 자체가 본래적 속성상 인류의 협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공개하고 타인에게 이용을 허락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 창작, 협력적 생산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굳이 엄밀한 의미에서 공동창작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저작물 없이는 나의 창작물도 없었을 것이고, 또 (영화에 이용되는 음악과 같이) 내 창작물이 또 다른 창작물의 생산에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저작물 공유 운동이 자유소프트웨어나 위키페디아 모델에 비해 폄하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과 오픈소스 운동
김영식님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내외적으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으며, 그 외적인 요인으로 오픈소스 운동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영리적 이용이나 시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유소프트운동의 창시자인) 리차드스톨만도 오픈소스 운동을 싫어합니다. 그가 오픈소스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는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오픈소스 운동이 GPL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라이선스를 채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스톨만은 이것을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들은 엄격한 GPL 대신, 소스를 공개하더라도 다른 라이선스를 채택하기를 선호할 것입니다만, 오픈소스 운동을 비판하는 지점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뉴페디아의 실패와 위키페디아의 성공에 대한 영식님의 설명은 오픈소스 운동의 핵심 주동자인 에릭 레이몬드가 [성당과 시장]이라는 그의 대표적인 논문에서 지적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역시 소수 엘리트 중심의 생산 방식을 비판하며 모두에게 참여가 열려있는 네트워크적 생산방식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가 기존의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을 비판하며 오픈소스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큰 틀에서 정보 공유를 주장하는 전 세계 활동가들 내에서도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이 옳은가, '오픈소스운동'이 옳은가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진보넷이 회원 단체로 있는 진보통신연합(APC) 내에도 자유소프트웨어의 철학에 방점을 찍는 활동가가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위해서는 오픈소스운동을 포괄해야한다는 활동가들도 있더군요.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이 고집스럽게 '자유의 철학'에 천착하는 반면, 오픈소스 운동은 다소 실용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최소한 자유소프트웨어의 철학과 오픈소스운동의 생산방법론(생산모델)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4. 위키페디아의 한계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위키페디아의 실제 내용과 운영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아직 외부자의 입장이지 참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어쨌든 밖에서 보기에는 현재까지는 주목할만한 성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생할 수 있는 위키의 문제점 중 지적하신 부분(각각의 글들이 질적인 수준이 다르며 허위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소위 누리꾼들의 일탈행위)은 지적하셨다시피 이미 기술적, 운영적 대처로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위키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점이 아닐까 합니다.

 

즉, 위키는 객관적인 사실 위주의 지식을 협력적으로 생산하거나, 개인적인 자료 관리 목적으로는 매우 유용할 수 있는 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다루기에 본질적으로 취약해 보인다는 것이죠. 위키페디아는 성공한 반면, LA타임즈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LA타임즈의 논설은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주제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위키페디아 역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단어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넘어서 정치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편향성이나 갈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위키페디아는 '중립적 시각'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면 어느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의 설명 모두를 서술한다는 것이죠. 이는 나름대로 진전된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정치적 갈등의 위험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설명을 먼저 배치할 것인가, 전체적인 서술 구조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에 따라 수용자에게 미치는 정치적 영향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키페디아는 주목할만한 정보공유 모델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민주적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

대안적인 거버넌스 모델과 관련해서는 이 글에서는 엄밀하게 언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주적) 관리자(?), 정보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이 대안적 거버넌스 모델의 특성의 일부로 지적된 것 같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저는 인터넷기술작업반(IETF)의 RFC(Request For Comments)나 인터넷주소자원관리기구(ICANN) 모델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모델들은 열린 참여(Open Participation)와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Bottom Up Process)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은 의미는 좋지만 실제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어쨌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 참여하여 발언할 수 있고, 토론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통상적으로는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consensus-에 의해 결정되는) 정책이 채택된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린 참여'라는 원칙은 실제 현실에서는 참 무력할 때가 많습니다. 즉, 현실에서는 능력있는 사람의 참여가 되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높은 기술력과 공동체 기여도에 따라 획득한 권위"라면 다행인 것이지요. ICANN 역시 겉으로는 열린 참여를 표방하고 있지만, 미국/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저 역시 그렇게 느낍니다. 그들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세계 어디에서 회의를 하든 참가할 수 있는 재력이 있고,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여 특정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있습니다. 영어도 잘하구요. ㅠ.ㅠ 참여가 열려있다고 하지만, 토론에서 그들을 어찌 제압하겠습니까?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논의 구조 자체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소수자 우대정책 (Affirmative Action)'이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할당제나 제3세계 참여자에 대한 재정지원 처럼 사회적 약자가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린 참여'가 현실적 차별이 되는 것을 보완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논의 구조 자체를 벗어나 약자 스스로 연대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는 토론보다는 '힘'에 의해 변화해간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도 정리가 엄밀하게 되지를 않는데요...계속 생각만하고 실질적으로 진척을 못시키고 있네요. ㅠ.ㅠ

 

P.S 그건 그렇고 '자본주이' -> 김영식 표 오타..오랜만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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